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선비들 (광기와 극단의 시대를 살다)

최후의 선비들 (광기와 극단의 시대를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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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최후의 선비들』은 구한말 ‘위정척사’를 평생의 신념으로 삼으며, 개화에 전면적으로 반대한 최익현부터 1910년 국권이 상실되자 세상을 버리고 은둔한 전우, 조선을 경장하는 게 선비의 지상 과제라고 생각했던 김옥균, 자유의 마음을 담아 절명시를 짓고 자결한 황현, 당대의 가장 ‘앞선 지식인’이었던 유길준, ‘을사오적’이자 1905년 을사조약문에 대한제국 대표로 이름을 남긴 박제순, ‘아와 비아’, ‘소아와 대아’의 대립이라는 틀로 세상을 보았던 신채호 등 20명의 ‘최후의 선비’들을 다룬다. 그들이 겪어야 했던 시대와 그들의 간절한 소망과 노력으로 조금이나마 흐름을 바꾸었던 시대가 오늘날의 우리 시대를 낳았다. 그러므로 ‘최후의 선비’들이 걸어간 길을 되짚고, 그들의 고뇌와 결단을 되새겨보는 일은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

함규진

저자함규진은1969년서울에서태어났다.성균관대학교행정학과를졸업하고같은학교대학원에서정약용의정치사상을주제로정치외교학박사학위를받았다.성균관대학교국가경영전략연구소연구원을거쳐현재는서울교육대학교윤리교육과교수로재직중이다.동양과서양,전통과현대,보수와진보등서로대립되는듯한입장사이에길을내고함께살아갈집을짓는작업에열중하고있다.『조약으로보는세계사강의』,『리더가읽어야할세계사평행이론』,『세계사를바꾼담판의역사』,『영조와네개의죽음』,『조선의마지막왕,고종』,『유대인의초상』,『정약용,조선의르네상스를꿈꾸다』,『왕의밥상』(2010년조선일보논픽션대상,2010년책따세추천도서),『역사를바꾼운명적만남』,『고종,죽기로결심하다』,『왕이못된세자들』등의책을썼고,『실패한우파가어떻게승자가되었나』,『정치질서의기원』,『대통령의결단』,『나는죄없이죽는다』,『물에빠진아이구하기』,『죽음의밥상』,『팔레스타인』등의책을우리말로옮겼다.

목차

책머리에ㆍ5

개화를용서할수없던선비,‘최후의최초’가되다:최익현
“전하!통촉하여주시옵소서!”ㆍ12|아버지의희망을가슴에품다ㆍ13|위정척사의진면목ㆍ15|‘민중의별’이된최익현ㆍ18|아무일도할수없는이유ㆍ23|최후의길,풀리지않는문제ㆍ26

시운을믿다가시운에속다:김윤식
망국대부김윤식의동도서기론ㆍ30|북산의빼어난젊은선비ㆍ32|청나라에서충격을받다ㆍ34|두차례의파병요청ㆍ37|두차례의유배ㆍ40|시운의배반ㆍ43|10여년의여한ㆍ46

500년대신3,000년에충성하다:전우
부잣집도령,가난한선비의길로나서다ㆍ48|화서학파와의충돌ㆍ51|이신촌과공학당ㆍ55|죽자니의가없고,살자니낙이없다ㆍ58|1만권의책속에쓰러지다ㆍ59|전우가남긴것ㆍ62

한떨기벚꽃처럼지사의길을가다:김옥균
군주에불충하고경전에불순하고ㆍ64|‘조용한폭풍의한가운데’에서태어나다ㆍ65|다재다능한김옥균과젊은그들ㆍ70|치도를위해필요한것ㆍ74|마침내정변에나서다ㆍ77|“모두가운명이다”ㆍ79

천하에마음을둘곳이없다:이건창
강화도의봄꿈이깨지던때,잊을수없는날을만나다ㆍ84|마음에떳떳한도리를품고ㆍ88|치열한대립속에서혼자만의길을가다ㆍ91|사슴에게훈계를듣다ㆍ94|잃어버린마음을위로하는마음ㆍ99

자유의마음을담아절명시를짓다:황현
망해가는세상에태어나다ㆍ102|시와사람이있는정경,그곳으로돌아오다ㆍ104|‘구안’에머무를수없는마음ㆍ107|완전히진짜가아니기에,더참혹한세상ㆍ109|절망속의자유ㆍ114

