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계 조종국 예술혼 50년! (지역문예 진흥에 묻다)

남계 조종국 예술혼 50년! (지역문예 진흥에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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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 서예 분과) 초대작가인 서예가 남계 조종국 선생이 50여 년 봉사한 예술계의 발자취를 칼라 사진과 함께 ‘ART ESSAY’ 『남계 조종국 예술혼 50년』을 오늘의문학사에서 발간하였습니다. 선생께서는 서예에 정진하고, 예술 분야를 이끌면서도, 에세이집 『별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계룡로의 아침』 『내 마음의 꽃신』 등을 발간하여 수필가로서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이 책에는 1부 ‘예술의 영지’에 희수(喜壽, 77세)를 맞을 때까지 봉사한 예술계 활동을 총정리하고 있습니다. 2부 ‘예총과 나의 인생’에서는 충남 예총 회장과 대전 예총 회장, 한국예총 부회장을 역임하면서 경험한 내용들을 세세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3부 ‘정치가 문화에 정을’에서는 대전시 의회 의원, 부의장, 의장을 역임하면서 문화발전에 이바지한 경험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4부 ‘타인의 시선’에서는 평론가와 언론에 비친 자신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남계 조종국 선생, 저명 서예가 한 사람의 아름다운 이야기, 때로는 눈물겨운 이야기지만, 읽으면서 감동하게 되는 책입니다.
저자

조종국

ㆍ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ㆍ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ㆍ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ㆍ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장(2011년 제30회)
ㆍ한국예총 충남, 대전·충남, 대전광역시연합회장
ㆍ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회장
ㆍ대전광역시의회 의장
ㆍ대전광역시문화재단 자문위원장
ㆍ국제 PEN클럽 회원(현재)
ㆍ국제 PEN클럽 문화예술정책위원장(현재)
ㆍ대전광역시 의정회장(현재)
ㆍ한·중 문화교류회장(현재)
ㆍ(사)한국예술문화진흥회 이사장(현재)

<저서> 수필집 : 『별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계룡로의 아침』
『내 마음의 꽃신』
『남계 조종국 예술혼 50년!』

