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주의를 해체하다

해체주의를 해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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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박정진의 『해체주의를 해체하다』는 〈해체주의와 평론적 철학, 그리고 표절〉, 〈몸은 육체가 아닌 세계 그 자체〉, 〈데리다의 문자학(grammatology)〉 등에 대한 기초적이고 전반적인 내용이 수록된 책이다.
저자

박정진

문화인류학박사

대구에서 태어나(50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를 수료(71년)하고
동대학교 문리대 국문과로 옮겨 졸업(74년)한 뒤
영남대학교 대학원 문화인류학과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음.
대학졸업 후 (주)문화방송경향신문에 입사하여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세계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 초대평화연구소장을 역임했다.
가정연합 세계본부 THINK TANK 정책연구원 소장(2021∼2023년)을 역임했다.
현재 세계평화연구원 원장 재직.
세계일보에 개인칼럼 〈청심청담〉을 집필(2013년 11월∼2019년 12월),
한국언론인협회(회장 성대석)로부터 '올해의 칼럼상’(2020년 3월)을 수상했다.
‘인류학토크 박정진’(마로니에 방송 유튜브 131회)을 방영했다.
한편 시전문지 월간 『현대시』 신인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1992년)했다. 〈해원상생, 해원상생〉, 〈시를 파는 가게〉, 〈대모산〉, 〈청계천〉, 〈먼저, 아니 빛깔, 아니 허공〉, 〈독도〉, 〈한강교향시〉, 〈거문도〉, 〈타향에서〉 등 13권의 시집을 냈다. 현대시회 2대회장(1977년), 서울문예상(2006년, 강남문학회)을 수상했다.
‘인문학적 글쓰기’에 매진하여 〈한국문화와 예술인류학〉(1990, 미래문화사), 〈굿으로 보는 백남준 비디오아트 읽기〉, 〈단군신화에 대한 신연구〉(2010, 한국학술정보), 〈철학의 선물, 선물의 철학〉, 〈소리철학, 포노로지〉(2012, 소나무), 〈니체, 동양에서 완성되다〉(2015, 소나무), 〈위대한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2017, 살림), 〈네오샤머니즘〉(2018, 살림), 〈신체적 존재론〉(2020, 살림), 〈21세기 詩經〉(2023, 신세림), 〈한글로 철학하기〉(2024, 신세림)등 100여권을 저술했다.
2003년 5월 13일 서울 강남구 대모산에 자작시 〈대모산〉 시탑을 세움.
2008년 9월 9일 울릉도 독도박물관 경내에 자작시 〈독도〉 시비를 세움.
2019년 4월 4일 경기도 연천군 ‘종자와 시인’박물관 야외공원에 자작시 〈타향에서〉 시비를 세움.

목차

01 해체주의를 해체하다
1. 들어가는 말: 해체, 존재에서 생성으로
2. 해체주의는 음양론의 서양철학적 변형
3. 존재(Being)와 생성(becoming), 그리고 변증법
4. 신(神)과 존재(Being)의 역사적 의미변천
5. 자연적 존재, 제도적 존재자, 그리고 심물존재
6. 종(種)의 관점에서 본 가부장제-국가사회
7. 니체, 데리다, 들뢰즈에 대한 소회(所懷)
8. 맺는말: 모든 문화(文化)는 억압의 강도차이


02 해체주의와 평론적 철학, 그리고 표절
1. 현상학: 신(God), 정신(Geist), 유령(Ghost)
2. 현상학을 벗어나는 신체적 존재론
3. 베르그송의 시간은 의식의 생성
4.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문화해체주의
5. 소리에서 포노로지(Phonology)의 탄생

03 몸은 육체가 아닌 세계 그 자체
1. 가브리엘 마르셀과 메를로-퐁티의 ‘몸’철학
2. 동양의 심물(心物)철학과 마음ㆍ몸 철학
3. 새로운 정신으로서의 신체적 존재론
4. 살, 삶, 사람, 사랑, 샤르만, 샤먼, 슈라마나

04 데리다의 문자학(grammatology)
1. 데리다의 문자학과 박정진의 소리철학(phonology)
2. 해체적 텍스트읽기의 산종(散種)과 비생산성

