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어떤 책에서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질문!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행복했을까?”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행복했을까?”
건축 책들이 유명 건축물을 소개하는 방식은 대개 비슷하다. 그것을 설계한 건축가의 탁월함,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공간적 특성, 당대의 건축 사조와 해당 건축물의 역사적 가치 등등. 그러나 정작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다. 설계를 의뢰하고 실제로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 건축이라는 퍼즐의 핵심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다루지 않는 그 조각의 이름은 다름 아닌 ‘건축주’다. 그들은 왜 그런 집을 지었는가? 그곳에서 그들은 행복했는가? 당대의 거장들이 설계한 그 집들은 과연 거주자를 위한 공간이었는가?
이를테면 사보아 주택. 우리는 그 집을 근대건축의 걸작이라고 부르지만 사보아 부인이 어떤 집을 상상하고 건축가(르 코르뷔지에)에게 무엇을 요청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숲속 대지에 놓인 새하얀 입체와 그것이 상징하는 ‘근대건축의 다섯 가지 원칙’에는 익숙하지만 사보아 부부가 그곳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글쓴이는 묻는다. “20세기의 명작 건축인 사보아 주택의 건축주는 왜 집을 지었는가? 그들은 과연 그 주택에서 행복했는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글쓴이는 독자들이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건축가나 평론가가 아닌 건축주의 관점에서 다시 쓰는 건축 이야기! 결과는 뜻밖이다. 끝없는 하자에 시달리다가 결국 집을 떠나버린 불운한 건축주가 있는가 하면(사보아 주택), 사생활이 박탈된 공간에서 하릴없이 화장실로 숨어들었던 불행한 건축주도 있다(판스워스 주택). 이와 달리 수십 년간 자신들의 집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행복한 건축주도 있다(피셔 주택).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결정적 원인은 건축주에게 있다. 집을 짓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상상했는지, 그리고 집을 짓는 동안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따라 그 공간에서의 삶이 정반대로 달라졌던 것이다. 글쓴이는 말한다. “건축은 건축주의 희망, 내면에 잠재해 있는 욕망을 공간으로 바꾸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무엇을 열망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건축주다.” 건축주의 상상력과 열정이 건축가의 역량 못지않게,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뜻이다.
‘명작’의 지붕 밑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들을 다룬 1장에 이어, 2~4장에서는 진정한 건축주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된다. 2장에 등장하는 슈뢰더 주택, 뮐러 주택, 마이레아 주택 등은 건축주와 건축가의 치열한 소통을 통해 근대주택의 원점을 만들어낸 사례들이다. 3장에서는 에우세비 구엘(구엘 별장), 레오폴트 골트만(로스하우스), 카우프만 일가(낙수장) 등 ‘역사에 남은 제2의 건축가들’이 소개된다. 루이스 칸의 건축주들이 등장하는 4장은 ‘명작’이란 과연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건축은 누가 설계하는가? 건축주는 짓고자 하는 건물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가? 거장 루이스 칸과 뛰어난 과학자 조나스 소크에게서 그 해답을 찾는다.” (4장 ‘루이스 칸의 건축주와 사용자들’ 중)
이를테면 사보아 주택. 우리는 그 집을 근대건축의 걸작이라고 부르지만 사보아 부인이 어떤 집을 상상하고 건축가(르 코르뷔지에)에게 무엇을 요청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숲속 대지에 놓인 새하얀 입체와 그것이 상징하는 ‘근대건축의 다섯 가지 원칙’에는 익숙하지만 사보아 부부가 그곳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글쓴이는 묻는다. “20세기의 명작 건축인 사보아 주택의 건축주는 왜 집을 지었는가? 그들은 과연 그 주택에서 행복했는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글쓴이는 독자들이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건축가나 평론가가 아닌 건축주의 관점에서 다시 쓰는 건축 이야기! 결과는 뜻밖이다. 끝없는 하자에 시달리다가 결국 집을 떠나버린 불운한 건축주가 있는가 하면(사보아 주택), 사생활이 박탈된 공간에서 하릴없이 화장실로 숨어들었던 불행한 건축주도 있다(판스워스 주택). 이와 달리 수십 년간 자신들의 집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행복한 건축주도 있다(피셔 주택).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결정적 원인은 건축주에게 있다. 집을 짓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상상했는지, 그리고 집을 짓는 동안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따라 그 공간에서의 삶이 정반대로 달라졌던 것이다. 글쓴이는 말한다. “건축은 건축주의 희망, 내면에 잠재해 있는 욕망을 공간으로 바꾸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무엇을 열망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건축주다.” 건축주의 상상력과 열정이 건축가의 역량 못지않게,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뜻이다.
‘명작’의 지붕 밑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들을 다룬 1장에 이어, 2~4장에서는 진정한 건축주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된다. 2장에 등장하는 슈뢰더 주택, 뮐러 주택, 마이레아 주택 등은 건축주와 건축가의 치열한 소통을 통해 근대주택의 원점을 만들어낸 사례들이다. 3장에서는 에우세비 구엘(구엘 별장), 레오폴트 골트만(로스하우스), 카우프만 일가(낙수장) 등 ‘역사에 남은 제2의 건축가들’이 소개된다. 루이스 칸의 건축주들이 등장하는 4장은 ‘명작’이란 과연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건축은 누가 설계하는가? 건축주는 짓고자 하는 건물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가? 거장 루이스 칸과 뛰어난 과학자 조나스 소크에게서 그 해답을 찾는다.” (4장 ‘루이스 칸의 건축주와 사용자들’ 중)

그들의 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제2의 건축가’들)
$3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