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 예수 (1세기 유대인 제자들과 함께 예수의 생생한 말씀을 듣다)

랍비 예수 (1세기 유대인 제자들과 함께 예수의 생생한 말씀을 듣다)

$14.24
Description
이 책을 읽은 후, 예수와 성경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고고학과 유대인 사상 체계, 언어습관과 배경지식을 통합해
예수님의 말씀을 원래의 유대적 맥락 안에서 새롭게 발견한다

“흡인력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드러나는 말씀의 능력!”
-성주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놓지 못할 것이다.”
-류호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이 책을 읽은 후엔 당신의 생각과 삶이 달라진다!”
-마르바 던 (《안식》, 《고귀한 시간 낭비, 예배》 저자)

익숙한 본문에 깊이와 차원을 더하다

우리 눈이 자연스럽게 원근(遠近)을 지각하고 사물의 입체감을 느끼는 것은 양쪽 눈에서 가져온 상(像)들을 뇌가 3차원으로 실시간 취합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입체시(立體視)로 세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 세상은 그림이나 텔레비전 화면처럼 납작하게 보인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빠른 속도로 두 눈의 시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 이내 적응이 되는 듯하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 시력 교정으로 입체시를 얻게 된 사람들은 그 차이를 안다. 사소한 사물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예전과 다른 입체감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사물은 이전 그대로이지만, 이제는 안다. 똑같은 사물과 현상을 목격하지만, 그것을 좀 더 풍성하고 깊이 있게 볼 수 있다는 것을.
1세기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느낌이었을까? 또한 예수님은 성경을 어떻게 공부하고 이해하셨을까? 예수의 말씀을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로 듣기 위해서는 주님이 사역하셨던 시대에 그 말씀이 어떻게 읽히고 들렸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단지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그치지 않고, 당시 유대적 맥락 속에서 주님의 메시지를 이해할 때 동일한 말씀이라도 더 풍성하고 입체적인 이해와 실천이 가능해진다.
저자

로이스티어베르그

저자로이스티어베르그(LoisTverberg)
익히알고있다고생각한본문이갑자기살아움직이고,우리를헷갈리게한구절이또렷하게보이기시작한다.이책을읽은후에는전과동일한태도로성경을대할수없다.2차원평면에갇혀있던말씀이입체적으로튀어나와우리에게말을걸어오기때문이다.
로이스는생물학박사학위를받고대학에서교수로가르쳤다.어릴적부터수십년간괴롭혀왔던신앙의문제와씨름하던중에1세기당시의문화와배경,언어를알아가면서새로운눈을뜨게되었다.1세기이스라엘을거니셨던유대인랍비예수를알아갈수록믿음이더욱탄탄해지고날로그분의말씀에매혹되었다.그렇게새로운깨달음을이어가다가,본격적으로이스라엘로건너가히브리어와헬라어를배우며당시의유대랍비문화를탐구하기시작했다.그리고깨달은것을나누기위해교수직을내려놓고20여년간‘유대인랍비예수’에관한집필과연구,강의에전념하고있다.
그리스도인이문화적맥락속에서성경을이해하도록돕는교육선교회,엔게디연구소(En-GediResourceCenter)를공동설립했다.현재미시간주홀랜드의자택에서전업작가로살고있다.

목차

추천의글
서문

1부/새로운귀로랍비의말씀을듣다
1장세월의흙먼지털어내기
2장쉐마:들은대로살기
3장가진전부를바쳐하나님사랑하기
4장‘이웃사랑’계명에담긴하나님의진심

2부/랍비예수의말씀으로살다
5장좋은눈얻기
6장그이름의비밀을드러내는사람
7장코셔입을가지는법
8장판단의저울에서엄지떼기
9장예수도‘후츠파’를좋아하셨다
10장양손으로생각하기

3부/랍비예수와함께공부하는성경
11장입체시:구약과신약을통합적으로보다
12장티끌속에찍힌하나님의형상
13장일흔가지얼굴을한보석
14장하나님이지키시는비밀

후기
감사의글
스터디가이드

용어설명
추천자료

출판사 서평

“예수님의말씀이유대인제자들에게는어떻게들렸을까?”

이를위해많은공부와완벽한교재가필요한건아니다.십자말퍼즐한곳이막혔더라도다른곳을풀다보면언젠가단어들이맞물려들어가듯이문화속디테일하나로난해본문이술술풀릴수도있다.이책에나오는몇가지예를보자.

◎청중을‘독사의자식들’(마3:7)로부른세례요한이나,반대자들이스스로거세하길원한다(갈5:12)고했던바울의발언은우리가생각하듯이센(?)표현이아니다?
◎번제를드리는데필요한장작의양은웬만한성인혼자서는감당하기힘든정도였다.그렇다면아브라함이이삭을번제물로드리려고할때이삭은어린아이가아니었다?
◎예수님은하나님의아들이었으므로,그가제자들을가르쳤던방식은그분만의독특한방식이었다?
◎예수님이‘좋은눈’과‘나쁜눈’을비교하실때(마6:22~23)는사실,“돈에대한태도”를뜻하는히브리관용구를사용하신것이다?그리고이것은초대교회에서도,현대이스라엘에서도동일하게사용되고있다?
◎예수님은“뻔뻔한기도”를좋아하셨다?
◎예수님도율법의경중을저울질하셨다?
◎“가이사의것은가이사에게,하나님의것은하나님께바치라”는예수님의말씀에는단지세금문제이상의,우리가아는차원을넘어서는충격적인의미가있다?

