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설 |
“生, 열무꽃 빛 환한 잠”인가
- 어둠의 심장에서 새어 나온 인간의 여러 말들
김 종
(시인, 화가)
임해원 시인의 시집 『울컥, 똬리』는 목울대를 밀어 올리는 ‘울컥’으로 주체 못할 감정을 표현하면서 그 출렁거림의 무게를 견디는 ‘똬리’라는 사물적 장치로 노래를 이어가고 있다. 똬리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기 위해 올리는 둥근 받침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시집에서는 가난과 노동, 여성들의 생애, 가족사의 애도와 생존을 떠받쳐 온 기억의 구조물로 상징된다. 요컨대 『울컥, 똬리』는 울음을 토해 내는 노래라기보다 그 울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친 노래라는 점에서 주목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의 시적 서정성은 감정의 분출보다 이를 지탱하는 형식에 가깝다는 게 평자가 갖는 생각이다.
꽃 핀 나무 지나 꽃 진 나무에게로
임해원의 이번 시집은 슬픔을 앞에 두고도 이의 극복을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에 슬픔과 함께 걷거나 나아가는 법, 머리에 담긴 기억의 무게를 이고도 밥을 짓고 꽃을 바라보는 법을 보여준다. 임해원의 시적 세계에서 어둠은 몸을 눕히는 공간이고 눈물은 꽃의 물이며 사라진 사람들은 강과 바람과 새의 얼굴로 돌아오는 그리움의 표상들이다. 그래서 「울컥, 똬리」는 오래된 상처를 다독거리는 한편으로 삶을 물처럼 흐르도록 펼친 사랑의 도록이라 할만하다.
이 시집을 거드는 큰 축은 ‘경계’의 의미화에 닿아있다. 빛과 어둠, 산 자와 죽은 자, 어린 시절과 현재, 개인의 상처와 세계의 슬픔, 강과 바다, 이름과 이름 없는 존재 사이의 경계가 끊임없이 나뉘면서 시인은 어느 한쪽을 다른 한쪽에 위치시키지 않는다. 요컨대 어둠은 “사라짐이 아닌 쉼”이며 죽음은 단절이라기보다는 꽃길과 강물, 새와 바람으로 이어지는 존재들의 상대적 변형이라 할 것이며 빛 또한 무조건적 구원 이전에 “빛의 고통”을 품은 존재로 드러난다. 이 시집은 빛과 어둠,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서 임해원이 요량한 사물들과 그 사물에 배어든 시간과 체온을 더듬어간다. 물동이를 인 어머니의 이마, 상여 꽃의 색, 강을 향해 흐르는 마음의 무늬, 눈보라 날리는 허공, 상처 입은 나무와 붉은 꽃 등은 하나의 존재가 다른 존재로 이동하는 장면들로 드러난다.
그러나 임해원의 시집 『울컥, 똬리』는 상실된 기억을 복원하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사라진 것들이 어떻게 자신의 거처로 되돌아오는지를,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어떻게 시적 언어의 결을 송이송이 개화하는지를 집요하게 탐문한다. 여기에서 시는 기억의 저장고가 아니라 기억 이전의 몸과 기억 이후의 몸이 맞닿는 장소로서 위치한다. 물동이의 무게, 부은 발등, 상엿소리의 떨림, 우물의 어둠, 강의 물길, 붉은 꽃과 눈보라의 허공 등등은 각기 독립된 이미지가 아니라 한 생애에 축적된 연대된 감각들이 서로를 호출하는 통로로서 작용하고 있다.
그리 보면 임해원의 언어는 자연물을 통해 기억을 되살리는 감성적 특성을 눈여겨보게 한다. 버들개지, 어리연, 애기동백, 솜다리꽃, 달개비, 나생이꽃, 수양버들, 오동나무 등등이 자주 등장함과 동시에 이들 꽃과 나무들은 단순 사물이라기보단 발언하지 못한 자들의 목소리이자 오래된 여성들의 생애이고 삶의 아픔을 대신 피워 낸 몸들의 언어이기도 하다. 특히나 “그미” 연작에서 읽은 ‘꽃’은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 표현한 것이고 사라진 존재를 기억하는 방식이며 다시금 되살린 감정의 형식이기도 하다.
