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이 굴러가는 쪽 (조의연 시집)

공이 굴러가는 쪽 (조의연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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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시집에서 눈여겨볼 것은 ‘작가의 말’에서 밝힌 사물이 언어가 되는 방식을 어떻게 글로 써냈는지이다. 시인이 연두를 해거름에 놓음으로써 그리움으로 승화한 것처럼 사물을 관념의 예시로 쓰기보다, 사물의 성질을 따라가다가 거기에서 삶의 감각을 얻는 방식으로 써냈다. 결국 『공이 굴러가는 쪽』에서 시인은 사물을 멀리 세워놓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공이 구르는 방향, 잔디가 발밑에서 견디는 시간, 붕대가 상처에 닿는 자리, 감꽃이 밥의 기억으로 바뀌는 순간을 따라가면서 말이 생기기를 기다린다. 더불어 말이 몸에 깃들 때까지 기다린다. 이 시집에서 낮은 곳은 패배의 이미지 대신 접촉의 이미지를 입은 것은 시인의 그러한 태도에서 연유한다. 독자가 조의연 시인의 시를 생명의 노래로 받아들였다면, 생명을 크게 노래해서가 아니라 이처럼 낮은 곳에 놓인 것들과 접촉하고 몸속에 들어오도록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공이 굴러가는 쪽』은 독자를 화려하고 높은 곳으로 안내하기는커녕 오히려 발밑의 풀, 길가의 꽃, 상처를 덮는 천, 저물녘의 놀이와 고향의 냄새 앞에 잠시 멈춰 세우고, 우리는 삶이 언제나 높이 오르는 방식으로만 지속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려 한다. 이 시집은 낮은 곳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내려가 보는 경험이다. - 강나루(시인, 문학평론가)
저자

조의연

시인 조의연(본명: 조경자)
ㆍ 전남 화순 출생
ㆍ 199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ㆍ 1998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ㆍ 광주문인협회, 전남문인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영호남문학회, 우송문학회, 화순문학회원
ㆍ 광주문학상, 우송문학상, 동서커피문학상, 화순문학상 수상
ㆍ 시집 『강의 어귀에서 휘돌아나가다』, 『깊은 그늘』, 『거꾸로 크는 콩나물』 『엉겅퀴꽃, 흔들리다』, 『공이 굴러가는 쪽』
ㆍ 동시집 『뒹굴 뒹굴 뒹굴』 등

목차

작가의 말


제1부 일몰의 시간

잔디 위에서
연리지
붕대의 일
삶의 저녁
믿는 게 잘못이다
바람이 하는 일
물결 일렁이다
오월
뭉치면 이길 수가 없다
일몰의 시간
나그네
그루터기
호숫가에서
산책길
상생相生
공이 굴러가는 쪽
세량지
마음의 빛
생生
봄소식
가을 한 장
그리움을 아시나요
돌고래쇼


제2부 생명살이

봄, 옹알이하다
눈雪
생명살이
새삼넝쿨의 사랑
늦가을 만연사
햇살, 드리우다
나무는
호수, 출렁거린다
달의 뒷면
왕매미 울다
북극곰
안개마을
바위의 얼굴
단풍을 보다
소나기
이파리
당산나무
가을 오다
바다의 울음소리
씨앗 한 알
물안개
그리움
뱀딸기


제3부 청수국의 그리움

꽃눈
양귀비꽃
청수국의 그리움
어리연꽃
백목련 꽃봉오리
지는 꽃잎
꽃잎 길
꽃봉오리
지칭개꽃 피다
찔레꽃
오동꽃 지는 날
동백꽃 보러 가다
개망초꽃
꽃차
벚꽃 터널
감꽃 지다