머리깎고,양복입고,충의를부르짖다:유길준
당대의가장‘앞선지식인’ㆍ118|과거따위가어찌선비가힘쓸목표인가?ㆍ120|후쿠자와유키치의‘이중적개화사상’과유길준의‘개화사상’ㆍ122|두세계의소용돌이사이에서균형찾기ㆍ126|영광과좌절,그러나후회는없다ㆍ130|오직충의에만희망을품다ㆍ132

대동을가슴에품고,삭풍이부는광야로가다:이상룡
통섭으로가기위해ㆍ136|‘자발적인민간단체’의중요성ㆍ139|대동사회와민주평등ㆍ143|칼바람속에피는인동초ㆍ146|‘내게한복을입혀다오’ㆍ150

고독한변절자의초상:박제순
평탄한삶이보장된외교인재ㆍ154|‘한일군사동맹’을추진하다ㆍ158|‘No’라고하지못하는선비ㆍ161|꽃은바람에지지만,눈은달을바라보네ㆍ166|변절자의몽상ㆍ169

가녀린어깨로너무도무거운짐을지다:박은식
세찬회오리바람에움츠러든인재ㆍ172|유교가세상을구한다!ㆍ174|만주의하늘아래신들린듯붓을놀리다ㆍ179|상하이로가다ㆍ182|‘진짜나’는어디에있는가?ㆍ184

‘헬조선’앞에‘피의눈물’을흘리다:이인직
어둡고불투명한시대에태어나다ㆍ188|‘우국지사’의꿈에이끌리다ㆍ191|‘계몽의말을전하는기계가되리라’ㆍ195|한일병합의막후에서암약하다ㆍ198|상실의시대ㆍ202

‘방성대곡’그래도삶은계속된다:장지연
박학다식한4대독자,출세의길을모색하다ㆍ206|‘동도’를놓지않으며‘개화’를추구하다ㆍ209|멈출수없었던역사의수레바퀴ㆍ213|술로도잊을수없었던평생의업ㆍ215|나는슬퍼도살아야하네ㆍ217

‘미제’와‘중부’사이에서:이병헌
‘개혁하지않으면살아남지못한다’ㆍ222|이세상에내가있을곳은어디인가?ㆍ224|‘시민종교’로서유교를추구하다ㆍ226|유교의영혼과한민족의영혼ㆍ229|백범김구와의논쟁과좌절ㆍ235|그래도더먼길을가야한다ㆍ237

거센성질의소년,유교의신화가되다:김창숙
악동,부조(父祖)의가르침을새기다ㆍ240|민족운동에뛰어들다ㆍ243|미쳐버릴수밖에없는이유ㆍ246|상하이임시정부,투쟁의나날ㆍ247|감옥에서감옥으로ㆍ252|차라리,죽음이여ㆍ255

나의투쟁,나여기에서다:신채호
특이한환경에서자라난특이한아이ㆍ258|급진개혁의길을가다ㆍ264|선비의의절(義絶)에목숨을걸고ㆍ266|만주벌판에서꾼꿈하늘ㆍ270|작고불쌍한자신과만나다ㆍ271|투쟁의세상을넘어하늘높이ㆍ274

나라잃은젊은선비,새시대를위한헌법을만들다:조소앙
선비로서덧붙여야할것ㆍ278|신흥종교를창설하다ㆍ282|세계를누비며‘어중간한’길을가다ㆍ284|삼균주의와‘대한민국건국강령’ㆍ287|삼균의꿈,북녘에지다ㆍ290

눈먼예언자,독과피가흐르는땅을가리키다:안인식
‘기재’와‘기특’의차이ㆍ294|이단자의길을택하다ㆍ297|‘황도유학’이라는것ㆍ300|해방후에도이어진미망ㆍ304|버려진사람,그가얻은최후의은혜ㆍ307

붉은선비,붉은마음을담고부끄럽지않은길을찾다:최익한
이미지나간시대의희망ㆍ310|단련의길로발을내딛다ㆍ312|공자와마르크스를함께섬기다ㆍ316|아들의주검앞에서맹세를다지다ㆍ320|동토에꽃씨를뿌리고,역사에배반당하다ㆍ323

초인,내가아닌다른누군가인초인을기다리며:이육사
‘내고향칠월은’ㆍ328|수인번호264ㆍ334|문외한의슬픔ㆍ338|강철로된무지개를좇아서ㆍ342|가난한노래의씨ㆍ345

살았다,공부했다,원망은없다:이가원
책으로둘러싸인담장안에서ㆍ348|‘무작정상경’,상투를자르고대학생이되다ㆍ352|희망은실망으로,선비는침묵을선택한다ㆍ355|퇴계종손이국문학을하는이유ㆍ362|선비없는세상ㆍ366

출판사 서평

“천하의근심을누구보다도먼저근심하고,
천하의즐거움은맨나중에즐기리라.”

