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이끝나고난뒤부터시작되는이야기
“이책은양심에대한기나긴기록이다”
학교폭력이끝나도남겨진사람들의일상은계속된다.비바비보46번째소설『완벽한사과는없다』는학교폭력을다룬다른작품들과다르게,사건이끝나고난뒤에도계속되는일상을살아나가야하는청소년들의상황에주목한다.
이작품은청소년독자들에게과연‘피해자다움이란무엇인지?’,가해자와피해자가아닌제3자는‘어디까지책임에서자유로울수있는지?’하는화두를던진다.청소년들에게꼭필요하지만,한마디로정의하기어려운양심,사과,용서에대해끊임없이질문을제기한다.
학교폭력은청소년들에게일상적인공간인학교에서일어나는일인만큼,공간전체에있는사람들에게영향을끼친다.당사자가아니면알수없는이야기들이말에말을더해부풀려지고,그러는사이보호라는이름으로아픔은감춰지고,처분이라는이름으로가해는쉽게사라진다.
소설은미묘하게연결되어있는각기다른세가지사건을통해,학교폭력을둘러싼사람들의일상을쫓아간다.다수의청소년소설로독자들의마음을어루만져온작가는사건이일으키는아주사소한파동도놓치지않는다.그파동의끝에서결코끝나지않은사건의여운을포착해,미처생각하지못했던가해자,피해자,방관자로서의입장과상황을섬세하게담아낸다.
학교폭력가해자가나와친했던사람이라면?
먼일이라고생각했던학교폭력이내주변의일이되었다.
어린시절지민과지호는애니메이션〈피노키오〉를보며자연스럽게역할을나누어놀았다.지호는피노키오가,지민은피노키오의양심이되어주던작은귀뚜라미‘지미니크리켓’이되었다.자신도모르는사이지호의양심이되어버린지민은마음한구석에스스로에게부여된역할,지미니크리켓을품게된다.
여느관계가그렇듯지민이이사를가고,중학교에올라가면서두사람은자연스럽게멀어진다.그러던어느날언덕에서보드를타던학생이죽는사건이벌어지는데,그사건의가해자로다름아닌지호가지목된다.무성한소문속에서지호는학교폭력의가해자로버무려지고,불현듯지호의양심과마주한지민은진실을찾으려한다.하지만시간이갈수록지민이알고있던지호의모습과는점점멀어지는데…….
그과정에서지민은우연한‘오해’로,학원에서따돌림을당하기시작한다온과지호에게학교폭력을당했던리하와가까워지게된다.과연지민은언제까지지호와의관계를숨긴채그들과가까이지내게되는걸까?예기치못한오해가만든세사람의얽히고설킨관계속에서지민은미처깨닫지못했던자기안의편견과몰랐던진실들을마주하게된다.
제3자,방관자너머‘세번째사람’을향하여
“우리는지금‘세번째사람’이되어야할지도모릅니다”
작가는제3자혹은방관자에게‘세번째사람’이라는이름을붙여주며이렇게말한다.
‘쓰고난뒤에야발견했습니다.당사자두사람말고그곁의세번째사람이상황을바꾼다는것을요.(…)세번째사람은뒤로물러설수도있습니다.나와상관없다고고개를돌려버릴수도있고요.그러나한걸음더가까이갈수도있습니다.숨결과온기가느껴질만큼,변화를가져올만큼.책속에서만가능한일은아닐겁니다.’
사람들은각자서있는위치에따라사건의당사자가되기도,세번째사람이되기도한다.소설은주인공지민을통해제3자가‘세번째사람’으로거듭나는과정을보여준다.우리하와가까워지면서지호와친분이있는사실을밝혀야하나머뭇거리기도하고,나의침묵이누군가에게상처가되는건아닐까두려워하기도하고,평소에는미처살피지못했던사람의일상을궁금해하기도하면서,지민은계속해서주저하고고민하며행동한다.
완벽한선택은없다.우리는모두불완전존재로서,그럼에도불완전선택일지라도주변을살피고,변화를위해움직여야한다.아무것도하지않으면아무것도바뀌지않음으로.제목처럼‘완벽한사과는없다면우리는왜사과를해야하는걸까?‘소설이던지는질문들은그럼에도계속되는오늘을살아나가야하는청소년들에게꼭필요한힘이되어줄것이다.
<책속으로>
“양심이뭐예요?”
피노키오가묻고,
“양심이뭔데요?”
우리도물었다.
(…)
“사람들이듣지않는,고요하고작은목소리지!”
그렇게말한것이바로지미니크리켓,피노키오곁에있는중절모를쓴작은귀뚜라미였다.
_P.7~8
지민이,지미니,지미니크리켓.나조차도피노키오가‘지미니’라고귀뚜라미를부를때면나를부르는소리같아흠칫놀랐다.
“네가내양심이야,지미니.”
언젠가부터지호는자기가피노키오라도되는것처럼말했고,
“인간이나돼라.”
나역시그애가아직인간이되지못한나무인형인것처럼장난스럽게대꾸했다.
_P.8~9
그모든일이지나간후,일년에가까운시간동안나는이날을돌이켜보며경우의수를따져보았다.
붙들거나말리거나쫓아가거나.어느것도현실적이지않았다.
그래서나는,이번에야말로잘해보려고했다.그게내가다온의일에개입하게된이유였다.
_P.15
‘가해자’인지호만큼이나‘피해자’인우리하에대해서도많은소문이떠돌았다.소름돋아하면서,재미있어하면서하는말들.남일이라서,실감이나지않아쉽게말할수있는것들.
‘그런일보면다그럴만한이유가있더라.’
‘걔도정상은아니었대.’
(…)
이제우리하가내얼굴을똑바로보고묻고있는것같았다.
너는,나를,어떻게생각하느냐고.
_P.60~61
말해야하나,하지말아야하나.
나는내양심의소리를들으려했다.마음속에서들려오는고요하고작은목소리를,절대무시하지않고듣고따르려했다.그러나아무것도들리지않았다.내가못들은것일까,나의양심이아무말도없었던걸까.양심조차도답을모르는것일까.
_P.64
무력하지않다.
짧은문장이떠올랐다.나는,우리는무력하지않다.
어디서튀어나왔을까.나는그문장을되새겼다.얇지만질긴,쉽게구부러지지만부서지지는않을,지팡이처럼디딜수있는문장이었다.
_P.93
마음을놓았다.안심하고있었다.
살아있는것들이너무생생해서.익고,썩고,쓰러지고,솟아나는것들에시선을빼앗겨서.
살아있는사람의양감과온기가너무나압도적인것이어서.
지나간일들을그림자처럼보이게했다.
_P.96~97
리하도화를내고다온도화를냈다.나에게,서로에게.소리를지르고,짜증을내고,비난했다.왜거짓말을했냐고,사람우습게만들고좋았냐고.나도말했다.아무말이나했다.사이렌이점점가까워져서서로의말이들리지않게될때까지,우리는서로에게소리지르고,울고,화를냈다.
어두웠고,연기냄새가지독했고,시끄러웠다.그래서다른무엇으로마음을누르거나가릴필요가없었다.
_P.138
세상에완벽한사과는,용서는없을것이다.듣는사람도만족하고하는사람도맘편해지는그런완벽한건없다.언제나여지를남기고흔적과실밥을,마르지않은시멘트위로지나간발자국같은흠집을남긴다.
용서는약속이아니다.결과가아니다.기나긴과정이다.우리는그긴과정의문턱을겨우넘었을뿐이었다.
_P.159~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