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을 펴지 못하고 떠난 당신에게 (아내를 잃고 띄우는 조선 선비들의 편지)

눈썹을 펴지 못하고 떠난 당신에게 (아내를 잃고 띄우는 조선 선비들의 편지)

$17.26
Description
“그대 먼저 그 먼 곳을 구경하오”
조선의 애처(愛妻)로운 남편들,
아내를 잃고 먹 대신 눈물로 짓다
부부는 결혼을 하면서 기쁘나 괴로우나 굳게 붙어 있기로 서약했다. 어느덧 자식들도 태어났는데, 가장의 일자리가 영 탐탁지 않다. 준비하던 공무원 시험에 번번이 떨어지는가 하면, 힘들게 직장에 들어가서도 정쟁에 휘말려 좌천된다. 인고의 시간을 버틴 끝에 이제 형편이 조금 풀리나 싶었건만, 상대는 그것을 기다려주지 않고 떠나게 되었다. 남겨진 사람의 삶은 해로(偕老)할 꿈에 부풀었다가 후회와 자책으로 가라앉는다.

현대의 부부 같지만 조선시대의 부부 이야기다. 정확히는 이 책 『눈썹을 펴지 못하고 떠난 당신에게』 속 인물들의 이야기다. 여기에는 다산 정약용을 비롯해 번암 채제공, 미암 유희춘 등 조선의 사대부 13명이 등장한다. 이들은 평생을 약속했던 아내를 잃고 붓을 들어 ‘도망시(悼亡詩)’를 썼다. ‘도망시’는 남편이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시다. 그뿐 아니라 아내의 영전에 올리는 제문, 묘지에 죽은 이의 덕을 새긴 묘지명, 생전의 덕행을 적어 훗날 시호의 근거로 삼는 뇌(?), 편지 등 다양한 형식의 애도문을 남겼다.

연애결혼이 아닌 집안이 정해준 상대와 정략결혼을 하고, 서로의 얼굴을 초야에나 처음 보았다는 이야기도 흔한 시대에 과연 부부의 정이 싹텄을까 싶지만, 이들이 남긴 기록은 지금 보아도 절절하고 또 살갑다.
저자

박동욱

끊임없이새로운주제를발굴하고연구하는한문학자이자자식을위해일하는평범한아버지다.일평조남권선생님께삶과한문을배웠다.성균관대학교국어국문학과에서박사학위를취득했고,현재한양대학교인문과학대학교수로있다.2001년문예지《라쁠륨》가을호에서현대시로등단했다.지은책으로『기이한나의집』『그렇게아버지가된다』『아버지의편지』(공저)등이있고,옮긴책으로『식색식언』『북막일기』(공역)『승사록,조선선비의중국강남표류기』등이있다.
자식에게서툴렀으나진심을다했던조선의아버지들을소개한바있는저자는이책『눈썹을펴지못하고떠난당신에게』를통해당시부부들의정을꺼내보인다.남편이죽은아내에대해쓴기록으로살펴보는이책에는다산정약용,번암채제공을비롯한13명의사대부가나온다.이들은곤궁한살림과오랜귀양살이로아내를고생시키다가,결국백년해로의약속을지키지못하고절통한심사로붓을들었다.

목차

들어가며5

1장.꿈속에서살아온내아내      채제공
고생만함께했던그대15|아내의비보를듣다17|아내를찾아가는길20|다짓지못한모시옷24|끝내잃어버린아내의자취27|끝내잊히지않는아내의기억들31

2장.함께살지못한집      심노숭
아내를끊임없이그리워하다37|아내의영전에올리는글40|내가잠들지못하는이유44|함께은거하자는다짐48|끝내함께살지못한집51|다시아내의무덤에서55

3장.길기만한하루의시간들을어이할까      심익운
먼저떠난사람을그리워하다61|아내,세상을떠나다64|홀아비의슬픔과괴로움67|하루의시간들을어이할까72

4장.수수께끼시로전한마음      이학규
오랫동안유배된자의슬픔83|수수께끼시로마음을전하다86|아내의제문을쓰다91|아픔은익숙해지지않는다97|집에서올편지를기다리다101|희망은더디게오거나오지않는다104

5장.당신과함께한60년세월꿈같았네      정약용
우리는함께아팠네109|가난하면행복은창문으로달아난다116|유배를떠나다122|아내와다시만나다129|마지막이된회혼례133

6장.그대없는빈집에서눈물만      채팽윤
나에게충고해준사람139|생일과명절이면그대생각간절하오142|당신이세상을뜬지1년이흘렀네145|소상이지나고대상이지나다148|아내가없는집152|끝끝내이루지못한소원155|결코잊을수없는이름이여158

7장.스승이자친구였던당신      이광사
유배지에서아내를잃다163|아내를기억하는법166|아내의유서172|아내를잃고나는쓰네175|아내의생일날이되다180|상복을벗으며186|이제그누가옳은말해줄까190

