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 폭등은 ‘합법적 약탈’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정부의 ‘부동산 대사기극’에 당하고만 살 건가?”
부동산 불로소득이 예외가 아니라 주요 사회적 흐름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면 그것은 약탈이다. 합법적 약탈은 시스템의 문제다. 그 시스템의 관리 책임자인 정부가 약탈의 주범일 수도 있겠지만, 정부를 처벌할 수 있는 상한선은 무능하다는 비판뿐이다. 그런데 무능해질 대로 무능해진 정부는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리지는 못할망정 무슨 권능이나 있는 것처럼 폼만 잡고 위선이나 떨어대는 걸까? 도대체 역대 정권들은 무슨 심보로 ‘부동산 투기 근절’ 운운하는 엉터리 잡소리들을 남발해왔는가?
한국은 진보-보수 정권이 번갈아가면서 발전시켜온 약탈 체제다. 한국의 정치판과 고위공직은 약탈 체제의 수혜자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약탈의 피해자들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다. 고위층이나 고위 관료들은 약탈의 수혜자들 중에서도 알찬 수혜자들이 아니던가? 언제까지 서민들의 삶을 짓밟고 내 집 마련의 꿈을 빼앗을 것인가?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분노와 저항뿐이다. 부동산 약탈 체제를 방치하거나 강화하면서 외치는 개혁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부동산 약탈 국가’의 파렴치한 사기극을 끝장낼 수 있다.
『부동산 약탈 국가』는 지난 5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역대 정권들이 부동산을 통해 어떻게 ‘합법적 약탈 체제’를 만들어왔는지를 살펴본다. 합법적 약탈은 내 집 마련해보겠다고 뼈 빠지게 일해 저축한 사람들, 전세·월세 값이 뛰어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된 사람들의 처지에서 보면 폭력으로 빼앗아가는 약탈보다 나쁜 약탈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들에게는 ‘투기의 천국’이었지만, 그로 인해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에게는 ‘투기의 지옥’이었다. 피를 토하고 죽어도 시원치 않을 서민들의 억울함과 고통은 민주화가 된 지금의 세상에서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약탈의 기득권자들이 스스로 약탈을 중단하는 법은 없다. 그래서 부동산 약탈은 우리가 가장 경계하고 분노해야 할 악(惡)인지도 모른다. 이제 반세기 넘게 한국을 지배해온 부동산 약탈 체제를 끝장낼 수 있도록 분노와 행동을 보여야 할 때다.
쓰레기처럼 버려진 사람들
서울시는 판자촌과 도시 빈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도 광주를 개발해 빈민들을 이주시키는 정책을 세웠다. 그리하여 1969년 5월부터 경기도 광주로 강제 이주시켰는데, 그 수는 14만 5,00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서울시는 쓰레기 내버리듯 그들을 내팽개쳤을 뿐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지 않았다. 황무지였던 그곳에서 빈민들은 천막을 치고 살았는데, 그들은 일감이 없어 굶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굶주리다 못해 말하기조차 끔찍하게 인육을 먹었다는 소문까지 떠돌 정도로’ 그들의 굶주림은 심각했다. 결국 주민들은 투쟁위원회를 만들어 1971년 8월 10일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배가 고파 못 살겠다’, ‘토지 불하 가격을 인하해달라’, ‘일자리를 달라’는 내용이 적힌 피켓과 플래카드도 준비했다. 이 사건으로 주민과 경찰 100여 명이 부상했고 주민 23명이 구속되었다. 이 사건은 ‘학생이 아닌 일반인 시위로는 사상 유례없는 사건’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광주 대단지의 비참한 실상이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1963년부터 1965년 사이에 서울 후암동, 대방동, 이촌동 등지에서 철거민들을 쓰레기차에 싣고 와 갈대밭에 버린 일이 있었는데,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윤치영이 철거민들을 향해 “이곳만은 손대지 않을 테니 재주껏 살아보시오”라고 말했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그곳에서 갈대를 뽑고 땅을 고르고 천막을 쳐서 갈대 대신 사람이 뿌리를 내린 곳이 바로 목동이었다. 1970년대에는 아현동 등에서 쫓겨난 빈민들도 목동에 내버려졌다. 그러나 10~20년 넘게 삶을 꾸려가던 빈민들은 1983년 4월 12일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서울시가 토지공영개발 방식을 시도해 신정동과 목동에 신시가지를 조성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한 번 쫓겨나 간신히 목동에 정착했던 빈민들을 또 한 번 내쫓길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정부의 재개발 정책은 늘 빈민들에게 가장 먼저, 가장 큰 불이익을 안겨다주었다. 당국은 빈민들을 자꾸 도시 외곽으로만 내몰았던 것이다.
서울로 밀려들던 지방 사람들은 서울이 좋아서 이주해온 한 게 아니었다. 고향에서는 먹고살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살던 판자촌은 강제 철거 대상이었다. 철거민들을 쓰레기 내버리듯 서울 밖의 지역으로 내팽개치는 일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그 덕분에 서울은 ‘천박’할망정 겉보기에는 점점 아름다운 도시가 되어갔다. 어디 그뿐인가? 역대 정권들은 주거 빈민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드는 분산 정책을 통해 이들이 집단행동을 일으킬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약속이나 한 듯이 이들을 투명 인간으로 취급했다. 물론 그 덕분에 부동산 가격 폭등을 통해 무주택자들의 지갑을 터는 ‘부동산 약탈 체제’도 평화롭게 지속될 수 있었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과거보다는 한결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주택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달라진 게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고성장 시대가 끝나면서 고통은 더욱 커졌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부자는 자기가 원하는 곳에 살고, 가난한 사람은 자신이 살아야 하는 곳에 산다”는 말이 있지만, ‘살아야 하는 곳’에서마저 내쫓길 위기에 처한다면 과연 어찌해야 하는 걸까?
