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인문학 (그 골목이 품고있는 삶의온도/골목은 도시에 맨얼굴이며 도시의 정체성이다)

골목 인문학 (그 골목이 품고있는 삶의온도/골목은 도시에 맨얼굴이며 도시의 정체성이다)

$18.03
Description
골목은 개인의 역사이자 도시의 기억이다
“그 골목에 삶을 두고 왔다”
도시는 사람의 몸과 똑같다. 큰길이 굵은 핏줄이라고 보면 큰길 뒤로 뻗어 있는 길들은 가는 핏줄이다. 큰길 뒤로 이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는 그 길이 골목이다. 도시에는 무수한 골목이 있다. 사람의 몸처럼 모세혈관 역할을 하는 골목이 잘 살아 있고 건강해야 도시도 생기 있게 살아난다. 골목은 도시의 맨얼굴이며 도시의 정체성이며 삶의 여유를 주는 공간이다. 골목에는 달팽이 속도처럼 느리기 그지없는 시간이 시루떡처럼 쌓여 있고, 무수한 집과 흉터 같은 삶의 웅숭깊은 사연이 오롯이 담겨 있다.

골목은 장소와 장소 사이의 틈이며, 하나의 장소다. 장소의 속성은 머무름을 전제하지만, 골목은 흘러가는 길이면서, 또한 머무는 장소다. 큰길에서 꺾어 들어가면 만나는 그 골목은 집으로 이어지는 그냥 경로가 아닌, 소통이 이루어지고 교류가 이루어지는 장소다. 그래서 그곳엔 시간이 담기고 사람 이야기가 담긴다. 골목은 모든 사람의 삶에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배경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골목에서 나고 그곳에서 자라며 그곳에서 생활했다. 그래서 골목은 우리의 기억이며 추억이기도 하지만 어두운 과거이기도 하다. 그 골목에는 굽이진 인생길처럼 사람들의 애환과 삶의 어떤 신산함이 아로새겨져 있다.

도시화가 강력하게 진행되며 효율성과 개발 이익을 위해 골목은 허물어지게 되었고, 이제는 다소 희소하고 과거 회귀적인 정서의 배경으로 남게 되었다. 사람들이 골목을 찾아가서 즐기기는 하지만, 그곳에는 생활은 없다. 생활이 없다는 것은 사람이 없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결국 우리는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오랜 풍상을 겪으며 생긴 얼굴의 주름살과도 같은 골목을 없애버렸다. 그래서 작고 사소한 개인의 역사와 도시의 기억도 함께 묻혔고 증발되어버렸다.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재료는 시간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덮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그 아름다움은 시간이라는 포장이 덮이며 다양한 연상과 감흥을 불러온다. 사람이나 도시는 시간이 담기고 기억이 담겨 품위와 개성이 살아 있어야 한다.

건물은 없어져도 복원이 가능하지만, 골목길은 없어지면 복원이 어렵다. 그 골목길이 없어지면 도시의 정체성은 점점 없어진다. 우리는 기회가 되면 미련 없이 동네들을 깔아뭉개고 기억을 지워버리고 치부를 감추어버린다. 또 실개천들을 오염시켰고, 냄새난다고 피했으며, 길을 넓힌다고 아예 시멘트로 덮어버린다. 우리의 정체성과 자존심도 그때 같이 묻혀버렸다. 그렇게 도시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속도가 인간을 지배하고 편리가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이다. 아직도 골목을 없애고 넓은 길로 만드는 것이 도시의 발전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은 어느 좁고 구불거리는 골목으로 들어가 걸어보고 과연 재개발이 합당한지 살펴볼 일이다.

『골목 인문학』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 부부가 태어나서 자라 가장 익숙한 서울의 골목, 여행으로 혹은 일로 다녀온 우리나라 여러 지역의 아름다운 골목, 그리 많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좋아하는 몇몇 나라의 숨겨진 골목 등을 통해 골목의 풍경과 역사를 그려낸다. 그 풍경과 역사에는 사람 이야기가 있고, 동네 이야기가 있고, 도시 이야기가 있다. 인문학이란 궁극적으로 사람 이야기이며 사람의 자취라고 보면, 골목이야말로 사람의 자취와 사람 이야기가 듬뿍 담겨 있는 나이테와 같은 장소다.
저자

