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세 번의 만남, 백석과 동주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서른세 번의 만남, 백석과 동주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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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백석과 윤동주 사이에는 백석의 시집 『사슴』이 있다.
윤동주는 백석의 시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1937년 8월 5일, 도서관에서 백석 시집을
원고지에 정성껏 필사한 윤동주는 베껴 쓴 시 위에 붉은 색연필로 감상을 적었다.
『사슴』에는 33편의 시가 실려 있어 윤동주는 백석을 서른세 번 만났을 것이다.
저자는 그 마음을 따르며 이 책을 33장으로 나누어 썼다.”
? 33강으로 만나는 백석과 윤동주, 윤동주는 백석의 시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 1930~40년대 디아스포라의 공간, 일본과 만주에서 백석과 윤동주의 삶을 쫓다
백석(1912~1996)과 윤동주(1917~1945)는 한국 현대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시인이다. 두 시인의 시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곧 한국 현대시사의 한 뿌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백석과 윤동주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시인으로 손꼽히지만 백석과 윤동주 시에 대한 정본 연구를 비롯해 여전히 연구할 과제가 많다. 김응교 저자의 책은 비루한 시대를 검박한 언어로 맞서온 두 시인에 대한 이야기로서 윤동주에 관한 책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 『나무가 있다-윤동주 산문의 숲에서』에 이어서 백석의 시가 돋보이는 세 번째 윤동주 이야기이다.
특히 이 책에는 중요한 사진 자료들이 실려 있다. 연세대 윤동주 유족회의 허락을 얻어 윤동주문학관이 제공한 시 세 편 「모닥불」 「여우난곬족」 「가즈랑집」 의 윤동주 필사본이 모두 실려 있다. 아울러 1938년 《여성》 4월호에 실린 백석의 시 「내가 생각하는 것은」의 인쇄본 이미지(소명출판 박성모 대표 제공), 윤동주의 시 「못 자는 밤」의 육필원고, 그리고 필자가 일본과 만주 신경 지역을 직접 발로 뛰면서 찍은 사진을 비롯해 국내 한 일간지가 소개했던, 화가 이인성이 직접 운영하던 대구의 아르스 다방에서 1938년 12월에 찍은 백석의 이채로운 사진도 눈길을 끈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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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응교

시인,문학평론가.

연세대학교신학과와동대학원국문학과에서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이후도쿄외대,도쿄대대학원에서비교문학을공부하고와세다대학객원교수로임용되어10년간강의했다,현재숙명여자대학교기초교양대학교수,신동엽학회학회장으로있다.
시집으로『씨앗/통조림』,『부러진나무에귀를대면』을비롯해『좋은언어로-신동엽평전』,『나무가있다-윤동주산문의숲에서』,『처럼-시로만나는윤동주』,『곁으로-문학의공간』,『그늘-문학과숨은신』,『일본적마음』,『일본의이단아-자이니치디아스포라문학』,『박두진의상상력연구』,『이찬과한국근대문학』,『韓國現代詩の魅惑』(東京:新幹社,2007),장편실명소설『조국』등을냈다.옮긴책으로는다니카와?타로『이십억광년의고독』,양석일장편소설『어둠의아이들』,『다시오는봄』,오스기사카에『오스기사카에자서전』,일본어로번역한고은시선집『いま,君に詩が來たのか:高銀詩選集』(사가와아키공역,東京:藤原書店2007)등이있다.
CBSTV〈크리스천NOW〉,국민TV인문학방송〈김응교의일시적순간〉을진행했으며,KBS〈TV책을읽다〉자문위원을지냈다.MBCTV〈무한도전〉,CBSTV〈숲아카데미〉등에서윤동주의시와삶을주제로강연했다.유튜브〈김응교TV〉,아트앤스터디,K-mooc등에서여러강연을볼수있다.

목차

1.왜필사했을까………010
-백석「청시」와발터벤야민

1부아잇적기억과고향

2.꿩이랑까치랑장난치는산울림………019
-백석「청시」「추일산조」,윤동주「산울림」
3.평북과북간도커뮤니타스………026
-백석「정주성」「고향」,윤동주「고향집」
4.가즈랑집을좋아하는아이백석………044
-백석「가즈랑집」
5.버선본만드는동주어머니………057
-윤동주「버선본」
6.평안도방언과근원적힘………063
-백석「여우난곬족」
7.감자먹는사람들………083
-백석「내가이렇게외면하고」「초동일」,윤동주「굴뚝」「무얼먹고사나」
-빈센트반고흐〈감자먹는사람들〉
8.슬픔을이겨내는슬픔………093
-백석「여승」

