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잡지 (조선 최고의 심미안 성해응의 못 말리는 서화 편력기)

서화잡지 (조선 최고의 심미안 성해응의 못 말리는 서화 편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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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성해응의 『서화잡지』는 당대 조선의 뛰어난 서화가나 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인상 비평을 짧은 분량 안에 솔직하고 간결한 문체로 남겼는데, 20~50자 이내의 짧은 분량 안에 서화가에 대한 정보, 시문과 화풍의 특색, 서화와 관련된 일화 등을 간략하고도 적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서화 작품의 중요한 특징과 배경, 나아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서화가나 주변 사실을 생생하게 그려 조선 후기 서화사를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저자

성해응

저자성해응(成海應,1760~1839)의자는용여(龍汝),호는연경재(硏經齋)·난실(蘭室),본관은창녕(昌寧)이다.집안대대로경기도포천지역에거주한그의가문은5대조성후룡(成後龍)이인조때우의정을지낸김상용(金尙容)의서녀(庶女)와혼인하면서서족이되었다.안동김씨집안과긴밀한관계를유지했으며성해응의종고조인성완(成琬),종증조성몽량(成夢良),부친성대중(成大中)이3대를연이어통신사행에참여했을정도로문학적역량을공인받은집안이었다.이처럼성해응집안은제술관과서기등세직으로서통신사행에참여하고,7대에걸친연이은사마시합격자를배출하며조선후기서족명문가로서의위상을공고히했다.성해응은24세되던1783년(정조7)에진사시에합격한뒤29세에규장각검서관으로중앙에진출했으며,1800년까지줄곧검서관으로재직하면서각종국가편찬사업에참여했다.이후상의원별제,통례원인의,금정찰방,음성현감등을거쳐1815년에고향포천으로돌아가은거했다.150여권에달하는《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을저술했는데,18~19세기의학문과사상,문학,역사,지리,서화,고동(古董)등다양한분야에대한백과전서식의저술로자료적가치가크다.1839년80세의나이로세상을떠났다.

목차

차례
서설
1섭국중의비
2신우비
3고려공민왕의필적
4자앙조맹부의묵적
5장공소식의묵적
6일본에서온편지
7십주구영의그림
8우리나라현인들의필적
9화묘의비문
10장천의비문
11왕우군의필적
12순화각첩
13청허당편액
14석양정이정의그림
15배와첩
16경현첩
17옥동이서의필첩
18봉래양사언의필첩
19보현비
20우암송시열의필적
21사천이병연의시첩
22능호이인상의편지
23경산이한진의전예첩
24정문보가임모한역산비
25석고문
26예학명
27자앙조맹부의글씨
28배와김상숙의편지
29석봉한호의천자문
30보현당첩
31집안에소장된법첩
32조아비
33중은첩
34오리이원익의필적
35미수허목의편지
36동춘당송준길과노봉민정중형제의편지
37집안에소장된옛편지
38또다른옛편지
39인조대왕묵죽
40수운유덕장의묵죽
41단원김홍도의그림
42사천이병연이쓴소헌의만시
43석파김용행의그림
44겸재정선의그림
45능호이인상의그림
46허주이징의그림
47호생관최북의그림(1)
48단원김홍도의8폭병풍
49연담김명국의그림
50남양홍가신청난비
51척주비
52영업의글씨
53탄연의글씨
54대감국사비
55혜진탑비
56낭혜화상탑비
57고려의옛비
58이인문의그림
59겸가당아집도
60준풍
61인각사비문
62김생의필적
63충정공의묵적
64오정이의병의필첩
65경산이한진이쓴〈침병소기〉
66무목악비의필적
67종요의묵적
68왕씨의진적
69난정첩
70호생관최북의그림(2)
71흥법비
72만계정방의그림
73다호비
74도산기
75도산십이곡
76부채그림
77안진경의〈녹포첩〉잔결본
78석치정철조의그림
79예학명필첩
80정료위의인장
81동방화상찬
82석대효경
83성교서
84창려집
85백월서운탑비
86양봉나빙의난그림
87수옥장도악의그림
88표암강세황의그림
89해양나열의필적
90월촌나걸의묵적
91수헌서무수의필적
92설옹유후의필적
93원교이광사의필적
94다시,성교서
95조맹부가쓴〈주금당기〉
96악의론
97조맹부의초서천자문
98오도자의그림
99연광정편액
100한수재권상하의묵적
101율곡이이의묵적
102수운정편액
103능호이인상의전서
104백사이항복의필적
105상서석경
106안기의낙관
107참봉이광려의글씨
108자하신위의묵죽
109봉래양사언의필각
110맹영광의그림
원문

