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위한인문학
“집은우리의최초의세계다”
집은단순히거주하는공간이아니라인간의성장사와함께하는공간이다.집이인간의삶을풍요롭게하고영혼을따뜻하게하기때문이다.그런데우리는이자취방에서저자취방으로,이빌라에서저빌라로,이아파트에서저아파트로옮겨다니며살아왔다.한곳에서오랫동안거주하는정주(定住)의삶이아니라초원의목동처럼이리저리옮겨다니는유목(遊牧)의삶을살아왔다.인간의성장사가여러집에서살았던흔적들을모자이크하듯이구성될수밖에없는이유다.
우리는유목민처럼여러집을전전하면서우리가갖고있던삶의기억들을축적하지못하고흩날려버렸다.집에대한추억과그리움도모두가뭇없이사라졌다.집이사람들과교류하는공간이되지못했으며,인문학의향기가피어나지못했다.그렇다면21세기노마드시대에정주의삶은가능한가?또인간에게집은무엇인가?집은인간의영원한노스탤지어인가?
프랑스철학자인가스통바슐라르는“집은우리의최초의세계다.그것은정녕하나의우주다”라고말했다.바슐라르는우리가어머니의자궁에있을때무의식속에형성된이미지로어떤공간에감싸이듯이집에서안온함과평화로움을느낀다고말했다.그만큼집은인간의성장에크나큰영향을준다는것을알수있다.건축가승효상은“건축은집을짓는것으로끝나지않는다.오히려집은하부구조이며그집속에담기는우리들의삶이그집과더불어건축이된다”라고말했다.‘행복의건축’이되는관건은건축이후에그집에깃들어살아가는이들의숙제라는말이다.집의하드웨어는시공사가만들지만,그집을완성시키는몫은그집에깃들어사는사람이라는말과같다.
인문학자인최효찬과한옥건축가인김장권이함께쓴『집은그리움이다』는우리가정말로살고싶은집에대한이야기다.최효찬은결혼한이후지금까지23년동안12번을이사했고,10번이상을아파트에서살았다.정확히2년도안돼한번꼴로이사를한셈이다.그런데최효찬은아파트에서오랫동안살았지만,그곳에서살았던기억은별로남아있지않다고말한다.아파트는땅이아니라허공에공간을차지하고있기때문인지혹은획일적인공간때문인지몰라도이사를하면그곳에서살던기억마저덩달아사라져버렸다는것이다.삶이휘발유처럼싹날아가버린다는것이다.
최효찬은『집은그리움이다』에서“인간에게집은과연무엇이며,어떤곳인가?”라고묻는다.집에는그집만의고유한이야기가있다.각기다른얼굴을하고있는집이라면주인의취향과그집을지으면서고심한흔적들이드러나게마련이다.마당의꾸밈이나대문의위치에서도그집만의고유한풍경이펼쳐져있다.다시말해집은개인적인취향이나기호에따라개인의의지로짓거나선택할수있는주거공간이어야하며,그집에는가족의정과추억과그리움이오롯이쌓여야한다.
우리에게집은무엇인가?
대부분우리는아파트라는공동주거단지에서살아간다.누에고치집처럼지어진아파트는그야말로베드타운의전형이다.아파트는모든게잘갖추어져있다.우리는아파트에들어와밥을먹고씻고잠을자면된다.다시아침에일어나반복되는일상을살아가기에최적화된구조가아파트다.우리가흔히말할때홈(home)은안식의거처로서가족의정이느껴지는공간을의미한다면,하우스(house)는건축물의기능을갖춘공간으로서집을의미한다.다시말해아파트는집을홈이아니라하우스의기능으로전락시킨상징적인구조물이라고할수있다.그러기에우리나라아파트주거문화는노동의지속적인재생산에합리적인주거형태라고할수있다.그곳에는우리의기억이축적될수없다.
데이비드하비는1972년미국신도시세인트루이스의프루이트-이고주거단지폭파철거를모더니즘적건축물의상징적죽음이라고말했다.하비는프랑스사회학자인앙리르페브르의도시주의를계승했는데,르페브르는주거공간이자본주의적생산을새로운지역으로확대시키는하나의주요한상품으로기능한다고보았다.또자본주의는오직공간을점령하고,공간을창조함으로써만생존해왔다고주장했다.미국이이미50여년전에거대한아파트를폭파한것인데,우리나라신도시들도언젠가폭파되는운명을맞지않으리라고장담할수있을까?전국에우후죽순처럼솟아나는아파트단지들이수십년후에사회적인재앙이될것같은불길한예감이드는이유다.