제4부 고싸움놀이

환산정에 앉아서
우화羽化
고싸움놀이 1
고싸움놀이 2
팽이치기
길을 찾다
연날리기
상여꽃
널뛰기
살아가다
불꽃놀이
딱지치기
땅뺏기놀이
해오름놀이 1
해오름놀이 2
날개
고인돌공원에서
굴렁쇠 굴리다
쥐불놀이


| 작품론 |
구르는 것들이 품는 생명의 노래 / 강나루

출판사 서평

구르는 것들이 품는 생명의 노래
- 조의연 시집 『공이 굴러가는 쪽』



조의연 시인의 ‘작가의 말’은 “해거름에 고개 떨구는 나뭇잎들의 연두 빛깔”이 왜 그리움으로 다가오는가라는 미묘한 물음으로 시작한다. 연두는 대개 새순과 시작의 색인데, 연두와 해거름이 함께하는 데다가 심지어 고개를 떨구는 나뭇잎의 색으로 제시된다. 이 어색한 물음을 무심코 지나쳐버리면 이 시집은 단순한 자연 소재로 읽고 말 것이다. 하지만 시인에게 사물은 풍경을 이루는 몸 밖의 물건이 아니라, 어느 순간 “몸속으로 파고”드는 것들이어서 몸속으로 들어온 사물은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그리움 속에서 “만삭이 된 언어”가 된다. 그러므로 이 시집의 시들은 사물을 바라본 기록이라기보다, 사물이 몸 안으로 들어와 언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인은 만삭의 언어들이 “한뎃잠을 자지 않고 길 위에서 헐렁하게 살아가기”를 기도하는 행위 또한 눈여겨 보아야 한다. 만삭은 꽉 찬 상태이고, 헐렁함은 단단히 조이지 않은 상태이다. 즉, 시인은 언어가 오래 품어 꽉 차오른 말이되, 세상에 나오고 난 뒤에는 고정된 의미의 집 안에 갇히지 않기를 바란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품는다’, ‘안는다’, ‘싸맨다’는 행위와 함께 ‘구른다’, ‘흐른다’, ‘날아간다’, ‘흩어진다’는 움직임이 자주 나타난다. 사물은 몸속으로 들어오지만, 시가 된 뒤에는 다시 길 위로 나간다. 『공이 굴러가는 쪽』의 운동성은 이러한 시인의 생각에서 점화한 것이다.
이번 시집의 운동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표제작 「공이 굴러가는 쪽」이다.

공은 겸손하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굴러간다
산봉우리를 향해 뒹굴뒹굴 뛰어오르는
공을 보았는가
개울물을 따라서 공이 뒹구는
아랫마을에는 작은 풀꽃들이 살고 있다
바위등을 뛰어넘고
푹 꺼진 웅덩이에 들어앉는다
깊고 낮은 마음의 자리.

곡선으로 어부바하는 산봉우리
그 품에 안기는 씨앗들
씨앗은 흙의 속내를 잘 알고 있다
작은 것들도 품는다는 것
햇살이 닿기 어려운 땅
그 어둠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곡선은 부드럽고 풍요롭다
공은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맞고
몰매 들어오면 몰매 맞고
앙금을 토닥이는 발 아래 등불을 켠다.
- 「공이 굴러가는 쪽」 전문

“공은 겸손하다”는 첫 행은 얼핏 지나치게 빠른 단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단정처럼 보이는 말이 공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조금씩 다시 읽힌다는 점이 흥미롭다. 계속 읽다 보면 공은 겸손하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라 공은 그렇게 생겨먹은 사물이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낮은 곳으로 굴러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공의 덕목처럼 보였던 겸손은 공의 성질을 살피는 동안 뒤늦게 생겨난 이름이었던 것이다.
공이 낮은 곳으로 간다는 말도 그 자체로는 특별하지 않다. 그런데 공이 개울물을 따라가고, 아랫마을에 닿고, 작은 풀꽃들이 사는 곳을 지나고, 웅덩이에 들어앉는 과정을 거치며 낮은 곳은 물리적 방향이 아니게 된다. 작고 여린 것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자리, 마음의 앙금이 고이는 자리, 씨앗이 흙의 속내를 배우는 자리가 바로 낮은 곳이 된다. “씨앗은 흙의 속내를 잘 알고 있”는 것은 속내는 멀리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흙을 알기 위해서는 흙으로 들어가야 하고, 생을 알기 위해서는 생이 웅크린 곳, 즉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한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낮음은 으레 상투적으로 표현하는 예비된 미덕이 아니다. 공이 굴러가고, 씨앗이 묻히고, 햇살이 닿기 어려운 땅이 나오고, 몰매를 맞는 장면을 지나온 뒤에야 낮음은 의미를 얻는다. “발 아래 등불” 또한 빛은 항상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발밑의 앙금을 토닥이는 자리에서도 켜진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매개이다.
「공이 굴러가는 쪽」에서 느껴지는 낮음의 감각은 「잔디 위에서」에서 좀 더 생활적인 장면으로 나타난다.

