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쉼표 하나 (양장)

오후 5시 쉼표 하나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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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오후 5시 쉼표 하나》산문집
일흔 중반을 맞아 살아 온 흔적을 글로 남긴다. 홀로 왔다가 홀로 가는 게 인생이라지만, 또 어느 시인은 소풍처럼 왔다가는 인생이라지만, 제 혼자 오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누군가 때문에 여기로 왔고 또 내가 여기 왔었다는 흔적으로 남긴 인생이 있다.
그사이 쓴 글 중에서 서른 편을 골라 이번에 엮어낸다. 내 삶의 궤적을 담은 글을 고르다 보니 문학적으로 기꺼운 수확은 아니다. 해 저무는 들녘, 그루터기 사이에 남아있는 이삭을 줍는 마음으로 세상에 내놓는다.
- 허광호
저자

허광호

저자:허광호
1952년서울에서나고자랐다
경복중·고등학교와건국대무역학과를나왔다
38년동안LG와LIG계열사에서일했다
CEO로은퇴하며은탑산업훈장을받았다
전원생활을꿈꾸며한국방송통신대농학과를나오고,은퇴후에성균관대에서
철학박사(유교철학)학위를받았다.
2018년부터글을쓰기시작하여수필가로등단하였고,현재한국문인협회등
문학단체에참여하고있다.
논문《권근의천인심성합일사상연구》와공저《7인의수다,맛깔나는술이야기》가있다.

목차


출간의변5
들어가며|어디서왔다가어디로가는가?13
작품해설|권남희256

1부

닮고싶은아버지26
나를사랑했던어른들은떠나고34
냉면그릇과어머니41
뚝섬196149
여름,아리랑고개를오르다56

2부

코트자락사이로오는봄66
초겨울,찬비를맞으며71
노르망디에서는우산을76
그해사월은참잔인했다82
산사山寺의종소리처럼88

3부

팬티만입고튀어98
지금이라도용서받을수있을까108
내인생의훼방꾼114
응그래…,그렇구나…121
밑줄긋는스무살청년131

4부

마지막선택140
회색빛거리를걷다146
지금도3번국도를걷는다153
가슴은그때처럼설렌다161
다식은연탄재166

5부

풍각다방의추억176
나를키워준곳지금은멀어진곳183
남아있는나의꿈자락188
잃어버린내삶을찾아194
불안으로부터의보상200

6부

우리다시올수있을까?208
춘향春香은내곁에있었네215
시칠리아,영화의추억과함께222
새벽에깨어나는싱가포르를걷다230
가카라시마에서보는현해탄파도237

나오며|회령,언제나갈수있을까?245

출판사 서평

허광호작가는낭만적성향이강하고로맨티스트감성을품고있습니다.온화하지만봄꽃같이화창하고세련된취향의소유자이기때문입니다.미술에조예가깊고‘영상시인’으로유명한자크드미감독이1964년제작한프랑스영화〈쉘부르(Theumbrellasofcherbourg)의우산〉을감상하고엉뚱하게노르망디여행을계획합니다.왜일까요.감각적이고눈썰미최고인허광호작가에게감동을준이영화는영상미가뛰어납니다.쉘부르곳곳은,감독이원하는원색에가까운파스텔톤색채를주민들이허락해주어벽을색칠하고촬영했습니다.앙리마티스의화풍에서우산가게색감의영향을받았다고감독은밝혔습니다.허광호작가의예리한시선에놀랐습니다.
허광호작가의글을읽다보면마음이맑아집니다.독자에게깊이를강요하지않고알게모르게스며드는의도적장치들이걸리지않습니다.한없이무해하고맑은문장이‘그렇구나’를연발하게합니다.
한겨울무를먹는열가지방법이떠오릅니다.하얗기만한채특별한맛도갖고있지않은무는요리를만들어내는이에따라,그것을먹는사람에따라시시각각반응이달라집니다.청양고추한가지들어간뜨거운뭇국을먹으며시원하다를연발합니다.무가발산하는매력입니다.
허광호작품,그무맛의싱거움과가벼움에서다양한각도의깊이있는읽기를시도합니다.감정은있으나노출되지않고평면적으로보이나,절제된안정감을놓치지않습니다.‘성찰이없기보다’성찰을핑계로남의생각을덧붙이는일을함부로하지않는작가입니다.
-<권남희수필가>

〈책속에서〉

오래된앨범에남아있는아버지스냅사진생각이났다.1950년대길거리사진사들이지나가는사람을몰래촬영한후,그사진을강매하기도했다.내부모님사진첩에는그런스냅사진이몇장있는데,꾸미지않은자연스러운모습이생동감있었다.젊은시절아버지가명동거리를걷는사진이나,어린나를안고고궁을걷는사진은지금보아도멋있다.호리호리한몸매,멋진하이칼라머리,통넓은새빌로우양복은어디내놓아도손색없는멋쟁이신사다.