임형남

건축은땅이꾸는꿈이고,사람들의삶에서길어올리는이야기다.임형남ㆍ노은주부부는땅과사람의목소리에귀기울이고,둘사이를중재해건축으로빚어내는것이건축가의역할이라생각한다.이들은홍익대학교건축학과동문으로,1999년부터함께가온건축을운영하고있다.‘가온’이란순우리말로가운데ㆍ중심이라는뜻과‘집의평온함(家穩)’이라는의미를함께갖고있다.가장편안하고,인간답고,자연과어우러진집을궁리하기위해이들은틈만나면옛집을찾아가고,골목을거닐고,도시를산책한다.그여정에서집이지어지고,글과그림이모여책으로엮인다.
홍익대학교와중앙대학교등에서강의를했고,2011년‘금산주택’으로공간디자인대상을,2012년한국건축가협회아천상을수상했다.저서로『내가살고싶은작은집』,『생각을담은집한옥』,『그들은그집에서무슨꿈을꾸었을까』,『집,도시를만들고사람을이어주다』,『사람을살리는집』,『작은집큰생각』,『나무처럼자라는집』,『이야기로집을짓다』,『서울풍경화첩』,『집주인과건축가의행복한만남』등이있다.

목차

책머리에-6

제1부골목에삶을두고왔다
내유년의골목에는아름다움이번져있다-15
여러집이얼굴비비며빼곡히차있다-23
화석같이남아있는그시절의골목-32
세월에따라달라지는온도와색깔-40
거닐고싶어도거닐수없는그만의공간-49
피끓는청춘들로가득한골목-57
수탈의흔적을감춘채과거와현재가마주하다-65
어부가족들은바다를보며어떤생각을했을까-74
실향민의고단함이고스란히담겨있다-83
오랜양조장의깊어가는술맛처럼-91
흉터같은삶의흔적들-99
시간의골을따라흐르는물길은도시의삶이다-107
소수민족의애환이담긴골목-116
구속없이자유롭게살기를바라다-125

제2부풍경을굽이굽이담다
낙원으로가는나만의통로-135
가파른계단을올라야하는삶의터전-143
남산의넉넉한품안에서피어난골목-151
소박한골목어딘가에핀매화-159
시간이멈춘채달팽이처럼느리게걸어가는골목-167
꽃이피어났다시든자리에삶이드러나다-175
구불거리는물길따라흐르는느림의미학-183
고요함속에서500년된옛이야기를듣다-192
수채화물감이스며들듯사람들이보인다-199
느린걸음으로걷고싶은골목-207
사시장철피어있는단정한골목-215
기찻길과서점사이로달콤하게녹아든풍경-224
고요와경건과예술이고여있다-233
시작도없고끝도없는카프카의도시-241

제3부기억을오롯이품다
대문틈사이로흘러나오는기억의조각들-253
잃어버린시간속을걷다-262
묵묵히이어가는마을의전통-270
현대와근대가혼재된골목-279
역사의기억이씨줄과날줄처럼엇갈리다-288
세상의모든색과언어가쌓인문화와예술의거리-296
골목마다숨겨진서민들의소박한꿈과땀-304
인간과자연이함께만든가장완벽한골목-312
잠자리가놀다간골목-321
봄의교향악이울려퍼지는언덕-329
두집안의오래된살림집이품은이야기를듣다-337
메타세쿼이아그늘아래스며든시간의풍경-345
돌담이숨어있는바람의골목-353
화려한문명과한때의영광을만나다-361

