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통사

한일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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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교토에 얽힌 한일관계의 역사를 만나다
〈교토에서 본 한일통사〉는 교토라는 창을 통해 한일관계의 역사를 살펴보는 책이다. 흔히 천년고도라고 불리는 교토는 1000년 넘게 수도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역사문화도시로 존재해왔다. 그래서 교토는 한국과 일본이 역사, 문화, 경제 등 여러 면에서 가까운 관계를 맺어온 이웃나라라는 사실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도시다.

이 책은 저자가 답사한 교토의 유적과 유물을 화제로 삼아, 교토에 깃든 한일관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유적과 유물에 대한 인상이나 감상은 답사 당시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거기에 얽힌 역사적 사실이나 연구성과는 관련 문헌을 조사해 보충하였다. 내용을 9개의 키워드로 나누어, 교토의 도시역사와 그에 담긴 한일관계 역사의 핵심을 살펴본다.

저자는 현장에서 임진왜란의 발원지이자 메이지 유신의 진앙인 교토의 어제를 생생하게 되짚어본다. 교토의 역사현장에서 다듬은 이 책은 교토 여행을 즐기면서 한일관계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람들이 한일관계의 역사를 정확히 알고, 상생의 역사인식을 갖을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해주는 책이다.
저자

정재정

정재정 교수와 함께 가는 한일통사기행
저자는 10여 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학생과 일반인을 위한 ‘역사기행’을 인솔해오고 있다. 또한 광화문에서 주한 일본인에게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일본어로 강의한다. 한국사람이 일본인들을 이끌고 일본을 여행하는 일이 일견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현장에서 생생히 역사를 되짚어보는 만큼 더욱 열린 마음으로 두 나라의 역사를 대하게 된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여행객은 한 해에 각각 20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이 그저 여행안내서에 실린 대로 외국의 거리를 걷는 게 아니라 현장을 방문하여 두 나라의 관계를 기억한다면, 역사 대화는 한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목차

책을 내면서

창신의 역사, 교토 2000년
옛스러우면서도 새로운 교토
역사가 만든 교토 / 교토의 자연환경과 문명의 탄생 / 헤이안쿄의 건설 /
중세의 교토, 무사의 칼날에 휘둘리다 / 문화·종교·경제의 중심, 근세 교토 /
법고창신의 지혜로 근대를 열다

도래인과 한반도의 영향, 교토의 문명
누가 교토를 개척했는가?
도래인의 물결 /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신비로운 미소 / 기요미즈데라와 백제계 도래인 /
도래인이 만든 교토의 신앙세계 / 백제와 덴노의 인연

일본의 지성이 흠모한 신라의 걸물(傑物)
무역제왕 장보고의 그림자 / 일본에 미친 신라 불교의 영향 /
고잔지의 의상·원효 대사 두루마리 그림 /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로맨스

무사의 세상, 교토의 변신
무사의 등장과 바쿠후의 성립
섭관정치와 장원공령제 / 원정의 개시와 가마쿠라 바쿠후의 성립

전국동란과 선종사원의 융성
무사집단의 권력투쟁 / 선종사원의 발달과 쇼코쿠지 / 긴카쿠지와 난젠지

임진왜란과 교토의 조일 갈등
풍운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교토 개조
오다 노부나가, 장작불 같은 권력 / 히데요시의 교토 개조 / 사치의 극치, 히데요시의 주라쿠다이 /
투라쿠다이의 동상이몽 / 도요토미 가문의 영욕을 지켜본 호코지 /
히데요시의 마지막 거처, 후시미 성 / 다이고지와 히데요시의 벚꽃놀이 /
센 리큐를 죽인 히데요시의 열등심리

교토에 떠도는 조선인의 원혼
임진왜란의 발원지 교토 / 조선인의 귀와 코를 묻은 이총 /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 노예 /
일본에 유학의 씨를 뿌린 피로인 학자 / 조선문화의 약탈과 활용 /
울산의 동백나무까지 파간 가토 기요마사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한 한일의 평가

교린교역과 교토의 활력
지략과 간계가 뒤엉킨 임진왜란의 강화회담
탁월한 외교가 송운대사 / 송운대사와 가토 기요마사의 전진회담 / 쓰시마번의 조일 강화공작 /
송운대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교토회견 / 상호이해의 지름길, 한일관계사 기행

