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큰글자책) (10대 근로자들의 일기와 생활담) (반품불가)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큰글자책) (10대 근로자들의 일기와 생활담) (반품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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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서울 변두리 두 야학에서 모은 10대 근로자들의 일기와 생활담이다. 1979년 당시 야학을 하던 대학생들이 전국의 10∼20대 남녀 노동자들의 글을 모아 ‘청년사’에서 1980년에 초판을 출간했다. 43년 만에 박영률출판사에서 초판본을 영인본 형태로 복간했다.
20시간씩 타이밍 먹고 잔업하는 오랜 철야 생활로 탈진하고 병들어 쫓겨나는 청년 노동자, 부모 병원비와 동생 중학교 학비 때문에 우는 누이, 공장 반장 등에게 폭행당하고 우는 청소년 노동자들, 성적인 피해를 받으면서 견뎌야 하는 여공들의 눈물, 화장실 자주 갈까 봐 회사에서 국 없는 밥을 주고, 전기값 아낀다고 숙소 불을 꺼 가로등 밑에서 공부하는 등 눈물로 호소하고 온몸으로 항의하고 내동댕이쳐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저자

한윤수

1948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연미복 입은 모습이 좋아 외교관을 꿈꿨지만 외교관 월급이 적어 품위 유지하려면 부잣집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꿈을 접었다. 29살에 출판사 ‘청년사’를 차려 ≪판초 빌라≫, ≪본회퍼≫, ≪산체스네 아이들≫, ≪여공 20년 후≫ 등의 논픽션을 출간했다. 1978년 이오덕 선생이 농촌 아이들의 글을 모와 와 시집 ≪일하는 아이들≫과 산문집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로 출판했다. 1980년 야학을 하던 대학생들이 10대 노동자들의 글을 모아 와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 10대 근로자들의 일기와 생활담≫으로 출간했다. 계엄령하였지만 책 못 내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무려 2만 부를 찍어 200여 곳 교회 청년회를 통해 뿌렸다. 나오자마자 책은 판금됐고, 청년 사장 한윤수는 도망자가 됐다. 그해 가을 세상이 잠잠해지자 있는 돈 없는 돈 쓸어 모아 글 쓴 노동자들에게 인세를 지급하고 함께 마지막으로 북한산 등반을 했다. 이 책은 1980년대에서 21세기 초까지 대학 및 노동계 운동권의 필독서가 됐고, 원본을 구할 수 없어 복사본이 돌아다닐 정도였다. ‘청년사’ 운영을 후배에게 넘기고 경기도 고양군에 들어가 농사를 짓다가 누가 치어(稚魚)도 대 주고, 크면 다 가져다 팔아 주겠다고 해서 가물치 양어장을 차렸지만 가물치의 생태에 대한 전문적 소양의 부족으로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빚이 늘어 갚을 요량으로 ‘형제출판사’를 열어 가족들 사이의 일을 적은 일기문들을 <고부일기 시리즈>로 내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무너진 가계는 도무지 회복이 안 됐고 1997년 IMF 사태로 결정타를 맞았다. 채무는 60억 원 가까이 늘어났다. 저당 잡혔던 친구들 집 12채도 다 넘어갈 뻔했지만 다행히 가물치 양어장 터가 삼송택지개발지구에 수용돼 그 보상금으로 원금을 갚았다. 그러나 생활비는커녕 아이들 교통비도 갖다주지 못한 상황에서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곤 교회에 가서 같이 앉아 주는 것밖에 없었다. 부인과 “1. 절대로 죽지 않는다. 2. 희망을 가진다”고 합의하고 빚쟁이들을 피해 전국 안 가 본 곳 없이 도망다니다가 결국 부인에게 너무나 미안해 결혼하고도 25년 동안이나 가지 않았던 교회에 1998년 2월 어느 날 제 발로 가겠다고 나섰다. 교회에 간 동기가 일차적으로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에 있었지만, 실제로는 빚쟁이들을 피해 보자는 도피 심리가 더 컸다. 그나마 안전하겠지 했던 교회에까지 빚쟁이들이 쳐들어왔다. 크리스마스 날 빚쟁이들이 교회로 와서 노래 부르고 있는 그에게 ‘넌 빚을 지고선 즐겁게 노래가 나오냐’고 했다. 빚쟁이들한테 몰려 마지막으로 간 데가 신학교다. 2005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 생활을 시작하고 안산에 오게 되었다. 1년 정도 지나 ‘안산노동자센터’에서 연락이 왔고 그때 외국인 노동자들을 처음 봤다. 새카만 모습으로 와서 도와달라고 하는데 10대 노동자들 생각이 났다. 30년 전 그 애들의 얼굴이 겹쳤다. 맨날 돈 떼이고 두들겨 맞는 것이 똑같았다. 그런데 상담이 맘대로 안 되었다. 어느 날은 상담실이 컴퓨터 교육실이 되어버렸다. 아스팔트에 비치파라솔을 놓고 상담을 했다. 컴퓨터도 전화도 없고 상담일지도 없었다. 내 식대로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던 중 2007년 4월 목사 안수를 받고 한 달 뒤 아무 연고도 없이, 단지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많다는 이유로 경기도 화성시로 향했다. 2007년 6월 5일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를 세우고 무료 상담을 시작했다. 전국에서 가장 돈 잘 받아 주는 센터로 통했다. ‘인생은 60부터’, ‘다시 인생이 바뀌었다’면서 2008년 11월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일명 ‘외국인 노동자 탐구생활’ 백서라고 할 수 있는 ‘오랑캐꽃’ 칼럼 연재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로 있다.

