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은밀한 취향 (왕과 왕비의 사적인 취미와 오락)

조선의 은밀한 취향 (왕과 왕비의 사적인 취미와 오락)

$17.10
Description
고양이 집사, 그림 컬렉터, 소설 탐독가, 판소리 후원자,
화초 수집가, 도자기 애호가, 사냥 덕후, 메모광, 당구왕!
저자

곽희원

문화재청국립고궁박물관학예연구사.홍익대학교에서도예유리를전공하고동대학원미술사학과에서한국도자사를공부했다.조선후기왕실도자기에나타난명문(銘文),화협옹주묘도자출토품,개항기수교도자기등조선왕실도자기를주로연구하고있다.

목차

책머리에|정조와송충이ㆍ5

제1장동물애호가들
조선의고양이집사ㆍ13
원숭이를선물로받다ㆍ22
이성계에게는준마가있었다ㆍ32
학을꿈꾸는집에살다ㆍ41

제2장왕과꽃과나무
모란이피기까지ㆍ51
꽃에서마음의위안을찾다ㆍ60
달콤한홍시의맛ㆍ70
왜문종은앵두나무를심고,세종은앵두를즐겨먹었을까?ㆍ79
순무로답답한속을달래다ㆍ87

제3장취미와오락사이에서
당구장에서나라잃은슬픔을잊다ㆍ99
쌍륙에빠지다ㆍ107
불꽃,밤하늘을밝히다ㆍ116
사냥을즐기다ㆍ125
활쏘기실력에따라벌주를내리다ㆍ134
병을치료하기위해온천을찾다ㆍ143
판소리에취하다ㆍ152
피부미용을위해화장을하다ㆍ161

제4장소설과그림을탐하다
소설을탐독하다ㆍ173
그림에정치를쓰다ㆍ182
충신의초상화를보다ㆍ191
시험을채점해상을주다ㆍ200
불서를간행해망자를기억하다ㆍ208
교묘한기억보다서투른필기가낫다ㆍ216
인장에즐거움을새기다ㆍ225
청나라를동경하다ㆍ233

제5장도자기에담긴마음
어찌왕과세자가같은그릇을쓰느냐ㆍ245
도자기,고종의마음을훔치다ㆍ256
화장품을도자기에담다ㆍ266
술잔에용을장식해술을경계하다ㆍ274
옥잔에꽃을수놓다ㆍ285
화려한법랑이궁궐에있는이유ㆍ295

참고문헌ㆍ305
저자소개ㆍ312

출판사 서평

우리가몰랐던조선의왕과왕비,
왕실가족들의취미와오락
“사냥덕후태종,그림컬렉터숙종,당구를즐겼던고종과순종,고양이집사숙명공주……”

