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것들이 예리해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상처의 언어가 되고
- 정애경 시집 『꽃들의 작명소』
강 나 루
(문학평론가)
정애경 시인의 이전 시집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의 해설에서 강경호 시인은 “시인은 사물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 적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통과한 감각과 사유로 자신만의 목소리로 세계를 다시 형상화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시인의 언어가 개성적인 까닭은 그 언어가 표현의 기술로만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한 존재가 살아오며 몸에 새긴 정서와 사상, 상처와 기억의 총체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라는 의미라고도 했다. 그런 점에서 정애경 시의 언어는 오래전부터 감각의 밀도 있는 사유의 언어였다고 말할 수 있다. 『발칙한 봄』에서 드러났던 에로티시즘의 생명력,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에서 두드러졌던 생명성의 탐구와 존재론적 성찰은 정애경 시인의 시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바탕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집 『꽃들의 작명소』에 이르러 그 감각이 한층 예리해졌다. 이전 시집에서 생명성은 주로 피어남, 몸, 사랑, 숨결, 회복의 이미지로 나타났다면,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생명을 꽃피는 순간만이 아니라 베이고, 마르고, 부서지고, 견디는 과정에서도 포착하고 있다. 이는 상처 입은 생명, 상실 이후에도 지속되는 생명, 돌봄의 피로를 견디는 생명, 역사적 불안 속에서도 자신의 도덕적 감각을 놓지 않으려는 생명의 응축으로 보인다.
정애경 시인의 서정은 현실을 미화하지 않는다. 『꽃들의 작명소』에는 꽃, 봄, 나비, 바람, 나무, 햇살 같은 자연의 어휘가 풍부하게 등장하는데, 이들은 삶을 부드럽게 덮어주거나 시련으로 등장하는 전형적인 자연의 단면을 대표하는 추상적인 속성으로 다뤄지지 않고, 삶의 상처와 버팀을 읽어내게 하는 감각의 문자 체계로써 다뤄진다.
정애경 시인이 자연을 추상적 속성이나 배경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은 다음의 시 「풍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봄, 행간마다 꽃으로 흘려 쓴 자국
나비 살풋 앉았다
까슬한 바람 깃을 낚아챈다
두 다리 잃은 해묵은 의자 나비가 날개로 수평을 맞춘다
무게가 뒤틀리면 금세 주저앉아 킁킁 바람을 살핀다
민들레 씨앗에서 바람의 무게를 잰다
나비 등에 업혀 멀어지는 봄의 시간
꽃들의 약속은 엄격했고
햇살 뜨거운 입김 잰걸음 곧 몰려들 즈음
간절기 넘기는 행간에
제법 물오른 초록 잎갈피를 꽂아둔다
나비, 날개를 접고 봄날은 익어간다
- 「풍경화」 전문
시인에게 봄은 계절의 이름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시인은 “봄, 행간마다 꽃으로 흘려 쓴 자국” 같은 표현을 통해 봄의 풍경을 하나의 문장 기호처럼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두 다리 잃은 해묵은 의자” 위에 앉은 나비가 뒤틀린 무게를 수평으로 맞추는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더 이상 나비는 가볍고 아름다운 존재로 한정되지 않는다. 즉, 정애경 시에서 작고 여린 것은 결코 약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나비, 민들레 씨앗, 꽃잎 같은 미세한 존재들은 세계의 균형을 감지하고, 무너진 시간을 건너게 하는 감각적 매개, 세계를 이해하는 문자 체계가 된다.
이러한 자연 인식은 「봄, 꽃들의 작명소」에서 제목의 의미로 구체화된다. 이 시에서 봄은 단순히 꽃이 피는 계절이 아니라 “꽃들의 작명소”이다. 꽃은 처음부터 제 이름을 완성한 존재가 아니다. “겨울을 단단히 뭉친 채 기회를 엿보는 꽃눈”이 “건조한 몸피를 뚫고 나오는 용기”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꽃잎을 펼치고, 그때 “본명을 알게 되는 나무 명찰”을 얻는다. 여기서 이름은 사물에 덧붙는 장식이 아니라, 한 존재가 지나온 시간을 증명하는 표지이다. 꽃의 이름은 아름다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겨울을 견딘 시간, 몸피를 뚫고 나온 고통, 다시 피어나려는 힘이 함께 들어 있다. 그러므로 『꽃들의 작명소』라는 제목은 이 시집 전체의 시적 태도를 압축한다. 시인은 꽃에게만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돌, 가시와 눈, 아버지의 부재와 엄마의 노년에도 각각의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오래 보아야만 알 수 있는 내력을 알아보는 일이다. 정애경 시인에게 작명은 세계를 예쁘게 부르는 일이 아니라, 세계가 지나온 상처의 시간을 읽어내는 일에 가깝다.
