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선생상제례답문 : 이황, 삶의 도리를 말하다 - 대우고전총서 60 (양장)

퇴계선생상제례답문 : 이황, 삶의 도리를 말하다 - 대우고전총서 60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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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황

저자:이황(李滉,1501~1570)
조선유학을대표하는학자이다.자는경호(景浩),호는퇴계(退溪)·퇴도(退陶)·도수이고,본관은진성(眞城)이다.지금의안동온혜리인경상도예안현온계리에서여덟남매중막내아들로태어났다.
어릴때부터학문에깊은관심을갖고공부에매진하다가1523년성균관에입학하였다.1534년문과에급제하여관직생활을하였으나,을사사화로넷째형이해(李瀣)와아끼는동료들을잃자,1546년관직을사퇴하고고향으로돌아갔다.이후에도여러차례관직을받았으나금방사임하거나거절하였다.
1560년도산서당을짓고독서와수양을하면서,연구한내용을바탕으로책을저술하고제자를가르쳤다.고봉기대승과편지로사단칠정(四端七情)에관해토론하고,율곡이이와만나이야기를나눈것도바로이무렵이다.1568년갓즉위한선조가성군이되기를바라는마음으로『성학십도(聖學十圖)』를만들어올린것도이곳에서였다.
퇴계의학문과사상은조목,김성일,류성룡등260여명의제자들은물론,지역과학파를넘어조선유학전반에큰영향을미쳤다.특히의리(義理)를중심으로한퇴계의예학사상은정구와김장생등에의해계승되면서조선예학의큰줄기를형성하였다.그의학문과사상은일찍부터중국과일본등에널리소개되었으며,현재도전세계적으로꾸준히연구되고있다.
1570년퇴계가세상을떠난이후제자들이도산서당뒤에서원을지은것이도산서원(陶山書院)이다.시호는문순(文純)이며,문묘에종사되었다.저서로는『퇴계집』,『주자서절요』,『송계원명이학통록』,『심경부주석의』등이있다.

엮음:조진(1543~1625)
자는기백(起伯),호는농은(聾隱),본관은양주(楊州)이다.이덕홍등과도산서당에머물면서퇴계에게가르침을받았다.왕자시절의광해군을도운공으로공조판서,판중추부사등을지냈다.1610년공산목사로있을때퇴계의문집에서상제례에관한논의가담긴글들을모아『퇴계선생상제례답문』을편찬하고간행하였다.

역자:한재훈
1971년서울출생.서당(書堂)에서15년동안한학(漢學)을수학한뒤,고려대학교철학과를졸업하고고려대학교대학원에서석사학위와박사학위를취득했다.(재)한국고등교육재단의한학연수장학생(21기)과동양학연구장학생(16기)으로선발되었다.고려대학교강사와겸임교수(2012년~2020년),연세대학교연구교수(2012년~2022년)를역임했으며,성공회대학교(2008년~현재)와한국학중앙연구원부설청계서당에출강하고있다.2023년부터는강남서당뇌화재(雷花齋)에서다양한동양고전강좌를진행하고있다.

목차

초간본
이담에게답하다1564
이담에게답하다1565
송언신에게답하다1570
김태정의문목에답하다1569
이순의문목에답하다1564
안동부관에게답하다1565
김우굉,김우옹에게답하다1566
김우굉,김우옹에게답하다1570
이문규에게답하다1567
안동부사윤복에게보내다1566
기대승에게답하다1564
기대승에게답하다1565
기대승에게답하다1567
기대승에게답하다1569
이정에게답하다1560
이정에게답하다1565
이정의문목에답하다1566
조목에게답하다1563
정유일에게답하다1561
정유일에게답하다1564
정유일의별지에답하다1567
정유일에게답하다1569
정유일의별지에답하다1570
금응협,금응훈에게보내다1563
김부륜에게답하다1553
김부인,김부신,김부륜의문목에답하다1555
김부륜에게답하다1557
김부륜에게답하다1570
김취려에게답하다1561
김취려에게답하다1565
김취려에게답하다1566
우성전에게답하다1566
우성전에게답하다1567
우성전에게답하다1568
우성전에게답하다1570
허봉에게답하다1570
정곤수에게답하다1569
김성일에게답하다
김성일에게답하다1568
김성일에게답하다1570
김기에게답하다1569
이덕홍에게답하다1570
금난수에게보내다1561
금난수에게보내다1563
류중엄에게답하다1569
권호문에게답하다1564
이함형에게답하다1569
조진에게답하다1568
정구에게답하다
한수에게답하다1564
김택룡에게답하다1568
조카녕,교,혜에게답하다
아들준에게답하다1565
종도에게보내다1559
권대기에게답하다
정유일에게답하다
김부필에게답하다
정윤희에게답하다
후지

보본
보본
노수신에게답하다1566

해제
옮긴이의말
부록
부록1발췌한문답과같은글이실려있는위치
부록2퇴계와문답을나눈인물소개
부록3문답내용의주제별분류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예법에대한원숙한이해와유연한적용
정서와상황을생각하는퇴계의신중함

조선유학자들은주자의『가례』에서제시하는규범을실생활에서따르려고했다.하지만규범이모든상황을일일이규정할수는없었기에,때로는변례(變禮)라는방식으로예외상황에대응해야했다.특히상례와제례에서는『가례』의규범이당시조선에서널리행해지던관습이나국가에서제정한법령과충돌하는경우가많았다.예를들어『가례』는신주에조상의영혼을모시고사당에서제사지내는것을우선시했지만,사람들은조상의육신이누워있는무덤에서제사지내는것을선호했다.또주자는사대부들이고조(高祖)까지제사를지낼수있다고말했지만,당시조선국법은일반사대부들이증조(曾祖)까지만제사를지내도록규정하고있었다.