이외에도문화와역사,유대적맥락을모르면잘못해석하기쉬운사례가많이등장한다.예수께서유대인으로오셨으며,랍비였다는사실을염두에두고성경을다시보면우리의단편적인성경이해는신선함을덧입고나날이영감으로충만해진다.이런식으로형성된새로운깨달음은구약및신약전체와모세혈관처럼연결된다.내가믿고알고있는고갱이는바뀌지않지만,그것을음미하고적용하는과정에서입체시를얻는것이다.

우리가보고싶은예수의모습이아닌,
그분그대로의모습으로

저자로이스는2천년의시간적문화적간극을뛰어넘어예수의말씀을원래의유대배경안에서제대로이해하고적용할수있도록돕는다.익히알고있다고생각한본문이갑자기살아움직이고,우리를헷갈리게한구절이또렷하게보이기시작한다.
이책을읽은후에는전과동일한태도로성경을대할수없다.2차원평면에갇혀있던말씀이입체적으로튀어나와우리에게말을걸어오기때문이다.단순히몇가지문화배경지식을습득하는데서그치지않고,성경을해석하고삶에적용하는방식자체에서근본적인변화가몰려올것이다.
저자의목표는단순하지만분명하다.
“이젠성경이완전히새롭게읽혀요”라는독자의고백을듣는것이다.

[책속으로추가]

‘좋은눈’과‘나쁜눈’을비교하실때예수님은아마도성경시대부터오늘날까지히브리언어에서사용되는두관용구를비교하셨을공산이크다.‘좋은눈’을가졌다는것은남의필요를살피고가난한자에게넉넉하게베푼다는뜻이다.그러나‘나쁜눈’을가졌다는것은욕심이많고자기중심적이며주변의궁핍을외면한다는뜻이다.
예수님은다른곳에서도‘나쁜눈’이란관용구로‘인색함’을표현하셨다.일례가온종일인부들을고용한후저물녘에모든일꾼에게동일한품삯을준농부의비유다.일찍온일꾼들이불평하자농부는대답한다.“내것을가지고내뜻대로할것이아니냐내가선하므로‘네눈이나쁘냐’”(마20:15,강조저자사역.개역개정성경은“네가악하게보느냐”).
두표현모두잠언에도등장한다.“악한눈이있는자는재물을얻기에만급하고빈궁이자기에게로임할줄은알지못하느니라”(잠28:22).다른구절을보자.“선한눈을가진자는복을받으리니이는양식을가난한자에게줌이니라”(22:9).그리고히브리어에는오늘날까지이관용구가사용된다.이스라엘에선지역자선단체의모금원들이대문을두드리며이렇게말한다.“아름다운눈으로기부하세요”(tenb’ayinyaffa).‘아름다운눈’은‘좋은눈’의다른표현이다.(…)
왜예수님은타인을향한한사람의‘눈’을그렇게중요하게여기셨을까?그이유는우리와돈의관계가우리와하나님관계의현주소이기때문이다.‘나쁜눈’을가졌다는것은당신이소유한적은것에집착하며더많이가진자를원망하고더적게가진자를돕길거부한다는뜻이다.그런태도는하나님은인색하시며,당신을돌볼마음이나능력이전혀없으신분임을당신이확고하게믿고있음을드러낸다.그리고당신의태도는또한스스로얼마나이웃의곤고함으로부터단절되어있는지를드러낸다.스스로하나님과주변사람모두를차단할때당신의삶은실제로어두워진다는예수님의말씀은지당하다.
5장.좋은눈얻기_91,94면

버스를타고시내로나가던어느오후,이스라엘문화를더강하게맛본일이있었다.잿빛머리의나이든아주머니가버스에탑승하더니요금을내지않고버스기사를지나쳐서뒷자리에철퍼덕앉았다.길게목을빼고거울로아주머니와눈을맞추려던버스기사가사람들머리위로뒷좌석의여인을불렀다.
“어디가시나요,아주머니?”
그녀는처음에는못들은척창밖만물끄러미바라봤다.
“어디~~로가시느냐고요?”버스전체가그녀를돌아보았다.마침내그녀는아주무례한말투로시큰둥하게답했다.곧이어해독할수없는히브리어가속사포처럼허공을채웠고그뜻은누가봐도자명했다.‘버스표를사오든지내리든지하세요.’하지만여인은요지부동이었다.마치자리에접착제를바른듯완강했다.
버스역시요지부동이었다.기사는이스라엘에서보편적으로사용되는짜증과경멸어린몸짓으로그녀를향해손을들어올렸다.1차선밖에안되는간선도로인네빔대로한복판에서기사는주차기어를넣더니신문을탁펼치고는의자에등을기대고1면기사를읽기시작했다.(…)
예루살렘의절반이이여인하나때문에멈춰버렸다.광기의경계선에있는완전한배짱,순전한배포,이것이바로‘후츠파’(chutzpah)다.여자와버스기사둘다자기목적을달성하기위해한계선까지압박하는법
을알고있었다!(…)이런후츠파는고대부터내려온중동문화의일부였다.만일당신이예수님당시1세기제자였다면당신도아마이런식의행동에익숙했을것이다.
9장.예수도‘후츠파’를좋아하셨다_150~15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