갈등을 평화로 포장한 사절외교
조선의 강화조건과 쓰시마번의 국서위조 / 고육지책의 회답겸쇄환사 / 임진왜란 전후처리의 교훈 /
조일외교의 창구, 쓰시마와 이정암 윤번제 / 정탐과 교린 사이를 오간 통신산 /
통신사의 여정, 환대 속에 꽃핀 성신외교 / 통신사 외교의 변질, 역지통신 /
통신사, 관광상품으로 부활하다

비단·인삼·은화의 교역과 교토의 번영
동아시아에 꽃핀 사무역 / 교토의 국제무역로, 다카세가와 / 동아시아에 열린 무역 고속도로 /
니시진의 비단과 염색 산업 / 조선인삼 열풍과 일본 국산화 /
동아시아 무역의 쇠퇴, 3국의 방향은? / 조일관계의 새 국면

메이지 유신과 교토의 재생
유신의 활극, 무너지는 교토
혁명의 코드로 교토를 다시 보자 / 개항의 수교, 험악한 민심 / '금문의 변', 불타는 교토 /
메이지 유신의 디자이너 사카모토 료마 / 데라다야, 사쓰마 번 급진파 무사의 피살 /
이케다야, 신센구미의 존왕양이 지사 살상 / 니조조와 고쇼, 메이지 유신의 총본산 /
근대 덴노제 국민국가의 확립 / 교토의 야스쿠니 신사, 료젠묘역

교토의 재생, 근대도시로의 변신
교토의 위기, 도쿄 천도 / 소수사업, 교토의 부활 / 정도 1100년 기념 사업 /
교토인의 긍지, 지다이마쓰리 / 영화, 미야코오도리, 시다레자쿠라 /
교토의 3대 문화권 - 니시진, 무로마치, 기온 / 학문과 학생, 재생의 심장

한국강점, 교토의 충혼과 애련
제국일본의 한국침략
한반도의 국제정세 / 제국일본의 대한제국 폐멸 / 한국강점을 어떻게 볼 것인가?

충혼과 애련을 증언하는 유적
조선인의 메이지덴노릉 공사 / 조선인의 메이지덴노 무덤 참배 /
노기 마레스케의 신사, 충혼의 화신 / 한국병합기념비, 일선동조의 역사인식 /
무린안, 침략자의 별장 / 조라쿠칸, 이토 히로부미와 순종황제의 자취

한국지배, 교토 한국인의 생활
일본에 온 한국인, 그들의 삶
재일 한국인의 증가 추세 / 재일 한국인의 생활과 민족운동 / 간토대진재와 한국인 학살 /
일본의 한국인 관리와 전시동원 / 재일 한국인의 귀환

한국인 노동자의 생활과 저항
니시진 염색업과 한국인 노동자 / 비와코 소수공사, 한국인 노동자의 참여 /
한국인 건설노동자와 민족운동

한국인 유학생의 애환과 민족운동
한국인의 일본유학과 교토 / 한국인 유학생의 조직과 활동 / 한국인 유학생과 교토의 대학 /
윤동주, 한 점 부끄럼 없이 산 청년시인 / 송몽규, 민족을 끌어안고 죽인 청년지사 /
정지용, 민요의 가락을 신시로 살려낸 민족시인

상생공영, 한일연대의 교토
제국일본의 붕괴와 민국일본의 전개
연합군최고사령부의 일본점령정책 / 한국전쟁과 미일안보동맹 / 일본의 경제성정과 국교회복 /
55년 체제의 동요와 사회운동의 확산 / 일본사회의 보수화와 한일관계의 변화

상생공생을 촉구하는 한일연대의 사적
공산주의운동과 해방전사비 / 한국인 유골이 안치된 만주지 /
마이즈루 항의 우키시마 호 순난자 추도비 / 한일연대로 지켜낸 우토로의 한국인 거주지 /
한민족의 마음을 전하는 고려미술관

마치며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왜 교토인가?
1592년 3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20만 대군을 끌어모았다. 침략군은 어디서 출발했을까?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근대화 혁명 메이지 유신이 진행됐던 20년간, 쇼군(將軍)과 덴노(天皇)의 지지자들이 서로 죽고 죽였던 도시의 뒷골목은 또 어디일까? 답은 모두 교토(京都)다.
교토는 흔히 천년고도(千年古都)라고 불린다. 794년 간무덴노가 수도를 정한 뒤 메이지덴노가 1869년에 도쿄로 옮겨갈 때까지 1000년 넘게 수도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역사문화도시로 존재했다. 그래서 교토는 한국과 일본이 역사·문화·경제 등 여러 면에서 가까운 관계를 맺어온 이웃나라라는 사실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도시다.
교토를 방문하는 한국인은 한 해 수십만 명에 달하지만, 몇몇 이름난 절이나 관광지를 찾아가 둘러볼 뿐, 정작 온 도시에 가득한 한일관계의 현장을 찾아가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사실, 교토를 방문하면 반드시 들러보는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역시 백제계 도래인(渡來人)이 지은 절로서 한국과 일본의 오랜 관계사를 증언하고 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돌아오기 일쑤다.