05 데리다의 해체주의를 해체하다
1. 서양철학의 종언의 징조로서 해체철학
2.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텍스트론으로 변조한 데리다
3. 시각-언어중심에서 청각-상징중심으로의 반전
4. 보충대리(補充代理), 대리대신교대(代理代身交代)
5. 존재론의 완성으로서의 일반성의 철학

06 존재론의 미래로서의 네오샤머니즘
1. 인류학적 철학, 철학인류학의 태도
2. 인간인식의 이원구조와 철학의 이원대립
3. 동서철학・종교의 상호소통과 미래
4. 존재론의 미래로서의 네오샤머니즘
5. 천부경과 하이데거의 존재론
6. 불확실성에 대한 철학인류학적 회고와 전망

07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서양철학의 한계
1. 서양철학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
2. 서양문명의 절대성에 대한 반성
3. 서양철학의 ‘초월-추상-기계’를 넘어서야
4. 하이데거의 사방세계와 천부경
5. 물신숭배에서 신물숭배로
6. 평화에 대한 현상학과 존재론의 역동성
7. 철학의 미래와 네오샤머니즘
8. 서양철학의 종언적 징후들

08 음성언어, 문자언어, 기계언어, 기계인간
1. 말(언어)이란 무엇인가
2. 인간의 특징
3. 말과 도구, 인공지능(AI)
4. 인간과 AI·챗GPT의 차이점
5. 휴머노이드와 공존해야 하는 인간
6. 인공지능도 인간이다
7. 미래인간은 자신만의 철학을 확립해야 한다
8. 종교적 인간, 과학적 인간, 철학적 인간
9. 뇌(腦)공룡과 인류멸망의 법칙
10. 천지인사상으로 본 인류멸망의 지연(遲延)
11. 새로운 평화철학의 필요성
12. AI시대를 대비한 인류학의 발전과 응용
13. AI시대를 대비한 인간과 AI의 윤리규정