2부현해탄건너

9.일본유학과길상사………101
10.판타지와평안도사투리………109
-백석「해빈수첩」
11.이즈의금귤과고향………124
-백석「가키사키의바다」「이즈노쿠니미나토가도」
12.백석은왜아일랜드문학을소개했을까………137
13.열거법의마술사………147
-백석「모닥불」
14.대조와집중의열거법………161
-백석「모닥불」「멧새소리」
15.왜임화는백석시를혹평했나………172
16.백석의짧은시를읽은동주………181
-백석「산비」,윤동주「비둘기」「못자는밤」
17.흰밤흰저고리………193
-백석「흰밤」,윤동주「슬픈족속」
18.가무래기와오줌싸개의주변인………201
-백석「흰밤」,윤동주「오줌싸개지도」「눈」「호주머니」
19.백석의천희와나타샤………213
-백석「나와나타샤와힌당나귀」
20.명랑성,가무락조개와반딧불………219
-백석「가무래기의낙」,윤동주「반딧불」

3부어진사람들,디아스포라

21.만주,신경이란어떤곳인가………233
22.만주국경제부직원………242
-만주국경제부,백석거주지,조선인의요설지역,창씨개명
23.동삼마로와조선인의요설지역………248
-백석「조선인과요설-西七馬路단상의하나로」
24.두시인의‘창씨’개명………258
25.스크린몽타주,흰바람벽과별헤는밤………279
-백석「흰바람벽이있어」,윤동주「별헤는밤」
26.백석의모더니티와영상미학………293
-백석「흰바람벽이있어」
27.짜오탕,공중목욕탕의디아스포라………298
-백석「조당에서」,윤동주「거리에서」
28.백석의도연명,동주의맹자………315
-백석「수박씨,호박씨」,윤동주「서시」
29.만주,디아스포라윤동주………331
-윤동주「이런날」
30.경성과일본에서의윤동주………344
-윤동주「또다른고향」「별헤는밤」
31.그드물다는굳고정한갈매나무………363
-백석「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32.백석의간저송………371
-백석「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33.동주의행복한나무………376
-윤동주「나무」,윤동주산문「별똥떨어진데」

더읽기
영화〈동주〉와윤동주아우라………383
영화〈동주〉와시14편………399

글을마치며
백석과동주가있어,이작은나라에………417

출판사 서평

[책의구성과내용]
도서관에서백석시집『사슴』을원고지에정성껏베껴쓴윤동주에게‘필사’는어떤의미였을까.윤동주는발터벤야민의말과같이“베껴쓴텍스트만이텍스트에몰두하는사람의영혼에지시를내린다”는말을체험했을까.백석시는윤동주의영혼에어떤지시를내렸을까.이에대한답을묻는책이다.백석과윤동주의고향이야기부터시작해(1부「아잇적기억과고향」)현해탄건너일본유학시절(2부「현해탄건너」),그리고만주로이어지는행로(‘3부「어진사람들,디아스포라」)를따라두시인의자취를더듬는다.

별과우주와인간이하나된우주적연결고리
백석의「청시」“별많은밤/하누바람이불어서/푸른감이떨어진다/개가?는다”를필사하면서윤동주는“개가?는다”는끝문장에“결구에서작품을살리었다”라고붉은색연필로썼다.저자는“개가?는다”라는구절에주목하여이구절이없다면,이시는새롭게살아나지못했을것이라고한다.‘별밤에→하늬바람불자→바람에흔들린푸른감이떨어지고→감떨어지는소리에개가놀라짖는’연쇄현상은우주의작은누리가움직이면또다른작은누리가연쇄적으로반응하는정동(情動)현상을일으키기때문이다.이처럼백석의시「청시」에는우주적상상력이충만하다.윤동주는백석시에나타나는우주적움직임,우주적화합,우주적정동에공감하여「청시」를필사하고난4년뒤1941년11월5일,「별헤는밤」을쓴다.이시에는별,하늘,달등우주적인상징과이미지들이많이등장하는데,윤동주가좋아하는백석시에도천상(天上)의이미지가등장한다.저자는여기서별과우주와인간이하나된우주적연결고리를읽는다.

백석의정주성과평안도,윤동주의명동마을과함경도
일본유학을다녀온백석은과거홍경래의난이처참하게실패했던,허물어진정주성을찾았다가멈칫하고는몇문장을메모한다.며칠후그날떠오른착상으로시「정주성」(1935)을완성해고향의한단면을연민으로담아낸다.윤동주는시집『사슴』에서스물아홉번째시「정주성」을필사한다.백석이맞춤법을무시하고자기식으로쓴띄어쓰기를그대로살려서필사했다.그후윤동주는두만강을건너북간도로온선조들의이야기를담은동시「고향집-만주에서부른」(1936)을쓴다.“헌짚신짝끄을고/나여기왜왔노/두만강을건너서/쓸쓸한이땅에/남쪽하늘저밑에/따뜻한내고향/내어머니계신곳/그리운고향집”.평양숭실중학교시절쓴이시에서윤동주에게“따뜻한남쪽”은어디였을까.저자는그곳이친밀한내면적고향,함경도가아닐까,라고추측한다.