안갯속 파크골프장 잔디 위에
서릿발이 성성하다
산봉우리에 해가 고개를 내밀자
잔디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누군가
“저기 좀 보게
잔디가 담배를 피우고 있네”

그렇구나
잔디도 담배를 피우는구나
사람들 발길에 끊임없이 짓밟히다가
덮힌 안개가 걷히는 순간에
독을 마시는 사람들처럼
담배 한 대 느긋하게 태우고 있구나
날마다 밟히기만 하는 잡초도
응어리진 한을 담배 한 대로 풀고 있다

햇살 쏟아지자 밟히고 있던 잔디풀
두 주먹을 불끈 다시 밀어올린다.
- 「잔디 위에서」 전문

안갯속 파크골프장 잔디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누군가 “잔디가 담배를 피우고 있네”라고 농담을 한다. 하지만 시인은 농담조차도 무심히 흘리지 않는다. 시인이 “그렇구나/ 잔디도 담배를 피우는구나”라고 받아들임으로써 잔디는 비로소 발밑의 배경에서 벗어난다. 사람들은 그 위를 걷고 놀지만, 잔디는 그 발길을 계속 받아낸다. 담배를 피우는 잔디라는 농담의 잔재 탓에 후술되는잔디의 통증은 더욱 선명해진다. “독을 마시는 사람들처럼” 담배를 태우는 잔디의 이미지는 쉬는 일조차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방식으로만 허락된 존재의 피로가 들어 있다. 시인의 시에서 낮은 것들은 그저 순하고 착하지 않다. 그들은 한을 품고, 독을 마시고, 그러면서도 자기 자리에서 다시 몸을 세운다.
결국 “두 주먹을 불끈 다시 밀어올”리는 잔디의 이미지는 회복의 이미지가 아니어서, 밟힌 자리에서 아래쪽의 힘으로 몸을 밀어올린다. “주먹”이 갖는 원초적인 저항의 이미지가 풀의 생장이라는 자연현상과 겹치면서 잔디가 밀어올리는 모습은 저항의 자세를 얻는다. 「잔디 위에서」에서 ‘낮은 곳’은 짓밟힌 존재가 다시 솟는 자리이며, 조의연 시인이 바라보는 시의 생명은 그 자리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시인이 사물을 서둘러 상징으로 끌고 가지 않으려 하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잔디는 저항의 상징이기 전에 먼저 담배를 피우는 잔디이고, 공은 겸손의 상징이기 전에 먼저 위로 굴러가지 못하는 공이다.
「붕대의 일」에서의 붕대도 마찬가지다. 이 시에서 붕대는 곧바로 사랑이나 치유의 관념으로 비약하지 않는다.

