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 (박서보의 삶과 예술)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 (박서보의 삶과 예술)

$19.55
Description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박서보는 20세부터 평생 작가로만 치열하게 살아왔다. 잘 팔리는 그림으로 전향하자는 유혹이 없지 않았지만, 자존심이 센 박서보는 철두철미 반골로 일관했다. 일반적인 의식을 한 발 앞서 전위적 미술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 일인지 잘 알면서도 시대를 거스를 수 없다는 신념으로 우직하게 한길만 걸었다. 지금의 단색화 열풍은 그의 참된 노동과 우직함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자본주의에서 불어오는 미세먼지 같은 것이다.

박서보는 우연히 캔버스 위에서 ‘비움’의 방법론을 터득하고 그것을 자신의 시그니처 작업으로 올곧게 진행시켰다. 흰색 물감을 바른 캔버스 위에 연필로 반복해 선을 긋고, 다시 그 위에 흰색 물감을 발라 선을 지운 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한가득 선을 그으면 지우고 그은 뒤 또 지웠다. 이것을 ‘묘법’이라 부르고, 불혹의 시간을 오롯이 묘법을 하며 보냈다.

박서보는 “아무래도 살기 위해 다시 작업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며 다시 작업실에 있다. 구순을 바라보는 그의 머릿속은 하루 종일 작업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으며, 창조 욕구로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박서보는 팔의 힘을 기르기 위해 캔버스를 직접 만들고 망치질을 한다. 집게로 캔버스 천을 잡아당긴 날이면 손은 어김없이 떨려서 들고 있는 수저로 저녁 테이블을 두드리는 드러머가 된다. 사실 아무도 그가 작품을 끝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필을 깎는 그의 떨리는 손에는 무기를 닦으며 전쟁터로 나갈 준비를 하는 노장의 비장함이 서려 있다.
저자

박승숙

홍익대학교예술학과와동대학원예술학과를졸업하고,미국TheSchooloftheArtInstituteofChicago에서미술치료석사과정을마쳤다.20년간국내에서미술치료사로일하면서행복하게글을쓰고교육자로일했다.현재는더중요하거나더재미난일을하려고준비중이다.

목차

작가의말ㆍ4

프롤로그
광기의시대를건너는법ㆍ12
단색화열풍ㆍ18
행위의반복성과무목적성ㆍ20
세상을다시담다ㆍ25

제1부나를찾아가다
꼬마재홍
큰인물이될거요ㆍ33
편애는차례대로ㆍ35
걱정스런녀석ㆍ37
게으름을깨닫다
전쟁의충격ㆍ41
국민방위군ㆍ48
홍대전시학교ㆍ56
‘나’는누구인가ㆍ
다시배지를달고ㆍ60
도망자,서보ㆍ67
수덕사에서김일엽을만나다ㆍ74
발동을걸다
사이다발언ㆍ78
안국동파ㆍ81
뭉치고갈라지고시끄럽고ㆍ85

제2부기회를잡다
운명의여인
그녀가서보앞에ㆍ107
얼결의프러포즈ㆍ111
번갯불에콩볶듯ㆍ118
가장으로서의책임
준비되려면너무먼당신ㆍ126
파리로가다ㆍ133
창피한옐로
일이꼬이다ㆍ139
그래도작업은계속되고ㆍ145

제3부나만의것을만들다
혈기지분
나를위한친구,김창열ㆍ163
좌충우돌깃발경쟁ㆍ169
아내를함부로하지마라ㆍ184
유일한어른,김환기ㆍ190
체념과포기를배우다
묵묵한그대덕에ㆍ197
나만의작업을찾아서ㆍ201
서로필요했던사람,이우환ㆍ220
개천에서들키다ㆍ226
모순속총화단결ㆍ234
시그니처를작성하다ㆍ247
현대미술운동을하다
가족의변화ㆍ263
박서보사단ㆍ267

제4부색을발견하다
최루탄과함성속에서
한지를만나다ㆍ279
홍대에발이묶여ㆍ292
사방으로뻗는힘ㆍ300
풍토성과한국적인것ㆍ310
삶이그대를속일지라도
죽어도아니눈물흘리오리다ㆍ313
사실은형님이던정창섭ㆍ319
정겨운친구,윤형근ㆍ326
기쁜날이오고야말리니
평생의작업실ㆍ334
색을구하다ㆍ342

에필로그
삶의가치와행복ㆍ355
온전함과완벽함의사이에서ㆍ358
눈물을허락한아버지ㆍ363
권태를모르는노동자ㆍ366

주ㆍ373
작품·사진출처및소장처ㆍ376

출판사 서평

변신에변신을거듭하는화가박서보!
“변하지않으면추락한다.그러나변하면또한추락한다.”

