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건이다 (통일 왕조의 군주로 우뚝선 온건한 지도자)

나는 왕건이다 (통일 왕조의 군주로 우뚝선 온건한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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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0세기 한반도의 분열을 딛고 통일국가 고려를 개국한 창업군주
인공지능 시대가 활짝 열린 오늘날 1천 년 전의 인물인 왕건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그가 태어난 시기는 신라 하대의 분열상이 극한으로 치달아가던 혼란기였다. 중앙 정부의 행정력이 무너지자 지방의 권력자들이 성주나 장군을 자처하며 독자적인 호족 세력으로 등장하던 군웅할거 시대였다.
바로 이 무렵 견훤, 궁예, 왕건은 각각 세력을 떨치며 후삼국시대를 열어간 주역들이었다. 견훤과 궁예가 후백제와 후고구려를 건국해 제왕으로 등극할 때, 왕건은 궁예의 휘하에서 전쟁터를 누비는 일개 장수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 후삼국시대를 마감하고 삼한일통을 이룩한 주인공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제2인자에서 후삼국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게 되었을까? 오랜 시간의 갈피를 열어보는 동안 당대의 상황을 능동적으로 개척한 왕건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 발자취를 더듬다 보니, 후삼국시대의 거센 격랑 속에서 고뇌하고 부대끼다가 끝내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구현해 낸 한 인물상을 『나는 왕건이다』에서 만나게 된다.

왕건은 유력한 호족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평생을 꽃길만 걷지는 않았다. 오히려, 약관의 나이에 궁예 휘하의 장수가 된 뒤부터 험한 전쟁터를 누비는 역전의 용사로서 평생을 보냈다. 젊을 때는 궁예를 도와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겠다는 이상을 위해 싸웠고, 장년이 되어서는 후삼국을 통합해 삼한일통의 위업을 달성하려는 원대한 야망을 위해 한 몸을 바쳤다.
그에게는 고구려 계승 의지가 있었고 한때 그는 궁예 정권에서 요동벌을 회복하고자 하는 강렬한 꿈에 사로잡혔던 청년 장군이었다. 하지만 궁예가 송악에서 철원으로 천도하며 국호를 마진과 태봉으로 변경하자, 그 꿈이 허상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왕건은 태봉국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시중이 되었을 때 장수들의 거듭된 요청과 갑옷을 들고 온 첫째 부인 류씨의 권유를 받아들여 반정에 앞장서 고려를 건국하고 황제로 등극하게 되었다.
왕건은 즉위하자마자 도처에서 들고 일어나는 반란 세력을 진압해야 했다. 시시때때로 침공하는 견훤의 후백제군과도 늘 맞서 싸워야 했다. 왕건은 신라를 돕고자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공산 전투에 나섰다가 생사가 오가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충신 신숭겸이 왕건을 피신시키고 싸우다 전사하는 참담한 일까지 겪었다.
저자

박선욱

시인.작가.1982년《실천문학》지에시〈누이야〉외3편이당선되어등단했다.시집『그때이후』,『다시불러보는벗들』,『세상의출구』,『회색빛베어지다』,『눈물의깊이』,『풍찬노숙』이있고,창작동화집『모나리자누나와하모니카』,어린이인물이야기『이티할아버지채규철』,
『윤이상,끝없는음악의길』,『평화와희망의씨앗김대중대통령』,『황병기:천년의숨결을가야금에담다』,『박선욱선생님이들려주는김득신』,『박선욱선생님이들려주는백동수』,『박선욱선생님이들려주는백석』등이있으며,청소년평전『채광석:사랑은어느구비에서』,
『윤이상:세계현대음악의거장』,청소년소설『고주몽:고구려를세우다』,장편소설『조선의별빛:젊은날의홍대용』,역사에세이『나는윤이상이다』,『나는강감찬이다』,『나는왕건이다』등이있다.본격평전인『윤이상평전:거장의귀환』으로제3회롯데출판문화대상본상을
수상했다.

목차

서문..10
책머리에..16
1장.

7세기의국제전과남북국시대...26
견훤의후백제건국...32
비운의왕자...41
도읍지철원...47
용의후손...53
발어참성성주왕건...65
2장.

궁예의후고구려건국...78
첫사랑...89
금성군점령...99
양주성싸움...106
대(大)동방국마진...112
철원재천도...122
3장.

첫번째결혼...136
수덕만세태봉국...146
덕진포해전...153
능창의최후...162
두번째결혼...170
4장.

