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서악부 (평안감사가 보낸 평양에서의 1년)

관서악부 (평안감사가 보낸 평양에서의 1년)

$22.34
Description
평양의 풍속과 역사를 형상화시킨 연작시!
『관서악부』는 조선 후기 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던 석북 신광수가 절친한 친구 번암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하게 되자 7언4구 형식의 108수를 지어 전별로 준 연작시이다.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하여 한 해 동안의 행적이 그려지는데, 평양을 중심으로 한 청천강과 압록강 일대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춘하추동 사계절의 순환을 밟고 있어 관서지방의 지방색을 잘 형상화한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저자

신광수

서울대학교기초교육원강의교수.신광수의?관서악부?로박사논문을썼고,평양읍지2종을번역하여?평양을담다?로출판하였다.평양에대해?모든물건은이곳으로오라?(?18세기도시?),?비단과꽃의기억?(?문헌과해석?82호),?조선시대평양으로떠나는하루여행?(?웹진담談?)등을썼다.

목차

해제-평안감사가보낸평양에서의1년
서문
1수~108수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번암(체제공)에게나의시를불교의염주법을삼아화려한술잔치가벌어지는자리에서
한차례노래하고춤출때마다생각하고생각하며자성하기를청한다.
마음에깨들은바가있는가.”

평양이란어떤곳인가?

서도는항주처럼수려한곳
태평성대가사백년이되었네.
제일강산에부귀까지겸하여
풍류감사들이고금에노닐었지.(1수)

평양은기자와동명왕이도읍지로삼은곳이요,사대부들은뱃놀이를하거나강가누각에앉아기생들과풍악을울리며풍류를즐겼던곳이다.일제강점기역사학자박은식에따르면“우리한국사천년문물이실로이곳에서발원”한곳이요,고려때서경(西京)으로중요한위상을가진곳이자,중국의침입과묘청의난처럼전쟁과반란의역사로점철된곳이기도하다.조선시대에들어서는사신들이지나가는경유지이자중국사신을접대하는휴식처이기도해서중국사신들이중국의‘강남’에비견하여그아름다움을보증하기도한곳이다.

평양의지방색을빼어나게형상화한「관서악부」

이러한평양의전모를가장잘형상화시킨연작시「관서악부」는조선후기석북신광수(石北申光洙,1712~1775)가작고하기전1774년에쓴작품이다.절친한친구번암채제공이평양감사로부임하게되자7언4구형식의108수를지어전별로준연작시이다.채제공이평양감사로부임하여한해동안의행적이그려지는데,평양을중심으로한청천강과압록강일대를공간적배경으로하고춘하추동사계절의순환을밟는다.관서지방의지방색을잘형상화한작품으로평가되기도한다.「관서악부」의‘관서’는평안도지역을뜻하며‘악부’는한문학의한갈래이다.

‘평양이라는공간과평안감사의만남’에초점을맞춘「관서악부」

평안감사가경험하는가장화려한평양의순간을그려내는것,이는신광수가오랫동안생각해왔던시적구상이었는데채제공의요청을계기로이구상은드디어실현되었다.「관서악부」는이렇게탄생했으며신광수의대표작이되었다.
신광수는「관서악부」에서평양읍지에제시된지역적정보를문학적으로형상화했으며,평양을관찰사의풍류로가득찬낭만적인공간으로그려낸다.또한「관서악부」는평양의풍속과민간의삶을비롯해평양의역사와유적등평양의여러면모를드러냄으로써평양을가장잘형상화시킨작품으로언급되기도한다.이시에서평안감사는성대한부임행렬과기생의점고(點考),화려한잔치를경험한다.여러유적을돌아보고고조선,기자조선,고구려,고려의옛자취가남아있는평양의역사를회고하며,평안감사인만큼평안도전역을순력하기도한다.

「관서악부」에구현된사실과상상의영역의구분

이책의역해자는「관서악부」의번역에풍미를더하고다채로운정보와역사적사실을토대로작품을해설하면서「관서악부」에구현된사실과상상의영역을구분하는데에초점을맞추었다.“사실여부는실제자료인평양및평안도지도,평양읍지및관련문헌을참고해서정확하게반영하고있는지검토했다.사실과는다른부분,또비중있게형상화된부분에서는당시대중이상상했던평양의이미지를찾으려고했다.평양은유명하면서도정확하게는알려지지않은,그래서기대감을갖게하는동시에호기심을끊임없이자극하는도시다.평양의사실정보를어떻게문학적으로녹여낼것인가.또대중이상상하는평양의이미지에어떻게현실감을불어넣을것인가.이점은신광수의고민이기도했지만,우리가「관서악부」를읽을때에도여전히유효한질문이다.”

평양이라는도시에대한평안감사의‘가상적’경험을담은「관서악부」

역해자에따르면「관서악부」는흔히평양을가장잘형상화한작품으로인식되지만,정작「관서악부」를쓸때신광수가채제공과함께평양을누비면서평안감사의경험을옆에서직접보고형상화한것이아니라는사실은거의알려지지않았다.신광수는평안감사도아니었고,1774년당시에채제공을따라평양에가지도않았기때문이다.
「관서악부」의내용에는평안감사가도임한시점부터이임하는시점까지포함되어있지만신광수가이시를쓸당시는채제공이부임한초기였기때문에이시에그려진대부분의모습은1774년의시점에서보면미래형이다.그러므로이시의기본골격은실제로존재하는평양이라는도시를평안감사가‘가상적으로’경험한다는것이었다.

그러나그‘가상’은완전히허구라고보기는힘들다.신광수가실존인물채제공이평안감사가되어평양에도임한다는실제상황으로시작한것은이시에사실성을부여하기위한장치였다.사실에기반하고현실적인장면이라는느낌을주기위해신광수는여러가지를고려했다.오랫동안잘알고지낸친구였던채제공의모습을부분적으로반영하면서현실감을높였고,1760년과1761년에평양에갔던자신의경험도반영했던것이다.

평양의교방레퍼토리「관산융마」의저자신광수

신광수는1746년에시험답안에쓴「관산융마(關山戎馬)」라는시로이미두각을나타낸바있다.「관산융마는」평양의교방레퍼토리로서당시평양기생들이이시를읊지못하면일류소리를듣지못했다고할정도로한때신광수는유명세를떨쳤다.이와관련된일화가전해온다.신광수는1760년과1761년에두차례평양에갔던적이있었다.이미「관산융마」로유명했지만당시신광수는문과급제에실패하고아무런관직도없어내세울것이없는상태였다.한마디로평양의풍류를맛볼수없는처지였다.평안감사가잔치를열고있어정자에는오르고싶었으나참석하는일이여간쉽지않았다.이때감사가신광수가선비라는것을알아준덕분에겨우말석에앉을수있었다.그다음에드라마틱한상황이벌어졌다.기생들이「관산융마」를부르는것을보고신광수가자신이쓴시라고밝히자좌중의사람들이모두깜짝놀랐다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