출판사 서평

서화잡지는18세기조선의검서관인성해응이뛰어난서화가나그들의작품에대한인상비평을솔직하고간결한문체로남긴감상집이다.그는서화에대한남다른관심과열정으로신라시대부터18세기조선중국일본등시공간을넘나들며서화작품을섭렵했으며,여기에는편지와서첩등집안대대로내려온귀중본도포함되어있다.서화가에대한정보,시문과화풍의특색,서화와관련된일화등을간략하고도적실하게기록했으며,문사에대한기록중자신의견해와다르거나오류가있으면다양한자료와전거를활용하여작품의진위여부를규명하고고증했다.성해응이뛰어난심미안으로선별한서화작품에대한110제의제발은18세기조선뿐아니라동아시아전반에서향유된예술의경향과흐름을파악할수있는귀중한자료이다.

1.조선최고심미안의소유자성해응,그의못말리는서화편력기
-검서관출신문인이엄선한당대최고의서화들,《서화잡지》

옛사람들은해서·전서·초서등다양한서체로글씨를쓰고이를가보로물려주며대를이어감상했다.스마트폰이나노트북으로기록하는것이일상인요즘도맘에드는한구절의글을손글씨로정성들여쓰고그림을곁들이는‘캘리그래피’가취미로각광받고있다니,잘쓴글씨에는시대를넘어선특별한매력이있는듯하다.지식인들의삶과지향이녹아든18세기산문문학을엄선하여엮은‘18세기지식총서’의아홉번째책《서화잡지-조선최고의심미안성해응의못말리는서화편력기》에서는서화(書畵)취미에몰두된한사람을소개한다.
서화에대한감상과평110제(題)를담은《서화잡지(書畵雜誌)》는조선의검서관성해응(成海應,1760~1839)이몰두했던취미활동의전모를보여준다.《서화잡지》는성해응의《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속집책16에수록된제발(題跋)만을모은것으로,그가평생수집하며감상한작품과서화가들에대해남긴기록들이다.이책은18세기조선의대표서화가와작품들에대한인상비평을중심으로,서화에대한한사람의관심과취향,심미안및작품에얽힌흥미롭고도유용한정보가가득하다.
성해응은정조때규장각검서관으로중앙에진출한인재였다.그는규장각에소장된수많은국내외진귀한서적을접했고,이덕무·유득공·박제가·이서구등당대를대표하는학자들과밀접하게교유했다.그의집안은3대째통신사행에참여할정도로문학적역량을공인받았던서족명문가인데,성해응은나열·이한진·김상숙등이름난예술인들과깊이교유했던부친성대중과함께예술모임에자주참여하면서자연스럽게서화에대한높은식견과심미안을지니게되었다.《서화잡지》는조선과중국및일본,그리고신라시대의김생(金生)부터18세기에활동한서화가에이르기까지성해응이엄선한수많은서화작품을망라하며,여기에는편지와서첩등집안대대로내려온귀중본도포함되어있다.중국서화에대한제발27제,일본서화제발3제,조선과관련한제발80제로,총110제의제발중‘글씨[書]’에대한기록이중심을이루고있으며,중국의서화에심취했던여느학자들의제발문학과달리정선·김홍도·최북·강세황·나열·김상숙·이인문등성해응과동시대에활동한18세기대표서화가와서화작품에대한제발이상당수를차지하고있다.《서화잡지》는18세기조선의화단뿐아니라동아시아전반에서향유된예술의경향과흐름을파악할수있는귀중한자료이다.

2.서화에매료된18세기지식인들
-18세기조선화단과제발(題跋)문학의풍경

조선시대사대부문인들이서화를감상하고소장하는취미는고려시대에형성된이후점차확산되어,정치사회적으로안정되고도시경제가성장하면서다양한문화적욕구가분출되었던영·정조시대에보편화되었다.서화를감상·소장하는취미에서더나아가이를문학으로기록하는제발(題跋)문학도활발하게창작되기시작했다.서화의가치를적극적으로인정한이용휴와중국의서화이론을체계적으로기술한서유구,강세황·이영유·남공철등은제발문학의꽃을피운주역들이었다.이들이대부분중국의서화에대해경도되어있다면성해응의《서화잡지》는당대조선의뛰어난서화가나그들의작품을중심으로다루고있다.이책은인상비평을짧은분량안에솔직하고간결한문체로남겼는데,20~50자이내의짧은분량안에서화가에대한정보,시문과화풍의특색,서화와관련된일화등을간략하고도적실하게기록하고있다.서화작품의중요한특징과배경,나아가그동안잘알려지지않았던서화가나주변사실을생생하게그려조선후기서화사를입체적으로살펴볼수있다.