우리는조선의왕실이라고하면치열한궁중암투를떠올리게된다.그러나조선의왕이나왕비등도각자의취향이있었고거기에마음을쏟았다.그들은한사람의자연인으로서사랑스럽고어여쁜것에마음을기울였고,좋아하는것을즐기고누렸다.또자신의취향을마음껏드러내거나가끔은그정도가지나쳐물의를일으키기도했다.
조선은성리학적유교이념을바탕으로세워진국가였다.임금은모름지기학문을숭상하고성왕(聖王)과맹자의가르침을실천하며하늘을공경하고덕을닦아백성을걱정하는모습을보여주어야했다.즉,왕도정치를수행해백성들의안위에몰두해야하는왕이어떤특정한대상에깊이빠져국정에소홀해지는것을매우경계했다.그래서이들은자신이원하는취미생활도자유롭게하지못하고일거수일투족을신하들의간섭을받아야했다.혹여라도정사를그르칠까왕과신하들은늘논쟁을벌이기도했다.하지만이들도사람인지라고양이집사,그림컬렉터,소설탐독가,판소리후원자,화초수집가,도자기애호가,사냥덕후,메모광,당구왕등자신만의취미와오락을통해즐거움을찾았다.
원숭이가얼어죽을까걱정해가죽옷을지어주게한성종,진귀한화초수집과화원조성에집착했던연산군,남성주인공들의갈등과대결을그린소설을탐독한영빈이씨,답답한속을순무로달랬던정현왕후,신하들의시험지를직접채점해서상을주었던순조,분판을곁에두고머릿속에떠오른생각을기록했던세조등이들은소소한감정과욕구에연연했던평범한사람들이었다.프랑스사회학자피에르부르디외는취향을타인과구분되고싶은인간의욕망이라고정의한다.다시말해어떤행동을하거나어떤물건을소비함으로써다른사람들과구분짓고싶은욕망이라고할수있다.
『조선의은밀한취향』은우리가잘모르고있던조선왕과왕비등왕실가족의다양한면모를취향이라는측면에서새롭게조명한다.이책을통해조선왕과왕비,그왕실가족들의취미와오락등을엿볼수있다.숙명공주는대표적인애묘가(愛猫家)라고할수있다.특히숙명공주는시집간후에지나친고양이사랑에대해시댁안에서불만의소리가나오자,효종은한글편지를보내‘어찌하여고양이를품고있느냐’며딸의철없는행동에짧지만강력한경고메시지를날렸다.사소하다고도할수있는공주의취미생활을두고친정아버지까지걱정했던것이다.고종과순종은창덕궁과덕수궁에당구장을설치해즐겼을정도로당구에심취해있었다.흥선대원군은19세기최대의판소리후원자였고,고종은판소리명창에게의관이나감찰같은직계를주기도했다.

왕과왕비가탐닉한취미와오락

태종은사냥덕후였다.말을달리며활을쏘아동물을잡는사냥뿐만아니라,훈련된매를이용해꿩이나토끼등을잡는매사냥도매우좋아했다.한번은종묘에제사를지내러가는길에신하들몰래매사냥을즐기기도했다.그리고수시로사냥을나가노루와사슴등을잡아왔고,사냥을하느라며칠씩궁궐을비울때도있었다.태종이종기치료를위해온천에다녀오고자했는데,온천치료를핑계삼아사냥을즐기려했던것으로생각해신하들이반대했던적도있었다.사간원과사헌부의대간들도자유분방하게사냥을즐기는태종을자제시키기위해진땀을흘렸다.대간들은사냥하다부상을입을까염려된다는이유를대기도했지만,사냥터로정해진고을에서임금을위해지방관들이올리는선물을백성들이준비해야했기때문에그폐해가한두가지가아니었다.대간들은지치지않고끈질기게사냥중지를청했지만,태종은이에굴하지않고사냥을계속했다.
숙종은그림컬렉터이고,헌종은인장수집가였다.숙종이그림을보고그에대한감상을글로남기는것은100수이상이된다.그는은연중에뛰어난그림을알아보는자신의식견을자랑하기도했다.숙종은다양한주제의그림들을섭렵했는데,산수ㆍ동물ㆍ인물ㆍ풍속ㆍ역사고사등전통그림에서다루어지는거의모든주제를망라했다.당시조선에서이름난화가의작품은물론이고중국의명작까지그의감상목록에이름을올렸다.헌종이수집한인장은700방이넘었다.헌종은직접인장을만들기도했다.자신이수집한인장의카탈로그를편찬하면서그제목도『보소당인존』이라고붙일정도였으며,인장을보관했던서랍장인‘보소당인존장’을만들기도했다.이보소당인존장은헌종의기쁨이담긴보물상자였을것이다.조선의왕중에서가장어린나이인8세에왕위에올랐던헌종은고독한왕실의삶을인장에새기며달랬던것이다.
영조의후궁이자사도세자의생모인영빈이씨는소설탐독가였다.현재남아있는『고문진보언해』,『무목왕정충록』,『손방연의』에는영빈이씨의‘영빈방’인장이찍혀있다.『무목왕정충록』은남송의역사를배경으로무장악비의활약상을그린소설이고,『손방연의』는진·초·연·한·조·위·제일곱나라가세력다툼을벌이는전국시대를배경으로제나라손빈과위나라방연의전략대결을그린소설이다.여기에서영빈이씨가여성취향의말랑말랑한이야기가아니라정치적으로대립하는남성주인공들의갈등과대결을그린소설에관심을보였다는점이상당히흥미롭다.반면정조는소설을읽어본적이없거니와숙직중에소설을읽었다는이유로관리들을파직하기까지했다.
고종과순종은당구애호가였다.대한제국의황제고종과순종은당구를즐겼을뿐만아니라창덕궁과덕수궁에당구장을마련할정도로당구에심취해있었다.고종은아침에는11시까지함녕전침실에서취침하고새벽2~3시까지침실에들지않은채덕수궁덕홍전에설비해놓은당구장에가서공을치는데재미를붙였다.또순종은월요일과목요일을당구치는날로정했는데,정해진날짜이외에도당구장에빈번하게가서당구를즐겼다.또한순종은외국인당구선수가경성(京城)에오면반드시한번씩은만나보았을정도로당구에깊은관심을가졌다.순종계비순정효황후도나인들을대동해당구로시간을보냈을정도로황실에서당구는남성들만의전유물이아니었다.

