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신극의 기치 극예술연구회 1 (극예술연구회의 정기 공연과 무대디자인(1931년 6월~1934년 12월) | 양장본 Hardcover)

조선 신극의 기치 극예술연구회 1 (극예술연구회의 정기 공연과 무대디자인(1931년 6월~1934년 12월)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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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극예술연구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단체이다. 우리는 사실 극예술연구회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많이 양보해도 그저 유치진과 그의 희곡을 알고, 공연한 명단과 공연을 하려 했던 이들의 각오를 알 뿐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지만 이러한 피상적인 면만으로는 극예술연구회의 진정한 가치나 역사를 탐색할 수 없다.
극예술연구회의 출발은 다소 우발적이었다. 그 시작은 홍해성과 관련이 있다. 축지소극장에서 배우로 활동하다 귀국한 홍해성을 돕기 위한 움직임이 여러 차례 진행된 바 있었는데, 1931년에는 〈동아일보〉 기자 서항석을 중심으로 이러한 움직임이 재개되었다. 서항석은 홍해성의 생계 곤란을 해결할 목적으로, 홍해성이 소장하고 있는 연극과 영화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연극영화전람회’를 기획했다. 이 기획을 추진하기 위해 임시 단체인 ‘극영동호회’를 급조해야 했는데, 이 극영동호회가 극예술연구회의 모태이다.
1931년 7월 8일 창립 선언을 제창한 극예술연구회는 최초에는 연구 단체에 가까웠다. 발기인 겸 주요 회원은 12명으로, 서항석과 유치진을 비롯하여 윤백남과 홍해성의 연극계 원로를 포함하고 있으며, 김진섭, 이하윤, 이헌구, 장기제, 정인섭, 조희순, 최정우, 함대훈이 가입되어 있었다. 극예술연구회 최초 회원은 외국 문학 전공자들이 대다수였고 모두 일본에서 유학한 경험을 지니고 있었기에 ‘해외문학파’로 혼용되기도 했다.
1931년 극예술연구회는 강좌를 개최하거나 강연을 시행하거나 연구생을 모집하는 활동에 주력했고, 단체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단체의 본부(회관)를 마련하는 사업에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비평가 그룹으로 활동하며 당대 조선 연극의 흐름을 개괄하고 개별 작품을 품평하는 활동도 시작했다. 특히 대중극단의 공연을 참관하고 그 장단점을 분석하는 비평 활동에 주력했는데, 이러한 비평 행위는 대중극 중심의 조선 연극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제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론 확충이나 연극 교유 혹은 비평 활동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연극 분야가 지닌 본질적인 특성이기도 했다. 타자의 연극을 감상하거나 관객들에게 연극에 대한 이론을 알리는 작업 못지않게 자신들이 직접 공연을 수행하고 제반 작업에 뛰어드는 경험을 희구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직접 공연을 시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했다. 그 계기가 실험무대의 창단이었다.
저자

김남석

1973년서울에서출생하여1992년고려대학교국어국문학과에입학하였고그뒤동대학원국어국문학과에서수학했다.1999년『중앙일보』신춘문예에문학평론「여자들이스러지는자리-윤대녕론」이당선되어문학평론가가되었고,대학원에서는드라마(연극)를전공하여2000년「오태석희곡의개방성연구」로석사학위를받았으며,2003년「1960~70년대문예영화시나리오의영상미학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2003년『조선일보』에「숨어있는희망을기다리는두사내」를발표하면서본격적으로연극평론활동을시작했고,2007년에『동아일보』신춘문예에영화평론「경박한관객들-홍상수영화를대하는관객의시선들」이당선되어영화평론가가되었다.
연극관련연구서로『조선의여배우들』(2006년),『조선의대중극단들』(2010년),『조선의대중극단과공연미학』(2013년),『전위무대의공연사와공연미학』(2013년),『부두극단의공연사와공연미학』(2014년),『연변의연극과조선족극작가들-역사적상흔과그기록으로서희곡문학』(2018년),『조선의지역극장』(2018년),『조선대중극의용광로동양극장(1~2)』(2018년),『조선연극과무대미술(Ⅰ~Ⅱ)』(2021년)을저술한바있다.1930년대를근간으로한한국근대극의풍경을탐구하려는마음을지금까지잃지않고자노력하고있으며,이책또한그러한마음의연장선상에서집필하고자한다.넓은연극의길에서길을잃지않았으면하는마음가득하다.