미혹과광란의시대를살다간‘최후의선비들’
“유교적태평천하의꿈을꾸다”

선비란무엇인가?우리는속된세상과의인연을미련없이끊어버리고,출세를위한학문이아니라학문그자체를위한학문에사로잡혀평생글을벗삼다가조용히눈감는사람을,학처럼고고하게정결한삶을살다가는사람을선비라부르며존경했다.한마디로선비는붓으로세상을지배하는사람들이었다.이들이한국사회를오랜세월지배할수있었던까닭은그들이행정가나예비행정가였기에국가와사회가효율적으로돌아가는데핵심적인역할을할수있었기때문이며,성직자집단같은도덕적카리스마를갖고있었기때문이다.
그런데구한말세상은광기와광란과미혹의시대였다.신유박해로영ㆍ정조시절관용된서학에대한관심을일체부정하고서양문물에대해서는오직척화와쇄국뿐임을국시로세운것이1801년이었고,외세의위협앞에강화도조약을맺고개국을허락한것이1876년,조선왕조500년역사에종지부가찍힌것이1910년이었으니길게보아약100년,짧게는30년만에선비들이영세불변하리라믿어의심치않던질서는산산조각나서무너져버렸다.특히이시대를살았던사람들중에서도유교적태평천하의꿈을꾸던사람들이겪은정신적혼란과상처,절망은상상을불허한다.그래도그들은스스로선비임을자각했다.그런문명의충돌과국권의침탈시기,망국과망천하의위기를동시에맞은‘최후의선비’들은여럿으로갈렸다.상투와도포를보전하기위해살신성인을부르짖으며순국의길로나선선비가있는가하면,성현의가르침을폐할수없다며세상을버리고은둔한선비가있었다.또개화에전념하는일이선비의본분이라여겨변절자나친일매국노라는오명도감수한선비가있는가하면,유교의정신을계승하되사회적ㆍ시대적현실또한외면하지않으며유교의경장(更張)과구신(救新)을모색한선비가있었다.이들은모두함께뒤엉키고휩쓸리며광란의시대를비틀비틀걸어갔다.
『최후의선비들』은구한말‘위정척사’를평생의신념으로삼으며,개화에전면적으로반대한최익현부터1910년국권이상실되자세상을버리고은둔한전우,조선을경장하는게선비의지상과제라고생각했던김옥균,자유의마음을담아절명시를짓고자결한황현,당대의가장‘앞선지식인’이었던유길준,‘을사오적’이자1905년을사조약문에대한제국대표로이름을남긴박제순,‘아와비아’,‘소아와대아’의대립이라는틀로세상을보았던신채호등20명의‘최후의선비’들을다룬다.그들이겪어야했던시대와그들의간절한소망과노력으로조금이나마흐름을바꾸었던시대가오늘날의우리시대를낳았다.그러므로‘최후의선비’들이걸어간길을되짚고,그들의고뇌와결단을되새겨보는일은우리시대를이해하는데도움이될것이다.