출판사 서평

골목에는삶이켜켜이쌓여있다

종로나을지로의골목을걷다보면시인이며소설가이고건축가이기도했던이상이떠오른다.그는백부김연필의양자로들어가통인동154번지에서자랐다.이상은신명학교와보성학교와경성고등공업학교를졸업하고나중에금홍이라는여인과종로1가로추정되는곳에서제비다방을경영했다.하지만지금은그가태어난사직동은길이되어버렸고,통인동집은여러필지로나뉘었고,신명학교는배화여자고등학교와합쳐졌다.보성학교터는조계사가되어버렸고,제비다방과수하동아파트등은모두사라져버렸다.심지어그가근무했던조선총독부건물도철거되었다.이상의복잡한내면을보는듯한골목들은YMCA부근에잔설처럼아주조금남아,숨어지내는패잔병처럼몸을숨기고있다.
목포는근대에이르기까지그다지관심을받지못하던바닷가작은어촌이었다.그러나일제강점기에일본인들이대륙으로진출하기위한거점이자일본으로여러가지물자를실어나르기위한항구로목포를개발했다.그런데그전부터목포앞바다에서고기를잡던사람들이살던마을이있었다.목포항에붙어있는언덕에집들이바닷가바위에자리잡은여러가지패각류처럼다닥다닥붙어있었다.이동네는온금동이라고불리지만원래이름은‘다순구미’다.다순구미는‘양지바른곳’이라는뜻이다.아기자기하며아름답고,굽이진인생길처럼서민들의애환이담긴언덕을따라굽이굽이길들이이어져있다.좁기도하고다소넓기도하고가파르기도하다가완만하기도한아주다양한표정을지닌길이끊어질듯이어진다.
속초청호동도로변에는낮은상점들이늘어서있고오래된마을이라지만별다른정취라든가연륜이느껴지지않는다.다만작은마을읍내의풍경처럼조악한간판과가게가즐비하다.조금더걸어들어가면중간중간보이는좁은골목들이나타나고그사이로작은집들이빼곡하게달려있다.한눈에도그곳에서는삶의어떤신산함이느껴진다.함경도에서내려온실향민들이겪었을힘든삶의여정이이곳아바이마을에담겨있다.수시로들이닥치는해일로집을땅에반쯤묻은채살아야했고,두고온집과가족을시시때때로그리워해야했다.불시에떠나온고향이바로가까운거리에있었기에그런그리움은더했을것이다.아바이마을에는그런쓸쓸한기억과오래된이야기가세찬바닷바람사이로끊임없이떠돌고있다.
부산역바로건너편에있는원도심에해당되는초량동은6·25전쟁이전부터원주민이많이살았던오래된곳이다.부산역광장의떠들썩하고복잡한풍경과는조금다른,부산의생살을만지는듯한느낌을준다.그중에서산복도로는내륙에서달려나온산맥의힘줄들이뻗어가다해안에이르러급하게멈춘듯,가파르게바다를향해떨어져내리는부산의산줄기를가로지르는도로다.이곳에서면부산항이한눈에내려다보인다.부산이나목포같은개항기항구도시는부두나시장에서일하기위해찾아든노동자들이기존의주거지보다점점위쪽으로숨가쁘게올라가산동네에정착했다.경사지에틈새도없이빼곡하게채워진집들은6·25전쟁이후폭발적으로유입되는인구를도시인프라가미처감당하지못한결과다.그곳에는시간이잠시느려지고흘러내릴듯겹겹이쌓인흉터같은삶의흔적들이흐르고있다.

골목에는세상의모든풍경이있다

서울종로세무서뒤편에있는익선동은다른골목처럼오랜시간지속된곳인데,익선동166번지는한옥이가지런히모여있는블록이다.1930년대에급속한인구유입으로가중되던경성의주택난을타개하기위해북촌에한옥을개발할때같이지어낸곳이다.지금북촌의한옥은10여년전부터고쳐지고정리되어아주비싼몸으로다시태어났는데,익선동은그사이블록으로묶어개발하려던계획이중단되어땅값만천정부지로솟아오른채잊혀서여전히퇴락해서걱거리는서민의동네로남아있었다.그런데익선동에젊은이들이몰리고카메라를든사람들이몰리면서이곳역시사람은자꾸밀리고커피나피자,여유와낭만이라는정체를알수없는추상으로채워지고있다.그렇게골목의색깔이조금씩바뀌어가고있다.
성북동에는두얼굴이있다.서울성곽에붙은언덕에펼쳐진오래된골목을가진북정마을등의소박한마을과건너편언덕위에1960년대삼청터널이개통되며진행된택지개발로이루어진큰길에면한저택들이공존한다.만해한용운,조지훈,김기창,김환기등의문인과화가등이살며활동했던흔적이아직도살아있는곳은북정마을근처다.삼선교에서올라가다보면선잠단조금못미쳐예전에미술사학자이며국립중앙박물관장을지낸최순우선생이살던‘최순우옛집’이나온다.성북동에는성벽밑으로개나리들이피어있고,햇볕을잔뜩머금어따끈하고노릇노릇해진성벽돌들이와글와글떠들고있다.성북동에는산길과골목길,성벽길등참다양한질감과표정의풍경이살아있다.
담양창평삼지내마을은우리나라최초의‘슬로시티’로지정된마을이자오래된고택과돌담이며동네를관통하는실개천이잘보존된곳이다.삼지내마을은사람의얼굴이나인격이다양한것처럼집도그느낌이나품격이다양하고,마을역시아주다양한얼굴과성격이있다는것을보여주는곳이다.3.6킬로미터나이어지는둥근화강석을진흙으로쌓은토담길은너무길지도않고,열리고닫히고좁았다가넓어지는다양한풍경을담고있어지루하지않고포근하다.삼지내마을의살풋한돌담길을거닐다문득창평의너른들과품을열어푸근하게안아주고있는무등산을보고있노라면,단지세상사바쁠게뭐있겠나하는여유로워지는마음에입가에미소가저절로일어난다.
‘철학의길’은일본교토동쪽에있는작은오솔길이다.불교사찰인긴카쿠사의옆구리에서시작해난젠사까지이어진,약2킬로미터되는길이다.봄에는벚꽃이장관이고가을에는그윽하게단풍으로물들어사시장철사람들이몰리는이길은정말아름답고매력을지닌곳이다.산책과철학이라는단어의쌍은아주잘어울리며단어간의순응이부드럽게잘된다.교토는몇집걸러사찰이나오고모퉁이를돌면정원이나오는역사도시라는의미도있지만,몇백년쉼없이이어진교토사람들의생활과자부심이동네를가로지르며늠실거리는실개천과같은속도로흘러다닌다.세상이너무변하고나또한그에못지않게변하지만어딘가,누군가는변하지않고세상에휘둘리지않기를바라기도한다.교토가그런곳일것이다.