취향의천국,조선의왕실

세종의누이동생인정선공주의남편남휘는쌍륙에빠졌다.쌍륙은도박인데,상대말을잡아가면서내가가진모든말을상대편보다빨리판에서빼면이기는게임이다.남휘는부인이병이들자보살피기는커녕도박삼매경에빠졌다.거기에공주가세상을떠난지몇달지나지않았는데도다른사람의첩과바람을피웠다.쌍륙이얼마나재미있고중독성이있는놀이였기에한나라의공주를뒷전으로미루고몰두했던것일까?송시열은효종이자주희빈(姬嬪)과여러공주들로하여금쌍륙과바둑을즐기게하고서놀이값을징수해술과음식을푸짐하게차린다고지적했고,정약용은쌍륙과장기놀이는“돼지를기르는종들이나하는짓”이라고비판했다.
문종은앵두나무를심고세종은앵두를즐겨먹었는데,이는세종의질병과관련이있다.세종은춥고더운날이라도밤을새워글을읽을정도로학문을게을리하지않았다.나랏일도열심이어서굵직굵직한주요업적을이루어냈다.한마디로공부벌레이자일중독자였던세종은과중한업무와운동부족,만성피로와스트레스로몸에병을줄줄이달고살았다.세종은오늘날의당뇨병인소갈증을앓았는데,하루에마시는물이한동이가넘었다.이러한세종의증상에제격인과일이바로앵두다.갈증은화와열을다스려야해소가되는데앵두가적격이다.게다가피로해소에도효과가있으니,소갈증환자였던세종에게앵두는안성맞춤인과일이었다.
성종비정현왕후은순무를탕으로즐겼다.이순무는제갈량이병사들에게심게하여양식으로보급했다고해서‘제갈채’라는이름으로불리기도한다.정현왕후는‘사화와반정’의혼란스러운15세기말에서16세기초를관통하며조용하면서도강단있게살아간왕비다.정현왕후는두번의사화가일어났던연산군대를무사히버텨냈다.또한중종반정과작서의변이일어나자범인을죄주는정치적행동을취하기도했다.이어려운세월을버텨내면서아마도정현왕후는스트레스를많이받았을것이고,이러한정현왕후에게제격인식재료가바로순무였다.순무는속을통하게해주고마음을편안하게해주며기침을다스리는데도도움이된다.
성종의원숭이사랑은아주각별했다.한겨울에원숭이가추위에고생하다가얼어죽지않을지마음이쓰여“흙집을지어주고,옷을입히자”고했다.그러자신하들이“원숭이는상서롭지못한짐승이니,사람의옷을가지고상서롭지못한짐승에게입힐수는없다”고반대했다.또세종은제주목사(牧使)가잡아길들인원숭이여섯마리를잘길러번식에힘쓰라고명했고,문종도일본에서원숭이를지속적으로선물하기를바랐다.그것은쥐가원숭이를두려워해서말과원숭이를같이두면말은쥐의공포에서벗어날수있을뿐만아니라말의털속에기생하는해충을원숭이가잡아주므로말은병에걸리지않았기때문이다.