출판사 서평

해체주의는 서양철학적 문법의 반복에 불과하다


『해체주의를 해체하다』(신세림)라는 책은 서양의 소위 ‘해체주의철학’이 스스로 표방하는 것처럼 서양철학을 전면적으로 해체한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은 여전히 서양철학의 문법인 동일성과 변증법에 갇혀 있는 철학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더욱이 해체주의철학은 동양의 음양사상과 불교사상을 서양철학의 동일성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거나 반증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규명하고 있는 책이다.
해체주의철학의 기수인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grammatology)는 서양철학의 이성중심주의가 ‘빛’과 ‘소리’에서 비롯된 ‘말소리중심주의(logophonocentrism)’에서 비롯된 것처럼 대전제를 하는 가운데 형성되었다. 그렇지만 빛과 소리가 어떻게 이성중심주의의 원인을 뒤집어써야 한다는 말인가. 이것은 빛과 소리를 이성의 원천으로 보는 서양문명의 자기문법 속의 주장일 따름이다. 인류의 다른 문화권에도 빛과 소리가 있지만 그들은 이성주의를 주장하지 않았다.
서양문명에서도 중세에는 빛이 신의 계시(revelation)로 해석되었지만, 근대에 들어 계몽(enlightenment, illumination)이 되었다. 빛이 신의 계시와 계몽적 이성의 원천으로 동시에 해석되는 것은 이미 자기모순이다. 신의 계시는 신비를 인정하는 것인데 반해 이성은 합리적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근대정신은 과학정신을 말하는 것이고, 과학은 세계를 기계적인 작동의 세계로 이해하거나 환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기계적인 세계는 기계언어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저자인 박정진 박사(철학인류학)는 “빛과 소리는 자연현상으로서 인간이 외부사물을 감각하게 하는 감각기관의 감각소여의 일부일 뿐이다. 빛과 소리는 이성주의의 원인이 아니라 굳이 말하자면 이성주의를 은유하고 있을 뿐이다. 빛과 소리는 인간으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게 하고, 귀로 듣고 외부와 공명하는 계기를 제공할 뿐이고, 그것 자체가 이성은 아닌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성주의는 인간의 정신이 사물존재에 스스로를 투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투사한 것을 돌려받은 것이 이성이라는 것이다. 언어가 없고, 문장이 없다면 이성은 성립되지 않는다. 모든 문장이 이성적이지는 않지만 문장이 없다면 이성이 성립되지 않는다. 문장을 구성하려면 단어와 품사가 필요하고, 종국에는 구문이 성립되어야 한다. 이성 혹은 법칙이란 결국 구문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이성주의는 결국 문장과 글쓰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쓰지 않으면 이성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어 말한다. “이성이 마치 인간의 머릿속에 정보가 저장되어 있으면 성립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문장으로 새롭게 구성되지 않으면 이성이 아니다. 머릿속의 이성도 실은 문장으로 구성되고 기억된 것을 은연중에 이성이라고 한다. 기억되지 않으면 또한 이성이 아니다. 이성은 크게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 물질조차도 기억이라고 하지 않는가.”
쓰여 지고 기억된 것을 이성이라고 한다면 빛과 소리는 이성이 아니다. 데리다가 그의 ‘말소리중심주의’에서 빛과 소리가 이성이라고 한 것은 되레 기독교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빛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유되고, 자연의 소리가 말씀으로 상징된 것이 기독교성경이다. 말소리중심주의를 해체한다고 하는 것이 데리다의 기발하고 기상천외한 출발이지만 그의 문자학(Grammatology)으로 서구기독교와 서구철학사의 이성중심주의를 해체한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자가당착이다.
박정진 박사는 서양의 해체주의철학은 동양의 음양론을 서양철학적 문법에서 재해석한 것이라고 말한다. “음양론은 아시다시피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음으로써 음양생성 혹은 음양상보를 이루는 철학이다.” 온전한 양이나 온전한 음이 아닌, 이원상보적인 음양론은 서양철학에서 볼 때는 이중성 혹은 틈(공백)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일성을 대전제로 하는 서양철학에서 볼 때는 이점이 바로 해체의 구실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중성은 실은 이분법이 전제된 상태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후차적으로 발생하는 것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구성이 있기에 해체가 일어나는 것과 같다.
이 책은 데리다를 중심으로 후기근대에 전개되고 있는 해체주의를 정면에서 반박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행된 본격적인 철학서이다. 제 1장은 총론 격으로 해체주의 전체를 큰 그림으로 비판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2장은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결국 철학평론에 속하는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마치 문학평론가가 자신의 몇 가지 개념이나 견해를 가지고 시나 소설을 평론하듯이 남의 철학을 평하면서 스스로 철학적 글쓰기를 하고 있음을 자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해체주의는 평론적 철학이다.