골목은역사를기억한다

능동에는어린이대공원이있다.1973년어린이대공원이개장했을때어린이들에겐뛰놀고싶은꿈의동산이었다.그러나지금은종갓집같은상징적인위상만있고,오래되어용도가다한장난감처럼있는지도잊어버리고어느구석에놓여있는한적한곳이다.능동이라는동네이름은예전에조선의마지막왕이었던순종의비,순명효황후민씨의무덤이있었기때문이다.일제강점기에는골프장을만들어조선총독부의고관이나조선인귀족들이즐겼고,태평양전쟁이일어나던1941년에는골프금지령이내려져빈터가되었다.해방후에는우리나라에주둔하고있던미군병사나장교들이즐길골프장을다시만든다.그렇게20년정도운영되다가1973년박정희대통령의지시로어린이대공원으로변신하게되었다.참으로기구한땅의팔자다.
용산삼각지로터리는서울역에서용산역쪽으로가다보면나오는꽤넓은네거리다.이곳에는1967년에만들어진우리나라최초입체교차로인삼각지고가차도가있었다.그러나세월이지나며만들당시와는교통상황이많이달라져서제구실을하지못했고,콘크리트구조물이낡아1994년철거되었다.우리는배호의<돌아가는삼각지>를부르며이고가차도를기억할뿐이다.삼각지에서이태원까지경계구역은고려시대에는몽골군이,임진왜란때는왜군이,임오군란이후에는청나라군이,일제강점기에는일본군의주력부대였던20사단이,해방후에는미8군이시설을이어받아오랫동안머물렀다.지금은미군도이곳에서떠났다.최근에는용산역주변부터오밀조밀한골목들이한뭉텅이씩썰려나가면서덩치큰상업건물이나주상복합이들어서고있다.
종로피맛길은조선시대‘양반들이탄말을피해다니는길’이었다.종로의한켜뒤로대로와평행하게좁은길이동대문인근까지뱀처럼구물구물길게이어져있었다.그길은서민들을위한소박한먹거리인해장국,생선구이,빈대떡등이익으며피워내는연기와냄새로그득했다.원래의피맛길은종로1가청진동에서종로6가까지이어져있었지만,지금은거칠게지워낸지우개자국처럼여기저기지워진채아주희미한자국만남아있다.대규모재개발로사라진것이다.그개발로얼마나큰이익이생기는지는모르겠지만그런의미있는골목이사라지는사이,세계에서네번째로오래된수도라는서울의역사성과정체성은점점희미해질것이다.
대구동산동청라언덕은복잡한대도시의번잡함에서살짝비켜나푸른담쟁이넝쿨이휘감긴집들로둘러싸인언덕이다.대구가고향인작곡가박태준이어린시절좋아했던여학생과의추억에시인이은상이쓴가사를입힌<동무생각>이라는가곡에나오는언덕이다.이곳에는100여년전에지어졌던선교사챔니스,블레어,스윗즈의집이남아있다.이선교사들은북장로회계열이었는데,19세기말부터대구성의남문안에있던민가를개조해의료활동을시작했다.이후선교사들은성바깥에있는동산지역을구입해병원을계획했는데,동산병원은벽돌벽에기와지붕을올렸다는기록이사진으로전해진다.청라언덕의선교사주택중에는스윗즈주택에만한식기와가얹혀있다.미국식민지풍주택과한식기와라는구성이예상한것보다훨씬자연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