‘부동산 대박’에 미친 한국 사회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롯데건설의 ‘롯데캐슬’ 아파트 광고다. 2001년부터 시작된 이 광고 슬로건은 이후 큰 인기를 누리면서 아파트가 곧 인간의 정체성을 대변해주는 ‘아파트 정체성’의 시대를 활짝 열어젖혔다. 더욱이 아파트라고 해서 다 같은 아파트가 아니기 때문에 아파트를 향한 꿈은 늘 더 높은 곳을 향해 나래를 펴고, 그 꿈을 인도하기 위해 한국의 대표 미녀들이 총출동했다. 고현정 아파트, 김남주 아파트, 최지우 아파트, 채시라 아파트, 송혜교 아파트, 김희애 아파트, 한가인 아파트……. 또 ‘아파트가 인간의 품격을 말해주는 시대’라거나 ‘나는 현대에 살고, 너는 삼성에 사는 나라’라는 말은 부동산에 미쳐 돌아가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아파트 반상회와 부녀회는 1980년대 후반 민주화와 더불어 아파트의 보급으로 쇠퇴하다가 2002년 부동산 광풍 이후 집값 담합 등 이익 집단화의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부흥기를 맞아 ‘무서운 반상회’로 거듭났다. 반상회에서는 통장의 주도 아래 주민들이 담합해 아파트값을 올려야 한다는 결의가 이루어지고, 좋은 일 하자며 아파트를 싼 가격에 거래되도록 주선한 경비원은 개인 재산권 침해라는 이유로 해고당하기도 했다. 2008년 3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한 아파트 입구에는 ‘우리 아파트는 평당 1,600만 원이 적정 가격입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또 광교 신도시 건설 인근 지역인 수원 매탄동의 한 아파트에는 ‘한 집이라도 건설교통부의 실거래가보다 낮게 내놓으면 우리 모두는 망한다’는 벽보가 나붙었다. 급기야는 서울 강남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는 “경축, ??아파트, 안전진단 통과!!-21세기형 주거공간”이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우리 집이 무너지게 생겼다고 경축하는 요지경 세상이다.
건축가 정기용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이 어디 사냐고 물으면 ‘나는 현대에 살고, 너는 삼성에 살며, 그 친구는 대우에 살며, 저 친구는 우성에 산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네가 아니라 대기업체의 이름 속에 당당하게 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기보다는 (집이라는) 상품을 소비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개탄했다. 같은 지역, 같은 평형이라도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 값이 2배까지 차이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에는 6개 주택 계급이 존재한다. 제1계급은 집을 2채 이상 가진 자, 제2계급은 1가구 1주택자, 제3계급은 자기 집은 세를 주고 남의 집을 옮겨다니는 자, 제4계급은 전세나 월세 보증금이 5,000만 원이 넘는 집에 사는 무주택자, 제5계급은 사글세·보증금 없는 월세·보증금이 5,000만 원 이하인 집에 사는 무주택자, 제6계급은 지하방, 옥탑방, 판잣집, 비닐집, 움막, 업소 내 잠만 자는 방, 건설 현장 임시 막사 등에 사는 주거 극빈층이다.
집단적으로 ‘부동산 대박’에 미친 사회에서는 개인이 아무리 도덕적이라 하더라도 집단적 광기의 문법을 거스르기가 어렵다. 라인홀드 니부어는 집단의 도덕이 개인의 도덕에 비해 열등한 이유를 오직 개인들의 이기적 충동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적 충동과 자연적 충동을 억제할 만큼 강력한 합리적 사회 세력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에서 찾았다. 개인들의 이기적 충동은 개별적으로 나타날 때보다는 하나의 공통된 충동으로 결합되어 나타날 때 더욱 생생하게 누적되어 표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동산 약탈에 반대할 강력한 합리적 사회 세력을 만들기 어렵게 한 주범이 역대 정권들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문재인 정부가 주도한 ‘부동산 대사기극’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대책이 22차례나 발표되었지만, 부동산 가격은 오히려 폭등했다. 최근의 ‘8·4 대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후 그 어떤 고강도 대책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집값을 잡기는커녕 오히려 다급해서 급조해낸 탓에 부작용만 양산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꿈꾼 새로운 세상은 부동산 약탈을 키우는 것으로 나타나고 말았다. 2020년 7월 16일 제21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문재인은 “부동산 투기를 통해서는 더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문재인은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2019년 11월 19일),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2020년 1월 7일), “집값이 급등한 일부 지역은 집값이 원상 복귀돼야 한다”(2020년 1월 14일) 등의 결연한 의지를 공언했다. 그러나 부동산 약탈은 계속 일어났고 문재인의 ‘장담’은 헛말이었다는 게 분명해졌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2020년 6월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