8장.세명의아이를잃다      조관빈
우리는함께아팠네195|유산하고정신병을앓은첫부인198|23일만에세상을떠난두번째부인207|세번째아내도유산을겪다212|아픔도인생의한부분이다216

9장.우리는함께시를지었네      유희춘
당신과오래도록떨어져있었네225|시로대화한부부228|혼자잤던일이무슨자랑이어서235|야속한남편에게241|그렇게한세상을보내다247

10장.부부는아픔의공동체      황윤석
임신,출산그리고유산253|천연두로아이를잃다257|믿을것은오직아내뿐264|아내의관을채우며266|자꾸꿈속에나오다270|부부는아픔의공동체273

11장.딸과같던당신      오원
우리아버지,며느리바보277|인자하고도타운그대280|아픔은익숙해지지않았다287|당신은나를버렸으니290

12장.바다건너유배지를찾아온아내      김진규
살아서나죽어서나당신을기억하네301|보내온옷에눈물자국선명하니304|오지않는편지,무너지는마음307|유배지로찾아온아내311|아내의기일에쓰다315|그후로도오랫동안지워지지않는당신320

13장.당신의빈자리      정범조
당신이이리된것은온전히내탓이네331|당신을슬퍼함은나자신을슬퍼하는일이오335|두번다시장가가지않으리338|세월이지날수록그대생각더하네341|고생만했던그대여,잘가시게344|아내의묘를개장하며348

주351

출판사 서평

어떤제문보다절통하면서
어떤연시보다애틋한문장들

눈썹을펴지못했다는것은기쁜일이없었다는의미다.남편은살아생전에아내를진정기쁘게해주지못하다가,아내가세상을떠나게되자아내를잃은아픔에진정으로기쁠일이사라지고말았다.슬픔이지극하면글도쓸수없는법이지만결국슬픔을달래기위해서는글을쓸수밖에없었다.(47쪽)

이책의제목이기도한‘눈썹을펴지못했다’는표현은조선후기의문신심노숭이쓴『미안기(眉眼記)』서문에나오는내용이다.16세에동갑내기아내와혼인한그는1남3녀를두었으나둘째딸을제외하고모두잃는다.특히마지막아이를잃었던해같은달에아내를함께잃는비극을맞는데,그후2년동안떠난아내에대해26편의시와23편의글을남길정도로짙은그리움을토로한다.당시그는아내와함께살기위해파주에새집을지은상황이었다.아내가없는새집은결국‘새무덤’이되었고,안빈낙도를꿈꾸던소원도성사되지못했다.

심노숭을비롯한인물들이하나같이느낀감정은‘회한’이다.정약용은과거에낙방한뒤경제적기반을마련하지못해곤궁한형편이되었다.본인뿐아니라가족모두를덮친가난앞에서,그는이깟공부를해서무엇에쓸것인가좌절한다(5장).그런가하면채팽윤은아내의생일날과명절날이면그리움에몸서리치다가아내의제문과묘지명을지었고(6장),유희춘은20년이훌쩍넘는귀양살이를하느라육아부터시부모봉양까지모두아내에게떠맡겨야했던미안함을토로한다(9장).

기다림을잃어버린오늘날의부부에게
가족의의미를되묻다

한문학자이자한양대학교인문과학대학교수로있는저자박동욱은『그렇게아버지가된다』(휴머니스트)를쓰면서자식에게서툴렀으나진심이었던조선의아버지상을다룬바있다.그는이번책을통해당시의부부는어떻게살았는지,나아가이상적인가족은어떤공동체인지살펴본다.저자는‘실패했을때가장면목이없는사람도,이를딛고다시일어설기운을주는사람도,마침내성공했을때기뻐해줄사람도모두가족’이라고말한다.불행과행복의파고를함께할마음없이쉽게헤어지는,혹은헤어지지않았더라도그저형식상관계를유지하고있는오늘날의부부에게반려와가족의의미를되묻는다.

부부란삶을같은기억으로채워가는사람이라할수있다.그중에슬픈기억은가족을해체하기도결속시키기도한다.가족이해체된다면슬픈기억을함께공유했던일도사라지고,각자도생의길로나아갈수밖에없다.그래서슬픈기억은상대가아픈데내가더큰고통을느낄수있어야함께기억할수있다.무수한슬픔의기억은어떠한시련도견딜수있는굳은살을가져다준다.(114~115쪽)

물론이여정들을따라가기위해서는당시시대상을전혀배제할수없다.축첩(畜妾)은물론재취(再娶)로후사를잇는게당연했고,유배를가서도후실을들이는것이공공연하던시기였다.지아비와시가에순종하고투기하지않는모습을바람직하게여기기도하고,시부모를‘딸’처럼극진히모셨던아내를칭찬하는이야기도나온다.현대의관점으로만바라보고자한다면한계가있을것이다.하지만이것은끊임없이아내를이세상으로불러내고기억하려는시도이자,마침내활자로되살아난아내의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