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 임춘전 (삶의 역경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천재시인 서하 임춘의 일대기)

서하 임춘전 (삶의 역경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천재시인 서하 임춘의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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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책은 최초의 가전체소설인 「공방전」「국순전」을 지은 임춘의 일대기를 평전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고려시대 무신정권 하에서 비운의 삶을 살다가 30세의 나이에 요절한 천재 시인 임춘의 일대기를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삶과 문학, 정신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 주고 있다.
저자

임병준

목차

서문

1.우애있고희망에부푼생활
2.아버지의피살과대년의피신
3.양양에숨다
4.어머니의피살과기지의방황
5.초청받아시를짓고금품도제공받다
6.양양을떠나개경으로돌아가다
7.강좌칠현이모임을갖고시를짓다
8.과거를보아낙방하다
9.장단인근에초당을짓고거주하다
10.기지의사망및시문집의편찬

|부록_임춘의주요글모음|
1.일제기_도쿄와관련된글
2.이학사상서_감지의아버지에게드린글
3.소림사중수기_사찰중수에관한글
4.화안기_기러기그림에대한글
5.이추밀제문_사위를대신하여지은글
6.묘광사16성중회상기_탱화에관한글
7.전별의시_황보약수가중원서기로떠날때지은시
8.「악장6편」에대한의견_황보약수에게보낸글
9.장원급제축하편지_이인로에게보낸글
10.족암기_암자에관한글
11.이유량제문_이담지대신지은글
12.국순전_술을의인화한소설
13.영사에게보낸답장_명유에관한의견
14.공방전_엽전을의인화한소설

임춘연표
임춘과관련된인물들
참고한책과논문

출판사 서평

최초의가전체소설「공방전」「국순전」을지은천재시인임춘의삶과문학

이책은최초의가전체소설인「공방전」「국순전」을지은임춘의일대기를평전형식으로재구성한것이다.
임춘은고려시대문인으로무신정권의탄압에의해집안이송두리째와해되었을뿐만아니라당대에천재시인이라불릴정도로뛰어난능력을지녔음에도마음껏펼쳐볼기회조차갖지못했다.그는30세의젊은나이에요절하기까지인생의태반을숨어지내야할정도로비운의삶을살았다.
그런그에게문학은짧은삶이나마지탱할수있게해준생명줄이나다름없었다.초야에묻혀이름을바꾸고목숨을연명하는가난한생활속에서도천편의시와『성리종회』,『삼재상수』,『고승전』등의책을집필했고,국문학사에길이남을가전체소설「공방전」「국순전」을지었다.실로문학과삶에대한의지를느끼게한다.
저자는이러한임춘의삶과문학을역사와고전문학에대한해박한지식을바탕으로생생하게재구성해내고있다.소설처럼전개되는그의일대기사이사이에현존하는그의시편들을배치해넣어삶에대한문학적분투를보여줄뿐아니라굴곡진삶을극복해가는치열한정신적사투를실감할수있다.
무신의난의최대피해자인임춘.그럼에도문학정신만은날선칼날로도베어낼수없다는것을보여준산증인이자,문학의위대함을온몸으로증명한천재시인임춘.그의삶과문학은오늘을사는우리에게삶과문학,정신의진정한의미를일깨워주고있다.

■임춘의삶과문학
임춘(林椿1154∼1184)은보주(현재의예천)사람으로초명은대년이고기지로개명했다.아버지광비가과거급제후요직을거치고우부승선이되어임춘은어릴때유복한생활을했다.7살때육갑을외웠고경서를읽고시를짓는등시문에천재적인소질이있었고한림학사였던큰아버지광비의지도를받았다.
임춘은17살때태자시종으로낙점되었다.그때정중부등무신이반란을일으켜임금을시종한아버지광비등을다수죽인후임금과태자를폐하고정권을장악했다.임춘은김명식군관의도움으로가까스로피신한후약4년을개경에서숨어서책만읽었다.김보당의난이일어난후문관에대한핍박이심해지자이름을‘기지’로바꾸고본관도서하(중국기하의서쪽,조상인임방의고향)라고말하면서멀리양양(지금의예천)에가서숨었다.
한편김명식은이의방의수하가되어서임춘의가족을돌보았다.이고가무뢰배와결탁하여반란하려하자김명식이채원을도와이고를죽였고,채원이다시반란하려하자김명식이죽여이의방의권세가커졌다.그후이의방이자신의딸을태자의비로삼는등권력의핵심으로떠오르자조위총이서경에서난을일으켰다.이의방이서경토벌군을이끌고출전하였다가패퇴하자정중부의군대가불시에이의방을제거하고그의수하도다수죽였다.김명식은난을피해임춘의어머니집에와서숨었다가발각되어살해되었다.그때임춘의어머니는광비의아내임도밝혀져두가지죄목으로병사들에게살해되었다.
임춘은부모를잃은후책을읽고글을쓰는데에전념하였다.한편무신정권은문관들을뽑는과거까지도관여하는등문관들에대한차별이심하였고,젊은이들은시문을멀리하고무관이되려는사회풍조가생겼다.임춘은이렇게문풍이쇠하는것을개탄하며문풍을일으키자고여러친구들을격려하였다.무신정권의탄압이느슨해진틈을타개경으로돌아와황보약수등과시를짓는모임인「죽림고회」를만들었다.
죽림고회회원들(강좌칠현)중6인은과거에급제했고,춘만급제하지못했는데,실제로시와문장에서는자타가공인할정도로임춘이훌륭했다.임춘은고문을숭상하고서곤체를발전시켜고사를많이인용하는방법등을전파했다.이미수(이인로)는불교집안에서,이담지는도가집안에서태어났으며,조역락은채식주의자였고황보약수는음악에대해저술하는등다양한특색의회원들이모였으므로죽림고회의토론과비판이매우활발했다.임춘은회원들과함께여러곳에다니면서시를짓고문장에대해토론했으며적극적으로친구들의시문에대해비판하고가르쳐주어발전시켜나갔다.그결과무신정권아래에서문단이쇠퇴하는것을막고문풍을일으키는데크게기여하였다.
나중에임춘은장단옆에초당을짓고저술활동을하다가고질병이도져서30세의젊은나이로요절했다.임춘은죽기전에「공방전」과「국순전」등우리나라최초의가전체소설을쓰고많은시와문장을남겼다.임춘이죽은후이미수(이인로)가그의작품들을모아「서하선생집」을엮었다.그러나혹시후환이생길까염려하여이를발간하지못하였는데이인로가죽은후당시집권자인최우가이를가져오게하여『서하집』을출판하였다.
「서하임공행장」에는임춘이『성리종회』와『삼재상수』를저술했다고기재되었고,임춘의편지에『고승전』을집필중이라는글이있으나모두실전되었다.다만그중『성리종회』는고종때정해상이읽고연구했다고말했으므로그때(1865년)까지는전래된것으로보인다.임춘은“천재문인”이고“당세의명유(名儒)”라고고려사에기술되어있다.또한장초를비롯한초서를잘써서“초성(草聖)이라불렸는데,실전되어현재는그글씨를찾아볼수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