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론
달빛의흐느낌
김동원
(문학평론가)
프롤로그-비가悲歌
그의시는달빛의흐느낌이들린다.무릇세상만물은무엇인가평안함을얻지못하면소리내어우는법이다大凡物不得其平則鳴(한유,「송맹동야서」).그의시는늦가을스산한찬기운이뻗친다.세상을향한낮은자의울음이들린다.시대의어둠이압화되어있다.차오르는아픔과분노의방황이어른거린다.내면의상처이자풍경이며,서성거리는달빛의그림자이다.그의시는직선보다는곡선의아름다움이깊다.시적형상화를추구하는가하면,서정의노래를곡진하게부르기도한다.좋은시가다그렇듯,그는‘어디에서와서어디로가는가’를묻고있다.그의서정은눈물과경험의방울로이루어져있다.동생의죽음을통해밑도끝도없는슬픈빙하가된다.그의시작詩作은대상에대한날카로운투사와은유가기발하다.그리움의벼랑을외로움의공간으로교직한다.흔들리는자의꿈이비치고,언어로서언어를뛰어넘는시도를한다.또한그의시는,감정의두레박에서건져올린기억과추억의언어놀이다.성령을통해몸을가진인간의한계와초월을추구한다.서정시의형식과내용을자신만으로방식으로집요하게물고있다.삶의체험을독특한경험으로형상화한다.밝은어둠을지향하는그의시는,천지간외로움의무늬다.그의선율은지극至極에이르는범종소리다.
그의시는사람냄새가난다.골목과이웃과사회의신음에귀를기울린다.현대사의아픔과부조리에대한강렬한저항의식도감지된다.그의말들은시성詩性,poeticity이갖는다양한의미망으로짜여있다.수십년시를써오면서그는창작과비평의다리를건너왔다.하여,그의시는‘새로운시란무엇인가’,‘시인이란어떤존재인가’,‘좋은시의요건은무엇인가’등등근본적질문이숨어있다.언어의다의성과이미지의복합적구성,묘사의치밀함은,그의서정시를읽는또하나의독법讀法이다.그의시는약자가느낀트라우마가무의식으로드러난다.전시대적이념에함몰되지않고,그만의독특한어조로재구성한다.그의시는‘대상’과‘주체’의개념을보다심화시키며,‘동일성의시학’에근접한다.역설과반어,은유와상징의관계망을촘촘히깁는다.하여,그의서정과현실,문명과자연,역설과메타포는실존주의에가깝다.어떤시는,사물의말이건네는계시이자응답이다.전통의운율과한국적정조情調가그림처럼펼쳐진시도있다.
이번강경호시집『무화과나무그늘아래에서울다』는십년만에나온역작이다.고뇌와지성,삶의긴장과이완,어두운내면과실존의노래는,그의시정신이건강하다는것을증거한다.「독사는제목을문다」는자기파괴적역설이섬뜩하다.시인과세계와의부조리의틈에서삐져나온절규같다.알베르카뮈의‘의미를찾으려는인간’과‘침묵하는세계’와의충돌에비견된다.그의이런실존의자기모순은절망의언어같지만,동시에그‘독毒’을자각한지성으로의자기검열처럼비친다.스물아홉에죽은아우에게바친비가悲歌「검은뼈의폐허」는절절하다.그의행간속에퍼붓는눈물은하늘이흘리는피처럼붉다.피와살이다빠져나간형체도없는아우의‘검은뼈’는‘폐허’다.말로다울지못한슬픔이생사의은유로풀려나온이시는,절창이다.생의행간을미처건너지못한아우“성호”를향한형의초혼招魂은애절하다.그렇다.좋은시는,한편의작품이전체의틀속에서어떻게기능하고구조화되어있는가를살펴야한다.그의개인서정은,현실의상반된논리속에세상의담론과연결되어있다.명징한언어와문체로드러나기도하고,은유를통해언어속에깊이감추기도한다.