이것은단원화사(檀園畵師)의〈화조도(花鳥圖)〉이다.내가생각하기에,한번에붓을휘두른것으로그다지유념해서그린것은아닌듯하다.그러나빼어난기운이끊임없이부드럽게오르내리는듯하니참으로훌륭한작품이다.화폭마다모두선친께서직접쓰신글이있으니,자손된입장에서귀하게여기고잘간직해서잃어버려서는안될일이다.
-〈단원김홍도의8폭병풍〉(118쪽중에서)

내가우의정이태좌(李台佐,이광사)의비문을본일이있는데아주훌륭하여한·당시대의여러비석에견주어도부끄러울것이없었다.일찍이그는상자에가득한글씨를첩에게주어생활하도록해주었다.원교가약산도(藥山島)에서죽자,그첩이글씨를판다는소식을들은사람들은다투어높은가격으로사들여마침세상에널리전해지게되었다.남쪽사람들중에그의서법을모방한이가가장많았다.
-〈원교이광사의필적〉(196쪽중에서)

성해응은서화에대한기록중오류가있으면다양한자료를확인하고증거를원용하여고증하려고했다.예를들어가장오래된석각(石刻)이라고전해지는신우비가여러자료를근거로위작임을주장하기도하고,송나라주요학자들의글에제발을더한〈경현첩〉의필법을확인하여그글씨가동기창의것이아님을완곡하게드러내기도한다.부친성대중이통신사로일본에갔을때가져온기무라겐카도의〈겸가아집도〉나사와도토코의〈다호비〉탁본등에대한평가와함께그내력도간략하게소개하고있는데,이러한기록은무엇보다한·중·일을아우른서화가와서화에대한성해응의남다른식견과감식안을바탕으로하고있다.

고정림(顧亭林)은이에대해이렇게말했다.
“한나라이전에는이런비가보이지않는다.하자일(何子一)이축융봉(祝融峯)아래에서처음발견하여손수모각해서전한후에형산수령이찾아보았지만이미그장소를찾을수없었다.지금우비라고말하는것은글자가기이하여서법에맞지않고문장이이상하여조리가없으며운자가이상하여옛법에맞지않으니,위작으로판단된다.”
이두사람의의견을살펴보면지금전해지는신우비는바로하자일이판각한본이다.
낭선군(朗善君)이연경(燕京)에갔다가비문탁본을얻었는데그내용가운데‘승제왈차,익보좌경(承帝曰嗟翼輔佐卿)’등의구절이있으니,바로이런부분이고염무가말한조리에맞지않는부분이다.요순시절에어찌‘경(卿)’이라고부른적이있었겠는가.
다른것들도모두이와같이유추해볼수있다.
-〈신우비〉(29쪽중에서)

〈경현첩(景賢帖)〉은염계(濂溪)·명도(明道)·이천(伊川)·횡거(橫渠)·회암(晦菴)다섯선생의화상(畵像)으로이루어졌다.왼쪽에다섯선생에대한찬(贊)을자세히썼고,하단은바로한음(漢陰)이상국(李相國)의글씨이다.찬은누가쓴것인지모르겠다.어떤이는현재(玄宰)동기창(董其昌)의글씨라고하는데,현재의필법은수려하고자연스러우니어떻게이처럼장중한글씨가그의글씨라할수있겠는가.
-〈경현첩〉(57쪽중에서)

《서화잡지》는본격적인비평서라기보다서화에대한취와식견을지닌한지식인의서화감상에대한단편기록에가깝지만,서화가들의특성과작품의장단점에대한정확한서술은서화에매력을느끼는독자들에게충분한공감대를선사할것이다.《서화잡지-조선최고의심미안성해응의못말리는서화편력기》는성해응의서화취미와감상및비평에서나아가동아시아문화와예술을이해하는데귀중한자료인《서화잡지》를우리시대의보편적언어로풀어냈으며,독자에게도움이될만한친절한정보를주석으로달았다.제발에서저자가언급하였으나소실되거나수록할수없는작품의경우같은작가의유사한작품을실어독자의이해를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