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에 대하여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에 대하여

$19.80
Description
1969년. 한 유대인이 강제수용소에서 겪었던 비극적 체험을 담은 〈해바라기〉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세계를 뒤흔든다. 나치의 죄악이 절정으로 치닫던 1940년대 초반.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죽어가던 나치 장교가 어느 유대인을 병실로 불러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간절하게 용서를 청했고, 유대인은 그의 부탁을 거절한 채 병실을 나서버린다. 증오와 연민, 정의와 관용 사이에서 고뇌하다가 끝내 침묵을 선택했던 그 유대인은 훗날 아돌프 아이히만을 비롯한 1,100여 명의 나치 전범들을 추적해 심판대에 세운 전설적 ‘나치 헌터’ 시몬 비젠탈이었다. 글의 말미에서 그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 것인가?”

1976년. 그의 질문에 대한 전 세계 지식인, 종교인, 예술가들의 답변이 담긴 책이 출간된다. 당대의 철학자 허버트 마르쿠제, 『이것이 인간인가』의 저자 프리모 레비,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남아공 인권투쟁의 상징 투투 주교, 영화 〈킬링 필드〉의 실제 주인공인 디트 프란……. 용서란 무엇이고 화해란 무엇인지, 용서받을 자격은 어떻게 주어지며 용서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지를 저마다의 근거로 제시한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1997년에는 전후세대(戰後世代) 필자들의 글이 추가된 개정판이 출간된다.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는 바로 그 개정판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제1부 ‘해바라기’에는 시몬 비젠탈의 글이, 제2부 ‘심포지엄’에는 그의 질문에 대한 53명의 답변이 실려 있다. 어떤 이는 비젠탈의 침묵을 옹호하고, 어떤 이는 그가 용서를 거절한 것을 비판한다. 정치, 역사, 문화, 신학, 윤리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진 진지하고 치열한 답변들은 그 자체로 인류 정신의 축약본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이 출간 이후 수십 년간 세계 각국에서 최고의 토론 및 논술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한국 독자들에게도 이 책의 의미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가해자들의 사과 없는 용서가 가능한가? 그 어떤 범죄도 뉘우치기만 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가? 한 개인이 수많은 희생자들을 대신하여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는가? 용서와 화해, 정의의 근본에 대한 비젠탈의 질문은 강제 징용, 일본군 위안부, 5.18의 아픔을 겪었던 우리 사회의 시대적 화두이기도 하다.

▶ 이 책은 2005년에 출간된 《해바라기》(뜨인돌출판사)의 완역판입니다.
저자

시몬비젠탈

제2차세계대전당시나치의학살자들에의해무려89명이나되는일가친척을잃고아내와단둘이서만살아남은시몬비엔탈은전쟁이끝난후미국전쟁범죄조사위원회(AmericanCommissionforWarCrimes)에서활동했다.1946년에30여명의다른생존자들과함께유대역사기록센터(JewishHistoricalDocumentationCenter)를설립해운영했으며,그의집요한추적덕분에무려1,100여명이나되는나치범죄자들이법의심판을받았다.그중에는이른바‘최종해결(유대인말살정책)’의실무책임자였다가패전직후남미로도주했던아돌프아이히만도포함되어있다.이러한업적으로인해네덜란드정부로부터오랑예훈장을,이탈리아정부로부터공화국훈장을,미국의회로부터황금메달을,이스라엘정부로부터예루살렘메달을,영국정부로부터대영제국훈장(명예2급)을받았다.2005년에는프랑스정부로부터레지옹도뇌르훈장을받았으며,같은해에향년96세로치열했던생을마감했다.평생을나치전범추적에바친그의모습은세계각국의예술가들에의해소설과영화속주인공으로형상화되었다.그의이름을기려설립한‘시몬비젠탈센터(TheSimonWiesenthalCenter)’는미국을비롯한여러나라에지사를두고지금까지도열정적으로활동하고있다.주요저서로『우리가운데있는살인자들(TheMurderersAmongUs)』『복수가아니라정의다(Justice,NotVengeance)』『희망의돛(SailsofHope)』『매일을기억하며(EverydayRemembranceday)』등이있다.

