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33년만의귀향
세상일중에는치밀하게계획하고오래준비한끝에이루어지는일이있는가하면,우연히기회가닿아갑작스레이루어지는경우도있다.내가학교로돌아온것은참으로우연이고갑작스러운일이었다.
어느날무심히신문을읽다가짧은기사하나에눈길이꽂혔다.내고향충북에서교사가부족해50대후반까지응시연령을대폭올려모집한다는기사였다.IMF이후40대후반이면퇴출을강요당하는마당에50대후반까지기회를주겠다니,가슴이뛰기시작했다.
젊은한때온열정을쏟아부었던교단,떠나온후에도고향처럼그리웠고,학교근처만가도,어린이들만보아도가슴이두근거렸다.너무쉽게버리고온것이늘아쉬웠지만이미닿을수없는곳으로떠나버렸다생각했는데,다시내게손짓을하고있다.
원서마감이이틀후니빠른결단이필요했다.잠시망설임도스쳤다.‘내가감당할수있을까…….과욕일까…….’
그러나내게는젊은이들이갖지못한것들도있었다.외국생활에서,작가의길에서,그동안살면서얻은다양한지식과경험들은나만의장점이될수있지않은가.무엇보다이건내게주어진마지막기회인데놓칠수는없지않은가.
신문을읽다말고뜬금없이시험을보겠다는내말에가족들의반응은냉냉했다.남들은퇴직할나이에무슨취직이냐,세상이그리만만한줄아나,남편은물론아이들도어이없다는표정이었다.그러나이기회를놓치면평생후회할것같으니시험이라도봐야겠다는내확고한의지에식구들의반대는슬그머니수그러들었다.
부랴부랴청주에내려가원서를사고필요한서류들을준비했다.원서접수마지막날긴줄에서서주위를둘러보았다.나처럼나이든사람들도눈에띄었다.놀라운것은충북이아닌서울경기강원등전국각지에서,심지어제주에서비행기를타고왔다는분도있어시험도보기전에기가죽었다.
-<일부>
교실별곡
수업이끝나고아이들이돌아가면떠나갈듯소란스럽던교실이침묵의공간으로변합니다.그공간에음악을채웁니다.모차르트,베토벤,차이코프스키,슈베르트,때로는조수미,최현수,사이먼과가펑클,비틀즈까지불러들입니다.음악이흐르는공간에그윽한향기를더합니다.아름다운음악과함께향기로운커피향을음미하는시간이면어김없이떠오르는말이있습니다.‘잭니콜슨’이주연한영화의제목이지요.
‘이보다더좋을순없다’
새로지은학교라교실은흠잡을데가없습니다.정남향이라밝고따듯합니다.교실한가운데서른여섯개의책상이가지런히놓여있고,뒤에는아이들의작품전시대와사물함,왼쪽에는시계와달력,오른쪽에는동화책들이빼곡히꽂힌책꽂이가있습니다.교실앞쪽에는각종기자재들이즐비합니다.칠판,TV,VTR,전자피아노,실물화상기,컴퓨터등.모두아이들을가르치는데필요한기기들이지요.각가지첨단시설에아이들과나의정성이더해져,교실은더없이아늑하고아름다운공간이되었습니다.
나는하루의대부분을이곳에서보냅니다.아이들을가르치고,교재를연구하고,수업자료를준비하고,학모님들과상담도합니다.그러나교실의진짜주인은따로있습니다.서른여섯명의아이들이지요.그들은공부하고노래하고장난치고,쉴새없이재잘대며웃음소리와고함소리를쏟아냅니다.아이들이머무는동안교실은살아숨쉬는생명체처럼활기가넘칩니다.
아이들이돌아간오후,교실은온전히내것이됩니다.음악을듣고,신문을보고,원고를쓰고,독서삼매경에빠지기도합니다.집보다교실이좋아퇴근후에도이런저런일거리를만들어늦게까지남아있곤했었지요.해가짧은겨울에는날이어두워진걸모르고있다가화들짝놀라뛰어나온적도많았습니다.캄캄한긴복도를발소리를죽여가며살금살금빠져나올때면‘여고괴담’한장면이떠올라머리끝이쭈뼛해지곤했답니다.
교실은내연습실이자공연장입니다.바이올린을연습하고피아노를연주하고그림을그리고,때로는나지막한목소리로노래도부릅니다.청중도관객도없는소박한공연장이내게는너무소중합니다.아늑한연습실이있어나는더많은것을배우고익힐수있었습니다.
나는교사라는내직업에만족합니다.월급이많아서도아니고명예가있어서도아닙니다.때묻지않은순수한영혼들과교감하며그들에게꿈과용기를심어주는일은무엇과도바꿀수없는보람이지요.게다가대기업임원실에버금가는널찍한교실까지덤으로주어지니더이상무엇을바라겠습니까.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