목차

책을 펴내면서_
나의 예술 혼(魂) 50년! 지역문예 진흥에 묻다 ㆍㆍㆍ 3

1부 ◆ 예술의 영지(靈地)
남계화랑과 중도서예학원 설립 ㆍㆍㆍ 30
시민문화 공간 남계화랑의 수난 ㆍㆍㆍ 34
내 인생과 예총 ㆍㆍㆍ 37
선거와 인생 충남예총회장 자리! ㆍㆍㆍ 40
예총과 나의 운명 ㆍㆍㆍ 43
충남예술 발간 ㆍㆍㆍ 45
충남예총의 시련 ㆍㆍㆍ 48
한국예총과 인연 22년 6개월! ㆍㆍㆍ 51
대전청소년교향악단 창단 ㆍㆍㆍ 55
충청남도미술대전 16년의 역사 세상에 빛을 보다 ㆍㆍㆍ 57
충청남도산업미술대전 대전시산업디자인전 창설 ㆍㆍㆍ 59
전국예총회장단회의와 예총대표자대회 ㆍㆍㆍ 61
문화의 달 예술인대회 ㆍㆍㆍ 63
역사적 간행물을 남기다 ㆍㆍㆍ 65
국내정상 예술단 초청공연 ㆍㆍㆍ 67
국문전서체의 개발 ㆍㆍㆍ 70
국전 초대작가 지정 ㆍㆍㆍ 72
백제 사진대전 창설 ㆍㆍㆍ 75
국전초대작가전 ㆍㆍㆍ 77
공모전 관련 활동 ㆍㆍㆍ 79
1989년~1992년 충청미술 청년작가전 ㆍㆍㆍ 81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운영위원장 ㆍㆍㆍ 85
글씨 한 폭 ㆍㆍㆍ 88
글씨와 인품 ㆍㆍㆍ 91
기업과 예술이 윈~윈 하는 길 ㆍㆍㆍ 94
한·중(대전·남경)서화교류전 ㆍㆍㆍ 98
남계 조종국 서예 2012년전 ㆍㆍㆍ 102
대전예술 발행 충청문화예술의 선봉에 서다 ㆍㆍㆍ 105
대통령상 전국합창제 창설 ㆍㆍㆍ 107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메세나로 한밭문화제 개최 ㆍㆍㆍ 109
지역문예 진흥기금 조성 ㆍㆍㆍ 112
문화예술계 문화공동체 의식 필요해! ㆍㆍㆍ 114
우리고장 문화유산 발굴과 보존 ㆍㆍㆍ 117
백제 사비궁(四?宮) 홍의당(弘毅堂) 현판과 지석(誌石)글씨들! " " " 120
국보 제7호 봉선홍경사갈명 (奉先弘慶寺碣銘) 글씨 남기다 " " " 125
사글셋방에 살면서 " " " 127
서예인과 자기실현 " " " 130
서예인의 자질 " " "133
원로·중진·중견작가 한·중(대전·소주)당대서화명가전 " " " 136
대전직할시 미술대전 역대 수상작품전 " " " 140
가톨릭미술가회 창립 " " " 142
영원한 스승 학남(鶴南) 정환섭(鄭桓燮) 선생님 " " " 144
예술 향수 층의 개발 " " " 147
2017년 사드문제 이후
중국과 문화교류 물꼬 튼 한·중(대전·우한)서화교류전 " " " 151
나라와 지역을 빛낸 선인들 기념비제작에 열정을 쏟다 " " " 154
’93 대전엑스포 한빛탑 건립기 " " " 158
한성기 시비 " " " 160
인공위성 우리별1호 발사기념비 " " " 162
일류와 삼류 " " "164
서예저작권법과 내 아들을! " " " 166
지방문화 재창조 " " " 171
세계역사문화명성도시엑스포 대전광역시 풍물단 공연 " " " 176
한국서예협회 창립 " " " 178
한·중 문화교류회 설립 " " " 181
WTA(세계과학도시) 중국 안휘성합비시
한·중(대전·합비)서화교류전 " " " 183
향토(鄕土)예술인을 사랑하자 " " " 186
활(國弓)을 쏘고 장구를 치고 " " " 189
흙의 신비 남계 조종국 도서전(陶書展)을 열면서! " " " 192
충남 개도 100주년 기념 충청서예가전 " " " 194
고난의 인생과 상복(賞福) 충남도문화상(예술부문) 수상 " " " 196
한국예총 예술문화상 대상 수상 " " " 199
서울신문사 향토문화대상 본상(本賞) " " " 202
시사 투데이 선정 2013년 신한국인 대상 " " " 204
자랑스러운 부여인상 " " " 206
대전광역시문화상 수상 지역사회 봉사부문 " " " 208
정겨운 고향 부여!
부여 개군(開郡) 100년을 빛낸 인물상 " " " 210
국제우인송장전례(國際友人頌ª'典禮) 강소성을 빛낸 인물상 " " " 213

2부 ◆ 예총과 나의 인생
부여엽연초생산조합 설립 " " " 218
붓글씨의 육기(六氣) " " " 221
내 마음의 꽃신 " " "224
식소사번(食小事煩) " " " 226
고마운 분, 김정호 서장 " " " 231
남편 대신 가장 노릇한 아내! " " " 234
예(銳)와 둔(鈍) " " " 237
예술과 情熱 " " "240
예술인과 고독 " " " 243
내 마음의 빨간 꽃신을 신고 고향적 공동체를 꿈꾼다 " " " 246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사회를 " " " 250
병속의 금방울을 꺼내려면 " " " 254
오류동(五柳洞) 연가(戀歌) 1 " " " 258
오류동(五柳洞) 연가(戀歌) 2 " " " 261
정석모 장관과의 특별한 인연 " " " 264
코드 그린 " " " 267
토끼와 거북이 " " "270