목차

서문

제1부해바라기

제2부심포지엄

나는보스니아의시몬비젠탈이었다./스벤알칼라이
중요한것은그날이후당신의삶입니다./장아메리
악을선으로무마할수는없다./스마일발리치
섣부른용서는희생자에대한배신이다./모셰베이스키
‘값싼은혜’의위험성에대하여/앨런L.버거
두개의질문:답변가능한것과답변불가능한것/로버트매커피브라운
그는내게도용서받지못했을것이다./해리제임스캐저스
죽어가는나치를위해기도는할수있지만/로버트콜스
기억하되,용서하라!/달라이라마
그것은죽어가는나치의최후의범죄였다./유진J.피셔
가해자와희생자모두의영혼을위하여/에드워드H.플래너리
문제는‘용서했어야했는가’가아니라‘용서할수있는가’이다./에바플레이슈너
지혜로운침묵,정의를뛰어넘은연민/매튜폭스
붕대너머로보아야할것들/레베카골드스타인
그나치가가야할곳은집단수용소였다./메리고든
죽은이들이용서할수없는상황이라면,산사람들또한그렇게할수없다./마크골든
정의없는용서는자기만족적유약함일뿐/한스하베
비록과거는잊을수없다고해도/요시클라인할레비
홀로코스트에대해서라면하느님조차피고인일뿐/아서허츠버그
부디그를용서할수있기를!내가아닌하느님의이름으로./시오도어M.히스버그
브리스크의랍비가우리에게가르쳐주는것/아브라함요슈아헤셸
용서받지못하는두개의죄악/수재너헤셸
용서야말로진정한힘이다./호세호브데이
용서할권리가충분했고,용서해야했다./크리스토퍼홀리스
당신은최선의선택을했을뿐/로저카메네츠
그것은초인적인선행의기회였습니다./프란츠쾨니히추기경
그나치병사는차라리이렇게말했어야한다./해럴드S.커슈너
카를에게묻고싶은것들/로렌스L.랭어
용서했다면더큰고통에직면했을것/프리모레비
참회와속죄의근본적차이에대하여/데보라E.리프스태트
그러나낙담하지말아야한다!/프랭클린H.리텔
하느님이침묵하셨고당신이침묵했듯이/휴버트G.로크
그의인간성에경의를표하며/에릭H.로위
섣부른용서는악을희석시킬뿐/허버트마르쿠제
값싼은혜는위험하지만용서는가치있는행동이다./마틴E.마티
그가용서받지못하고죽도록내버려두라./신시아오지크
화해는불가능해도용서는가능했다./존T.폴리코우스키
유대인들의지지와기독교인들의비난/데니스프레이저
만약킬링필드의살인자가내게용서를구했다면/디트프란
그것은참회가아니라위선이었다./테렌스프라이티
최악의인간에게도선한본성은남아있기에/마티외리카르
자비를베푼것만으로도충분하다./조슈아루벤스타인
그러면대체누가지옥에간단말인가?/시드니섀크나우
거기에분명히하느님이계셨다./도로테죌레
나치전범이시몬비젠탈에게/알베르트슈페르
만약그나치가깨어나참회의삶을살았더라면/마네스스페르베르
그침묵은희생자의도덕적승리였다./앙드레스타인
그의침묵에담겨있는것들/네케이마테크
참회의진실성이의심스러운이유/조셉텔러시킨
반세기뒤의질문이의미를가지려면/츠베탕토도로프
용서가없으면미래도없다./데스먼드투투
나치청년카를에게보내는편지/아서와스코우
중국강제수용소에서의기억을떠올리며/해리우

출판사 서평

용서와침묵사이

“2층창문에어린아이를안은어떤남자의모습이보이더군요.그의옷에는이미불이붙어있었습니다.옆에는아이의어머니인듯한여자가서있었고요.그남자는한손으로아이의눈을덮어서가려주고있었습니다.…그러더니그는창밖으로뛰어내렸습니다.잠시후에아이의어머니도뛰어내렸지요.그때부터다른창문에서도몸에불이붙은사람들이잇달아뛰어내리기시작했습니다.…우리는총을발사했죠….오,하느님!”

죽어가는나치장교카를의고백이다.수백명의유대인들을좁은집에몰아넣은뒤에불을질렀고,온몸에불이붙은채탈출하려는사람들에게총을난사했다는것이다.그가이끔찍한범죄를털어놓는동안비젠탈은나치에게희생된89명의일가친척을,게토에마지막남은어린아이였던꼬마엘리를,그리고아들과이별한뒤끝내독일군에게목숨을잃은어머니를떠올린다.저런악행을저지른사람이어떻게하느님을찾을수있단말인가?그리고어떻게그런자를용서할수있단말인가?
그러나상대는진심으로참회하고있다.그어떤죄인이라도뉘우치면용서하는것이인간의도리아닐까?게다가그는지금죽어가고있다.나는그에게최후의자비를베풀수있는유일한인간이다…….하지만무슨자격으로?이미죽어버린수백만의유대인들은내게용서의권한을준적이없지않은가?감당하기어려운인간적고뇌끝에그가선택한것은침묵한채병실을나서는것이었다.
카를은결국용서받지못한채숨을거두었고,비젠탈은그날의기억에서좀처럼벗어나지못한다.수용소동료들에게그날의일을털어놓지만돌아오는건“그놈의용서타령좀그만하라”는핀잔뿐이다.내일을기약할수없는,“30분뒤면자유가찾아오겠지만그보다15분전에죽음이먼저찾아올것”이라자조하는,전능하신하느님조차잠시자리를비우셨다는신학적냉소에빠진유대인들에게용서나화해,인간적연민(심지어나치를상대로한!)따위는일고의가치도없는싸구려감상주의에불과했던것이다.
“내가그죽어가는나치의침대곁에앉아끝까지침묵을지킨것은옳은일이었을까,아니면틀린일이었을까?이것이야말로한때내양심과정신에가해진것과똑같이,이책을읽는독자의양심에던져지는심각한윤리적질문이라할수있다”고말한뒤,그는이렇게묻는다.“독자들도나와입장을바꾸어이렇게물어볼수있을것이다.과연‘나’라면어떻게했을것인가?”
그가제목으로삼은‘해바라기’는어느날강제노역을하러가는길에보았던,나치군인들의무덤가에줄지어피어있던꽃이다.땅속으로지상의소식을전해주는전령처럼늘어선해바라기를보며비젠탈은부러움과비애를동시에느낀다.나도죽은뒤에저들처럼해바라기한그루를가질수있을까….그날이후그는힘들고고통스러울때마다해바라기를떠올리며마음을다잡는다.죽은자의무덤가에핀꽃이역설적으로삶과희망의상징이되었던것이다.집단학살의참상을다루면서도탁월한상징과심리묘사로매순간독자들을몰입시키는그의글은―프리모레비의체험기가그랬고빅터프랭클의수기가그랬듯―묵직한화두를담은역사적리포트인동시에한편의탁월한문학작품이기도하다.

