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 정조의 리더십과 무예도보통지

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 정조의 리더십과 무예도보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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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선 최고의 의학서가 『동의보감』이라면
최고의 무예서는 『무예도보통지』다!
현존하는 동양 최고의 의학서인『동의보감』이 우리의 전통 의학을 계승하면서 조선과 중국 의학의 표준을 마련했듯이, 『무예도보통지』는 145권의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의 무예서를 집대성한 것으로, 당대 무예사적 연구 성과를 총망라한다. 정조 대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역사적 가치는 이미 2017년에 증명된 바 있는데, 바로 그해에 북한의 신청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이다. 더군다나 『무예도보통지』는 북한의 첫 세계기록유산이었다. 그렇다면 『무예도보통지』는 이전에 만들어진 무예서들과 어떤 점에서 다를까? 또 정조가 『무예도보통지』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새로운 조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무예로 조선을 꿈꾸다』는 『무예도보통지』속 조선 검의 명맥을 30년 가까이 이어가고 있는 무사이자 무예인문학자 최형국이 쓴 책이다. 그는 정조가 무예를 통해 강인한 조선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검선처럼 간결하게 풀어내 독자들이 『무예도보통지』와 정조 시대를 좀더 손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

최형국

『무예도보통지』에수록된무예24기를29년간수련한무사武士이자무예인문학자다.중앙대학교대학원역사학과에서한국사로박사학위를받았고,경기대학교연구원(Post-doc)을거쳐문화사와무예사연구에매진하고있다.현재수원시립공연단무예24기전수교육을담당하고있다.

주요논저로『조선무사』(2009),『조선후기기병전술과마상무예』(2013),『조선군기병전술변화와동아시아』(2015),『정조의무예사상과장용영』(2015),『조선의무인은어떻게싸웠을까?』(2016),『무예인문학』(2017),『병서,조선을말하다』(2018),『조선후기무예사연구』(2019),『제국의몸,식민의무예』(2020),『정조,무예와통하다』(2021),『조선군진법속무예와전술신호』(2021),『궁술,조선의활쏘기』(2022)등이있다.『무예도보통지』를번역한『정조,무예와통하다』는2021년에롯데출판문화대상본상을받았으며2022년에는대한민국학술원우수도서에선정되었다.「조선시대편전(애기살)의활쏘기특성과위상」(2022),「『병학통』의전술과화성행행「반차도」의무예시위군배치관계성연구」(2021),「『무예도보통지』의「예도」자세분석과「본국검」과의연관성연구」(2020),「『조선무사영웅전』의저술의미와근대적신체인식」(2019),「1949년『무예도보신지』의출판과민족무예의새로운모색」(2018),「‘협도’의탄생」(2017),「조선후기권법의군사무예정착에대한문화사적고찰」(2016),「18세기활쏘기(國弓)수련방식과그실제」(2015)등40여편의무예사관련논문을발표했다.

또한연출한작품으로는수원화성문화제폐막연〈야조夜操〉(2018~2019)와논버벌타악극〈무사&굿〉,무예뮤지컬〈관무재觀武才,조선의무예를지켜보다〉(2017),무예24기시범상설공연〈장용영壯勇營,진군의북을울리다〉등이있다.

목차

들어가는말

1장정조의정치읽기
정치적비전을제시하다
‘통’의정신
수원화성과위민정신
조선최초의계획도시,수원화성
실용정신에입각한수원화성
수원화성과버드나무
달의리더십
배움을즐기다
파초와같은삶을꿈꾸다
심안으로세상을보다
정조의지식경영법
작은일도소홀히하지않다
온고지신의정치
악습을폐지하다
기록을중시하다
정조의인재등용방식
세손시절에그린정치적이상
군주의조건

더알아보기┃세종과정조,수성과공성의리더십

2장『무예도보통지』를만든사람들
쉼없이변하는국제정세
간서치이덕무
무예의달인백동수
지행합일의정신을추구하다
비움의철학140
의술과무술146
『무예도보통지』언해본

