나는 왜 지역에 몰두하는가?
- 지역의 ‘고질적인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나는 언제부터인가 지역의 문제를 ‘관심사’가 아니라 ‘일상의 일부’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오고 있다. 마을에서, 환경 현장에서, 문화정책과 도시재생 현장에서, 그리고 방송과 글을 통해 지역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 내 삶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시민사회 활동과 연구, 정책 제안, 국회와 정당 활동을 거치며 제도와 예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가까이에서 보아 왔다. 그러니 지역에 몰두해 온 시간이 우연이거나 일시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과정을 지나오며 마음 한편에는 늘 해소되지 않는 갈증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현장을 오래 다닐수록, 내가 직접 설계하거나 함께 고민한 정책들이 제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멈춰 서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게 될수록, 그 갈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좋은 뜻과 아이디어가 있어도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행되기 어렵고, 행정 조직의 구조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정책의 성패가 내용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권한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나는 점점 더 분명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 사이 지역을 둘러싼 말들도 달라졌다. ‘위기’, ‘소멸’, ‘불안’ 같은 단어가 특별한 표현이 아니라 일상적인 언어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물론 지역이 어려움을 말해 온 시간은 길다. 다만 요즘은 그 말들이 통계나 전망을 넘어, 주민의 감정과 생활의 체감으로 내려앉아 있는 듯하다. 한 사람, 한 단체, 한 기관이 애써 목소리를 내지만, 그 목소리들이 하나의 해법으로 모이는 장면은 그리 자주 보이지 않는다. 각자의 절박함이 각자의 방식으로 흩어지며, 문제를 ‘견디는 말’만 늘어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문제는 분명히 보이는데,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을 찾는 일에는 사람도, 예산도, 조직도 쉽게 모이지 않는다. 해결의 설계도가 차곡차곡 쌓이기보다 단발성 사업과 임시 처방이 반복되고, 사업이 끝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흐름이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지역은 조금씩 활력을 잃어 왔고, 주민들은 “어쩔 수 없다”는 말에 점점 익숙해지는 듯했다. 나는 그 익숙함이 쌓여, 지역의 가능성을 스스로 낮추는 방향으로 굳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걱정하게 되었다.
이런 흐름을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점점 ‘연결’과 ‘집중’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흩어진 목소리를 모아 공통의 우선순위를 세우고, 그 우선순위를 제도와 예산, 조직의 책임 구조로 옮기는 일. 말로 진단하는 수준을 넘어, 시간이 지나도 계속 작동하는 체계로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정치의 역할이 닿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정치가 모든 답을 쥐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정치를 거치지 않고서는 바꾸기 힘든 구조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나는 현장과 제도의 사이에서 여러 번 느껴 왔다.
그래서 나는 ‘왜 정치를 하려 하는가’보다 먼저, ‘왜 지역에 이렇게까지 몰두하게 되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것은 어떤 영웅적 결심이나 거창한 사명감이라기보다, 문제를 보면서도 계속 옆에 서 있기만 할 수는 없겠다는 마음에 더 가깝다. 문제를 아는 사람만 늘어나는 지역이 아니라, 문제를 풀기 위한 사람과 예산과 조직이 실제로 모이는 지역. 각자의 선의가 흩어지지 않고, 공동의 해법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 그 가능성을 더 자주, 더 안정적으로 만들어 볼 수 있다면, 제도와 권한이 닿는 자리에서의 역할도 외면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마 이 선택은 분명한 답이나 단정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길은 아닐 것이다. 다만 분명해 보이는 것은, 지금까지 반복되어 온 방식만으로는 지역의 불안과 소멸의 언어를 서서히 다른 말로 바꾸기 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는 자리에서부터, 지역을 더 오래 붙잡고 고민해 보려 한다. 정치라는 선택 역시, 그 고민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이 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문제를 구조로 다루기 위한 시도를 계속 이어 갈 수 있는 통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지역사회와 호흡하고 있다.
광주 북구에 국립주민자치연수원을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선언적 문구를 넘어 국민의 참여와 자치가 행정과 입법, 그리고 지방자치의 뿌리라는 국가적 원칙을 뜻한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면 우리는 자문하게 된다. 정작 마을에서 자치를 실현하고 있는 주민과 활동가를 위한 ‘전문 연수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주민자치를 어떻게 국가의 가치라 말할 수 있는가?
지방자치는 헌법과 지방자치법에 근거한 제도이며 전국 기초지자체에서 시행된 지 이미 30년이 넘었다. 주민자치회와 주민자치위원회, 주민참여예산제, 마을계획단, 생활공론장 등 다양한 실험이 전국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하는 전문 교육기관은 여전히 전무하다.