부름과응답
부름은침묵을깨는첫음절이고,응답은그음절에피어나는두번째숨이다.부름은너를만들고,응답은나를완성한다.하여“아담”과“하와”는그에게거대한은유다.그의「무화과나무그늘아래에서울다」는,성령聖靈과환청사이에존재한다.그는“태초에하나님이천지를창조”하신그시공에홀로서있다.‘땅이혼돈하고공허하며흑암이깊음위에’서방황한다.“불로동과황금동사이”“에덴여관”은천국과지옥의갈림길이다.그어디쯤에서“탕자”는홀연히하느님의부름을듣는다.말씀은누구나들을수없고아무에게나들리지않는다.그는길을가다가온우주로부터갑자기‘말씀’이내려오는것을보았다.태초의하느님의음성을그만의방식으로들었다.무한의깊이로,영성의심연으로,오묘한신神의사유와방법으로그는누설한다.
불로동과황금동사이
한때는수많은아담과하와
그들의천국이었던골목,
오래무화과나무번성한
에덴여관
신세대아담과하와들은번화가로몰려가고
한낮에도적막이흐르는
자물쇠굳게채워진에덴의길을걷는다
문득머리에무화과열매하나
툭,떨어진다
탕자처럼분탕질로세상을떠돌다가
어찌하여어린시절불렀던
노래에목이메이는가
가끔늙은청소부가
발길에짓이겨진무화과열매를쓸던모습
무심하게바라보았는데
죄가죄인줄도모르고살았던일생이
십자가의못박음질처럼아프게느껴지는가
고목과한몸이되어가는앙코르와트사원처럼
여관과무화과나무가하나가되어가는,
에덴여관,무화과나무그늘아래에서
아담아,하고내이름부르는환청을듣는다.
-「무화과나무그늘아래에서울다」전문
왜태초에아담과하와는몸을무화과잎으로가렸을까?“죄가죄인줄도모르고살았던일생이/십자가의못박음질처럼아프게느껴”진걸까.왜,그의시를읽으면‘십자가는단순한형벌의상징이아니라,끊어진다리처럼’외롭게보이는걸까.그는왜‘빛과어둠’을끌어안고‘무화과나무그늘아래에서울었을까?’.시는보이는세계를통해보이지않는신神을드러내는방식이다.성령의시는영접과비밀에속한다.‘울음’은깨어있는자에게하느님이내려준선물이다.아담의원죄를예수가대속한것처럼,시인강경호도세상의아픔을위해통곡한걸까.하느님께서아담에게“네가어디있느냐”라고부르신것처럼,그는길을가다홀연“아담아,하고”그분의부름을듣는다.그것은“환청”이아니라‘계시’처럼들린다.마치하느님이인간에게말씀한최초의호명呼名이자최초의시처럼들린다.원죄가벌받아야할대상이아니라,구원받아야할대상처럼,말씀은그자체가구원의은유다.
천문天文
시를쓴다는것은‘허공’에‘길’내기다.무엇인가.시를논한다는것은,천문天文,지문地文,인문人文의탐색이다.그는객관적상관물“등나무”를통해,사람살이의형식과내용이결국은‘허공’에맞물려있다는진리를말한셈이다.이물음은그의시세계가현실성과동의어를이룬다는것을엿볼수있다.시는꼬여있는것들을푸는방식이다.그의시법은,등나무의“꼬임”이그렇듯,“상처”를통해“보라빛향기”로퍼지는작업이다.
꼬이는것이삶의목표인등나무
마음속여러갈래의생각들이꼬여
상처를낸다
풀수없을것같은꼬임속에서도
분명한것은
상처가지붕을받쳐주는기둥이된다는것
그꼬임이그늘을만들어낸다는것
마침내보랏빛향기를피운다는것
또한허공이길이된다는것.
-「허공의길」전문
그는묻는다.“왜허공은시의길이되는가?”.시는형식과내용의두“기둥”으로이루어져있기때문이다.그것은「허공의길」이될때만가능하다.허공은형식에의지하지않고,내용에기대지않는다.삶또한상처와견딤을통해조화를꿈꾼다.아무도하지못한방식을통해,그만의목소리로시법을밀고나가겠다는‘의지’이다.등꽃향기가퍼져나갈수있는것은,허공이비어있기에가능하다.시는꽉찬진술에서오기보다말해지지않은틈,곧여백의미학이다.삶또한상처가약이되듯,그의시관詩觀은실패함으로써좋은시를얻는,‘불가능의가능’을드러낸셈이다.시「허공의길」은,꾸밈이없는문장文章을통해놀라운문채文彩를얻었다.