이렇게오래된것과새로운것,원칙과예외사이에서일어나는까다로운문제들에대해퇴계는경전으로내려오는고례(古禮),주자를비롯한유학자들이만든예서(禮書)뿐만아니라,『경국대전』,『국조오례의』등여러자료를꼼꼼하고폭넓게참조하여이런변례에대응할수있도록조언한다.

퇴계의답변을보면그가예법의자구에갇히지않고예법이만들어진이유와예법에담긴본질적인의미를밝히는데힘쓰고있음을알수있다.그는예법을통해개인의정서를충분히담아표현하면서도개인의삶,사회적관계,자연의섭리도해치지않는방법을고민한다.즉죽은사람을생각하며치르는상례와제례도궁극적으로는살아있는사람의삶의도리에맞도록행해져야하므로퇴계는성현들이세운규범이라는대원칙아래에서사람들의마음과사회적질서를고려해관습과법령을존중한방안들을제시한다.

이처럼퇴계는중국으로부터들여온예학을충분히소화하고,이를조선의상황에맞게조정할수있을만큼예학에대해원숙한이해를갖고있었다.그럼에도퇴계는변례를만들고적용하는데사뭇신중한태도를취한다.자신이모르는것과과거의실수를솔직히고백하고,자신의의견도잘못될수있으므로항상질문자에게더나은사람의의견을듣고직접판단해보라고권한다.퇴계의이런자세는변례가어디까지나일시적인것이고점차성현의예법에맞도록고쳐야한다는그의예학적견해와자신이예법을정할권한도능력도없다는생각에입각한것이지만,퇴계본인의겸손하고솔직한성품,을사사화와같은경험을통해얻은퇴계개인의상처가녹아있는것이기도하다.

퇴계의제자가발췌하고퇴계예학의전문가가보완하여번역한
상례와제례에관한447개의대화

이러한조심스러움에도퇴계의의견은예에대한가장탁월한해석으로인정받았고,퇴계사후에도비슷한문제들이있을때많은사람들이그의의견을중요한길잡이로삼았다.사람들이매번퇴계의문집여기저기에흩어져있는글을일일이찾는수고로움을덜기위해,제자조진이상례와제례에관한글을발췌하여『퇴계선생상제례답문』이라는하나의책으로엮은것이많은사람들의지침서가되어지금까지전하고있다.

흩어진것을모았다는점에서는편리해졌지만,여전히이책을바로읽기에는불편한점이있다.이책을구성하는글이원래편지였기에질문자는아주개인적이고구체적인문제를묻고퇴계도질문자가상당히알고있다는전제하에개별사안에집중하여답한다.그래서상황에대한설명없이는읽기어렵다.더구나순서가주제별로나누어져있지않고질문자에따라글이묶여있어서궁금한문제를바로찾을수도없다.

옮긴이한재훈교수는퇴계예학의전문가로,오래전부터『퇴계선생상제례답문』에관해심도있는연구를진행해왔다.옮긴이는이책이지닌문제를보완하기위하여충실한번역과함께맥락과상황을이해할수있는주석을달았다.또구별없이묶여있는내용들을주제에따라447개의조목으로나누어각각번호를매기고,각조목이어떤주제를다루고있는지분류한부록을실어이책의활용을더편리하게하였다.

사람의마음과사회적책임을함께고려하는
현대인에게귀감이되는퇴계의정신

최근퇴계종가에서차례때상차림을소박하게한다는것이화제가되었다.이처럼형식보다는의미와마음을중요시하고,질서를유지하면서도사회에긍정적인변화를이끌었던퇴계의정신은현대인들에게도큰울림이되고있다.

우리는복잡한관계망과빠르게변화하는환경속에서수시로도덕적딜레마를겪는다.때로는규범들이의미와맥락을잃고너무형식적으로만행해진다고느끼거나,때로는질서가없어각자너무마음대로행동한다고느낄때도있다.이런문제를느끼고갈등한다는사실자체가우리안에올바른방식으로살고자하는도덕적마음이살아있다는증거이다.

마흔두명의질문자들이마주한문제는제각각이지만,질문을하게된이유는우리의마음과다르지않다.개인의마음을잘표현하면서도동시에사회적책임을잃지않으려는동기에서비롯된것이다.이동기를담아낼수있는규범을찾는문제는16세기의특수한문제가아니다.마음을성찰하여삶의도리를찾는퇴계의정신은조선사회보다더복잡하고다변하는사회에살며더쉽게아노미에빠지는우리에게좋은귀감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