함경도회령출신아버지는49년무렵밤에한탄강을넘어월남했다.전쟁때피난갔다돌아와지금신세계자리에있던미군PX에서시계포를하셨다.어머니말씀은매일상자에한가득돈을담아오셨다고한다.아직휴전도안된혼란기였지만어느분야는기회의시기이기도했다.내가태어난중구삼각동,지금신한은행광교영업부근처에있던집도그때마련하였다.그러나그절정기를지나아버지장사는차츰안되기시작했다.PX를그만둔후점포는종로로신당동으로급기야는왕십리로밀리면서규모도작아졌다.아버지장사운은거기까지였다.
가세가기울면서집도삼각동에서사대문밖인신당동으로,또안암동으로점차시내에서멀어졌다.결국돈암동에서왕십리까지셋집을전전하는신세가되었다.병약하며신경이날카로웠던어머니는살림이기울자아버지에게바가지를자주긁었다.장남인나에게도어려운살림살이에서오는짜증을내곤했다.어머니를생각하면애틋하기는하지만,남들처럼순애보적인모성을느끼지못하는나는어찌보면불행한불효자다.
-<닮고싶은아버지>중에서

영화〈쉘부르의우산〉을다시보았다.1964년프랑스에서제작되었고한국에는1965년개봉되었다.내가중학교2학년때이다.더어렸을때대한극장에서〈벤허〉를단체관람으로본기억이있는데이영화는기억이없다.찾아보니중앙극장에서개봉했는데,한국에서첫흥행은성공하지못했다고한다.비슷한때멜리나메르쿠리가주연한,의붓어머니와의격정적사랑을그린〈페드라,‘죽어도좋아’〉라는영화가흥행에성공한것과는대조적이다.잔잔한〈쉘부르의우산〉은유럽문화를동경하던젊은청년들에게알려지게되면서지식인계층에서는꽤유명했다고한다.

1950년대생인우리세대는종로와명동에있던음악감상실〈셸부르〉가영화보다더유명했다.이종환DJ가운영하던그곳에서늦가을엔이브몽탕의〈고엽〉을,눈오는날엔살바토레아다모의〈눈이내리네〉를신청해서들었다.이영화는TV를통해처음접했을텐데막연히아름다운영화였다는기억만있었다.노르망디해안항구쉘부르,당대미인배우카트리느드뇌브정도만기억나는데,다시영화를보니모든대사가노래로된오페라같은영화였다.요란스런합창과군무로이루어진미국스타일뮤지컬과는격이다르다.그래서이런영화를‘시네오페라’라고부른단다.
-<노르망디에서는우산을>중에서

어린시절만약여자로태어난다면살로메가되리라생각했던적이있다.쟁반에담긴요한의기괴한얼굴과키스하는살로메의요염함에빠져들때였다.그러나현실을알고부터그런꿈은꾸지않았다.인생은내가선택할수있는것보다주어지는것이많다는것을차츰알게되었다.지나온삶을돌아보면내가선택가능했던건전공이나직업혹은배우자정도였다는생각이든다.그중배우자는인연이있어야하고대부분남편은다음생에서도지금의부인을원한다니까그대부분에속하는나도새로운선택지가없는셈이다.결국전공이나직업을다른것으로하였다면어떻게되었을까만남는셈이다.
우리때에는대학입시에서자신이원하는전공보다는성적이나시류에맞추어선택하는경우가많았다.나도예외는아니어서대학을선택할때취업이쉽다는상대무역학과를선택했다.종합무역상사가한창뜰시기라무역학과도제법인기가있었다.예상은했지만,무역학이란것이학문이라고이름붙일만한깊이가있는학과가아니었다.그건경영학과목도마찬가지여서무역이나기업경영을하는데필요한실용과목이대부분이었다.조금이론이있어보이는경제학과목을선택과목으로수강하거나혹은문과대과목을도강하곤했다.대학4년동안내전공인무역학과목은필수과목만간신히채우고나머지는엉뚱한과목으로채운형편이되었다.어쨌거나상과대졸업학력으로평생을살아왔으니현실적인선택이어느정도주효한셈이다.

고등학교때겨울인왕산고갯마루소나무한그루를보며‘동령수고송(冬嶺秀古松)’이라는싯귀에감탄하던나는국문학을전공하고싶었다.그중에서도고전문학이었다.가사문학과규방가사나시조같은쪽에관심이많았다.엄격히이야기하면국문학사를공부하고싶었다.그러나그런내마음을부모님께내가비치니펄쩍뛰시는바람에접고말았다.큰아들이고시패스해서출세하길기다렸던부모님처지에서는취직이나할수있는지의심스러운전공이었다.물론공부를좀더계속한다면대학교수가될수는있었겠지만,대학도겨우갈형편에대학원까지가서공부한다는건꿈이었다.그렇게허무하게내전공의꿈은도전도못하고끝이났다.
-<가슴은그때처럼설렌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