3부 ◆ 정치가 문화에 정을!
정치가 문화의 정을 " " " 274
1971년 국가비상사태와 서울신문기자 " " " 277
낙선의 고배 " " "280
제2대 대전시의원선거 전국 최다 득표 당선 " " " 283
제2대 대전시의회 의장선거 1표차 낙선 " " " 286
제3대 대전시의회 의장선거 만장일치 당선 " " " 288
강창희 의원 떠난 자리 " " " 291
노무현 대통령후보 지지 선언문 " " " 295
‘죽어야만 산다’ 자민련 조종국 위원장 제언 파문 " " " 300
지역공동체운동 선봉 한화이글스후원회 창설 " " " 303
사드문제 이후 한·중 우호관계의 중요성 " " " 306
이상적(理想的)인 지도자 " " " 309
스크린쿼터 사수 " " " 312
예술인 복지법과 협동조합 " " " 316
텃세 考 " " "319
중국·일본과 의정활동 넓히다!
남경(南京)시 인민대회와 의정교류 " " " 322
일본오오다(大田)시 의회와 의정교류 " " " 324
국제 문화교류지원 사업 이대로는 안 된다 " " " 326

4부 ◆ 타인의 시선
우한(w?h " " " 330
남계의 書法과 삶의 세계_ 김복영 " " " 340
南溪의 藝術과 人間性_ 홍성유 " " " 343

상장·상패·위촉패 " " " 343

출판사 서평

국전 초대작가로 유명한 남계 조종국 서예가의 에세이집 『남계 조종국 예술혼 50년』의 서문은 20쪽이 될 만큼 긴 글입니다. 이 글만을 독서하여도 저자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 터이며, 저서 전체를 읽으면 물결처럼 밀려오는 감동을 공유할 것입니다.
남계 조종국 서예가, 그는 이렇게 회고합니다. <나는 본시 역사의 고장 백제고도 부여태생으로 70평생을 살아오면서 어쩌면 나의 인생 50년, 지난 세월을 고스란히 지역문화발전에 몸 바쳐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말은 서예인으로서의 삶, 예총 회장 등을 맡으며 봉사하는 삶, 시의회 의장을 역임하면서 시민을 위한 삶, 또한 한중 교류를 통한 국제적 예술 입지 신장을 위한 삶에 대한 자신의 고백입니다.
남계 선생은 또 이렇게 밝힙니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할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천자문과 소학을 배우면서 붓글씨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연필보다 붓을 잡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지금 아이들이 교과서 보고 쓰기를 반복하듯, 성현들의 명문장과 대가들의 명필을 따라 써보는 것이 당연한 일상생활의 하나였다.> 그러면서 50여 년간 문화예술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각 분야에서 엄청난 일을 이루었다는 자부심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문화예술계 뿐만 아니라 지역 발전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 우리지역 연고의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후원회를 창설, 2010년까지 20년 동안 후원회장 직을 맡아오면서 선수단을 격려하고 MVP시상과 주간, 월간 우수선수 시상 등, 후원활동을 적극 펼쳐 온 보람으로 충청지역 연고의 프로야구 발전은 물론 그 결과 1999년 한화 이글스가 전국을 제패하고 우승하는 영광도 맛보았으며 예술인으로 1989년 대전광역시 카누협회장, 1996년 대전광역시 야구협회장직까지 맡아 지역체육 발전에도 크게 기여해온 일 등, 나의 지역사회 활동무대는 점점 넓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활동은 선생을 충청권의 저명인사로 성장합니다.
특히 국제 교류에 힘써 선구자적인 자세를 투영합니다. <중국 남경시와 오랜 기간 깊은 신뢰 속에 이어져온 서화교류전이 중국 각 지역으로 여론이 확산돼 강소성 인민정부 남경시는 물론, 안휘성 합비시, 호북성 우한시, 강소성 소주시, 사천성 성도시, 호북성 우한시 등 많은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우리 대전과 교류를 절대 희망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하여 경제적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희생적으로 교류사업을 이어온 뚝심의 예술가이자 예술 행정가로 자신의 입지를 명쾌하게 수립합니다.
이처럼 다양하면서 뜻깊게 살아온 인생은 참으로 소중한 자산입니다. 남계 조종국 선생의 ‘ART ESSAY’ 는 독서할 의의가 충분함을 밝힙니다.

