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책꽂이 (건축가 서현의 인문학적 상상)

상상의 책꽂이 (건축가 서현의 인문학적 상상)

$14.00
Description
문장이 벽돌이 되고, 상상이 기둥이 되는,
이상한 마을의 건축가
문장을 벽돌로, 상상을 기둥 삼아 지어진 이상한 마을! 인문적 건축과 도시를 논해온 건축가 서현이 설계도를 벗어나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을 감행했다. 출처가 제각각인 이야기들이 엇갈리고 겹쳐지며 펼쳐지는 때로는 엉뚱하고, 때로는 논리 정연한 어떤 상상의 기록.
저자

서현

저자서현
서울대학교건축학과와동대학원,미국컬럼비아대학교건축대학원을졸업한후한양대학교건축학부교수이자건축가로활동중이다.건축을이루는공간조직은사회조직의물리적구현이라생각하며,그사회를알기위한방편으로여행과독서가최선이라믿고있다.
인문학적건축을알린책『건축,음악처럼듣고미술처럼보다』를시작으로『건축을묻다』『배흘림기둥의고백』『빨간도시』『건축가서현의세모난집짓기』등을펴내며건축과대중사이에놓인담을부지런히허물고있다.주요작품으로는〈김천상공회의소〉〈해심헌〉〈효형출판사옥〉〈문추헌〉등이있다.

목차

이상한문진

Ⅰ.시간과공간
공짜글자
고물일기
질주본능
회중시계

Ⅱ.정치와외교
개굴개굴
별주부전
파리대왕
스팸메일
오합지졸

Ⅲ.동화와우화
노란버스
컴맹탈출
오대독자
테마파크
백설공주
신데렐라

Ⅳ.종교와인간
종교개혁
로제타석
염라대왕
아프리카
동방박사
어린왕자

Ⅴ.역사와해석
단군신화
삼국유사
흥남부두
훈민정음
신사임당
임진왜란
사도세자

Ⅵ.과학과사회
사피엔스
오토바이
조건반사
꿈의해석

맺는말-꿈과꽃

출판사 서평

‘건축에대한’글쓰기에서
‘건축적’글쓰기로!

멀게만느껴지던건축을대중의테두리안으로가져오는데기여한인문건축서『건축,음악처럼듣고미술처럼보다』의저자서현교수가조금은독특한책으로돌아왔다!이책은‘건축에대한’글쓰기못지않게‘건축적’글쓰기에관심이많다고밝혀온저자의숙원을위해잘깔아놓은멍석이었던셈이다.
서문에서밝히듯,그는건축설계도에서벗어나‘제멋대로깨진채쌓인벽돌도,줄눈안맞게붙여진타일도,구멍이숭숭난콘크리트도없는’문장으로구축된세계에뛰어들었다.
개인홈페이지에연재한서평을엮어『또한권의벽돌』(효형출판,2011)을냈을정도로저자는분야를막론하고어마어마한독서량과해박한지식을자랑한다.그래서일까?그의상상은고전과동화,종교,역사,과학을마구넘나든다.
책제목이‘책꽂이’인것도이책에수록된글의팔할이지금까지그가섭렵한책들의어딘가에서빚지고있기때문이며,그가내놓은이책한권이또누군가의책꽂이한편에자리할것이기때문이리라.

집요한질문과촘촘히짜인논리로유명한그의글쓰기는이책에서도여지없이발휘된다.하지만지금껏논리적글쓰기를지향했던서현교수가새롭게시도한상상은뭔가남다르다.‘논리’와‘상상’이라는,얼핏모순적으로느껴지는이둘의조합은이책을통해저자만의독자적인창작방식으로자리잡았다.굳이이름붙이자면‘건축적상상’,‘논리적상상’이라고나할까?그리하여제목이네글자로맞춰진각각의꼭지는이한권의책을이루는벽돌하나로,각장(章)은이책의구조전체를떠받치는기둥처럼보이기도한다.

