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기원부터경쟁,질병,차별,자기애,결핍,삶과죽음까지
우리의방황과고통에대한신화적해답
인생은누구에게나어렵다.어쩌면나이의숫자가하나씩늘어날수록더힘들지도모르겠다.지켜야할것들이점차많아지는데몸과마음은예전같지않고,수용가능한선택지는그만큼줄어들기때문이다.이처럼삶이버겁고인생이흔들릴때우리는무엇을찾아야할까?어떤이들은여행을떠나거나,취미생활로삶의활력을불어넣기위해노력할것이다.그러나현실로돌아왔을때변하는것은아무것도없다.내가변하지않았으니당연하다.
일회성도피가아닌진정삶을변화시키기위해서는어떻게해야할까?이책은‘신화속인물들’이거쳐온길에서힌트를얻으라고권한다.신화안에는인간의생로병사,희로애락,세상사우여곡절등세상만사가고스란히담겨있기때문이다.신화의강렬한이미지와서사를들여다보는것은인류가태생부터안고살아온고민과갈등,치유와화해를이해하는과정과같다.상황과주인공은제각각이지만그안에는우리네삶을돌아보게끔돕는여러교훈이담겨있다.신화는‘우리는어디에서왔다가어디로가는가’라는근원적인질문을던지고,자연재해와질병,차별,아픔,죽음등살면서겪는수많은고난들을신화속인물들이어떻게헤쳐나갔는지보여준다.이를통해독자들은온갖고통과방황속에서도길을찾는방법을배우게될것이다.또한삶의모든힘겨움이결코나만의것이아님을,신화속주인공들처럼나또한이를딛고새롭게거듭날수있음을믿게될것이다.
인간이가질수있는가장오래되고도깊은진리
원형적텍스트에서건져올린삶의지혜
저자는신화를‘문학치료학’관점으로접근한다.이학문은한국에서생겨나성장해온,대안적인간학이자치유론이다.인간을하나의문학으로보고,누구나마음속에삶을움직이는이야기를내재하고있다고이야기한다.그러므로삶을산다는것은곧이야기를써내려간다는의미가된다.그이야기를써내려가는과정을곧‘자기서사(story-in-depthofself)’라고표현한다.태생부터불완전한우리인간이근본적인치유를이루려면자기서사를제대로직시하고또변화시켜야한다.이책은그투시장치로설화,그중에서도신화를삼는다.근원적인신성의이야기인신화와함께한다면곧자기밑바탕에놓인참자아와만날것이다.
이책은창조신화,자연신화,영웅신화,애정신화,생사신화를기준으로다섯개장으로나뉜다.각각의신화는곧인간의일대기로읽힌다.세상에태어나(존재의시원),세계와관계를맺고(세계와나),갖가지한계와고난을만나며(한계와투쟁),그에맞서사랑하고애정을나누고(연결과확장),하나의삶을마무리해또다른세계로나아가는(삶과영원)이야기는하나의완결된서사를이룬다.
내삶의오롯한주인이되기위해서는신화속주인공들처럼하나의서사를완성해야한다.이책은‘제주외눈박이거인’의전설을통해부딪칠때와물러설때를깨우치고,태어나자마자부모에게무참히버림받은‘바리데기’와〈원청강본풀이〉속‘오늘이’에게서고독과무의미는우리모두의운명이며,산다는것은미력한스스로를부여잡고한없이흔들리는일이라는사실을알려준다.또바위가굴러떨어질것을알면서도끝끝내계속밀어올리는‘시시포스’를통해부조리에맞서싸우는인간승리를배운다.북유럽의신‘오딘’과‘토르’에게도결핍이있음을이야기함으로써누구에게나한계는존재하며중요한것은끊임없이움직이고개척해결국자기힘으로일어서는것임을말한다.즉스스로신이되는것이다.
완벽해보이는신화속인물들조차온갖고통을느끼고결핍을안고살아간다는사실은태생이불완전한우리에게묘한위안을준다.이에더해평범한나도‘신’이될수있다는말은또다른희망으로다가온다.이것이신화라는서사가주는힘이다.이책을읽은독자들은신화속서사들을통해보신(保身)의길,즉나를지키는법을깨닫게될것이다.
“결국신화를완성해가는것은우리자신이다!”