[책속으로 이어서]
그 당시 지령인걸의 고장이라 일컬어 온 우리 충청도라 하지만 중앙부처에는 타 시도에 비해 고위공직에 있는 인사들이 극히 소수였었다. 거기에 인맥까지 부족한 서생(書生)인 나는 불철주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이면사를 늦게나마 이야기로 남기게 되고 재삼 비쳐지게 되니 큰 보람과 함께 남은 생도 지역문화발전과 문예진흥에 더욱 최선을 다해야 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새로운 각오와 굳은 의지가 앞을 가린다.
회고해 보면 설상가상으로 당시 이 고장 예총의 위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예술인들 사이에도 예총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무슨 일을 해왔는지 관심조차 없는 예술인들이 부지기수이었다. 이러한 문화 환경 속에 나는 중앙에 집중된 문화예술의 지방 확산과 균형발전을 위해 더욱 과감하게 예총활동을 펼쳐야 되겠다고 다짐하고 국내 정상의 예술단을 해마다 초청하여 봄가을로 공연하는 일을 적극 추진하였다. 흔히들 대전은 문화 불모지라는 자조적인 말들을 하루 속히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전국의 다른 광역시, 도 수준으로 시민들의 문화 향유 층을 높여야 한다는 사명감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예총회장 취임 첫해에 겁도 없이 부산시향을 초청하여 공연을 펼쳤는가 하면 다음해부터 연례행사로 계속 광주시향. 대구시향. 인천시향. 그리고 당시 전국적으로 각광을 받았던 유명한 국내정상의 무용예술단도 초청해 공연을 펼쳤다. 당시 충남과 대전예총의 여건으로 이들 국내정상의 예술단을 초청하여 공연을 펼쳤다는 것이 결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 국내정상 예술단 초청에 따른 여러 가지 행정적 절차는 물론, 초청경비 조달과 관람권 판매 등, 그 어느 것 하나 어렵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을 동분서주하며 과감하게 해냈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예술향유의 기회를 넓혀주고 문화성층을 향상시켰다. 지금 같으면 과연 이런 일들을 해낼 수 있었을까!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또 우리 고장 예술인들에게 자존심과 자긍심을 갖게 하고 예술인들의 창작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연, 전시행사를 정기적으로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경험과 각종 공연, 전시를 통하여 절실히 실감하고 있었다. 그 간의 충청남도 미술대전을 내실 있게 운영해 자리를 잡게 해온 것을 바탕으로 1987년<충청남도 산업미술대전>과 1989년<백제사진대전>, 1989년<대전광역시서예대전>, 1989년<충청서예가전>, 1987년<전국연극제> <전국무용제>, 1989년<대전광역시산업미술대전> 등 각종 공연과 전시회를 창설하여 정착시켜 놓은 다음 이 모든 공연전시행사들을 목적사업으로 자리 잡아 예총산하 각 관련 회원단체에 이관시켜 오늘의 다양한 전시회로 발전시켜 가도록 하였고 1987년 제16회 충청남도미술대전에서는 제1회부터 16회까지 역대 충청남도 미술대전의 입상자 등을 총 정리하여 <1987년 충청남도미술대전> 도록을 발간해 향토미술 사료로 남긴 것은 지금 생각해도 큰 보람과 자부심이 아닐 수 없을 일이었다. 또한 우리고장 합창음악 발전을 위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통령상합창제>를 창설하여 지금까지 개최토록 해온 일과 <대전청소년 교향악단>을 창단하여 10년간 단장으로 있으면서 봄가을 정기공연 등 연주활동을 지원해 대전음악의 저변확대와 위상을 제고시켜 왔고, 당시 참여했던 단원들이 연주활동을 통한 음악역량을 향상시키고 발전시킨 경륜으로 현재 한국 음악예술계에 중진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지금도 큰 보람으로 남고 있다.