‘용서’에관한모든생각들

“자네,제발이젠그이야기좀그만하게.그렇게끙끙앓는소리를해봤자무슨소용이있나.일단우리가이수용소에서살아남고―솔직히그럴수있을것같지는않지만―이세상이모두제정신으로돌아오고,사람들이서로를동등한인간으로보게된다음이라면,그용서니뭐니하는문제를놓고토론할시간은충분히있을거야.옳다는사람도있고,그르다는사람도있고,자네가그를용서하지않은것을절대용서할수없다는사람도나올거야.”

고뇌하는비젠탈에게수용소동료아르투르가했던이말은훗날이책에실릴다양한답변들을예견하고있는것처럼보인다.실제로사람들은그렇게했다.비젠탈의침묵에절대적으로공감하는사람도있지만그반대인사람도있다.설령결론이동일하더라도근거는제각기다르다.정치적이유,역사적이유,종교적이유혹은윤리적이유…….‘용서’라는주제에대해인간이떠올릴수있는거의모든사유를보여주는,가히‘용서에관한모든생각들’이라고할만하다.
보스니아인종학살의피해자들이보기에비젠탈의선택은너무나당연한것이었다.카를에겐용서받을자격이없으며섣부른용서는희생자에대한배신이라는것!프리모레비는“만약그를용서했다면더큰고통에직면했을것”이라고단언한다.마르쿠제는“섣부른용서는악을희석시킬뿐”이라말하고,앨런버거는“값싼은혜의위험성”을경고한다.“그가용서받지못하고죽도록내버려두라”고일갈하는사람이있는가하면,“만약그나치를용서한다면대체누가지옥에간단말인가?”라고반문하는사람도있다.어떤이는“홀로코스트에대해서라면하느님조차도피고인일뿐”이라는극단적견해를드러내기도한다.
그러나그게전부는아니다.달라이라마는이렇게말한다.“기억하되용서하라!”투투주교또한“용서가없으면미래도없다”고말한다.비젠탈에게는용서할권리가충분했다고판단하는사람도있고,집단적화해는불가능했을지언정개인적용서는가능했다고주장하는사람도있다.침묵을지지하는사람들의논리가정교하듯,용서를지지하는사람들의논리또한치밀하다.독자들에게중요한건단일한결론이아니라글쓴이들이결론으로나아가는과정이며,거기에담긴폭넓은사유와다양한가치일것이다.
제2부에서특히인상적인것은나치고위간부로서히틀러의제3제국건설입안자중하나였던알베르트슈페르의고백이다.뉘른베르크재판에서20년형을선고받고복역한그는출소후시몬비젠탈과오랫동안서신을교환했고,직접만난적도있다고한다.그는이렇게회고한다.

“그때저는당신의눈을바라보았습니다.모든살해당한이들의모습을담고있는눈을,그리고동족의모든비참과전락과운명과고통을목격한눈을말입니다.하지만당신의눈에는증오가깃들어있지않았습니다.오히려온화하고,너그럽고,타인의불행에대한연민이가득한눈이었습니다.…당신은저를크게도와주셨습니다.마치붙잡은손을뿌리치거나비난하지않음으로써그죽어가는나치장교를도와주셨듯이말입니다.”

만약그나치장교가기적적으로회복되어다시세상에나왔더라면어떤삶을살았을까?용서를거절한유대인을저주하며더악랄한살인자가되었을까?아니면침묵속에서나마인간에대한마지막배려를잃지않았던상대에게감사하며슈페르처럼참회하는삶을살았을까?결과는알수없다.분명한건참회가어려운만큼용서도어렵다는것,때로는한마디의용서가당사자(가해자와피해자)의삶전체를좌우한다는것,세상에는마땅히해야할용서도있지만결코해서는안될용서도있다는것,그러므로어느누구도모든용서가아름답다고섣불리말할수없다는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