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침묵사이
“2층창문에어린아이를안은어떤남자의모습이보이더군요.그의옷에는이미불이붙어있었습니다.옆에는아이의어머니인듯한여자가서있었고요.그남자는한손으로아이의눈을덮어서가려주고있었습니다.…그러더니그는창밖으로뛰어내렸습니다.잠시후에아이의어머니도뛰어내렸지요.그때부터다른창문에서도몸에불이붙은사람들이잇달아뛰어내리기시작했습니다.…우리는총을발사했죠….오,하느님!”
죽어가는나치장교카를의고백이다.수백명의유대인들을좁은집에몰아넣은뒤에불을질렀고,온몸에불이붙은채탈출하려는사람들에게총을난사했다는것이다.그가이끔찍한범죄를털어놓는동안비젠탈은나치에게희생된89명의일가친척을,게토에마지막남은어린아이였던꼬마엘리를,그리고아들과이별한뒤끝내독일군에게목숨을잃은어머니를떠올린다.저런악행을저지른사람이어떻게하느님을찾을수있단말인가?그리고어떻게그런자를용서할수있단말인가?
그러나상대는진심으로참회하고있다.그어떤죄인이라도뉘우치면용서하는것이인간의도리아닐까?게다가그는지금죽어가고있다.나는그에게최후의자비를베풀수있는유일한인간이다…….하지만무슨자격으로?이미죽어버린수백만의유대인들은내게용서의권한을준적이없지않은가?감당하기어려운인간적고뇌끝에그가선택한것은침묵한채병실을나서는것이었다.
카를은결국용서받지못한채숨을거두었고,비젠탈은그날의기억에서좀처럼벗어나지못한다.수용소동료들에게그날의일을털어놓지만돌아오는건“그놈의용서타령좀그만하라”는핀잔뿐이다.내일을기약할수없는,“30분뒤면자유가찾아오겠지만그보다15분전에죽음이먼저찾아올것”이라자조하는,전능하신하느님조차잠시자리를비우셨다는신학적냉소에빠진유대인들에게용서나화해,인간적연민(심지어나치를상대로한!)따위는일고의가치도없는싸구려감상주의에불과했던것이다.
“내가그죽어가는나치의침대곁에앉아끝까지침묵을지킨것은옳은일이었을까,아니면틀린일이었을까?이것이야말로한때내양심과정신에가해진것과똑같이,이책을읽는독자의양심에던져지는심각한윤리적질문이라할수있다”고말한뒤,그는이렇게묻는다.“독자들도나와입장을바꾸어이렇게물어볼수있을것이다.과연‘나’라면어떻게했을것인가?”
그가제목으로삼은‘해바라기’는어느날강제노역을하러가는길에보았던,나치군인들의무덤가에줄지어피어있던꽃이다.땅속으로지상의소식을전해주는전령처럼늘어선해바라기를보며비젠탈은부러움과비애를동시에느낀다.나도죽은뒤에저들처럼해바라기한그루를가질수있을까….그날이후그는힘들고고통스러울때마다해바라기를떠올리며마음을다잡는다.죽은자의무덤가에핀꽃이역설적으로삶과희망의상징이되었던것이다.집단학살의참상을다루면서도탁월한상징과심리묘사로매순간독자들을몰입시키는그의글은―프리모레비의체험기가그랬고빅터프랭클의수기가그랬듯―묵직한화두를담은역사적리포트인동시에한편의탁월한문학작품이기도하다.
‘용서’에관한모든생각들
“자네,제발이젠그이야기좀그만하게.그렇게끙끙앓는소리를해봤자무슨소용이있나.일단우리가이수용소에서살아남고―솔직히그럴수있을것같지는않지만―이세상이모두제정신으로돌아오고,사람들이서로를동등한인간으로보게된다음이라면,그용서니뭐니하는문제를놓고토론할시간은충분히있을거야.옳다는사람도있고,그르다는사람도있고,자네가그를용서하지않은것을절대용서할수없다는사람도나올거야.”
고뇌하는비젠탈에게수용소동료아르투르가했던이말은훗날이책에실릴다양한답변들을예견하고있는것처럼보인다.실제로사람들은그렇게했다.비젠탈의침묵에절대적으로공감하는사람도있지만그반대인사람도있다.설령결론이동일하더라도근거는제각기다르다.정치적이유,역사적이유,종교적이유혹은윤리적이유…….‘용서’라는주제에대해인간이떠올릴수있는거의모든사유를보여주는,가히‘용서에관한모든생각들’이라고할만하다.
보스니아인종학살의피해자들이보기에비젠탈의선택은너무나당연한것이었다.카를에겐용서받을자격이없으며섣부른용서는희생자에대한배신이라는것!프리모레비는“만약그를용서했다면더큰고통에직면했을것”이라고단언한다.마르쿠제는“섣부른용서는악을희석시킬뿐”이라말하고,앨런버거는“값싼은혜의위험성”을경고한다.“그가용서받지못하고죽도록내버려두라”고일갈하는사람이있는가하면,“만약그나치를용서한다면대체누가지옥에간단말인가?”라고반문하는사람도있다.어떤이는“홀로코스트에대해서라면하느님조차도피고인일뿐”이라는극단적견해를드러내기도한다.
그러나그게전부는아니다.달라이라마는이렇게말한다.“기억하되용서하라!”투투주교또한“용서가없으면미래도없다”고말한다.비젠탈에게는용서할권리가충분했다고판단하는사람도있고,집단적화해는불가능했을지언정개인적용서는가능했다고주장하는사람도있다.침묵을지지하는사람들의논리가정교하듯,용서를지지하는사람들의논리또한치밀하다.독자들에게중요한건단일한결론이아니라글쓴이들이결론으로나아가는과정이며,거기에담긴폭넓은사유와다양한가치일것이다.
제2부에서특히인상적인것은나치고위간부로서히틀러의제3제국건설입안자중하나였던알베르트슈페르의고백이다.뉘른베르크재판에서20년형을선고받고복역한그는출소후시몬비젠탈과오랫동안서신을교환했고,직접만난적도있다고한다.그는이렇게회고한다.
“그때저는당신의눈을바라보았습니다.모든살해당한이들의모습을담고있는눈을,그리고동족의모든비참과전락과운명과고통을목격한눈을말입니다.하지만당신의눈에는증오가깃들어있지않았습니다.오히려온화하고,너그럽고,타인의불행에대한연민이가득한눈이었습니다.…당신은저를크게도와주셨습니다.마치붙잡은손을뿌리치거나비난하지않음으로써그죽어가는나치장교를도와주셨듯이말입니다.”
만약그나치장교가기적적으로회복되어다시세상에나왔더라면어떤삶을살았을까?용서를거절한유대인을저주하며더악랄한살인자가되었을까?아니면침묵속에서나마인간에대한마지막배려를잃지않았던상대에게감사하며슈페르처럼참회하는삶을살았을까?결과는알수없다.분명한건참회가어려운만큼용서도어렵다는것,때로는한마디의용서가당사자(가해자와피해자)의삶전체를좌우한다는것,세상에는마땅히해야할용서도있지만결코해서는안될용서도있다는것,그러므로어느누구도모든용서가아름답다고섣불리말할수없다는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