상처를 싸매는 일이 본분이다
사랑 한줌
아픔도 한줌 품에 안고
흐르는 피 닦아 주며
부드러운 손길로 어둠 한 움큼을
어루만지는 일이
어디 흔한 일인가

사람은 캥거루 주머니가 있어야 하고
하늘은 구름을 품에 안아야 하고
이별은 상처를 다독여야 새살이 차오른다
한세상을 살면서
붕대 한 가닥만큼이라도 누군가를
싸안고 산다는 것은
겨울 계곡에 발자국을 남기는 일이다

깊은 어둠 하나 싸매는 일이
붕대 한 가닥 넓이만큼이라도
붉은 생채기 덮는 삶이면 좋겠다
하늘의 넋을 품은 큰 소나무 하나가
바람에 바스락바스락 서 있다
- 「붕대의 일」 전문

화자는 “상처를 싸매는 일이 본분이다”라고 건조하게 읊조린다. 붕대는 상처의 사연을 묻거나 고통을 설명하지 않는다. 붕대가 하는 일은 피에 닿고, 어둠에 닿고, 아픔을 품에 안는 일이어서, 정확한 접촉을 통해 감정을 나타낸다. 가령 누군가를 싸맨다는 일은 “사랑 한줌/ 아픔도 한줌”처럼 사랑만 품는 일이 아니어서 사랑으로 아픔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아픔까지 같이 안아야 비로소 붕대의 일이 시작된다. 그래서 시인은 “붕대 한 가닥만큼이라도” 누군가를 싸안는 삶을 말한다.
「붕대의 일」은 「공이 굴러가는 쪽」과 정서적으로 닮았다. 공이 낮은 곳으로 굴러가 사물의 속내를 만났다면, 붕대는 상처의 표면까지 내려가 몸을 댄다. 조의연 시인의 시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은 이러한 하강의 행동에서 발현된다. 이는 상처를 없애는 힘이 아니라, 상처 곁에 머무는 힘이다. “붉은 생채기 덮는 삶이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은 절대 가볍지 않다. 삶 전체를 설명하는 거창한 말보다 한 생채기를 덮는 건조한 일이 더 구체적이고, 더 믿을 만하고 무게감을 갖는다. 이 시집에서 시인이 말하는 낮은 곳으로 간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의 상처가 있는 곳까지 내려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생」에서 나무와 돌덩이는 서로를 받치고 있지만, 그 관계는 넉넉한 조화라기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한 아슬아슬한 의존에 가깝다. “너는 나를/ 나는 너를”이라는 말은 따뜻한 미담으로 닫히지 않고, 비탈진 삶에서 서로에게 기대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는 조건을 드러낸다. 「물결 일렁이다」 역시 자연을 순한 위안으로만 보지 않는다. 물결은 어루만지는 힘이면서 동시에 “칼날처럼 번뜩”이는 힘이며, 그 출렁임 속에는 아버지의 꽃상여와 상엿소리까지 함께 들어 있다. 「삶의 저녁」에서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구순의 어머니를 레커차에 끌려가는 낡은 승용차와 겹쳐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쇠와 이별은 막연한 슬픔이 아니라, 덜컹거리며 눈앞을 지나가는 사물의 현실감으로 다가온다.
「감꽃 지다」에서 감꽃은 “흰 밥티 같은 꽃”으로 나타나는데, 아버지의 부재를 꽃의 이미지를 통해 감각화하고 있다.

흰 밥티 같은 꽃
길가에 수복이 담겨 있네
아버지 상엿길에 밟히던 슬픔 같은 꽃
쌀밥 한 끼 넉넉하게 못 먹고
요단강 건너는데 아프지 않게
마지막 가는 아버지 제상에
소복이 올라앉아
한 끼라도 잘 먹고 가시라고
삼월 하룻날
고봉밥으로 쌓여 있네.
- 「감꽃 지다」 전문

화자는 아버지를 그리워한다고 직접 말하지 않는다. 대신 감꽃을 “흰 밥티 같은 꽃”이라고 부른다. 더불어 감꽃을 아름다운 꽃으로 묘사하는 대신 밥상 언저리의 ‘밥티’로 낮춤으로써 애도의 방향을 ‘낮은 쪽’으로 바꾼다. 이는 꽃의 흰빛이 미적 대상의 빛이 아니라 먹는 일, 배고픔, 넉넉하지 못했던 생의 기억과 이어지는 형태로 드러난다. 아버지의 죽음은 “상엿길”과 “쌀밥 한 끼” 사이에 놓여 있는데, 아버지가 떠났다는 사실보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