옛이야기로오늘의인생을사는법
신화는인류모두가함께헤쳐나가야할,거시적인문제들에대한해답으로도안내한다.대지진과쓰나미,태풍과홍수,살인적인폭염과한파,코로나팬데믹,기후위기까지,인류는언제나거대한위기의물결앞에서있었다.이에관해이책은히브리의〈창세기〉속노아의방주,그리스신화포세이돈의물바다재앙,인도신화의마누가물고기로변한비슈누신덕분에홍수에서홀로살아남은사연,중국의홍수신화,한국신화의〈나무도령(목도령)〉이야기까지,전세계신화속사례를차례로들려준다.유사하면서도고유의특징을가지는각각의신화는,신은인류가더는두고볼수없을정도로선을넘어설때특단의조치를내려세상을정리한다고,지금의잦은위기들은어쩌면일종의‘경고’일지도모른다는말을전한다.이신호를잘읽어낸다면인류는당면한문제들에서벗어나비로소우리만의‘방주’에올라설것이다.
동시에이이야기들은나를죽이러다가오는재앙이일종의구원이될수도있음을알려준다.경고가없다면대비도없기때문이다.신화속인물들은때로는그재앙에잡아먹히기도하지만기어이극복해살아내기도한다.우리는전자의이야기에서는반면교사를,후자의이야기에서는타산지석을배우면된다.그신화들을잘그러모아내것으로만든다면어느새삶의위기들을무난히통과할수있게될것이다.“결국신화를완성해가는것은우리자신”이다.
책속에서
북유럽신화가말하는라그나로크(Ragnarok)는,세계종말의날은허튼상상이아니다.우리모두가필연적으로직면할현실이다.하지만그것은,끝이아니다.돌아감일따름이다.우리가온그곳,아득한원생명의세계로의.그아득한고요와혼돈의시공간속에서신령한생명적몸짓은다시새움직임을시작할것이다.또다른영겁을향해서.현실의시간은유한하지만,신화의시간은영원하다.
잘알듯이,죽음은참으로아득한일이다.그돌아감뒤의일을우리는알수없다.하지만존재적바탕으로의돌아감은죽음만의일은아니다.우리는저밑바탕으로의침전을통해,예컨대깊은명상冥想을통해태초의원생명상태로나아갈수있다.창조신화의원형적서사와이미지는나의본래적존재성을추체험할수있는최고의명상통로다.
―1장창조신화_존재의시원,25~26쪽
자연이라는큰신의일방적이고압도적인위력앞에서인간은어떻게해야하는것일까?어쩔수없는일로받아들이고순종해야만할까?자연에순응함은인간의마땅한도리이지만,고정불변의원칙이라하기는어렵다.세상의모든살아있는것들은제생명을지키고발현하는것을절대적과제로삼는다.이것이야말로불변의법칙이다.인간또한마찬가지다.호랑이발톱앞의강아지가어떻게든살길을찾아야하는것처럼,자연의공격앞의인간은최선을다해서살길을찾아야한다.필요할경우,온몸으로부딪쳐싸워야한다.
―2장.자연신화_세계와나,83쪽
손님굿에서김장자의대척점에있는존재는노구할미다.가난하고고단한할미는이름없는서민에해당하는인물이다.그는손님신들이찾아오자집을깨끗이치운뒤최선을다해서그들을챙긴다.감염병이찾아든상황에서최대한의겸손과정성으로이를감당하고풀어나가는모습이다.그러자전화위복의역전이일어난다.그정성앞에불청객은스스로물러나면서노구할미집에큰복을남긴다.어찌그렇지않을까.큰위기를잘이겨내면그것은삶의힘이된다.코로나위기도최선을다해이를극복하면전화위복의힘으로돌아올것이다.이때무엇보다중요한것은심리적으로무너지지않는일이다.노구할미가그랬듯이,스스로마음을다잡으며힘을내고길을찾아야한다.현재를살아가는힘과미래로이어지는길을.‘현실부정’은답이아니다.…코로나위기에서우리에게백신이나치료제보다더필요한것이이와같은하나됨의정성과의지,그리고희망적믿음아닐까?