목차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을 다시 펴내며
머리말
가로등 밑에서 공부할까(일기)
사회의 첫 발을 내딛고서
나의 꿈 복싱선수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는 그 친구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이제는 언제 언제 소풍을 오나
눈물이 고인 눈으로 공장에(일기)
우리 터놓고 이야기 좀 합시다
바쁜 하루
감독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나
마음씨를 착하게 쓸려고 했는데(일기)
제목 없음
빈열
빈촌의 아이들
이력서
아, 자유로이 날으는 새가 되고파(일기)
친구를 보내며
가난에서의 남녀평등
추석
나의 꿈
일시키는 아저씨
하지만 나는 바른 말을 했어(일기)
우리 옆집 할머니
나의 친구 미싱군
왜 이래야만 할까(일기)
실직
내가 요술쟁이라면(일기)
가난이 죄
크리스마스
우정
나의 현실
누가 가져다주지 않는다(일기)

출판사 서평

1979년 당시 야학을 하던 대학생들이 전국의 10∼20대 남녀 노동자들의 문집, 일기를 모았다. 그중 33명의 글을 선별해 당시 출판사 ‘청년사’를 운영하던 한윤수 사장이 1980년 1월 19일에 출간했다.
20시간씩 타이밍 먹고 잔업하는 오랜 철야 생활로 탈진하고 병들어 쫓겨나는 청년 노동자, 부모 병원비와 동생 중학교 학비 때문에 우는 누이, 공장 반장 등에게 폭행당하고 우는 청소년 노동자들, 성적인 피해를 받으면서 견뎌야 하는 여공들의 눈물, 화장실 자주 갈까 봐 회사에서 국 없는 밥을 주고, 전기값 아낀다고 숙소 불을 꺼 가로등 밑에서 공부하는 등 눈물로 호소하고 온몸으로 항의하고 내동댕이쳐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그들은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196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거대한 밑변을 이루며 나라를 먹여 살리는 ‘산업전사’의 근간이 되었다.
이 책은 이들의 육성(肉聲)을 모아 들려주려는 조그만 시도이다. 이 글들은 10대 근로자들이 어떤 상황에서 살아가며 어떤 시각에서 사회와 인생을 바라보는가를 보여준다.
이 책은 초판을 2만 부나 찍었는데 200개 교회 청년회를 통한 조직 판매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러나 잘 팔린 것까지는 좋았으나 수금은 1원도 되지 않았다. 중간 판매책들이 수배 중인 대학생들이어서 도피 자금으로 썼다. 또한 발간 즉시 합수부에서 판매 금지 명령을 내려서 서점 판매도 여의치 않았다. 이 책을 발간한 ‘청년사’ 한윤수 사장은 망했고,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 나서 세상이 잠잠해질 무렵 23명의 필자들에게 2만 부에 대한 인세를 지불하고 나니 한윤수 청년사 대표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1980년 초판이 절판된 후 40여 년 동안 학생과 노동자들이 초판본을 복사하여 돌려가며 읽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후 모 출판사에서 원본 그대로가 아니고 사투리와 맞춤법을 고쳐서 복간했다. 그러고 나서 몇 군데 출판사에서 무단출간하기도 했고, 상당량을 발췌하여 아예 같은 제목의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출간들이 원본과는 비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원본에는 노동자들이 쓰는 사투리 하나하나에도, 틀린 맞춤법 하나하나마저도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서 21세기 초까지 대학 및 노동계 운동권의 필독서가 됐고, 원본을 구할 수 없어 복사본이 돌아다닐 정도로 호응도가 높았다.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이라는 제목은 이오덕 선생이 정했다.
박영률출판사에서 43년 만에 초판본을 영인본 형태로 복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