목차

0.극예술연구회의성립과전사(前史)
0.1.극영동호회의구축과연극영화전람회
0.2.서항석의사고(社告)와이후의동향

1.‘실험무대’의출범과공연활동의시작

2.실험무대제1회작품〈검찰관〉의공연정경과공연상황
2.1.〈검찰관〉의출연진과공연개요
2.2.〈검찰관〉의무대디자인과특성
2.3.극예술연구회의〈검찰관〉무대디자인의실체와기원
2.4.「극예술」창간호의무대사진과〈검찰관〉
2.5.극예술연구회〈검찰관〉의무대스케치
2.6.〈검찰관〉의연기를통해드러난극예술연구회연기
2.7.〈검찰관〉의대본과일본에서의공연
2.8.〈검찰관〉에대한평가와해석
2.9.극예술연구회허실과척도로서〈검찰관〉
2.10.〈검찰관〉공연비용의충당과정산과정

3.실험무대제2회시연:1일3작품공연체제로의회귀와이유
3.1.제2회공연작선정요인과다작품공연체제의이점
3.1.1.공연방식의변화와관극조건의충족
3.1.2.촉박한공연일정과신속한준비가능성
3.1.3.공연자금의안정적확보와내부요구의효율적수용
3.1.4.다작품공연체제로의회귀와의미
3.2.무난한작품으로서〈관대한애인〉과‘아일랜드(극)효과’의친근성
3.2.1.다작품공연체제와〈관대한애인〉의공연위치
3.2.2.종교적갈등의원천수용과원작의충실한번역공연
3.2.3.〈관대한애인〉의사회문화적배경과아일랜드극효과
3.2.4.〈관대한애인〉의표층적해석과인정극효과
3.2.5.라디오드라마〈관대한애인〉과유치진의번안제작이유
3.3.〈옥문〉의공연상황과해당공연의의의
3.3.1.그레고리부인등장과애란연극소개과정:1930년대조선에서의소개내용
3.3.2.〈옥문〉대본의지면게재와임박한제3회정기공연과의상관성
3.3.3.〈옥문〉의도입부상황과관련정보의공유방식
3.3.4.도피를꿈꾸는여인들과죽음을무심히통보하는옥졸
3.3.5.적극적인항변과그의미의확산
3.3.6.〈옥문〉의공연사진과그의미
3.4.〈해전〉공연독특함과무대디자인의개성

4.제3회정기공연과창작극〈토막〉의공연
4.1.실험무대의발전적해체와직접공연수행방식도입
4.1.1.제3회공연정황과극예술연구회의홍보효과
4.1.2.〈토막〉의공연배경과유치진의활동상황
4.1.3.〈토막〉의창작과유치진의입장
4.2.희곡〈토막〉의무대와디자인
4.2.1.희곡〈토막〉의무대배치
4.2.2.1930년대‘빈민촌’의실상과‘토막’형상의동질성
4.2.3.〈토막〉공연의무대사진과투영된의미:가난의풍경과밀폐된공간감
4.2.4.〈토막〉의무대형상화와실질적의미
4.3.〈우정〉의무대디자인과대본분석
4.3.1.〈우정〉의개요와공연의이중성
4.3.3.유치진의최초연출작으로서〈우정〉
4.3.4.〈우정〉의무대공연과당시상황
4.3.5.〈우정〉의작품선택과제작진용의실패요인
4.4.〈토막〉과〈옥문〉의공유점과차이점:두작품의교섭양상
4.4.1.〈토막〉과〈옥문〉의유사성과공유점
4.4.2.〈옥문〉과〈토막〉의공통점비교:반복적모티프의출현과의미
4.4.3.〈옥문〉의가등과〈토막〉의등불:시대의어둠을증언하는불빛
4.4.4.〈옥문〉의소문과〈토막〉의신문:수감자의사정을전하는방식
4.4.5.〈옥문〉의서신과〈토막〉의소포:가족의죽음을통보하는소식
4.4.6.〈옥문〉의외침과〈토막〉의다짐:아들의죽음에분노하는가족
4.4.7.〈옥문〉의간수와〈토막〉의동장:권력의대리인으로변한인물
4.4.8.〈옥문〉의유품과〈토막〉의백골:식민지희생양의연극적형상
4.4.9.〈옥문〉과〈토막〉에나타난시대의희생양과어둠을밝히는등불