‘개화’와‘개혁’을용서할수없었던선비
최익현에게천하에서가장큰근심은서양문물이조선의강토를더럽히는일이었다.그래서그는서양문물에대해극단적인배척을주장하면서,병인양요가벌어지던1866년에75세의노구에병든몸을이끌고궁궐앞으로나와‘척화’를외쳤다.‘도끼를지고궐문앞에엎드려척화의뜻을밝힌상소문(지부복궐척화의소)’은위정척사론을절절하게담고있었다.‘일본은서양문물을받아들였으니곧서양이며,서양인은삼강오륜도모르니곧사람탈을쓴짐승이나같다.사람은사람끼리,짐승은짐승끼리놀아야하는데이제강화하고개국한다면기(氣)가이(理)를이기는것이며,사람이짐승으로타락하는것이다!’거기에는시대의변화에따라변통하고개혁한다는생각은손톱만큼도들어갈여지가없었다.
전우는1895년명성황후가처참하게살해당하는사상초유의사건을두고크게통탄하며“이원수를갚아야한다”며분개했고,1905년을사조약이체결되자“다섯역적의목을벨것을청하는상소(청참오적소)”를올렸다.그러면서“죽으면의가없거늘,살아있으면한오라기의낙도없다”라며한탄했다.1910년국권이상실되자세상을버리고섬으로은둔했다.“500년의종사를저버릴지언정,3,000년의가르침을폐지할수는없다.”“굴욕적으로구차히살기”를스스로택한것이다.그러면서심의,복건,치포관의차림새를고수했으며,제자들에게도“만약육지에나갔다가붙잡혀단발을당하게되면,섬에들어오지말고자결하라”고단단히일렀다.
황현은나라가외세에먹혀들어가고,인륜이땅에떨어지고,전통적가치가사라진세상을용서할수없었다.그러면서자신의천분(天分)은글쓰는일에있으며,당대의모순을꿰뚫고후대사람들에게귀감이될글을쓰는것이선비의사명이라고믿었다.그는국권상실의소식을듣고마지막으로붓을들어「절명시(絶命詩)」를쓰고,스스로‘진작했어야했던일’을했다.그는목숨을끊으면서도“이행동은개인의뜻일뿐,충성이아니다”라고했다.

‘변절자’와‘친일매국노’사이에서
‘백성이편안한나라를만들기위해,부국강병을도모한다.그러려면경장해야하고,경장하려면개화의법을세워야한다.개화의모델은바로일본이다.’김옥균의개화사상이다.그는개화파중에서도최고의급진파로“쿠데타를일으켜왕을볼모로삼고국정을좌우한다”는생각을실행한사람이다.그래서박영효,홍영식,서재필,서광범등과함께갑신정변을일으켰다.그렇게그는군주에도불충(不忠)하고경전에도불순(不順)했다.그러나그는기회주의적모리배들처럼,자기일신(一身)의부귀영화를좇지않았다.그에게는유교의가르침중에서다른무엇보다도‘경장’이중요했다.어쩌면일본을등에업고턱도없는쿠데타를벌인친일몽상가였는지도모른다.
1905년11월17일,경운궁의중명전에모여앉은사람들은숨소리조차쉽게내지못할만큼극도로긴장한상태였다.이토히로부미는대한제국의대신들에게을사조약에승인하라고압박했다.그리고‘5대3이니,대신들입장은찬성으로정리한다’는이토히로부미의선언!이토히로부미는외부대신박제순에게주무대신의이름으로서명하라고종용했다.한국사상최대의치욕적조약인을사조약은그렇게이토히로부미와박제순의이름으로조인되었다.인생에서가장선비답게행동해야했던순간,그는선비답지못했다.그리해서그의이름은역사에시뻘건글씨로적히게되고,영원히최악의변절자혹은민족의반역자라는낙인을찍혀도변명할말이없게되었다.
안인식에게‘진짜유학’은“실질에기반한,통의와상식을현실에서구현하는,실용적인도덕의유학”이었다.이는실학의이념이기도하며,정약용같은학자들이매번강조하던주장이다.그러나안인식은조선실학은일체언급하지않고,일본에서꽃핀양명학과이를일본고유의신토와습합한일본유학을예찬했다.안인식의문제의식은기존유교개신론자들과비슷했지만,일제의제국주의지배에야합했다는것이차이라면차이다.그러나안인식이친일유학자로특별히공헌한점은‘황도유학’의이론적기반을닦았다는데있다.