문학에서 평론가는 직접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평론가의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리다는 철학평론을 하면서 철학자인 체 행세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데리다의 평론적 철학은 남의 철학에 이러쿵저러쿵 사족을 붙이면서 은연중에 자신이 그들을 능가하는 철학자임을 뽐내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데리다의 철학적 글쓰기에서 자신의 오리지낼리티는 하나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표절의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프랑스의 후기근대철학은 다분히 문학적 철학, 혹은 철학적 문학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철학이 문학이 되는 것은, 심하게는 문학으로 환원되는 것은 철학을 말장난, 언어놀이로 그치게 할 위험이 크다. 이런 위험은 특히 철학을 문학평론쯤으로 생각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프랑스철학은 문학철학, 혹은 평론가철학의 함정에 빠져 있다. 해체주의가 프랑스에게 크게 유행하는 것도 프랑스의 문화풍토 탓이다.
프랑스철학의 특징을 합리주의로 볼 때 반이성주의의 움직임이 활발한 것은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해체주의는 철학의 시공간을 문학의 시공간, 즉 문학적 텍스트로 옮겨왔다고 보면 무리가 없다. 해체주의가 저자의 쓰기보다는 독자의 읽기와 해석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철학의 내용이 철학자의 주장과 달리 독자의 해석에 달렸다고 하는 것은 순전히 문학적 발상이다. 서양철학사로 볼 때 해체주의철학은 구성주의철학의 이면(裏面), 그림자일 뿐이다. 해체주의철학은 구성주의철학과 구성주의철학 사이의 과도기의 철학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제 3장은 신체야말로 존재론의 핵심임을 선언하는 장이다. 도리어 신체야말로 ‘새로운 정신’임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이성의 뿌리가 욕망임을 선언하는 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으며, 인간을 이성적 존재보다는 욕망적 존재, 신체적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때의 신체는 정신의 대상으로 격하되는 육체가 아니라 유기체의 독립적인 존재로서 신체를 부각하고 있다. 신체야말로 존재의 진면목이라는 뜻이다.
제 4장, 5장은 데리다의 해체주의를 좀 더 심도 있게 비판하고 있다. 해체주의가 이성주의의 결정론을 해체함으로써 새로운 철학의 장을 여는 것 같지만 실은 그것은 제스처에 불과함을 말하고 있다. 차이와 연장을 주장하는 해체주의는 이성주의의 반대편에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차연(差延)의 변증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서양철학은 결코 동일성의 추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제 6장은 ‘새로운 존재론으로서 네오샤머니즘’을 주장하고 있다. 네오샤머니즘은 물론 과학시대를 거친 뒤에 새롭게 융합된 샤머니즘이다. 저자는 인류문명의 자연과의 동행과 홍익자연(弘益自然)의 입장을 전개하고 공동존재로서의 자연을 부각하면서 아메리카 인디언의 세계관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제 7장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대한 비판을 통해 현상학적인 차원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서양철학의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제 8장은 인공지능인 AI와 더불어 살아가야할 인류의 미래와 AI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말하자면 AI는 핵폭탄의 결합은 인류멸종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시각-언어의 연합인 서양문명은 생성변화하는 자연에서 ‘동일성=법칙=기계’를 추구하는 문명이다. 자연과학은 생성변화하는 자연을 동일성으로 계산하려고 한다. 서양문명은 소리조차도 동일성으로 간주하고자 한다. 예컨대 공명인 에코(echo)는 ‘같은 것의 다름’(difference as same)이다. 내가 듣는 나의 목소리(에코)는 ‘같은 것’의 ‘다름’인데 이때의 ‘같은 것’을 ‘동일성(same as identity)’으로 간주하는 것이 서양의 동일성의 철학이다. 동일성은 실은 가상에서 시작한 환상에 불과하다. 자연과학조차도 자연과학적 환상인 것이다.
후기근대철학자들, 즉 차이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차이성은 그들이 부인하겠지만 ‘동일성의 차이성’인 것이다. 동양은 닮음을 ‘다르고 같다’(same as difference)고 말한다. 서양은 유사(類似)를 ‘같고 다르다’고 말하면서 같음에서 동일성(똑같음)을 추구한다. 서양문명은 ‘이다’와 ‘있다’를 한 단어, 즉 ‘be(sein, être)으로 말한다. 이에 비해 한국과 중국, 일본은 ‘있다(有, ある)’와 ‘이다(是, である)’로 다른 말로 표현한다. 따라서 서양은 쉽게 ‘있다’에서 ‘이다’를 발견하려고 한다. ‘이다’가 바로 동일성인 것이다. 서양문명이 근대과학문명에서 앞선 것은 언어의 탓이다. 서양 알파벳은 동일성과 추상기계에 이르기에 쉽다.
해체주의가 일어난 유럽의 전후사정을 바라보면 독일의 철학적 글쓰기는 프랑스에서 문학적 글쓰기로 전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한가운데에 있는 인물이 바로 니체이다. 니체는 독일인이면서도 프랑스적 사유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니체의 잠언적 글쓰기와 시적 문체는 바로 프랑스의 문학적 글쓰기의 전범이 되었다. 문학적 글쓰기는 해체적 글쓰기라고 부를 수 있다. 니체가 칸트를, 데리다가 하이데거를, 라캉이 프로이트를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계승하는 것은 이들 사이에 연속과 불연속, 반대와 확장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해체주의는 종래 ‘변증법의 새로운 유행’인 것 같다. 변증법의 반(反)이 이미 정반(正反)의 상호작용을 통해 해체의 이중성을 실천한 것이고, 그 결과가 새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