“백석에게평안도정주는성이허물어진슬픔의땅이다.동주에게명동마을은볼쉐비키의폭력에쫓겨한밤중에용정으로이사해온,당시겉으로보기에는실패한유토피아공동체였다.식민지조국을상징하는함경도는말할필요도없다.그러나그들은끊임없이정주와함경도사투리를시에살려내며사라진공동체를시에서복원했다.(…)백석은평안도정주를,동주는명동마을과함경도를단순히패배한변두리로보지않았다.두시인은평안도사투리와함경도사투리로비극을이겨내는‘커뮤니타스’를시에서되살려냈다.그‘변두리커뮤니타스’에서허물어진것,천한것,쓰잘데없는것,죽어가는것들을향한연민을습득했다.”(42쪽)

백석의일본기행시가보여주는환상성과동일화
2부에서는주로백석의일본유학시절의자취를쫓고일본기행시를통해서백석은어떠한방식으로우리에게시적환상을제공하고있는지를다룬다.
백석은일본의식민지시절에태어나,삶의반을일본식민지아래에서보냈다.더욱이그는일본에유학을다녀왔다.도쿄유학을마친이후백석의시에일본은그림자처럼나타나그의시곳곳에은밀히일본이란기호가숨겨져있다.그러나저자에따르면이에대한연구는그리많이진행되지않았다.
우선일본에서쓴백석의글세편,즉「해빈수첩」「가키사키의바다」「이즈노쿠니미나토가도(街道)」는모두이즈반도를배경으로썼다.이즈반도는백석이주거하던기치조지(길상사)나아오야마학원이있는시부야에서교통편이편리한관광지다.저자는이즈반도라는낯선땅의지명(地名)이갖는환상성에주목해볼것을권한다.세편모두일본어지명을제목으로써서,제목으로독자를설레게하고가보지못한낯선지명의제목앞에서독자를망설이게한다.

“이국(異國)이라는것은작가나독자에게환상을일으킬수있는낭만적인단어다.백석은어떤시인보다도유년기과거의시간을시적환상으로승화(昇華)시키는데에성공한시인이다.이제그는과거의시간뿐만아니라,이름만들어도환상적인자극이발동되는일본이라는기호를시의재료로하여일본기행시를발표했다.”(112-113쪽)

그런가하면백석의일본기행시세편모두평안도사투리가시에서중요한역할을하고있다.가령“이즉하니물기에누긋이젖은왕구새한자리에서/저녁상을받은가슴앓는사람은참치회를먹지/못하고눈물겨웠다”(「가키사키의바다」에서)를떠올려볼수있다.저자는좋은글을쓰려면“종양처럼퍼진말들을태워없애고외래어하나를은빛나는갈비뼈처럼집어넣는다”는벤야민의말을인용하여문장을쓸때때때로느닷없는외래어삽입은“은빛갈비뼈”처럼낯설고화사한환상을자극시킨다고말한다.평안도사투리를넣음으로써평안도라는정서를환기시키고백석의몸은일본에있지만그의영혼은과거자신이경험했던공동체속에있었다는사실을표출하는방식이다.

“일본풍경을쓰려면사물과풍경을일본단어로써야할터인데,백석은능글맞게평안도사투리를연방삽입한다.백석의글쓰기는발터벤야민이말했던외래어쓰기와비슷한분위기를띄고있다.일본이라는시의공간에서평안도사투리는은빛갈비뼈처럼낯설게빛난다.”(122쪽)

한편일본풍경을시로펼쳐보이면서일본어로써야할사물들을평안도사투리로표현하는것은독자들이읽을때‘동일화’효과를불러일으킨다.백석이쓰는수많은사물의이름들,수많은음식의이름들등은바로환상의‘동일화’가일어나는시발점이된다.따라서저자는백석의시는환상시라고할수는없지만환상적인요소를시에적절히이용하여환상적인미학으로현실의쓸쓸함을느끼게하는시라고평하며따라서임화가백석의시를단순히이국취미라고폄하한것은이지점에서재고되어야한다는점을지적한다.백석은‘일본적인것’을드러내기보다는오히려‘조선적인것’을드러냈기때문이다.

