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살아갈힘을잃어버린사람은무엇에도감동하지않는다.
무엇인가를보고감동할수있다면그에게살아갈힘이되살아났다는뜻이다.
비판적지식인에서인생의탐구자로거듭난강상중도쿄대학명예교수가이번에는그림앞에섰다.알브레히트뒤러,귀스타브쿠르베,에곤실레,마크로스코,구마다지카보,루시리등동서고금의예술가들은세상의어떤부분을보았던것일까?그들이발가벗은몸,울퉁불퉁한손,중심없이흐트러진색을통해우리에게하려던말은무엇이었을까?그리고우리는무엇에감동하는것일까?
『구원의...
살아갈힘을잃어버린사람은무엇에도감동하지않는다.
무엇인가를보고감동할수있다면그에게살아갈힘이되살아났다는뜻이다.
비판적지식인에서인생의탐구자로거듭난강상중도쿄대학명예교수가이번에는그림앞에섰다.알브레히트뒤러,귀스타브쿠르베,에곤실레,마크로스코,구마다지카보,루시리등동서고금의예술가들은세상의어떤부분을보았던것일까?그들이발가벗은몸,울퉁불퉁한손,중심없이흐트러진색을통해우리에게하려던말은무엇이었을까?그리고우리는무엇에감동하는것일까?
『구원의미술관』은지은이가일본NHK방송사에서40년째이어지고있는인기프로그램[일요미술관]을진행하며만난예술작품에서출발하여,오늘날현기증이날정도로혼란한세상에서현대인은어디에두발을딛고살아가야하는지,우리는무엇으로부터살아갈이유와용기를얻을수있는지를잔잔하지만단단하게풀어쓴작품이다.이책을통해독자들은빛나는파열의순간을담은그림과그속에담겨있는‘구원’의의미를확인하게될것이다.
출간의의
말을걸며다가온한장의그림;
“나는여기에있어,당신은어디에서있는가?”
지금으로부터30년전어느날무거운눈구름사이로엷은햇살이비치던뮌헨에서일어난일입니다.장소는독일굴지의국립미술관알테피나코테크의한전시실.(…)바깥의쌀쌀한공기가웅장하고화려한사원같은건물의어두운장내까지흘러들어관람객은거의눈에띄지않았습니다.저는중세에서근세로접어드는시기의작품을모아둔방으로가려다가구석에걸린그림을보고그만그자리에못박힌듯꼼짝할수없었습니다.분명초상화였지만,제게는마치다른세계에서온남자가저를물끄러미지켜보고있는듯느껴졌습니다._16쪽
재일한국인이라는정체성과그럼에도일본사회에서살아남아야한다는운명의무게를견디지못하고독일로유학하여‘모라토리엄’시기를보내고있던청년강상중은어느날우연히방문한미술관에서‘한장의그림’을마주하게되었다.곧게뻗은오른손으로옷섶을여미며캔버스밖을뚫어지게바라보고있는그림은르네상스의청신한예술을보다형이상학적인경지로끌어올렸다는평가를받는알브레히트뒤러의[자화상]이었다.뒤러가28세되던해에그린이작품이던진강렬한질문앞에서청년강상중은그제야마음속에꽉차있던불안을걷어내고작고미약한희망의불빛에몸을던질수있게되었다.
뒤러의[자화상]이모라토리엄인간이던청년강상중에게던진질문은바로이책의원제이기도한“나는여기에있어,당신은어디에서있는가?(あなたは誰?私はここにいる)”이다.오늘날일본의근대화과정과사회현상등에비판의날을벼르고,한일양국의수많은독자들에게삶의희망과용기,인생의의미전달하는‘강상중’의출발점에는바로‘한장의그림’과의만남이있었던것이다.이후일본으로돌아와재일한국인최초로도쿄대학교수가되는등하나의상징으로자리매김한강상중은2009년국영방송NHK에서40년째인기리에방송되고있는[일요미술관]프로그램의사회를맡게되었다.