16세기 최악의 국제약탈전쟁 : 임진왜란
역사란 기억의 묶음이다. 과거의 사실보다 그 기억으로서 존재한다. 1592년부터 7년간 한반도에서 벌어진 하나의 전쟁을 한국은 ‘임진왜란’, 일본은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중국은 ‘원조선(援朝鮮, 조선을 구해주었다는 뜻)’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기억되는가에 따라 이름마저 달라지는 역사인식은 오늘날 역사분쟁이 끊이지 않는 근본 원인이다. 그런데 ‘임진왜란’의 예는 역설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뗄 수 없는 역사적 공동체 운명으로 얽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14만 명의 조선인이 끌려간 노예사냥전쟁이자, 조선의 책·그림·도자기 등 문화예술품은 물론 가축과 나무까지 가져간 국제약탈전쟁이었다. 일본은 조선에서 빼앗은 인적?물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근세문화를 발전시킨 반면, 조선은 그 손실을 치유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아야만 했다. 어쩌면 이후의 역사에서 두 나라가 서로 다른 운명을 걷게 된 것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전쟁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오늘날 교토의 도시경관을 만든 사람이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정권을 잡자, 강력한 권력을 휘둘러 자신의 화려한 거처를 만들고, 성벽을 쌓고, 곳곳에 산재하던 사원을
한 데 옮기는 등의 대규모 토목공사를 끊임없이 벌였다. 급히 공사하느라 멀쩡한 건물의 담벼락과 지붕을 뜯어다 썼다니! 잘 닦인 길로 구획된 계획도시이자 ‘꽃비단’ 같다고 찬양되던 우아한 고도(古都) 교토를 단 6년 동안 완전히 지워버린 셈이다. 그 기간은 히데요시가 최고권력자인 쇼군으로 교토에 군림했던 기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렇듯 철저히 난폭한 방식으로 교토를 개조한 것만 봐도 당시 무장들의 일처리가 어떠했나 잘 알 수 있다. 히데요시는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 그 수로 부하장수의 전공을 가늠했고, 뒤를 이은 도쿠가와 바쿠후의 쇼군들은 그때 벤 조선인의 귀와 코를 묻은 무덤〔耳塚〕을 참배하도록 통신사를 압박했다. 조선침략이 시작된 곳도 무고한 민중의 잘린 귀가 묻힌 곳도 모두 교토다.

한국과 일본, 운명의 갈림길 : 메이지 유신
바쿠후를 무너뜨리고 덴노에게 정권을 돌려주려는 정치혁명, 메이지 유신이 전개된 1850년대 중반부터 1870년대 중반까지 혁명의 현장, 교토에서는 보수와 개혁, 폭력과 탄압, 배반과 타협, 혁명과 전쟁의 드라마가 숨 가쁘게 전개되었다. 지금도 거리 곳곳에서 유신지사 아무개가 은거했던 곳, 아무개가 죽은 곳 등을 알리는 표석을 발견할 수 있다.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고 덴노가 권력을 되찾아 황도(皇都)의 자존심을 세웠지만, 메이지덴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쿄로 천도하면서 교토는 정치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비록 정치의 중심지는 도쿄에 양보했지만, 역사와 문화, 그리고 경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을 벌이며 다시 한번 활기찬 대도시를 건설했다. 특히 산을 뚫어 터널을 내고 바로 오사카 등 항구와 연결되는 교역로를 개척한 비와코 소수(疏水)공사로 오늘날 오랜 역사에 기반한 거대한 관광산업을 일궈냈다.
메이지 유신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근대화운동이다.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해 부국강병을 추구하면서 서구 열강과 함께 제국주의의 길을 갔다. 반면 조선은 그런 일본의 확장정책에 희생되어 국권을 빼앗겼으니 우리에게도 메이지 유신은 의미심장한 역사의 분수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