1940년대만주신경의디아스포라시인백석
과거만주국의수도였던신경(장춘)은당시정치,문화,행정의중심지였다.저자는백석이신경으로떠난시기는1940년2월7일에서가까운,1940년1월말이나2월초로추정한다.창씨개명을거부한사건으로백석은만주국국무원경제부의관료생활을1940년3월에시작하여9월경에사직한다.그때부터백석은신경에서‘실업자디아스포라’가되었다.그무렵백석보다다섯살젊은윤동주는연희전문을졸업하고일본으로유학을준비하고있었다.
저자는백석이신경에서썼던글의배경이되는지역즉백석이신경에도착하자마자3월부터근무했던만주국경제부건물과백석이거주했던동삼마로와서칠마로등동네를답사한다.장춘은걸어서다니면백여미터안에옛만주국정부건물들이계속이어져있을정도로그대로남아있다.신경에도착한후백석이발표한산문「조선인과요설」은서칠마로에사는조선인의모습을비관적으로표현한글이다.

“조선인의요설을나는안다.그것은고요히생각할줄을모르는것이다.생각하기싫어하는것이다.가슴에무거운긴장이나흥분이업는것이다.또무엇인가비애를가슴에지닐줄모르는것이다.조선인에게는이러케비애와적막이없을것인가.분노가없을것인가.이러케긴장과흥분을모르는것인가.그리고생각하는것까지도잃어버리는것인가.…”(254쪽)

백석은식민지에서벗어나대도시에서사는일부조선인의‘만주유토피아니즘’환상을지적한다.이들은백석이살고있던동삼마로에거주했던서민이나빈민들이아니라건너편서칠마로에살고있는,돈푼깨나있는조선인들이었다.그러나「조선인과요설」의마지막에서백석은“비록몸에남루를걸치고굶주려안색이창백한”민족을위해“생각하고노하고슬퍼하라”고권하며.또“감격할광명을바로”보라고,희망을포기하지않는다.

백석과윤동주의창씨개명-윤동주는스스로창씨개명을했을까
창씨개명을거부한사건으로백석은만주국국무원경제부의관료생활을접고신경에서실업자가되었다.이런상황에서백석이창씨개명을했을리가없다는것이일반적인평가였다.그러나저자의책『이찬과한국근대문학』(소명출판,2007,131쪽)에소개된문인창씨개명록명부에서백석의개명한이름을발견할수있다.시라무라기코(白村夔行),백석의본명백기행의성과이름사이에무라[村]라는한자를넣은창씨다.백석의창씨개명에대해저자는『백석평전』을펴낸안도현의언급을인용하여“백석은‘시라무라기코’라는일본이름으로작품을발표하지않았다”는점을주목해야한다고말한다.저자는만약백석이자의로창씨개명했다고생각한다면,무라[村]라는한자어에는촌공동체를중시했던백석의마음이들어갔으리라추측한다.

한편윤동주의창씨개명은일제가강요하는?창씨개명에굴복한자신을참회한시「참회록」을통해서도잘알려져있다.1940년이후일본으로유학을가는청년들은‘창씨’만이라도해야편했을것이라고추측할수있다.그렇다면윤동주는스스로‘창씨개명’을했을까(267쪽).저자김응교교수는일본교토대미즈노나오키의책(『윤동주와그의시대』,혜안,2018)을토대로윤동주의‘창씨’가자의에의한것이아니라는연구결과를소개한다.
연구에따르면윤동주는‘히라누마도주(平沼東柱)’,즉성만바꾼‘창씨’신고서를1942년1월29일연희전문에제출했다.닷새전1월24일에쓰인「참회록」은‘창씨’를신고하기전에쓴작품이다.「참회록」에는일본으로유학가기전에운석을맞을지도모를운명을겪으며‘창씨’를신고할수밖에없었던‘슬픔’이배어있다.「참회록」이끝나는부분에는1942년1월24일이라고적어놓았다.그렇다면윤동주가창씨개명계를제출한날은「참회록」을쓰고난닷새후였다.즉미즈노나오키교수에따르면“윤동주일가의경우에도아마호주인윤동주의조부윤하현(尹夏鉉)이이기간에히라누마(平沼)라는씨를정해신고한것으로보인다.따라서‘히라누마’라는성씨가된것은윤동주의의지에따른것이아니”였다고말한다.연희전문졸업증명서에는창씨이전의이름인윤동주로쓰여있는데,일본으로도항하고대학입학을하는과정에서이름이다르면문제가생길수있기에윤동주일가의호주가정한창씨대로윤동주는따랐을것이라는설명이다.윤동주가어쩔수없이현실과타협을한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