퇴계이황은고향에집다섯채를지었다.퇴계는단순히집을소유한건축주가아니라집을짓는데그의성리학적세계관을집짓기에적용시키고,직접설계도를그리는등탁월한안목을보여주었다.30세때지산와사를짓고자신이거처하는방을선보당이라고한이후46세때양진암,49세때한서암,50세때계상서당,마지막으로61세때정면3칸,측면1칸의아주소박한규모의도산서당을끝으로기나긴건축여정을마감했다.퇴계의집짓기에는이상적인집을마련하려는평생의소원이담겨있었다.퇴계는땅을구하고집을짓는데자신의철학과재산을모두투입했다.자신의마음에드는터를구하고그기쁨을시로짓고노래하고이를제자와아들에게보여주었다.
서유구의『임원경제지』에따르면,옛선비들은산수간에집을짓고사는게이상이었다.그러나실제로선비들은별장을마련하지못하고죽는경우가대부분이었다고한다.이들은결국계획만세우다늙고말았다는것이다.서유구는76세때광여루를짓기도했다.누각의기문(記文)은당시최고의문장가인홍길주(洪吉周)에게부탁했다.여기서3년더살다가80세에세상을떠났다.서유구는임원(林圓)에서우아하게살아가는것이얼마나어려운지를말했다.서유구가말하자고하는것은전원에서집을짓고행복한삶을꿈꾼다면지금당장집을지으라는말이아닐까싶다.
생텍쥐페리는늘다시는돌아갈수없는유년시절로돌아가려고했다.생텍쥐페리가실종되기전마지막으로비행한곳도유년시절을보낸집인근이었다.생텍쥐페리는4세때아버지를여의었지만,귀족인친척들의저택에서번갈아더부살이를했다.그는웅장하고고색창연한성(城)의안팎에서뛰놀며토끼,거북,달팽이,여우같은동물들을키우며길들일수있었다.동물길들이기는그가20대후반에조종사로취직해사하라사막에서근무할때까지이어졌다.그는영양이나카멜레온,사막의작은여우등을길동무로삼고길들이기도했다.그가어머니와보낸유년시절은강렬한기억으로남았던것같다.전쟁중생사를넘나드는상황에서도유년시절의기억들을끄집어내마음의평화를얻으면서힘겨운나날을버텨낼수있었다.생텍쥐페리는언제나유년시절을보낸집에대한그리움과집으로돌아가고자하는마음을간직하고있었다.
그외에도다산정약용의제자인황상의일속산방,주자의무이정사,이언적의독락당,조식의산천재,김장생의임리정,송시열의팔괘정,정약용의다산초당,두보의완화초당,르코르뷔지에의통나무별장과어머니의집,몽테뉴의서재가있는집,데카르트의철학을잉태한집등은모두집이인간에게엄청난영향을주었다는것을반증한다.이집에서이들은자신들의사상과철학과도덕을짓고살았다.
“나는33번을이사했다”
최효찬은고향집을떠난이후고등학생시절을보낸경남진주옥봉남동과상대동의자취방,대학생시절을보낸서울개화동과등촌동과창천동과연희동의자취방,창천동과대신동의하숙집,대학졸업이후대신동의월세방,신혼생활을시작한경기도고양시화정동의아파트,생애첫번째내집인경기도고양시일산의빌라,두번째내집인서울강서구가양동의아파트,경기도고양시일산의아파트를거쳐서울홍은동과은평구의아파트,은평한옥마을에집을짓고채효당에깃들기까지40년이라는세월이흘렀다.이제까지최효찬은무려32번이나집을옮겨다녔다.그리고2017년7월입주한채효당은고향집을떠난이후33번째맞은집이다.
최효찬의고향집은불행하게도1987년합천댐이건설되면서수몰되었다.고향집이존재하지않는다.고향에가면합천호그어디쯤에있다고상상만할뿐이제는사진으로밖에볼수없다.고향집은합천황강지천이있던옥계초등학교바로옆에있었다.아버지가지은이고향집은안채와사랑채,잠실등4채로구성되어있었고좌우로남새밭이있었다.잠실앞쪽에작은가게가있었고,안채뒤쪽과집앞쪽,남새밭에는감나무가일곱그루정도있었다.마당에배나무도두그루있었다.마당앞에는탱자나무가울타리를치고있었고,남새밭에는구기자나무가울타리삼아심어져있었고,초피나무와감나무도있었다.
