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와세대를잇는이야기가된시
“이시를누가썼어요?”
30년전,초등학교2학년아이가<국어>교과서에실린시를보고선생님께물었다.
“신형건시인의시란다!”
아이는가슴속한갈피에<벙어리장갑>이라는시를고이간직한채,자라고또자라서어른이되었다.
30년뒤,이제엄마가된그아이에게초등학교1학년딸이<국어>교과서를들고와말했다.
“엄마,이시좀읽어보세요.별처럼마음이<반짝반짝>해져요.”
“아,신형건시인의시로구나!”
이렇게한시인의시는엄마와딸이함께읽으며세대와세대를잇는또하나의이야기가된다.신형건시인의시들은초등학교와중학교<국어>교과서에10편이연달아실리며<벙어리장갑>-<그림자>-<거인들이사는나라>-<시간여행>-<발톱>-<넌바보다>-<입김>-<손을기다리는건>-<공튀는소리>-<반짝반짝>이렇게,사람들의마음과마음을잇는별자리가되었다.
너는
별이되고싶니?
너혼자
반짝빛나고싶니?
너는
별자리가되고싶니?
여럿이함께
반짝반짝반짝반짝
빛나고싶니?
-신형건시<반짝반짝>
<넌바보다>,세상모든이들의이야기가되다
좋은시들은씨앗처럼세상에뿌려지고별처럼사람들마음속에서반짝인다.그것이바로,시가완성하는마지막이야기이다.
어느날‘의사가주인공이아닌’병원드라마에,<시를잊은그대에게>라는감성적인타이틀의TV드라마에,순진한사랑고백처럼한편의시가흐른다.<넌바보다>라는다소엉뚱한제목의시!
또어느날<아는형님>이라는예능프로에입시학원일타강사가출연해시한편을낭송한다.그러곤‘시공부’겸‘시놀이’를한번해보자고제안한다.단숨에교실은왁자지껄해지고,모두모두수다대장에놀기대장인<아는형님>의‘커다란아이들’은각자시<넌바보다>를유쾌하게(때로는진지하게)패러디하며한바탕시놀이판을벌인다.
초등학교와중학교<국어>교과서에10여년간연달아실리며모든아이들이읊조리던시<넌바보다>는이렇게,세상모든이들의이야기가되었다.순수하고도유쾌한이야기가되었다.
씹던껌을아무데나퉤,뱉지못하고
종이에싸서쓰레기통으로달려가는
너는참바보다.
개구멍으로쏙빠져나가면금방일것을
비잉돌아교문으로다니는
너는참바보다.
얼굴에검댕칠을한연탄장수아저씨한테
쓸데없이꾸벅,인사하는
너는참바보다.
호랑이선생님이전근가신다고
아무도흘리지않는눈물을혼자찔끔거리는
너는참바보다.
그까짓게뭐그리대단하다고
민들레앞에쪼그리고앉아한참바라보는
너는참바보다.
내가아무리거짓으로허풍을떨어도
눈을동그랗게뜨고머리를끄덕여주는
너는참바보다.
바보라고불러도화내지않고
씨익웃어버리고마는너는
정말정말바보다.
-그럼난뭐냐?
그런네가좋아서그림자처럼
네뒤를졸졸따라다니는
나는?
-신형건시<넌바보다>
또다시시작되는이야기:함께느끼는경이로운순간들
바로그시인,신형건시인이40년간써온시들중에서가장반짝이는시41편을골라모은시집<넌바보다>가출간되었다.아침햇살에놀란아이처럼호기심어린눈으로포착한세상의경이들이시집한가득담겨순수,생기,사랑의빛깔로반짝인다.때때로‘다시아이가되고싶은어른들’에게주는시들이다.
오래전에쓴시들을꺼내어읽다보면새삼새롭고낯설게느껴질때가있다.이시들을쓸때에나는누군가에게말을걸고싶었던것일까.무언가꼭하고싶은이야기가있었던것일까.아니면세상을보고느낀경이에대해혼잣말을했던것일까.어쨌든그말들은시속화자의목소리로남아누군가의입에서가만가만읊조려지길여전히기다리고있는것만같다.
시를써온지40주년이되고보니그동안세상에내보인시들이여기저기흩어져와글와글하다.그중나름대로또렷한목소리들을골라시선집을엮는다.국어교과서에실려누구나한번쯤읽었을시들을비롯하여웹이나각종미디어에자주인용된시들을위주로골랐다.독자들의호응을얻은시를다시골라엮는것은앞으로좀더많이읽히기를기대하기때문이리라.
세상에대한호기심이아직남아있기에나는시를계속쓸수있다.호기심어린눈으로자연과사물을관찰하는즐거움은때때로내게뜻밖의경이감을선물한다.무엇과도바꿀수없는선물이다.그경이로운순간들을누군가와함께느끼고싶다.
-신형건,<시인의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