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력 (김길웅 제8 수필집)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력 (김길웅 제8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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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력〉, 제목이 길고 낯설지 모른다. 수필을 몇 년 쓰다 보니 무의식중 매너리즘에 빠져들 위기에서 버둥대는 자신을 발견해 놀랐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거나 ‘라면 먹고 이 쑤시기’란 말은 그 속에 시퍼런 칼날을 품고 있다. 늘 그 자리, 그 범주, 그 수준에서 맴돌려는 타성과 나태가 작동한 결과다. 내게 선언했다.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글은 쓰지 말자. 답보 이전에 무위無爲요, 무효요, 무의미다.’
작은 각성이 왔다. 30년 써 온 수필이 아직도 허물 한 번 벗지 못한다면 안되는 일이다. 고민을 시작하면서 제목을 내놓은 뒤, 구성에 이르러 오래 뒤척이며 옥상에 올라 산을 등지고 바다만 바라보았다. 그래서 풀어놓은 게, 의당 ‘달력’이라 열두 달 배열 방식이 돼야 한다고 했다. 월별로 내 삶을 토대로 그 속의 사고와 대상을 응시하는 관법과 그에 결부해 시간으로 흐르는 운율에 의탁해 수사학적 쾌감을 빚고자 한 것이다. 실험성이 있었던지 힘들었다. 이 두 작품에서 내가 만난 언어는 고통이고 일탈이고 반란이었다.

4월_반나절은 마당을 거닐며 시간을 버리고, 하오엔 하늘을 우러러 한 조각 꿈을 줍는다. 땅을 보던 눈이 하늘에 가면 수평 수직이 교차하며 만나는 지점으로 사색의 실마리 하나 파닥인다. 세상 이곳저곳 훑던 눈에 날개를 달아 심신이 날것으로 물을 튕긴다. 땀땀이 자수로 삶을 뜨다 보면 문양이 다채로워 대상으로 스미는 시선이 깊다. 가뭄에 심층으로 뿌리 내리는 나무같이 사랑에 목마를 때, 철학은 심오해야지. 책을 편다.
-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력1〉 중에서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았다. 한 해의 가뭇없는 소실에 마음 스산하다. 가 버린 해는 돌려놓지 못한다. 일 년이란 날들을 달력에 걸어 놓고 곶감 빼먹듯 또 외상없이 써 버렸다. 마른 잎은 바람에 사각이기도 하는데 시간은 소리 없이 스러질 뿐이다. 시간이 지난 뒤엔 잔상도 잔해도 없다. 정 떼려 작정하고 떠나면서 무슨 말을 할까. 다시 새해가 눈앞이다. 부질없더라도 동산 집에 새 달력을 걸자. 삶이다.
-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력2〉 중에서

글의 첫 낱말은 신의 선물이라 했다. 수필을 쓰면서 그 첫 낱말에 환호해 무릎을 쳐 본 작가라면 공감하리라 믿는다. 한 단락씩만 인용한다. 당장 내 수필에 차원변이 같은 어떤 큰 변화가 온 것은 아니다. 힘들어도 내게 뿌리칠 수 없는 따뜻한 손길이 와 닿고 있음을 느낀다. 언젠가 썩 달라진 내 수필과 마주할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눈앞으로 정인처럼 당도하기를 기다리고 싶다. 나는 아직 좋은 수필에 목마르다.
저자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제주문학신인상(1993)·『수필과비평』신인상(1994.1)을받아수필가로,『心象』신인상(2005)을받아시인으로데뷔됐다.한국문인협회·심상시인회·동인脈회원으로활동하면서,제주新보〈안경너머세상〉과제주의소리〈借古述今〉을각각주1회집필하고있다.대한문학대상·한국문인상본상·제주특별자치도문화상(예술부문)을수상했으며,시집으로『둥글다』외7권,수필집으로『읍내동산집에걸린달력』외7권,현대수필가100인선『구원의날갯짓』,저서로수필작법『수필이맨발로걸어들어오네』가있다.

목차

작가의말ㆍ4

1_저녁놀앞에서

방목의이유 13
청바지 14
잡초 16
김치찌개 18
설거지 20
납골당 22
저녁놀앞에서 26
좌와기거 29
조류潮流의바다 33
오자투성이 38
글을쓰면서 42
주어가바뀐다 46
내방을스캔하다 49

2_첫새벽에

저우직한 55
추월 57
참작은귤 59
시험공부 61
유자나무 63
동네인심 65
울타리 67
첫새벽에 71
질문 74
밥3 78
신앙의이유 83
엄마의품 87

3_정원의돌을품다

백매의언어 93
초로草露 95
소국숲 98
검은비 100
낙엽의의미 102
7월의정원에서 104
낙엽수읽기 105
정원의돌을품다 108
돌의자리 112
오월을닮았다 116
가을낙서 120
허물다 124

4_나를방목하고싶은날

거울앞에서 131
우후죽순 133
걸치다 135
일개미의생애 137
새끼손가락의노고 139
늙은남자,늙는남자 141
우리말이아침으로흐르다 143
더진하게 147
나를방목하고싶은날 151
처음이다 155
무의식 159
내눈으로그림보기 163
시간속에서 166

5_밤이내리는시간에

물구나무소년 173
유골항아리 176
밤이내리는시간에 178
꿈이야기 180
꿈꾸다 181
그길 183
만년필과잉크 187
행복의표면적 190
공감共感 194
십년뒤2 197
읍내동산집에걸린달력1 201
읍내동산집에걸린달력2 206

6_달력은시간을방전한다

살았던집 213
책상앞사진 216
번지다 218
어버이날전날 220
내습자 222
교정지를기다리며 224
쓸모 228
잊지못합니다 232
우리집엔동물이없다 235
달력은시간을방전한다 239
덮어놓고 242
여행독해법 246

부록
‘인지학으로서수필과발견의사유’ 253
‘운명,시간,문화그리고언어의향기’ 260
Ⅰ발문Ⅰ 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