공무원은 지방인재개발원에서, 국회의원은 국회연수원에서, 대기업 임직원은 자체 인재개발원에서 전문연수를 받는다. 심지어 새마을운동중앙회도 자체 연수원을 통해 전국 회원을 조직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은 여전히 동 행정복지센터, 도서관, 회의실 등의 공간을 전전하며 ‘교육다운 교육’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자치를 실험하고 있다.
이제는 국가가 응답해야 한다. 주민자치를 진정 국가적 가치로 인정한다면 주민을 위한 국립 연수원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필자는 그 해답으로 광주 북구에 ‘국립주민자치연수원(가칭)’ 설립을 제안한다. 광주 북구는 그 제안의 가장 적절한 출발점이다. 이곳은 전국 최초로 주민참여예산제를 조례로 제정·시행한 자치의 상징지이며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사업 역시 북구에서 시작됐다. 또 도시재생과 공동체 실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사례가 북구에 축적되어 있다.
국립주민자치연수원은 단순한 교육시설이 아니다. 이곳은 연간 10만명 이상이 집합연수를 받을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주민자치 전문기관이자 도시재생·문화자치·민주주의 교육을 아우르는 자치문화 복합 허브가 될 것이다. 총사업비 2000억원 규모로 교육시설, 연구센터, 문화전시공간, 체험장, 숙박시설까지 완비한 복합단지로 조성된다. 꿈꾸는 대로 모두 되는 것은 아니지만 꿈꾸지 않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주민자치 교육의 꿈을 구체적인 공간으로 제안해야 할 시점이다. 입지는 무등산의 경관을 품은 북구 내 ‘뷰 맛집’으로 조성하여 생태·문화·관광이 융합된 숙박형 교육 플랫폼으로 확장할 수 있다. 인근에는 광주시립미술관, 광주비엔날레관, 국립광주박물관 등이 밀집해 있어 문화교육과 관광이 결합된 자치교육 모델로도 손색이 없다.
또한 이 연수원은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선다. 주민자치회 위원, 마을활동가, 청년 자치참여자, 주민제안자 등 누구나 정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실전형 연수를 받을 수 있다. 민간 교육기관과 협력해 관 중심이 아닌 주민 주도형 자치교육 시스템을 구현하고 예술 기반 교육, 체험형 프로그램, 맞춤형 커리큘럼이 유기적으로 구성된다. 청소년 민주시민교육, 세계시민교육, 평생교육, 직업교육이 마을교육 전체로 통합되어 운영될 수 있으며 이는 북구의 ‘28번째 자치동’이라 부를 만큼 독립된 자치공간이자 생활거점으로 작동할 것이다.
나아가 이 연수원은 주민자치기록관과 자치정책 연구소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며 주민자치의 역사와 사례를 체계화하는 국가적 플랫폼이자 글로벌 K-자치 모델 수출의 거점으로 기능할 것이다. 전문미술관, 소공연장, 지역 로컬상품 홍보관, 주민운영 문화공간 등은 자치 그 자체를 문화상품화하며 ‘주민자치’라는 말 자체가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길을 열 것이다.
지방자치의 완성은 주민자치에 있다. 그리고 주민자치는 전문성과 지속성이 갖춰질 때 비로소 제도로 기능한다. 연수원 하나 없는 체계로는 ‘참여만 강조하는 자치’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주민자치도 배우고, 훈련받고, 축적하는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주민자치를 말할 자격이 있다면 주민을 위한 연수원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그 시작을 광주 북구에서 열자.
지방소멸 위기 외면하는
'지방연구원' 설립 기준 폐기하라
2022년, 지방연구원법이 개정되면서 지방연구원 설립 기준이 인구 100만 이상에서 50만 이상으로 완화되었다. 이에 따라 안양, 안산, 시흥, 성남, 부천, 남양주 등 인구 50만 이상의 도시들이 대도시 자격을 얻으면서 지난해까지 지방연구원을 설립했다. 그러나 지방연구원의 목적과 역할을 봤을 때 오히려 50만 이하의 지방정부에 연구원 설립이 더욱 필요하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지방소멸과 같은 심각한 지역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연구와 정책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지방연구원의 설립이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현재 지방연구원은 대부분 광역지자체에 집중되어 있으며, 대도시들은 재정적 여건이나 연구 기반이 충분해 연구원 설립을 뒷받침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역 소멸과 불균형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의 많은 소규모 자치단체들은 연구원의 설립이 지역 발전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행법에서는 인구 50만 이상의 대도시에 한정된 설립이 가능하기 때문에, 규모가 작은 지방정부들은 기회 자체가 차단되어 있다. 광역지방연구원에서 기초자치단체의 연구를 포괄한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시군구의 실정에 맞춰진 연구성과를 실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까.
지역 불균형과 소멸 문제는 더 이상 인구 수가 적은 지역의 고유한 문제가 아니다. 전국적으로 경제와 사회 구조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단지 지방의 문제로만 한정될 수 없다. 각 지역마다 고유한 문제와 특성이 존재하므로, 지역 맞춤형 정책과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