‘조선의독립’을가슴에품다
이상룡은‘민간단체를잘수립하고잘운영하는게구국과경장의급선무’라는신념을갖고있었다.1905년에을사조약을계기로가야산에서의병을조직하고,1907년에전통예교와신식학문을교육하는협동학교를설립하고,1909년에대한협회의안동지회를설치했다.또한병학연구에골몰하는한편의병을일으켜승리하려면신식무기보다사람이중요하다고주장했다.그래서신흥무관학교를꾸려그병력으로한반도의경찰서,면사무소,악질친일파의집등을습격했다.그러나유교를버리지않으면서긍정과포용의자세로새시대에임했던그는최후의선비로서낯선땅과낯선시대에좌절할수밖에없었다.
김창숙은국내에서독립운동ㆍ계몽운동단체에참여하고,장지연ㆍ남궁억ㆍ오세창등이주동해설립한대한협회에가입하며,성주군에지회를설립하는일에앞장섰다.3ㆍ1운동이일어나자전국의유림의뜻을모아프랑스파리에서열릴예정이던평화회의에독립을청원하는장서(長書)를보내기로결정했다.중국에서는쑨원을만나임시정부와대한독립을후원하겠다는약속을받아내고,홍콩에서‘한국독립후원회’를만들고의연금을모금했다.그리고광저우와베이징을오가며박은식ㆍ신채호등과함께신문을만들고,독립운동자금을걷는등의일에힘썼다.
신채호의삶은처음부터끝까지비타협적인투쟁의연속이었다.그는‘아와비아’,‘소아와대아’의대립이라는틀로세상을바라보는데익숙했다.이런시각은신념에비추어옳지않은일은조금의망설임도없이비판했다.중국으로건너가베이징을근거지로저술과독립운동단체참여에매진했다.특히고조선과고구려의무대였던백두산과남만주일대를돌아보았고,이는새삼신채호의‘대륙지향적’역사관과민족주의를강화할자양분이되었다.또그는가장극단적인투쟁만이효과적이라며의열단을위해『조선혁명선언』을집필하고,무정부주의동방연맹에가입했다.운명의호의는거기까지였다.1928년5월8일일본경찰에붙들려재판을넘겨지고10년형을선고받았다.그리고1936년2월21일뤼순감옥에서신채호의‘나의투쟁’은그렇게끝났다.

선비없는세상
한국사에서선비는이미고조선시대부터있었다고도하지만,글재주와도덕적모범으로내로라하는유교적선비가사회의주역이된때는조선시대였다.무인이나불승(佛僧),권문세족등의지배권을부정하고건국된나라가조선이기때문이었으며,특히사림이정권을독점하게된16세기말부터는“선비의기상이야말로국가의원기(元氣)”라는말이상식처럼굳어졌다.세상에이름을떨치고싶은사람이라면누구나밤새워글을읽고,하루종일묵향(墨香)이떠나지않는삶을살아야했다.
북송(北宋)의범중엄(范仲淹)이「악양루기(岳陽樓記)」에서제시한인간상인“천하의근심을누구보다도먼저근심하고,천하의즐거움은맨나중에즐기리라”는동양식노블레스오블리주의선비정신이었다.이는오랫동안중국과한국에서선비의모델로받아들여졌다.세계어느나라,어느시대나지배권력을가진계급은칼과총으로지배했다.그러나동양에서만큼은붓으로세상을지배하는사람들이있었고,그들은선비라불렸다.
그러나구한말이후어떤사람들은세상이망했다며은둔하고,어떤사람들은시대의요구에부응한다며개화의선구자가되었으며,자유주의자ㆍ민족주의자ㆍ사회주의자ㆍ무정부주의자등으로변신해갔다.동문수학하며주자의주석을외우던친구들중누구는친일파의길을,누구는독립운동가의길을걸었다.유교가이모든재앙의원인이라며한때금쪽같이여기던경전을태워버리는사람,반대로유교에서암울한세상을구할길을찾자며새로운유교사상의개발과보급에헌신하는사람들은모두광기와광란의시대를살다가가뭇없이사라졌다.
그런데지금‘선비’는있는가?유학이예전처럼유일한삶의법도가되지는못해도,오늘날의삶에일정한교훈을줄가능성은아직도사라지지않았다.또‘자신보다더큰가치’에대한순수한믿음을지켜낼수만있다면,그가치가인간적인사랑을담고있다면,세상은그만큼아름다워질것이다.그것이야말로아직까지도완전히폐기될수없는유교의가르침일지도모른다.이책에등장하는20명의‘최후의선비’들을통해지금우리가살아갈희망과비전을읽는다면,그게바로유교의가르침일것이다.동양의정신이나전통의가능성이무시되고오직‘글로벌스탠더드’를추구해야살아남을수있다는생각이세상을지배하고있다.그러는가운데,이땅에남았던최후의선비까지조용히사라졌다.지금은어떤가?선비없는세상은과연즐겁기만한,원망이필요없는세상이되고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