이번책에서는[자화상]과의만남을비롯하여[일요미술관]프로그램을통해만났던작품들을소개하며자신만의잔잔하지만단단한예술론을펼쳐낸다.특히이책에서강상중의예술론은그의개인적체험들에더해,원고집필중에발생한동일본대지진이라는현대사회의경험과결합되면서대재앙과폐허,빛나는파열破裂,그리고받아들임을통한구원이라는새로운지평을형성한다.
그림속인간과그림밖인간의만남;
“예술에대한감동은지극히개인적입니다.그러니저마다의감동과마주하면됩니다.”
지은이의예술론에서주목해야하는부분은,그의감상이예술가와자신의동일시에서시작된다는점이다.강상중은색의배합,붓의터치,소실점,예술사조등미술감상에서흔히사용하는용어와방법론을거의사용하지않는다.그보다는예술가는어떤이유에서이그림을그릴수밖에없었을까를먼저생각한다.
그는17세기에스파냐궁정화가로유명한디에고벨라스케스의[시녀들]과[앉아있는궁정광대의초상]을보면서,화가가콘베르소(conversos,그리스도로개종한유대인)였다는사실을떠올린다.
저는벨라스케스가난쟁이를신기한볼거리로간주하거나혹은냉정하게거리를둔것도아니었고,인간애적인시선으로그린것도아니었다고생각합니다.그저그들을자신과같은처지의친구로여겼지않나싶습니다.이는벨라스케스가자신의신분을숨겼다는것과관련있을지도모릅니다.그는콘베르소로서의과거를지움으로써궁정화가겸관리라는높은지위를얻었습니다._29~30쪽
이처럼살아남기위해유대인으로서의정체성을감추고기독교인인체해야했던벨라스케스의상황과재일한국인으로서살아남아야만했던강상중자신의경험이겹쳐지며,그림을대하는그만의시각을엿볼수있다.
특히19세기말오스트리아빈을화려하게장식했던구스타프클림트와에곤실레의그림을설명하는장면에는‘강상중식그림읽기’의정수를맛볼수있다.강상중은클림트의[다나에]와실레의[장식이붙은담요위에누운두소녀]를관객에게‘발가벗은영혼’을드러내는작품으로소개한다.이를테면현란하고화려한클림트의그림은‘장식으로서의나체’를,반대로일체의장식없이거칠고창백한몸을드러내는실레의그림은‘내면으로서의나체’를보여주지만,둘은자신안에서동전의앞뒤같이한몸을이루고있다는것이다.동전의정체는에로스에대한감각이다.지은이가관능과환의의성애와퇴폐와절박의성애를동시에바라는역설이자신안에존재한다고인정하는대목에서우리는‘인간강상중’의새로운매력을발견하게된다.
묵시록의한장면에남겨진재생그리고구원;
“언젠가그림이내민구원의손을잡고함께춤추는날이올것이다.”
대형선박이정박한항구바로옆에무언가를넣어둔그릇처럼우뚝솟은탑.심지어그꼭대기와벽면이무너지기시작한듯보이는거대한건조물은,지진이후수소폭발과방사능유출을일으키고전일본을패닉으로몰고간후쿠시마제1원자력발전소와마치쌍둥이같습니다._129~132쪽
지은이는개인적체험으로부터시작한예술론을자신의주요테마라할수있는‘시대와마음의병’으로까지전개한다.마침이책을집필하던당시에3·11동일본대지진과후쿠시마원자력발전소폭발사고가발생했다.파도에휩쓸려온뻘과쓰레기더미에잠긴도시,생명의흔적조차남지않은그곳에서강상중의사유는다시시작된다.
16세기네덜란드에서활동한피터르브뤼헐의대작[죽음의승리]와[바벨탑]앞에서그는한시대의종언을떠올린다.오늘날인간이벌인모든행위는거대한자연앞에서어떤의미도가질수없다,고도의문명이제아무리견고하게인류의안전신화를높이쌓는다하더라도난폭한자연이도래하는순간모래성처럼쓰러질수밖에없다.바로이지점에서강상중은3·11을통해‘안전신화시대’는끝났다고선언한다.
그러나그의선언은절망을향해달려가지않는다.오리려끝을인정하고앞선시대와사회를뒤덮고있던허무를비워낼때그자리에감동이깃들어새로운무엇을만들어낼수있다고말한다.이책에서지은이가보여주는수많은예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