5.극예술연구회제4회공연작〈무기와인간〉과무대디자인
5.1.제4회공연작〈무기와인간〉의공연상황과작품개요
5.2.〈무기와인간〉의공연사진과2막의무대디자인
5.3.〈무기와인간〉의연습사진(3막)과무대사진
5.4.무대사진을통해살펴본〈무기와인간〉3막의정경
5.5.〈무기와인간〉무대장치의한계와극예술연구회공연의문제점
5.6.〈무기와인간〉의선택이유와버나드쇼의작품
5.7.극예술연구회제4회공연의의미
5.8.〈무기와인간〉의대중성과극예술연구회의고민
5.9.제4회추천작〈제방을넘은곳〉과공연무산과정
5.9.1.이서향의이력과연극활동
5.9.2.〈제방을넘은곳〉의선정이유와몽타주효과의독창성
5.9.3.〈제방을넘은곳〉의무대분할과평행구조(parallelediting)
5.9.4.〈제방을넘은곳〉의공연불가사유와도시빈민공간의묘사
5.9.5.원산도시의개발불균형과‘제방’양쪽의다른세상
5.9.6.1920년대원산파업과〈제방을넘은곳〉의노동문제
5.9.7.이서향의‘문학적’지향과‘자연’극복의창작의지

6.극예술연구회제5회정기공연과1막공연작들의성향
6.1.1933년11월제5회정기공연개요와작품선택기준
6.1.1.제5회정기공연의경과와관련광고
6.1.2.제5회정기공연의공연상황과공연작선택배경
6.2.〈바보〉의공연상황과작품해설
6.3.〈베니스의상인〉의공연상황과무대디자인
6.3.1.〈베니스의상인(법정장면)〉과인물배치
6.3.2.〈베니스의상인〉공연사진과위기감고조의연기
6.3.3.조선연극의흐름과동시대비평으로바라본〈베니스의상인〉
6.3.4.라디오드라마〈베니스의상인〉제작과송출현황
6.4.〈버드나무선동리의풍경〉과무대디자인
6.4.1.희곡분재와전체무대디자인
6.4.2.〈버드나무선동리의풍경〉의무대디자인과신극무대디자인의유사성
6.4.3.도입부의무대설명
6.4.4.광선(조명)의사용과무대효과
6.4.5.무대미술가황토수
6.5.〈버드나무선동리의풍경〉의출연진과연기
6.6.제5회공연을통해본극예술연구회의홍보전략
6.7.극예술연구회의창작극연구:작가적전언의도출방식

7.극예술연구회의제6회공연작준비와대표작〈인형의가〉
7.1.극예술연구회의제6회공연준비와변모하는극단내상황
7.1.1.제6회공연준비과정에서나타난검열과내분
7.1.2.제6회예정작윤백남사극과1930년대전반기야담의성향
7.1.3.방송극〈부활〉과극예술연구회의의도
7.1.4.연출가유치진의부상과도일
7.2.제6회공연작〈인형의가〉의공연정황과미학적특색
7.2.1.〈인형의가〉의공연작선정과당대인식
7.2.2.〈인형의가〉의연극적해석과연출자의역할(공과)
7.2.3.극예술연구회〈인형의가〉의대본판본재구
7.2.4.〈인형의가〉의무대디자인과특색
7.2.5.무대사진을통해본〈인형의가〉의편린
7.3.1934년5월레코드취입과1934년7월3주년기념행사
7.3.1.두편의라디오드라마제작과송출
7.3.2.레코드취입과960원의소득
7.3.3.각종강연과기념행사를통한차별화

8.삼남수해구제공연〈홍발〉과제7회공연〈앵화원〉
8.1.1934년8월시점에서극예술연구회활동
8.2.극예술연구회〈홍발〉의공연과진행과정
8.2.1.〈홍발〉공연배경과관련사항
8.2.2.〈홍발〉공연과공연진행과정
8.2.3.〈홍발〉작품과공연선택이유
8.2.4.〈홍발〉의무대디자인과그개요
8.3.제7회정기공연작〈앵화원〉:〈앵화원〉의공연과정과작품개요
8.4.〈앵화원〉의연출방식과무대디자인
8.4.1.2막의연출방향과그내포적의미
8.4.2.〈앵화원〉2막무대디자인과사례차이에따른특색
8.4.3.『조선일보』수록〈앵화원〉무대디자인의특성과차이
8.5.〈앵화원〉공연의의의와서구대작공연의한계

9.극예술연구회제1기공연전략과극단운영
9.1.극예술연구회의출현과실험무대의출발
9.2.유치진의부상과창작극의부각
9.3.홍해성의복귀와번역극의복권
9.4.극예술연구회제1기공연작품과의미
9.5.극예술연구회의설립원인과연극적배경

극예술연구회(1기)공연과활동연보(1931년6월~1934년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