하나 임해원의 작품에서 더욱 주목할 것은 여성의 언어적 계보이다. 젊은 엄마, 큰언니와 작은언니, 쿠마리, ‘누이’로 불리는 존재들은 모두가 가난과 노동, 성장통과 억압, 사랑과 상실 등을 몸으로 통과시키고 있다. 시인은 이들을 개별화하지도 영웅화하지도 않는다. 대신에 물동이의 무게, 부은 발등, 고무신 등을 숨을 곳 없는 골목처럼 일상의 장면으로 불러내어 노래의 형식으로 들려준다. 말하자면 시각화를 넘어 시적 청각화에 닿아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이들의 삶은 비장한 서사가 아니라 밥을 짓고 물을 길으며 울음을 삼키는 일상의 성스러움으로 빛을 투사하고 있다. 이 시집에서 반복되는 “붉음”이란 어휘 또한 눈여겨지는 부분이다. 붉음은 피, 노을, 동백, 장미, 상처, 성체, 생리, 불꽃을 이어가는 생명의 강렬한 표식이자 통증의 색으로 기능한다. 시인은 이들 붉음을 통해 상처와 생명, 사랑과 죽음 등이 상호 멀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이 시집의 서정성은 단지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이들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윤리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임해원의 시집 『울컥, 똬리』는 기억을 서사로 정리하기보다 감각으로 되살리는 특이함 또한 읽을 수 있다. 개인의 상처를 고백의 공간에 가두지 않고 여성의 노동과 몸, 공동체의 장례와 토속의 언어, 자연의 순환과 종교적 상상력으로 확장해 가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 때문인가 이 시집에서 빛은 어둠을 지우지 않고 어둠 또한 빛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둘은 서로의 내부에서 존재의 느낌을 심화시켜 간다. 그러므로 시집 『울컥, 똬리』에서 읽은 ‘울컥거림’은 감정의 파열 상태가 아니라 기억이 몸을 통과할 때 일어나는 현재적 진동이라 할 것이고 이럴 때 똬리는 그 진동을 견디는 삶의 낮고 둥근 형식으로 읽힌다. 시인은 그 같은 똬리 위에 물동이만이 아니라 어머니와 언니들의 생애, 죽은 이들의 이름, 상처 입은 몸들의 침묵, 그리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내일의 빛까지를 조심스레 올려놓고 서로를 받쳐 든 존재들의 묘사를 조용하고도 깊게 증언하는 것이다.
밀고 들어오는 어둠
어둠의 심장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 화폭에 앉는다
소용돌이치는 색의 기억들이 진하게, 순하게 쏟아진다
태양을 필사적으로 붙들던 노랑, 숨을 멈춘다
허공의 새는 울음을 멈추지 않고
수평선을 긋고 그 금을 넘어오는, 온 적이 없는 배를 그린다
하늘은 그리지 않는다
한 번도 제 본디를 보여주지 않았기에
빛의 심장에 들어온 모든 존재는 자기 역할 후 사라진다
빛과 어둠의 경계
그 아우름에서 으름덩굴 속 고양이처럼 뒤엉킨다
어둠은 사라짐이 아니다, 쉼이다
빛은 부드럽게 위로부터 내려와 어둠으로 스민다
미모사처럼 움츠러든다
겁먹은 아이처럼 자신의 노랑 속에 제물인 양 드러눕는다
여기저기 툭, 툭 끊어진 의식의 실타래
외면하듯 구겨진 잿빛 모자를 눌러쓴다
훗날
먼 훗날
바람이, 새가, 바다가 나를 그린다
우두커니 뒹굴던 돌이 나를 그린다
빛과 어둠
한결같거나 다르다
- 「빛과 어둠, 화가 1」