3장『무예도보통지』속무예이야기
무예의가치
『무예도보통지』에담긴무예정신
예도와조선세법
몸문화의결정체,활쏘기
틈홍문세
쌍검의항장기무세와한고환패상세
휘날리는깃발과〈기휘가〉
기창
협도의오룡꼬리치기
달밤에매미베기
오관참장세
마상편곤
전쟁터의명장적청
무예의문화사적이해의시작과끝,권법

더알아보기┃『무예도보통지』속무예24기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문과무를병용하는것이국운을장구하게하는계책이다”
『무예도보통지』에담긴정조의정치적이상과시대정신

여러TV드라마와영화를통해알려진것처럼정조는죄인의신분으로뒤주에갇혀죽은사도세자의아들이었기때문에유가적종법제에따라왕위를계승할수없었다.정조와정치적대척점에서있으면서사도세자를죽음으로몰아넣었던노론에게이같은사실은정조의왕위계승을반대할수있는좋은명분이되었다.이에영조는정조를사도세자의이복형인효장세자의아들로입적시켜종법질서에편입되게함으로써정조의정통성을확보했다.그럼에도정조의생부가사도세자라는사실은변하지않았으며이는번번이정조의발목을잡았다.정조는자신의불안정한정치적입지를공고히하기위해군사제도개혁을통한군권의완전한장악을노렸다.이에따라‘문치주의’를국시로내세웠던조선왕조는정조대에들어서‘무武’에대한새로운인식을드러냈다.물론앞선왕들도임진왜란과병자호란을거치면서무너진성리학적질서를바로잡고미약해진왕권을강화하기위해노력했지만,정조만큼강력한개혁의지를드러내지못했다.

정조는이른바‘문치규장文置奎章,무설장용武設壯營’을내세웠는데,이는규장각을중심으로‘문文의정치’를,장용영을중심으로‘무武의정치’를펼치겠다는것이었다.17~18세기유럽의절대주의시대를열어젖히며자국의전성기를이끈루이14세를비롯한왕들이관료제와상비군을바탕으로왕권을강화해나갔던것과같은맥락이다.정조는개혁에시동을걸기위해이덕무,박제가,백동수등당대비주류였던서얼들을등용하고,‘군사君師’를자처하며초계문신제를실시하고,새로운법전과병서의편찬을주도했다.또한한양에집중된권력을분산하기위해수원에조선최초의계획도시인화성을건설했으며,성리학이본래추구하던‘민본주의’의정신을실현하고자백성들의삶을일일이보살폈고,‘전통’이라는이름으로자행되던온갖‘구습’을타파했다.

정조가행한수많은개혁에서가장눈여겨보아야할것은그동안훈련도감에서작업했던병서를사실상왕의친위부대였던장용영에서만들게했다는것이다.정조는장용영초관이었던백동수와그의친구들에게새로운병서를만들것을명하고제목까지지어하사했는데,그것이바로『무예도보통지』였다.따라서정조의개혁의지와노선을한눈에부감하기위해서는『무예도보통지』에대한이해가선행되어야한다.

『무예도보통지』에서‘실용’과‘위민’의정신을읽어내다

조선은건국초기부터외세의침략에시달렸지만국가적위기감이최고조에달했던시기는16~17세기임진왜란과병자호란을겪었을때였다.특히병자호란의패배로인조가청태종에게무릎을꿇고한번절할때마다세번머리를조아리는‘삼배구고두’예를행해야했으며,소현세자와봉림대군은볼모로적국에끌려갔다.오랑캐라고얕보고무시했던청나라황제에게조선의임금이굴복한‘삼전도의굴욕’은조선사회를흔들어놓기에충분했다.조선사회를떠받들고있었던성리학적질서가무너진것에큰충격을받은조정은군사들이좀더효율적으로무기와전술을사용할수있도록군사제도를개편하고,흩어져있던무예들을한데모으고진영마다달랐던무예를표준화했다.또한적의무기와무예라할지라도국익에도움이된다면기꺼이수용하는유연한태도를취했다.그과정에서중국과일본의무예와무기가조선화하는문화변용이일어났다.그러한노력이하나둘씩쌓여마침내정조대『무예도보통지』의탄생으로이어졌다.