2019년5월18일부터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서박서보의대형회고전이열리고있다.이번회고전의제목은‘박서보:지칠줄모르는수행자’다.70여년의화업(?業)을정리하는이번회고전에서는1950년대초기작부터신작2점까지총160여점을만날수있다.박서보는한국추상미술의선두주자다.1957년에발표한작품<페인팅NO.1-57>(본문13쪽작품)은국내최초의앵포르멜작품으로꼽힌다.2016년에는한국화가중에서최초로영국런던화이트큐브갤러리에서개인전을열었다.그의작품은현재미술경매시장에서100만달러(약10억원)이상에거래되고있다.
박서보는그유명세에비해작품은영안팔리는작가로알려져있었는데,2014~2015년에홍콩크리스티경매에서10억원을넘겼다는소식이들렸다.신문마다스포츠기록갱신처럼박서보와‘단색화’작가라고묶인동료화가들의경매가를앞다투어소개하기시작했다.미디어는연일‘단색화열풍’을떠들어댔고누구는한국미술이세계적브랜드를낳았다고칭송했다.한편에서는그‘거품’을걷어내려고관련작가들을매섭게비평하고재조명하는사람들도생겼다.그러나미술작품이세상밖으로나가면제나름의여정을밟으며흥망성쇠를하는법이다.작가의노력과상관없이미술시장에서급작스럽게벌어진이러한기이한현상은한동안사람들을혼란하게만들었다.
박서보는“변하지않으면추락한다.그러나변하면또한추락한다”고말한다.일찍이니체는『인간적인,너무나인간적인』에서이렇게말했다.“예술적즉흥이라는것은진지한태도로노력하여엄선된예술사상과비교한다면낮은자리에위치한다.모든위대한예술가는고안해내는일뿐아니라내버리고,검토하여정리하며,수정하고,정돈하는일에서도권태를모르는위대한노동자다.”박서보는‘권태를모르는노동자’다.70여년의화업이말해주듯,박서보는20세부터구순을바라보는지금까지도작품활동을한다.‘수신(修身)과치유’를위해,‘자기자신을부정하며포기’해나가기위해서말이다.
20년간미술치료사로일해온박서보의딸인박승숙이그런아버지의삶과예술을정리한책을집필했다.박승숙은아버지와똑같다는어머니의말이오해임을증명하기위해아버지를거울삼아반대로만살려고애썼다고고백한다.아버지의딸인것이싫었고,창피했고,아버지와관련된일마다무심했고,어디에도얼굴을비추지않았다.그런데남보다도몰랐던아버지의삶과예술을처음으로깊이들여다보니,그동안의아하고이해할수없었던많은것이이해되었다고말한다.아버지에대해공부한시간은딸인저자에게용서와화해의시간이자,앞으로해야할일을깨닫는의미있는시간이었다.