“그런너는얼마나다른데.”
상상으로집을짓는건축가가
자신의상상력을시험하다

이책의출발은이렇다.건축은땅위에건물이라는물리적인실체를짓는작업이다.따라서건축에서요구되는상상은비현실적인공상또는망상과는구별된다.우리가‘상상’하면흔히떠올리는‘팔이등에붙은인간’들을위한건물이아닌지극히합리적이고설득가능한,모든사람의머릿속에도면이그려지고현실에서구현가능한상상이어야하는것이다.대학에서학생들을가르치는저자는공교롭게도상상력이중요한덕목가운데하나인건축과의신입생들에게서자주이능력의부재를목도한다.그리고그는자문한다.‘그렇다면과연나는어디까지상상할수있단말인가?’

이책에서저자는상상의토대위에있되지극히현실적인건축의세계에몸담아온건축가로서비로소건축이라는틀에서벗어나,어떤제약도개의치않고마음껏상상의날개를펼친다.그실험은새로웠으며,즐거운작업이었다.

단어,문장,이야기를
쌓고,뒤집고,비트는
정의불가능한상상종합세트

오랜기간다져진인문학적토양을바탕으로쓰인그의글은결코술술읽히지않는다.그소재가우리에게너무나친숙한것이라해도,정작말하고자하는대상은숨겨져있을뿐만아니라여러요소가돌발적으로튀어나오고,예상치못한방향으로겹쳐지며,짜맞춰지기때문이다.

이한편의거대한우화(寓話)는일견잘알려진일화나사실에서가져다쓴이야기의나열로보이지만기존의상식을가차없이깨고있다는점에서파격적이며,전복적이다.그의글에서어린왕자는구미호로둔갑한여우의유혹을이겨낸예수의모습으로(「어린왕자」),그유명한‘파블로프의개’실험에서과학자파블로프는개가침을흘릴때마다종을치려고안달이난조건반사의대상으로역전된다.(「조건반사」)그런가하면미녀의대명사백설공주는눈·코·입을죄다뜯어고친성형미인으로(「백설공주」),지극한효녀심청이는악덕파워블로거로등장한다(「컴맹탈출」).이렇듯이책에서는우리머릿속에고정되다시피한인물과사건들이쉴새없이‘둔갑’을거듭하고,새옷을갈아입는다.

마치콜럼버스의달걀처럼시간과공간,등장인물의성격과입장만살짝바꾸어놓았을뿐이지만쉽사리떠올리기는어려운이‘역발상’들을따라가다보면어느순간탁하고무릎을칠수밖에없게된다.글속에숨겨진각종비유와장치는독자에게숨은그림찾기나퍼즐맞추기를하는듯한즐거움을선사한다.처음에는왜이이야기가불쑥끼어들었는지모르겠다싶다가도,그리길지않은각꼭지를찬찬히읽다보면전체의윤곽이비로소눈앞에드러나게되는것이다.

『빨간도시』의저자가적나라하게펼치는
‘웃픈’한국사회의민낯

건축을사회학적시각으로바라본전작『빨간도시』(효형출판,2014)에서와같이,저자는건축과사회의관계를끊임없이관찰하고,연구해왔다.‘건축사회학’이라고부를수있는그의독특한관점은이책에서도어김없이드러난다.주로우화나패러디의형식으로낱낱이까발려지는한국사회의민낯을저자는그만의필치로그려내는데거침이없다.한국인이라면누구나공감하지만누구도쉽게해결할실마리를찾지못하는고질적병폐를때로는거칠게,때로는우스꽝스럽게펼쳐내는그의입담에우리는통쾌하게웃음을터트리는한편,현실을부인할수만은없는씁쓸한마음에쉽사리얼굴을붉히고말것이다.요즘유행하는,말그대로‘웃픈(웃기면서도슬픈)’블랙코미디의향연이아닐수없다.