큐비즘,혹은
강경호는미술평론가이자시인이다.그의언어가색채의이미지에서깨낸방식임을알아채야한다.그는이세계를하나의‘미술작품’으로구경한다.「우리들의큐비즘」에서엿볼수있듯,그는한때틈만나면“아이들”을데리고서울“예술의전당에”가곤했다.그는“피카소와클레”를통해,전혀낯선시법을배우곤하였다.피카소의큐비즘은단순히그림의양식을바꾼운동이아니라,“세계를보는방식”자체를혁명적으로바꾼사건이다.마치시인이상李箱이“큐비즘”에경도되었듯,강경호역시대상을하나의시점으로보지않고,앞과옆,안과밖,현재와기억을한화면에겹쳐놓는다.그의시법이사물을“해체”하고다시“재구再構”하는관점을취하는것도,이에연유한다.
방학때면아이들데리고
떠나온서울에鄕愁처럼갔네
서초등예술의전당에갔네
아이들은아직철이없어
코가다리에붙고눈이배에붙도록
참으로행복했네
피카소와브라크를보면
큐비즘은장난감이거나놀이터였네
해마다열리는예술의전당거장전
유독큐비즘이마약같았는지몰라
미술대학을졸업한아이들은
서초동부근에서분석적으로살고있네
우리내외도둥글고뾰족한,기하학을보면
분해하고싶어지는버릇을갖게되었네
세상이뿔났어도둥글게보기로했네
서초동예술의전당앞을지나다보면
오래된큐비즘이오늘의큐비즘과만나
세상을해체하고재구再構하고싶어지는지몰라.
-「우리들의큐비즘」전문
큐비즘은20세기초파리에서피카소와조르주브라크를중심으로전개된미술사조이다.전통회화방식인원근법을무시하고,여러시점에서동시에사물을뜯어보았다.즉,재현의예술에서구성의예술로넘어간셈이다.강경호의시역시,보이는것너머의구조를드러내고있는것을보면,상당한영향을받은셈이다.세계를있는그대로언어를복사하지않고,시간의색으로“기하학”으로“분해”한다.빛의파편을쪼개고,감정을입히고,언어의측면을잘라낸다.피카소가〈아비뇽의처녀들〉에서인체를해체하여새로운현대미술을열어젖혔듯,그의가족모두는세상을입체의예술로바라본다.마치시법을직선으로보지않고,분열되고중첩된세계로인식하는것과같다.사물은하나의의미만존재하는것이결코아니다.현대미술의큐비즘이그랬듯,현대시또한‘다층적의미의혁명’이며‘다초점의혁명’이다.언어를찢어새로운세계에다시붙이는방식이야말로,강경호가자신의시법에서시도한큐비즘의접목이다.
객관적상관물
객관적상관물은T.S.엘리엇이말한것처럼,어떤감정을직접말하지않고도사물·상황·사건의배열을통해필연적으로그감정을일으키는장치다.“늙은어미”의「가방」은“캥거루”의아기배주머니에비유된다.그낡은가방이자식을먹여살린“밥”이라니,서러운은유다.그낡은가방은한발짝더나아가“깊이를알수없는바다”에닿는다.‘가방’은어미의품이자,눈물을흘리는어린자식의뒷배가된다.이시는서정시의본령에뿌리박고있다.사물에대한응시를통해감정의묘사를세밀히복원한다.
늙은어미캥거루를닮은
가죽밑으로혈관이흐르고
생이무거워질수록가벼워져
가죽이닳아지고보푸라기일어나
당장버려도아무렇지도않을것같은,
어머니의가방은밥이었다
장에라도갔다오시는날은가방에서국화빵냄새가났다
손수건을꺼내어린아들의눈물을닦으며
울지마라이가방이너를지켜줄것이다하며
가방에나를품으셨다
어머니의가방은
깊이를알수없는바다였지만,
나는철없는물고기여서
해일이일때마다
양수처럼꼬옥안으셨다
오늘은요양병원침대에다가방을부려놓고
자물쇠처럼입을다물었다
아무도가방속에무엇이들어있는지몰라도
나는다안다
통성기도하는어머니의입을닮은틀니한벌과
일생을함께한성경한권
그리고약봉지가든,
그가방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