딸이쓰는화가아버지의진짜모습

저자는자신이끔찍하게여겼던아버지의캐릭터도알고보니아버지개인만의것이아니라고말한다.박서보가살아낸시대가박서보에게남겨놓은흔적이고,그시대모든어른이조금씩분유(分有)하고있던특성이었다.그런데박서보에게따라붙는전형적인해시태그가많은데,그것들이박서보개인의고민이나갈등,포부와좌절,집념의행적을덮고있는듯했다.한인간이자신의시대와어떻게상호작용하며어떤인연들을만나자기를만들어갔는지들려줄필요가있다.그것은그시대가그러했듯,박서보의전생애는노동사이며,지금은그가치가현대미술에서사라져가고있기때문이다.박서보와그동료들에대해시대사적으로올바로이해해야그들에게무엇을책임지라고비난하고무엇을감사히여길것인지제대로구분할수있기때문이다.
6?25전쟁에서부친을여의고모든게엉망이던시대를살아내면서박서보는자신의에너지를통제하는법을차분히배우지못했다.워낙다혈질에기운이뻗쳐서좌충우돌했고,많은사람을곤란하게한것은물론자신도그결과로늘당황하고아파했다.묘법이박서보의인격수양으로이어졌다고말할수없지만,그과정조차없었으면그시대에박서보는자기에너지에스스로치여광기를보였을지도모른다.충분히그럴만한삶이었고,시대가그랬으며,그런사람이었다.박서보가살아온시대도그랬다.흑백논리로,적군과아군으로세상을가르느라바쁘기만했던시절이다.박서보는그속에서너무빨리어른이되었고,세상을보는법이나상처에대응하는법을가르쳐줄만한어른을곁에두지못했다.스스로성숙해질기회가없지는않았으나,그러기에는박서보개인이가진한계가컸다.
박서보는온전함과완벽함을혼동해서평생자기가자신을인정하지못해내달리기만했다.박서보에게성공은자신이생각하는‘완벽함’이었다.박서보는자기가갖고있는인간적인부족함과흠을덮느라고자신이내세우고싶었던놀라운면만을사람들앞에줄기차게내세웠다.하지만자기가인정하고있는자기만알아달라고외친들사람들은자기눈에들어오는전체로그사람을볼수밖에없다.박서보는입다물어준사람에게는고마움을느끼지못했고,도와준사람에게는화만냈다.기회가여러번있었음에도박서보가더성숙해지지못했던이유다.
박서보가뿌듯해하고애착하던자신의사회적이미지,즉‘주류에맞서는혁명가’,‘거침없는행동가’,‘한국현대미술의리더’,‘18시간씩작업하며변신에변신을거듭하는대작작가’,‘홍대미대의수장(首長)’등은전쟁의가난에서지금의한국으로급성장하느라어수선했던이사회가허락하고부추긴박서보의외관일뿐이다.그것을한꺼풀벗기면,거기에는꼬마재홍이숨어있다.마음이유약하고,소심하고,겁이많은아이말이다.눈물잘흘리고,감수성이풍부하며,동정심많던사내아이.샘많고,관심받는것을좋아하고,영리하지만공부하는것은죽기보다싫어하고,친구들을몹시도좋아해따르던어린꼬마.박서보는‘단색화열풍’덕분에말년에지구촌예술가노릇을하며바쁜시간을보내고있다.하지만그것은미술시장의복잡한스토리이자,박서보의정체성은작업실에서그의일로만설명될수있다.

그림은수신과치유의도구가되어야한다

10여년전뇌경색으로한번더응급실에갔던박서보는인명재처(人命在妻)를버릇처럼읊조리며작품에서거의손을뗐다.박서보가작업의핵심행위를멈춘2010년이후의10년은박서보에게덤으로주어진시간이다.이10년은인생의과업이바뀌고삶의가치와행복이다시찾아지는기점이었다.사람들은삶에서기대하지않았던시간이생기면인생을달리돌아보기시작한다.줄기차게내달려온인생에서자신이무엇을잃고얻었는지둘러보게된다.자신의역할과직업이사라진다는것은일종의축복일수있다.사회적인물로살아가느라평생일방적으로강화시킨일면뒤에숨죽이며모습을드러내지못한또다른자신이있었음을깨닫는시간이되기때문이다.그래서노년의과업은진정한의미에서자기통합이라고한다.
박서보는원형질시기와유전질시기를거쳐1980년대‘묘법’을터득한이후그의화두는‘수신’이되었다.행위와정신과물질이일체화하는과정이작품보다중요해졌다.무언가를그리려고하는것이아니었기때문에반복되는선긋기는‘목적없는행위’였다.하지만이미지를만들어내려고하는목적성을버렸다는의미일뿐,선을긋고지우고다시긋는그행위에는뚜렷한목적이있었다.그러다한지를만난다.물에불린한지를밀어보니,연필로긋는행위와그것이하나가되면서물성(物性)이더욱도드라졌다.한지의매력에푹빠진박서보는미는연필과밀리는바닥을모두자신처럼느끼며둘사이에팽팽한긴장감을만들기시작했다.
이후한지를배접(褙接)하는방식이바뀌고안료에도변화가생기면서묘법이변해갔다.그리고2000년대에처음으로자기개인을위한‘수신’이아닌세상사람들에대한‘치유’적효과에대해생각하기시작했다.그중심에‘색’이있었다.다시말해2000년대들자묘법에컬러가강해지기시작했다.처음에는흑백으로만이분되었는데,붉은색으로시작해점점더색상이다채롭고화려해졌다.
박서보가늙어가니점점더원시적이되고어린아이가되어그림의색채가풍부해진것인지도모른다.노화되면서생각의구분과경계가뭉개져더많은것을반영하고담아내기시작한것일수있다.일본후쿠오카반다이산의단풍에반하고,한강의밤풍경에마음이설레며,제주도의탁트인수평선에서멈춰섰다.한평생을자기와만싸우던박서보가노쇠해져힘을잃자혈기가빠져나간자리에아름다운세상이다시들어찬것이다.그것은박서보에게치유적이었고,똑같이남들에게도치유적으로다가가는것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