당시 충남과 대전예총이 추진해야 할 산적한 예술 목적사업 중, 우선순위에 따라 추진한 발간물로 1986년 <충남예술>과 1987년 <충남의 구비전승>, 1989년 <대전예술>, 1990년<충남의 풍속>, 1991년 <충남의 민요집>, 2000년<대전의 시 대전의 노래>, 2001년<충남문학사> 등 책을 발간하여 우리고장 전통을 계승하는 주춧돌로 만들어 사료로 남겨온 것 또한 잊을 수 없는 문화 사업들이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제목만으로 기술해 정리하기에는 간단한 것 같지만 그 일들을 하나하나 추진하는 과정에는 말할 수 없는 사연들이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 지면에 통해 하나하나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 또한 언젠가는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이면사를 남겨서 다음날 우리 예총과 지역 문화예술진흥을 위해 많은 관심을 쏟는 예술인과 문화촉매자들에게 참고가 되도록 할 예정이다.

나는 예총회장과 한국예술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책임을 맡자마자 위에 두서없이 기술한 대로 예술분야의 목적사업들을 시대적 배경과 절차후에 따라 하나하나 우선순위를 가려 선정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 시행하고 각종 종합예술 기관지의 발간을 추진하여 오늘에 이른 점이다. 당시 예총은 1960년대 창립된 이후 20년이나 흘렀지만 그 간의 예술 활동이나 기록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에는 지역의 열악한 문화 환경에 따른 여건으로 예술인들의 생각이나 연구물을 발표할 지면과 공간이 없어 많은 애로가 있었다. 따라서 격월간, 계간 등 예술정보지의 발간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나 잡지를 하나 창간하여 지속적으로 발간한다는 것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던가. 이 일을 위하여 넉넉하지 않은 집안 예총살림에서 도저히 추진할 수 없어 사재를 들여 예총활동에 투자를 하는 일마저도 한계를 느껴 마음이 늘 편치 않았던 게 사실이다. 처음에는 격월간으로 <충남예술>을 발행해 오다 예총이 충청남도와 대전시가 행정조직이 분리됨에 따라 예총이 대전·충남예총으로 조직이 재편되어 재정형편이 어려워 발간하지 못한 <충남예술>을 당시 지방자치의 실현으로 지역고유의 특성 있는 문화발전을 위한 목적으로 설립하고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충청예술문화진흥회(현:한국예술문화진흥회)에서 사재를 출연해 격월간 <대전예술>을 4년 8개월(제58집) 동안 발간해 왔다.

온갖 열정으로 발간해온 <대전예술>을 아무 조건 없이 출판물 발행 사업권을 흔쾌히 대전예총으로 이관시켜 줬으며 이 종합 예술지는 현재까지 대전 예총에서 발행토록 한 결과 역시 큰 명분과 보람으로 남아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이제는 그 누가 예총의 책임을 맡아도 이 월간 종합예술지<대전예술>은 지속적으로 발간되어갈 것이며 폐간할 수 없는 종합예술지로 거듭 발전해 갈 것이다. 물론 행정개편에 따라 처음에는 <충남예술>로 발간을 해오다 이어진 <대전예술>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여기에 나의 땀과 눈물과 열정이 서려있어 그 감회가 깊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오랜 기간 예총과 진흥회의 한·중 문화교류회 책임을 맡아 온 지난 세월을 하나하나 더듬어 살펴보니 참으로 많은 예술행사를 추진하기도 하고 직접 관여하기도 했다. 전국 지방예총의 중앙부회장으로 지방예총의 권익보호를 위해 앞장서 1986년<전국예총지회장회의>를 창설하고 대전에서 127개 지방예총회장 전체회의를 주관, 문화예술의 지방 확산과 균형발전을 위한 세미나 등 개최하고 단합을 다짐해 온 일들이 단초가 되어 중앙 예총에서는 뒤늦게 같은 해 이를 <전국예총대표자대회>로 격상시켜 연례행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