이책을살피다보면북한의김정은체제,최순실국정농단사건과G20정상회담등최근의국내현안과잊히지않는사건들,우리사회에만연한속물적행태,정·재계의온갖비리와부정부패,더나아가인간본성에대한성찰이줄줄이딸려나온다.저자는소위‘역사적가정’과때로는SF를방불케하는‘우의(寓意)적’기법을자주구사하는데,과거의어느시점으로거슬러올라가그때가지금같다면어떨까가정해보는데서비롯된상상,아니면『이솝우화』나조지오웰의『동물농장』을연상시키는,사실상동물의탈을쓴인간의이야기가그것이다.특히대한민국전반의상상력부재를꼬집는맥락에서경쟁위주의입시교육을비꼬는가하면(「신사임당」),새털같이어린목숨들이물속에그대로가라앉는순간앞에서도냉혹한본색을드러낸,차마‘호모사피엔스’로분류할수없는인간군상을고발하기도한다(「사피엔스」).

이처럼자신의이익을챙기기에급급한일부의인간들에게쓴소리를마다하지않는저자는,한편이와정반대의처지에놓인사람들에대해서는아낌없는연민의눈길을보낸다.‘최저시급을최적시급으로알아듣는’이기적인어른들에게고용되어도로위에서위험천만한질주를할수밖에없는어린‘알바생’들(「오토바이」),세월호사건을목전에두고도엉뚱한상상을끄적이며‘허튼소리’나하는자신을책망하는목소리까지(「맺는말-꿈과꽃」),이책의근간을이루는분노와냉소가다분한풍자적상상은알고보면사회의어두운그늘과인간을바라보는따뜻한시선에서비롯되었다.

꿈이사라져가는
대한민국의현실에바치는
한권의묵직한충고

저자는마지막꼭지인「꿈의해석」에서말한다.요즘사람들이꿈을꾸지않는이유는잠이모자라기때문이고,오지않는잠을술로억지로달래기때문이라고.이는우리의상상력부재가비단‘수면부족’에서왔다고말하고자함은아닐것이다.프로이트의역사적인저작과동일한제목이면서도말그대로꿈의해석을시도하는이재기발랄한꼭지는,상상력이가장중요한덕목으로기능하는건축계종사자로서,또학생들의상상력을북돋워야하는선생으로서,아직까지기발한생각들이자라날토양을제대로마련해주지못하는대한민국의현실과대중의인식부족에대한안타까움이암시되어있다는점에서이책이탄생하게된본래의계기와의미를다시금되새기게하는의미심장한마무리다.

[책속으로추가]

점장의이야기는하나도내귀에걸려들지않았다.그입가의허연게거품만눈에거슬렸다.내가사는창없는고시원이왜강보이는강남아파트보다평당월세가높아야하는지굳이묻지않았다.점장같은세대들이우리들옆구리에빨대를꼽고있는거아니냐고따지지도않았다.최저시급이라고알려주면최적시급이라고알아듣는데말을섞어야피곤할따름이다.이알바에서잘리면나는중국집오토바이를타야한다.최저시급은글자속에나있게되고나는고시원월세낼일이막막해진다.
점장이원하면우리는한다.열정을기대하지는마라.점장의말이끝나면나는오토바이열쇠를꽂고내달렸다.신호,차선그런건묻지마라.내인생의목적지가보이지않는데가는길인들보이겠느냐.길이보이지않는데무서울건있겠으며아쉬울건있겠느냐.세상에내가남길게있다면오토바이의브레이크자국일것이다.나는달린다.(「오토바이」,205~206쪽)

마침작전착수여부를판단할만한실험의첩보가입수되었다.러시아생리학자였다.그가개를이용한실험을준비한다는소식이었다.우리는즉각작전을세웠다.파블로프의실험은간단했다.우리는그가종을치면침을흘려주었다.파블로프는종을치면개들이침을흘리더라며이것이조건반사라고발표했다.우리가주목한것은종을치는파블로프였다.파블로프는그이후개만보면종을치고싶어안달을했다.우리에게는그것이조건반사였다.인간이우리에게완전히예속되었다는증거였다.(「조건반사」,2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