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그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왔나 (일제 강점기 중국인 노동자와 한국인)

이주노동자, 그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왔나 (일제 강점기 중국인 노동자와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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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주노동자, 그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왔나』는 역사학자의 시각에서 일제 강점기 중국인 노동자와 한국인의 관계를 사료를 통해 세밀하게 들여다봄으로써 오늘날 이주노동자 문제를 풀어갈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문제작이다. 이제 우리 곁에는 중국인뿐 아니라 다양한 민족ㆍ국가의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와 있다. 이들이 국내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한국인들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이주노동자의 증가를 초래하고 열악한 노동 여건을 재생산하는 경제적ㆍ사회적ㆍ정치적 요인을 따져보고 역사적ㆍ구조적인 문제로 파악하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저자가 결론에서 말한 것처럼 “역사는 죽어 있는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되살아나 우리가 무엇인가를 깨닫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김태웅

저자김태웅은서울대학교사범대학역사교육과를졸업한뒤같은대학교대학원국사학과에서문학석·박사학위를받았다.정부기록보존소학예연구관과군산대학교조교수를거쳐현재서울대학교사범대학역사교육과교수로있다.주요저서로는『뿌리깊은한국사샘이깊은이야기-근대편』(2003),『한국근대지방재정연구』(2012),『역해한국통사』(2012),『국사교육의편제와한국근대사탐구』(2014)등이있고,공저로는『우리역사,어떻게읽고생각할까』(2014),『요하문명과고조선』(2015)등이있다.

목차

머리말일제강점기중국인노동자를되돌아본다

1장중국인노동자가이땅에들어오다
1.화교상인을따라들어온중국인노동자1882~1910
2.중국인노동자의증가1911~1919
3.중국인노동자의대거입국1920~1931년화교배척사건직전

2장중국인노동자는이땅에서어떻게살았을까?
1.중국인노동자가족의구성변화·
2.중국인노동자의연망
고력방
향방과기타연망
3.종사직종과노동조건

3장한중노동자가충돌하다
1.만주사변이전한중노동자의갈등양상
2.1931년화교배척사건과일제당국및한국인식자층의동향

4장일제의대륙침략후중국인노동자의선택
1.일제의대륙침략과중국인노동자의집산
2.중국인노동자의정체성혼란과삶의끝자락

뒷이야기떠나가는화교,남아있는화교

출판사 서평

외국인노동자100만명시대에
되새겨보아야할우리의역사


언제부터인가우리주변에서외국인노동자를흔히보게되었다.피부색과언어가다른이들이우리와마찬가지로이땅에서일하고거리를오가는모습을보며사람들은어떤생각을할까?인권의사각지대에놓여있다는그들을걱정어린시선으로바라보는이도있지만,괜한반감과두려움을느끼거나나아가혐오의감정을표출하는경우도있다.약100년전에도비슷한풍경이펼쳐졌다.한반도에들어온최초의이주노동자집단인중국인노동자와한국인사이에크고작은대립과갈등이있었다.심지어참혹한살육사건이벌어지기도했다.이책『이주노동자,그들은우리에게어떻게다가왔나』는역사학자의시각에서일제강점기중국인노동자와한국인의관계를사료를통해세밀하게들여다봄으로써오늘날이주노동자문제를풀어갈중요한실마리를제공하는문제작이다.

일제강점기조선에들어온중국인노동자들은어떻게살았을까?
중국인노동자들은1882년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체결되면서한반도에들어오기시작했다.1910년일제가대한제국을강점한이후중국인노동자수는점점늘어났으며,1920년대후반부터조선총독부관영사업이증가하면서저렴한임금의중국인고력(비숙련노동자)들이대거들어왔다.
당시노동자임금은일본인,한국인,중국인순으로중국인노동자들의임금수준이가장낮았지만이들은악착같이돈을모았다.별재료없이춘장에수타면을쓱쓱비빈짜장면이가장저렴한식사였고때로는생파를간장에찍어반찬으로먹을정도였다.하루일해1원을받으면서도생활비를아끼고아껴매달12원54전을본국에송금하기도했다.
이런중국인노동자들을바라보는한국인의시선은결코곱지않았다.일본인자본가들이값싼중국인노동력을선호해그들의근면성실함과인내심을칭찬하는한편언제든한국인노동자들을갈아치울수있다는태도를보였기때문이다.한국인입장에서중국인노동자들은값싼임금을미끼로일자리를빼앗는얄미운존재였다.국내에서번돈을거의쓰지않고중국에보낸다는점도한국인들의불만을가중시켰다.