최효찬은고등학교에진학하면서고향집을떠나진주로나간다.옥봉남동의단칸방에누나와형과함께살았는데,이집이고향집을떠난이후첫번째집이다.누나는공장에서야간과주간을번갈아근무하면서두남동생의뒷바라지를했다.고등학교1학년때부터3남매가자취생활을한것인데,누나가어떻게남동생들과한방에서잠을자고생활했을지상상할수가없다.
대학에진학한최효찬은자취방한칸얻을돈이없는고학생이었다.도봉구안방학동에있는고등학교친구의큰형님집에잠시친구와한방을쓰기로했는데,이집이고향집을떠난이후다섯번째집이다.이곳에서돈한푼들이지않고2개월동안얹혀살다가북아현동에있는인우학사에들어간다.기숙사비가부담되지않았기때문인데,그비용은몰래과외를해서마련했다.이후친척집에서‘입주과외’를했는데,중학교3학년인친척의큰아들을턱걸이로고입연합고사에합격시켰다.
개화동자취방은고향집을떠난이후여덟번째집인데,서울생활을시작한지1년만에처음으로‘나만의방’을갖게되었다.이집은월세가5만원이었다.이방에서바라다본김포공항의활주로불빛들은더넓은세상을동경하던최효찬에게그세상으로가는관문이기도했다.그불빛들을보고있으면미지의세계로들어가는듯해서희망에부풀기도했다.
군대에갔다온이후대학교에복학하고나서는전셋집과하숙집을전전했다.등촌동단층집,창천동2층옥탑방,연희동빌라,연남동단독주택,그리고네군데의하숙집,원룸전세,이문동자취방,고향집을떠난이후20번째집이자결혼하기전마지막으로살았던자취방까지최효찬은유목민처럼어느한곳에정주하지못하고여러집을전전하며살았다.
최효찬은경기도고양시화정에있는작은아파트에서신혼생활을시작했다.고향집을떠난이후21번째집이다.그것도대출을받아겨우전세금을마련해신혼살림을차린것이다.그리고새천년이시작된해에입주한경기도일산의빌라는고향집을떠난이후24번째집이자,생애처음으로내집마련의꿈을이룬집이다.이집에서살때아들은눈만뜨면놀이터에나가아내가밥먹자고외칠때까지또래아이들과놀았다.
아내의과외때문에이사를했는데,대형평수의복층빌라에전세로입주했다.다시전세살이가시작되었다.이집은고향집을떠난이후25번째집이다.그후단독주택에서살고싶은생각에마당이있는단독주택으로이사하고,아파트로빌라로다시아파트로,서울의아파트로,그리고마지막으로은평뉴타운아파트로이사를했다.최효찬은결혼한이후에12번을이사했는데,전세기간인2년마다집을옮긴것이다.그리고결혼한지22년만인2017년에서울은평한옥마을에채효당을지었다.채효당은최효찬이고향집을떠난이후33번째집이다.
노마드시대에정주의삶을꿈꾸다
최효찬이북한산자락에한옥을짓게된것은우연이었다.은평한옥마을부지바로인근아파트에살고있어이곳을매일산책하다시피했는데,2014년10월초미분양공고를보고땅을매입한것이계기였다.땅을구입할수있는여건이되지않았지만,아내와상의를하고나서무턱대고계약을했다.결코적은금액이아닌데도어떻게하면장만할수있겠다는막연한생각이들었다.2015년9월초북촌HRC의김장권대표를만나설계를맡기고,1년후인2016년9월구청의심의를마쳤다.설계도는수정을5번정도거치면서처음예상했던것보다크게바뀌었고평수도45평으로늘어났다.2층과지하층에대한생각도덧붙여지면서욕심이커지기도했고다시줄어들기도했다.
2016년10월터파기공사를시작했다.10월부터12월까지기초공사를하고겨울철에공사를중단한후2017년2월말에다시목구조공사에들어갔다.3월초에상량식을했고기와공사,내부수장재공사등을거쳐2017년11월에준공승인이났다.계획상준공은5월이었는데6개월정도공사가연장되었다.그기간에는하자등을발견하고보완했다.이렇게해서은평한옥마을에지상2층의채효당을짓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