일인지하만인지상...178
무주진격...184
관심법...190
왕건의고려건국...199
반란,그이후...204
5장.

조물성전투...212
공산전투...220
고창전투와운주성전투...227
일리천전투와후삼국통일...233
황제국고려의등장...243
나는왕건이다...249

출판사 서평

‘한국인물500’발간현황‘

일송북은‘한국인물500’을5백권예정으로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단체·분야별로기획하여순차적으로펴내고있습니다.그동안나는치우천황이다(이경철),나는사임당이다(이순원),나는퇴계다(박상하),나는율곡이다(박상하),나는백석이다(이동순),나는윤이상이다(박선욱),나는이회영이다(이덕일),나는홍범도다(이동순),나는단군왕검이다(박선식),나는김만덕이다(박상하),나는소서노다(윤선미),나는이사부다(김문주),나는왕평이다(이동순),나는이육사다(고은주),나는강감찬이다(박선욱),나는해모수다(윤명철),나는김지하다(이경철),나는박완서다(이경식),나는김자야다(이동순),나는천추태후다(윤선미),나는삼한갑족이다(박상하)등21권을선보여언론과독자들의큰호응을얻었습니다.
이어서【나는이병철이다】를출간하고,이달에는【나는정주영이다】를내보내게되어,한국경제의시금석이되었던이병철과정주영을함께살펴볼수있는계기를마련하게되었습니다.아울러중세의시원을여는태조왕건의일대기를다룬【나는왕건이다】도함께출간되어총24권을발간하게되었습니다.

‘한국인물500발간의목적과기획방향’

‘한국인물500’은긍정적이든부정적이든우리역사에뚜렷한족적을남긴인물들의시대와사회를살아가는삶을들여다보고반성하며지금우리시대와삶을보다낫게이끌기위해서기획됐습니다.아울러한국인의정체성은무엇인가를폭넓고심도있게탐구하는,출판사상최고·최대의한국인물총서를지향하고있습니다.
각권제목은‘나는누구다’로통일했습니다.‘누구’에는한인물이나성격등의이름이들어갑니다.한인물의삶과그인물이살았던시대의정수를독자여러분께인상적·효율적으로전할것입니다.무엇보다지금왜이인물을읽어야하는가에충분히답해나갈것입니다.
이번‘한국인물500’을위해일송북에서는역사,사회,출판등각분야의전문가들로선정위원회를구성했습니다.선정위원회에서는단군시대너머신화와전설쯤으로전해오는아득한상고대로부터아직도우리기억에생생한20세기최근세인물들과함께그인물과시대에정통한필자를선정하고있습니다.
우리는지금최첨단문명시대를살고있습니다.인터넷으로,혹은직접몸으로세계를누비는글로벌,신유목시대에살고있습니다.한편으론인공지능(AI)의무서운발전으로인간의정체성마저흔들리고있음을절감하고있는시대입니다.이러한때일수록인간의,한국인의정체성이더욱요구되고있습니다.
그정체성은개인과나라의편협한개인주의나국수주의는물론아닐것입니다.보수와진보성향의이념을초월하여선정하는‘한국인물500’총서는해당인물,성격의육성으로인간개인의생생한정체성은물론글로벌한세계와첨단문명시대를끈질기게이끌어나갈반만년한국인의정체성,그본질과뚝심을들려줄것입니다.
총서이면서도각권이단행본으로독립되어훌륭히읽히게한‘한국인물500’2권을아래보도자료와함께살펴보고많은관심과성원을보내주시기바랍니다.

왕건의가장큰미덕은그의포용력과애민정신이었다

왕건은강건한후백제와는맞서면서도허약한신라를돕는데는최선을다하는억강부약의정책을펼쳤다.그의실리외교는신라인들의신뢰를얻고호족들의지지와응원을받는효과로이어졌다.신라를멸도라부르며증오하던궁예,경애왕을자결하게만든견훤과는대조적인태도였다.이러한왕건의정책은후삼국을통합하는원동력이되었다.
왕건의가장큰미덕은그의포용력이었다.견훤은왕건에게처절한패배를안겨주었던최대의숙적이었다.하지만후백제내부의분열로폐위된견훤이금산사에서탈출해고려로귀부하자왕건은두팔벌려그를받아주었다.그를상보(尙父)로존대하며깍듯하게예우해주기까지했다.아자개,신라경순왕,고려건국이후한동안명주를움켜쥐고버티던김순식등이고려로귀부해온것은모두왕건의포용력에감응한것이었다.왕건은피흘려싸우지않고도이들이가진영토와세력을감싸안는지도력을보여주었다.