1931년만보산사건과화교배척폭동의실체는무엇일까?
‘완바오산’이라고부르는중국길림성의만보산지역은평소관개수로를두고중국인과한국인사이에갈등이빈번하게일어났던곳이다.국내에서도중국인과한국인사이에몸싸움이종종일어나던때였다.1931년7월2일,만보산에서중국인800명이조선농민을습격해많은동포가죽었다는《조선일보》호외기사를접한한국인들은불같은반응을보였다.신문이배달된지한시간만에인천의중화요리점이한국인들에게공격당했다.결국전국적으로번진화교배척폭동으로인해화교142명이살해되고546명이부상했다고한다.(그기사는일제의조작으로인한오보였다는것이나중에판명되었다.)
이책의저자는중국인노동자들이가장많이거주하는평안도평양에서화교의피해가가장컸으며특히노동자들이화교공격에적극적으로가담했다는점에주목하였다.이를통해당시사건들이우발적감정이나군중심리에따른것이라기보다일자리를둘러싼한중노동자의갈등에서비롯되었다는사실을추론해낸다.
나아가저자는중국인노동자에대한한국인각계각층의다양한시선을구명하였다.즉호떡집에돌을던진노동자이삼복,민족주의계열좌파인《조선일보》사장안재홍,민족주의계열우파인《동아일보》사장송진우,자본가들의노동윤리관을내면화한윤치호와이선근,소설가김동인등의의식이서로어떻게달랐는지를면밀히살펴보았다.한중노동자의갈등은양쪽노동자사이의경제적이해관계에국한되지않고황색언론의보도형태및다양한사회문화적요인과밀접하게관련되어있음을여기서확인할수있다.

이주노동자문제를어떻게바라보아야할까?
대중가요〈눈물젖은두만강〉으로유명한가수김정구의최고히트작은〈왕서방연서〉였다고한다.1938년에발표된이만요(우스개노래)는명월이한테반한비단장사왕서방을조롱하는내용이다.김동인의소설「감자」나이효석의「분녀」에도등장하는왕서방이나‘아편쟁이’이미지,‘짱꼴라’‘떼놈’같은비속어는화교혹은중국인을향한한국인의부정적감정을단적으로보여준다.“어쩌면한국인과화교의갈등은한국상인과화교상인의상권다툼또는한국문화와중국문화의충돌에앞서한국인노동자와중국인노동자의일자리다툼에서그원인을찾아야하지않나”라고저자는이야기한다.
이제우리곁에는중국인뿐아니라다양한민족ㆍ국가의노동자들이이주노동자라는이름으로와있다.이들이국내에서겪는어려움이나한국인들과의갈등을해결하는일도필요하지만이주노동자의증가를초래하고열악한노동여건을재생산하는경제적ㆍ사회적ㆍ정치적요인을따져보고역사적ㆍ구조적인문제로파악하려는노력이더욱중요하다.저자가결론에서말한것처럼“역사는죽어있는과거가아니라오늘날에도되살아나우리가무엇인가를깨닫기를원하고있기때문이다.”

책속으로추가

섹슈얼리티가민족문제와결합되면서한국인의재조화교에대한감정은분노로치달았다.아울러민간신문사와잡지사들은대중독자들의흥미를끌만한기사로재탄생시키기위해노력하였다.또한야만의상징이라할불결,비위생성이강조되었다.《조선일보》의경우,팽창하는경성가두변천기를기획취재하는가운데서소문정기사내용의제목을“웃뚝소슨재판소여페너저분한중국인거리―죄를다사리고죄를범하는호대조好對照로서코를찌르는도야지기름냄새”라고뽑았다.아울러재판소건물과중국인거리의사진을상하로배치하여양자를극명하게대비시켰다.그것은각각문명과야만을상징하는사진이었다.또한전염병의창궐원인도입국하는화교들의탓이라발표하는조선총독부의의견을그대로보도하였다.(「일제의대륙침략과중국인노동자의집산」156~157쪽)

현재‘이주노동자100만명시대’에진입했다는말이과장된표현이아닐정도로많은이주노동자들이저임금과가혹한노동여건에도불구하고수많은산업현장에서일하고있다.그리고정부와지방자치단체는이러한추세가거스를수없는대세임을강조하면서온갖‘다문화정책’을시행하고있고다수의언론매체들은다문화관련보도와프로그램을쏟아내고있다.혹시여기에는1920년대일본인자본가와윤치호를비롯한사회주도층의언설에숨어있듯이이주노동자의삶을옹호하는척하면서정작자본의이익을지키려는의도가있지않을까?나아가자본가들이국내노동자와이주노동자의대립및갈등을이용하여영향력을발휘하고있다는비판도경청할필요가있다.(「뒷이야기」1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