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개인적,사회적으로‘화(분노)’를촉발,촉진시키는사회에서살아가고있다.그배경에는인간의욕망을부추기는물질주의,이기심,무한경쟁등이자리한다.그럼에도불구하고인간은행복해야할권리가있고,행복을추구하며살아가고있다.어떻게행복해질수있는가?이에대해틱낫한스님은이렇게말한다.
“부처님의가르침에서행복의가장기본적인조건은자유입니다.여기서말하는자유는정치적자유가아니라화,절망,질투,미망등마음작용으로부터의자유를말합니다.부처님은이런마음작용을독이라고하셨습니다.이런독들이우리마음에있는한행복할수없습니다.”
이렇게이책은화,절망,좌절감등에서벗어나나와상대가행복해지는방법에대한가르침이다.그리고그것은난해하거나깊은이론적공부,극한의수행을필요로하지않는다.바로마음챙김수행하나면된다.‘화’에서자유로워지기위해서는우선‘화’에대해서알아야한다.스님은화는정신적,심리적현상이지만,생물학적,생화학적요소와도밀접하게관련되어있다고본다.즉몸과마음은별개가아니며,몸이마음이고마음이몸이다.
따라서화의뿌리는마음만이아니라몸에도존재하며,결국일상생활에서우리가어떻게먹고,마시고,소비하는지,자신의몸을어떻게취급하고있는지등‘마음챙김먹기수행’을하라고한다.스님은이책의시작을이렇게몸을다스리는문제,그리고그핵심이되는먹는문제로부터시작하는의외성을보여준다.이는곧일상과수행이둘이아님을보여주는것이기도하다.스님은화를어린아이와같은,돌보아야할대상으로본다.따라서우리는아기의울음소리에귀를기울이는어머니가되어야한다.한발더나아가‘화’도우리의일부라고본다.몸어딘가가아플때,우리는우선적으로아픈부위에관심을가지고보살피게된다.
“당신의화를아주부드럽게안아주세요.화는당신의적이아니라,당신의아기와같습니다.당신의위나폐와같습니다.폐나위에무슨문제가있을때마다버리려하지는않지요.당신의화도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화는우리가내쳐야할대상도,싸워서이겨야할대상도아니다.우리는화를있는그대로알아차리고안아주고미소를보내면된다.여기에필요한것이바로마음챙김수행이다.
“부처님께서는우리마음속의불꽃을끄기위해아주효과적인도구를주셨습니다.그것은마음챙김호흡과마음챙김걷기를하는방법,화를안아주는방법,우리자신이사물을인식하는방식의특성을깊이들여다보는방법……”
좋은가르침이란그것을우리의삶에직접적용해서,우리의고통을바꿀수있어야한다.마음챙김수행은위대한존재만이할수있는게아니다.나도,당신도,우리모두할수있다.화는씨앗의형태로우리안에있으며,사랑과자비심의씨앗도같은곳에있다.수행이란부정적인씨앗에물을주지않고,긍정적인씨앗에물을주는것이다.이것을‘선택적인물주기’라고표현한다.
간혹화에대한잘못된속설이문제가되기도한다.즉일부에서‘화’는발산하는것이해결책이라고말하기도하지만,이는매우위험한발상이다.화를발산할때그것은화를먹여살리는에너지를공급하는것이고,따라서화를발산할수록그것은화의씨앗을자라게할뿐이기때문이다.어느누구도화를내지않을수는없다.관건은그화를발산하고상대에게터트리느냐,아니면그순간화를알아차리고안아주고미소짓느냐에있다.그리고그것은마음챙김수행에달려있다.
이처럼,마음챙김은화를억누르기위한것이아니라,화를알아차리기위한것이다.마음챙김은접하고,인지하고,인사하고,안아주는것으로,다투거나억압하지않는다.마음챙김의역할은아픈아이를안아주고달래는어머니와같다.우리안에있는화는우리가잘돌봐주어야할아기이다.수행자는화와고통이생기자마자이것들을잘돌보는방법을아는사람이다.반면수행하지않는사람은화의에너지가나타날때화에압도되어지배당하기쉽다.
우리의고통과불행의주요원인은상대가아니라바로우리속에있는화의씨앗이다.따라서자신의고통에대해상대를비난할필요가없다.상대는오직부수적인요인일뿐이다.무언가-화(분노),좌절,절망심지어는사랑까지도-에얽매여있으면자유롭지못하다.진정으로살아있기위해서는,진정으로행복하기위해서는,진정으로인생의주인공으로살기위해서는자유로운사람이되어야한다.그리고그길은마음챙김수행에있다.이책을통해‘화’의본성을이해하고‘화’에서자유로워져,자신은물론이고자신의도움이필요한사람들모두행복에가까워지기를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