후삼국통일의대업을달성한뒤에는그가평소배우고익혔던옛성현들의가르침을좇아,자신만의통치철학을국정운영에쏟아부었다.왕건은맨먼저애민정신을바탕으로조세정책과구휼정책을펼쳤다.먼저,관리들에게조세는10분의1만걷으라고엄중하게명했다.동시에,봄철보릿고개때곡식을빌려주고가을철에갚도록하는흑창제도를시행했다.골품제사회에서탐학한관리와귀족들로부터이중으로착취당하던백성들의고충을덜어주자는취지였다.
대외적으로는북진정책을펴서옛고구려의땅을회복하고자하는원대한이상을실현하고자했다.그것은자신의뿌리를찾고조상들의얼을되살리는일일뿐만아니라,고구려계승의지를선언적으로선언하는일이기도했다.대내적으로는숭불정책을펴서오랜전란으로고통을겪고있는백성들을종교의힘으로보듬으려고노력했다.이는40여년동안전쟁터를누비며숱한인명이살상되는모습을지켜본인간으로서,그업보를불심으로씻으려는참회의몸짓을하는것이기도했다.

적재적소의인재영입과후삼국의분열을일통한혼인정책

왕건이남긴빛과그림자를한조각씩맞춰가면서,놓쳐서는안될몇가지사항이있음을알게되었다.그는적장이라할지라도유능한자라면인재로쓰고자했다.수전에능해수달이라는별호를갖고있던능창의경우가그러했다.또한,훌륭한인품과덕을지닌인물을곁에두고배우고자하는마음이있었다.선각대사형미의경우가그러했다.그러나둘다궁예가죽임으로써그뜻을이루지못했다.

왕건이가장역점을기울인것은후삼국의분열을하나로꿰어맞추는일이었다.지방호족들의통합을위해그는혼인정책이라는기발한발상을실천에옮겼다.스물아홉명의부인을둔것은이때문이었다.삼한일통을위한포용정신이그바탕에있었다.그의노력덕분에각지방에산재한호족세력들이중앙정부에연합하는형태로협조하는데에이르게되었다.
왕건은호족들을포용하고자할때는폐백을후하게주고도리어자신을낮추는자세를유지하는중폐비사(重幣卑辭)정책을폈다.호족들이군사적으로반발하거나대항하면강력한진압정책을펼쳤지만호족들의협조를유도할때는회유정책을썼다.왕건은진압정책과회유정책을병행하면서각지의호족들을포섭하고융화하면서고려라는하나의나라로이끌어가는대화합의경륜을펼쳤다.겸양의정신을바탕에둔결과였다.

왕건은북방고토회복과자주의식,온유함과포용력으로신라와후백제의영토뿐만아니라그안에담긴전통과문화를통합하는쾌거를이루었다

왕건은외세와결탁하지않고삼한을통일한지도자였다.당당하게자주의식을드높이며북방의고토회복을위한열망을국가의이념으로삼았던진취적인군주였다.그는후삼국을통일하는과정에서강화된군사력,용병술,외교적역량등막강한국력을만방에떨쳤다.『남당서권18』고려항목에“고려의왕건(王建)이신라와백제를격파하니,왜(倭)·탐부(耽浮)·환어라(驩於羅)·철륵(鐵勒)등동이(東夷)의여러나라[諸國]​가모두두려워하여고려의속국이되었다.”라는기록이보일정도로고려는주변국들이머리를조아리고조공을바치는황제국으로우뚝섰다.
왕건은후삼국의어수선한혼란을바로잡으며고려라는새로운통일왕조를열어젖힌창업군주였다.그는고구려를계승하겠다는의지를표명하며발해유민들을거두어들였다.옛고구려의수도인서경(평양)개척과북진정책을병행하면서동북지방의영토확보에도주력했다.반면,거란을적대하는정책을일관되게추진하는과단성을보였다.
왕건은온유함과포용력으로신라와후백제의영토뿐만아니라그안에담긴전통과문화를통합하는쾌거를이루었다.왕건의후삼국통일은전쟁으로얼룩진상처를봉합하고진정한민족통일로승화시킨,10세기전반부의위대한업적이아닐수없다.제2인자로서불가능한꿈을꾸었으되,그것을끝내실현한왕건을다시금떠올리는것은바로이때문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