「빛과 어둠, 화가 1」은 캔버스라는 회화적 공간을 빌려 존재의 생성과 소멸을 그리고 있다. 어둠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장면은 그 즉시 도달한 창조에의 순간에 진입함을 의미한다. 시는 이어지면서 “하늘은 그리지 않는다”는 선언으로 이어지고 재현 불가능한 초월적 영역으로 나아간다. 화가는 세계의 전체가 아니라 빛의 심장에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존재 또한 포착하려 한다. 특히 “어둠은 사라짐이 아니다, 쉼이다”라는 구절에 오면 이 시집 전체를 관류하는 사유가 소멸은 절멸이 아니라 ‘휴지休止’라는 사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빛과 어둠은 대립하는 두 개의 항목이기보다 하나의 몸이 번갈아 걸쳐 입은 옷과 같으며 스스로의 풍경이 바람과 새와 돌에 의해 “그려지는” 존재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주체와 대상, 그리는 자와 그려지는 자의 경계를 허무는 순환적 세계관에 기인한다. 색채어-노랑, 잿빛-의 선명한 대비와 회화적 동사-앉는다, 쏟아진다-의 대비적 사용이 시각적 밀도를 높이는 동시에 관념적 진술을 구체적 이미지로 육화시키고 있어 이 시의 실감이 커진 것이다.
임해원 시인은 위의 작품을 통해 “어둠의 심장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는 첫 구절의 이미지부터 이 시집의 핵심 세계관을 압축해 내고 있다. 작품에서 화자는 빛은 어둠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태어나 화폭에 앉는다고 생각한다. 화가는 태양을 붙들던 노랑, 멈추지 않는 새의 울음, 오지 않은 배를 그리면서 보이는 풍경보다 보이지 않는 기다림과 결핍을 포착한 사람으로 드러난다. “하늘은 그리지 않는다/한 번도 제 본디를 보여주지 않았기에”라는 표현에서 강한 시적 여운이 남는 것은 물론이고 이 시를 더더욱 인상 깊게 한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정작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 같은 시적 불가사의 앞에서 이내 겸손해진다. 특히나 후반부에 와서 “어둠은 사라짐이 아니다, 한편 쉼”이라고 말할 때의 삶의 고단함과 상실을 차이 나게 받아들인 시인의 태도가 이채롭다. 훗날 바람과 새와 바다와 돌이 ‘나’를 그린다는 결말은 창작적 주체가 결국은 자연과 세계 속으로 흩어지는 순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여겨진다.
살아있는 이가 죽으면
초상집 지붕 위로 망자의 저고리가 던져지고
바람 잦은 산비탈 외딴 상엿집
상여는 마을로 내려왔다
초상집 마당에서 흩뜨려진 뼈 마디마디를 맞춘 상여
널*을 품고 일어나 비상을 꿈꾼다
어른들은 상여꽃으로 망자의 죽음을 추측했다
붉은 꽃이면 ‘편한 세상 살다 갔네’
온통 흰 꽃이면 ‘아프다 갔네’ 혀를 끌끌 찼다
만장 앞세운 상여에 올라탄 상여꾼이 요령을 흔들며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님도 꽃길 가소!’ 상엿소리 뽑으면
’어허야 디여라, 인생 백 년 꿈이로다!’ 맞장구치며
어디만큼에서 제 살았던 데 돌아본 상여
한 마리 새가 되어 흔적 없이 산으로 스며들었다
꽃 꺾어 머리에 꽂고
쪽두리꽃에 앉았던 나비 따라 나부대던
상엿소리에 울먹이던
뭐라 말해야 하나
그걸 어찌 말로 다 하나
그럼에도 눈꺼풀 누르던 겨운 졸음 속 뽀얀 달빛에
파먹히던 어둠, 그 그윽함을
어서어서 가자구요
꽃 핀 나무 지나 꽃 진 나무에게로
꽃 진 나무 지나 죽은 나무에게로
걸어온 길들 스르르 몸을 숨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