―2장.자연신화_세계와나,104~106쪽
그들(신)은전지전능한무소불위능력자가아니다.오딘은한쪽눈을잃은존재이며,토르는거인의주머니에속절없이갇혀휘둘리는곤경을치른존재다.인간이그런것처럼,그들의한계는명확하다.중요한것은그들이끝없이움직인다는사실이다.산꼭대기로끊임없이바윗돌을굴려올리는시시포스처럼.시시포스와비교하면,오딘과토르는더적극적이고개척적이다.같은행위를반복하는대신계속다른벽에몸을부딪쳐새영토를열어나간다.칼같은예기와천둥같은행동력으로.영웅의진경(眞境)이다.거대한벽과맞서싸워서스스로거인이되고신이되는것.인간존재의원형적과업에해당하는무엇이다.
―3장.영웅신화_한계와투쟁,141쪽
봄날의들판이아름다운것은겨울이있기때문일것이다.페르세포네와자청비가아름답고사랑스러운것은길고힘든잦아듦과시련의시간이있기때문이다.문득모습을감추고사라져버리는이들여신은,때가되면돌아온다.하지만그것은저절로이루어지는귀환이아니다.늘그들과함께하는,그들을변함없이믿고서지켜짐과지켜줌을이어가는사람들이있기에가능한일이다.그영원한생명적동반관계에대하여나는이를‘사랑’이라고부른다.신화적인.숭고한.
―4장.애정신화_연결과확장,203쪽
나뭇잎이피고지는것은,비에젖다가햇살에빛나는것은그것이‘있기’때문이다.시들거나뿌리뽑혀서죽는일도마찬가지다.애초에존재가없었으면죽음도없었을것이다.나또한마찬가지다.이세상에없었다면어찌기쁨이든슬픔이든,기림이든버림이든,단하나라도느낄수있었을까.병주고약주는,약주고병주는신과대면할수있었을까.여기이렇게숨쉬면서움직이는나.이보다더큰축복이어디에있나.어둠대신빛을보면,고통대신행복을보고,절망대신희망을보면,병대신약을보면세상은달라진다.우리는이를축복이라고말한다.그축복은,저절로오지않는다.움직여서앞으로나아가야내것이될수있다.…사랑은빛이나행복에,희망에있는것이아니라고말한다.빛과어둠,행복과고통,희망과절망은둘이아닌하나라고말한다.그모두는어느것하나예외없이하늘이우리에게허여한사랑의과정이다.여기우리의존재는그자체로서사랑이다.
―4장.애정신화_연결과확장,221쪽
인간은누구나태어나면한번죽는다.존재의파멸적해체로서의죽음앞에서우리는말을잃는다.죽은자는말이없고,한번떠난자는돌아오지않는다.생명과죽음사이의아득한심연!에로스와타나토스의공존불가능한모순성이다.
그러나신화속에서에로스와타나토스는,공존한다.나아가그것은한존재의두모습이다.죽음너머의세계에대해서는무어라고가히말하기어렵지만,우리삶의과정이그자체로에로스와타나토스,또는생명과죽음의이중주라는점은말할수있다.심리적측면에서볼때더욱그러하다.우리의존재는어느순간생생히살아있지만,어느순간무력하게죽어있다.존재는삶과죽음을끝없이오간다.불교에서말하는억겁의윤회,전생은현생의삶속에서부단히펼쳐지는무엇이다.
―5장.생사신화_삶과영원,232~233쪽
〈도랑선비청정각시노래〉는망자를저세상으로떠나보내는의례인망묵굿에서구송되는신화다.사람들은그이야기의길을따라서망자를만나고또떠나보낸다.청정각시가손에불을붙일때그들또한마음의손에불을붙인다.타버린손가락으로고갯길을닦으며올라가서죽은사람을껴안는다.차마보낼수없는그사람을.
눈물로가득한그제의적한풀이의끝자락에서,그들은스스로를죽인다.청정각시가죽을때그들도함께죽는다.그렇게망자를떠나보내며,동시에그와하나가된다.삶과죽음의심연을가로질러서그를내안에품는다.영원히.그곳에서잘살아갈그와오래도록함께하는최선의길은,이곳에서내가훌륭히잘사는것이다.나중에진짜로저승에가서다시만날때서로부끄럼없이손잡을수있도록.
―5장.생사신화_삶과영원,2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