조선의왕중에서태조와세조와연산군은유달리꽃을아끼고사랑했다.이들은조선의역사에서잔혹한모습을보여주었던왕이다.세조는조카단종의왕위를빼앗은피의군주‘수양대군’으로알려져있다.특히연산군은꽃가꾸는취미와관련해가장많은기록을남겼다.그는연꽃,작약,들국화,모란,영산홍,해바라기등의생태에대해서도잘알고있을정도로꽃가꾸기에조예가깊었다.신하들에게모란꽃을내려주고시를짓도록했고,격무에지친신하들에게꽃과술을선물해그들을격려하기도했다.그러나그의취미는취미의수준을넘어각종신기하고품질좋은꽃을수집하거나“영산홍1만그루를후원에심으라”고할정도로병적인집착으로변질되었다.이들이꽃을사랑했던이유는식물을통해마음의위안을얻고마음의상처를치유하기위한것은아니었을까?마찬가지로21세에요절한예술애호가효명세자는학과돌을사랑했다.그는왕세자라는무거운짐을내려놓고서화를감상하고시를창작하는등고아한삶을영위했다.
성종의불꽃놀이에대한사랑은남달랐다.신하들은화약장(火藥匠)이죽고다치는사고가벌어지고화약소모에따른비용부담과함께많은노동력이필요했기때문에불꽃놀이를중지해야한다고했다.하지만,성종은불꽃놀이가군무에관계되는중요한일이라며신하들의건의를수용하지않았다.또정희왕후(세조의비)와소혜왕후(인수대비)를위해사귀(邪鬼)를쫓기위한것이라는핑계를댔다.그래서성종연간에는연말인12월30일에불꽃놀이가행해졌다.
영조와영빈이씨의딸이자사도세자의친누나인화협옹주는화장을했다.왕의딸로서사대부가에시집갔던화협옹주는조용하고단정한성격으로화려하기보다는수수한화장을즐겼다.파운데이션,립스틱,볼터치,크림등으로인위적인화장보다는자연스러운아름다움을위해깨끗하고매끄러운피부를만드는데중점을두었다.특히화협옹주묘에서출토된‘청화백자모란넝쿨무늬호’에는미안수로추정되는지하수가담겨있었다.지금의로션과같은기능인미안수는피부를곱고촉촉하게정리하는역할을한다.
고종은프랑스의마리프랑수아사디카르노대통령이선물한도자기를보고깊은감명을받았다.그는조선의공업을발전시키고자프랑스에사기제작기술을가진공장초빙을요청하기도했고,빅토르콜랭드플랑시초대공사에게프랑스건축가의고용과삽화가들어있는프랑스건축서적을요청하기도했다.고종은답례로프랑스대통령에게‘청자앵무새무늬대접’과‘청자모란넝쿨무늬꽃모양대접,왕실공예품‘반화’한쌍을보냈다.‘청자앵무새무늬대접’에새겨진앵무새두마리는화목을상징한다.반화는금으로된가지와옥으로된잎이라는뜻으로,임금의가족을높여부르고귀한자손을이르는뜻이다.

취향에도정치적의도가있었다

영조는공신의초상화를감상하기위해초상화의존재여부를수소문하거나때로는독촉해궁궐안으로가져오게했다.영조는옛공신의초상화를보며그들의공적(功績)을치하했다.특히영조는익안대군영정을보며,“보고싶은마음이깊어져날을꼽으며기다렸는데오늘드디어보게되니그기쁨이배가된다”라고하며꽤잘그린솜씨라고평했다.초상화에대한영조의관심은단순히인물에대한개인적인호기심때문만은아니었다.영조는공신초상화를통해공신이지닌의미를되새기고초상화라는시각적이미지를활용해신하들의충성심을이끌어내고자했던정치적의도가다분히내포되어있었다.즉,단순한그림감상이아닌치세(治世)를위해신하들에게충성을부추긴정치적행위였다.
또영조는신하들의활쏘기실력에따라벌주를내리기도했다.활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