그러나 시인이 바라보는 자연이 마냥 평온하고 부드러운 것만은 아니다. 사람의 삶과 자연의 생명을 다르게 여기지 않는 시인의 관점은 당연스럽게 어느 순간 부드러운 것들이 예리해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아프게 다가오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이를 통해 상처와 소란, 자기 성찰의 문제로 연결짓고자 시도한다. 「바람의 칼날」에서 이러한 시인의 고민과 성찰이 이르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산에 오르면 내 몸의 반은 산이 되었다
조붓한 길도 넉넉한 품이 되고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만 담아왔다
산을 다녀와 누우면 내 몸에선 맑은 아카펠라 합주가 흐른다
스르륵, 꿈길에 산길에서 보았던 꽃들의 또렷한 콧노래
진달래 입술에 몽롱했던
금목서 향기에 아찔했던
찔레에 찔린 붉은 피가 굳어서 핀 동백이
흰 계절을 넘기고 있다
산을 오르지 않게 되었을 때
서서히 오염에 물들고 어지러운 소란이 징을 친다
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멀리 파동 한다
잔잔한 물결이 성난 파도가 되는 것은 바람의 장난이다
나는 그래서 바다를 좋아하지 않는다
산 그림자마저도 품고 잠든 자연의 합창에 기도를 버무려 넣는다
징 소리, 꽹과리 소리를 왕왕 내는 네 탓하는 사람아!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염주를 돌려라, 지문이 닳도록
산을 다시 오르면 바람의 칼날을 접을 수 있을까
- 「바람의 칼날」 전문
시인이 오래 천착해 온 사랑이라는 화두는 이번 시집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는 낭만이나 회상의 감미로움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인이 새롭게 주목한 사랑의 속성은 생명력을 지닌 감정인 동시에, 상처를 남기는 감정이라는 부분이다. 사랑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무게, 가시, 향기, 손톱, 씨앗 같은 감각적 사물로 변환된다. 사랑은 달콤한 기억이면서 동시에 몸에 남은 흔적이다. 이 작품의 초반부는 자연과 몸의 합일감을 보여준다. “산에 오르면 내 몸의 반은 산이 되었다”는 진술에서 보듯, 산은 화자에게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몸 안으로 들어오는 존재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는 몸속에서 “맑은 아카펠라 합주”로 흐른다. 자연은 화자의 몸을 정화하고, 화자는 자연의 소리를 자신의 내면에 담는다.
그러나 산을 오르지 않게 되었을 때 화자는 “오염”과 “어지러운 소란”을 감지한다. 바람은 잔잔한 물결을 성난 파도로 바꾸고, 소리는 징과 꽹과리처럼 왕왕 울린다. 바람은 이제 세계의 혼탁을 드러내고, 타인을 향한 비난을 되돌려 자기 성찰로 바꾸는 칼날로 변화한다. 화자가 마지막에 품는 “산을 다시 오르면 바람의 칼날을 접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바람인 동시에, 자기 안의 날 선 감각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대한 시인의 질문이다. 부드러운 것들이 예리해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상처의 언어로 전환되는 면모를 시인은 자연의 속성이라고 읽어내고 고민하는 것이다.
「시로 쓴 한 생」에서는 「바람의 칼날」의 예리한 감각이 시 쓰기의 문제로 옮겨간다. 화자는 “바람이 흘려쓴 시 바람으로 지우고 / 강물이 흘려쓴 시 강물로 지우고 / 꽃으로 흘려쓴 시 꽃으로 지우고”라고 말한다. 여기서 자연은 시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시를 쓰고 지우는 힘이다. 특히 “강물의 상처”와 “꽃의 핏자국”을 묻는 대목은 아름다운 자연의 배후에 이미 상처의 이력이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시란 지우면서 벼려지는 것”이라는 진술은 이 시집의 시론에 가깝다. 시는 삶을 그대로 보존하는 기록이 아니라, 상처와 흔적을 지우고 다시 벼리며 한 생을 갈무리하는 방식인 것이다.
「봄, 그렇게 왔다」는 봄과 꽃의 도래를 순한 자연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 화자는 “그냥 오니까 봄인 줄 알았다 / 그냥 피니까 꽃인 줄 알았다”고 말하지만, 곧 “혹한”과 “폭설”, “긴 터널”을 통과한 시간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특히 “숱한 바람의 칼끝에 세월을 가른 시간”이라는 구절은 「바람의 칼날」과 직접 맞닿는다. 봄은 상처가 사라진 뒤에 오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통과했기 때문에 도착하는 이름이다. 따라서 “봄이 된 너 / 꽃이 된 나”라는 말은 단순한 계절의 환희가 아니라, 칼끝의 시간을 견딘 존재들이 마침내 얻은 이름으로 읽힌다.
「곶」에서는 바람의 감각이 내면의 지형으로 바뀐다. 곶은 “억겁이 깎고 깎아 마름질한 침식의 상흔”을 지닌 장소이며, 화자는 그것을 “내 마음의 곶”으로 받아들인다. 「바람의 칼날」에서 바람이 날 선 성찰의 감각이었다면, 이 시에서 바람은 마음을 깎고 마모시켜 하나의 형상을 만드는 시간의 힘이다. “칼 귀가 닳아서 뭉툭해지면 / 비로소 보이는 곳”이라는 구절은 상처가 언제나 날카로운 통증으로만 남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오래 깎이고 닳은 뒤에야 드러나는 마음의 윤곽이 있는 것이다.
이렇듯 「시로 쓴 한 생」, 「봄, 그렇게 왔다」, 「곶」은 「바람의 칼날」의 문제의식을 각각 시론, 계절 인식, 내면의 지형으로 확장한다. 정애경 시인에게 여러 ‘바람’들은 자연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쓰고 지우며, 상처를 통과시키고, 마침내 마음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힘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힘을 또 다른 시선에서 조명하는 시편들도 있다. 「돌의 유골」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말하면서도 죽음이라는 추상어에 기대지 않는다. 상실이라는 상처를 추상어로 계속 남겨둔다면 손에 쥐어 체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사라진 온기’처럼 질감을 가진 언어로 변환하여 감각화하는 시편인 것이다.
공사장, 부서지는 돌가루가 사방으로 튄다
한 개의 돌덩이가 파편으로 날릴 때
무게가 사라졌다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 한 줌 가루
나는 돌덩이보다 더 큰 무게를 놓지 못하고
형체가 사라진 온기를 한참이나 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