『무예도보통지』는두글자씩끊어읽어야그뜻을단박에이해할수있다.‘무예도보통지’는무예를도보(그림과해설)로풀어설명한통지(종합서적)라는뜻이다.그렇다면정조는왜이런이름을붙였을까?국가안보의붕괴는곧개인의안위를보장할수없다는말과다름없었다.이에『무예도보통지』를편찬할때중요시한것은무예를전문으로하는군사들뿐만아니라일반백성들도위기상황에직면하면곧바로무예를써먹을수있게하는것이었다.이때문에작은무예동작까지일일이그려놓아누구나그림만보더라도따라할수있게했다.그래서인지각자세의낱개움직임들을이어붙이면책속의군사들이살아움직이는듯한착각이들만큼생동감있게표현되어있다.게다가『무예도보통지』를만들때,어려운한자를한글로풀이한언해본도함께제작했다.이전에무예서들이전략과전술같은이론에충실했다면,『무예도보통지』는이론을기반으로한실전에중점을두고있다.따라서『무예도보통지』에수록된무예들은전과다르게신체단련과정신수양의도구로뿐만아니라나라를수호하기위한실용적인가치를지니게되었다.

우리나라무예의전범,무예24기

『무예도보통지』에는보병무예18기에기병무예6기를더해24기의무예가수록되어있는데권1에장창,죽장창,기창,당파,기창,낭선이,권2에쌍수도,예도,왜검,교전이,권3에제독검,본국검,쌍검,마상쌍검,월도,마상월도,협도,등패가,권4에권법,곤방,편곤,마상편곤,격구,마상재가실려있다.이는아버지인사도세자가영조대작업한『무예신보』속무예18기에6기를추가한것인데,정조가자신의역린이었던정통성의한계를정면돌파하겠다는의지와함께아버지의정치적뜻을이어나가겠다는효심을드러낸것이라할수있다.

무예24기는박물관에박제된옛왕조의유물이아니다.지금도정조의정신을이어받아무예24를연마하는이들이있다.2003년에수원시를본거지로한‘무예24기보존회’가설립되어무예24기의체계적인전승에힘쓰고있을뿐아니라2015년부터수원화성을무대로‘무예24기시범단’이무예를선보이고있는데,그중심에이책을쓴저자와그와함께땀을흘리는동료들이있다.특히이들은국내를넘어2018년에는프랑스루앙시가개최한‘제5회한국문화페스티벌’에서무예24기를선보여전통무예의세계화에도노력하고있다.

30년가까이무예인으로서살아오며무예24기의보존과전파에힘쓰고있는저자는대중이좀더쉽고재미있게우리의전통무예를접하길바라는마음에서『무예로조선을꿈꾸다』에무예24기에얽힌다양한역사와옛이야기를펼쳐놓는다.이는‘콘텍스트context’없이는‘텍스트text’인무예를이해할수없다는저자의의지가작용한것이기도하다.예를들어월도를쓰는자세중에가장폭발적인위력을보여주는‘오관참장세’라는자세가있다.이자세는‘오관참육장’이라는고사와관련있는데,그이름처럼관우가오관(다섯개관문)을지키는장수의목을베는자세다.『삼국연의』에의하면,관우는유비에게가던도중험준한요새와같은곳에세워진다섯개의관문을통과해야했다.하지만조조에게관문을통행할수있는사령장을받지않았기때문에부득불그문을지키는장수의목을벨수밖에없었다.관우는첫번째관문인동령관에서공수의목을베고,두번째관문인낙양관에서장수한복과맹탄을단칼에베어죽였으며,세번째관문인사수관을지나면서장수변희와자객들까지모조리죽이고,네번째관문인형양관에서그곳의태수였던장수왕식을베어죽였다.마지막으로황허강으로통하는관문인활주관에서하후돈의부하인진기의목을벴다.그러니이자세를취할때는관우의마음가짐으로월도를크게휘두르며단번에적을부수어야한다.이밖에도저자는이책에수많은이야기를풀어놓았는데,그이야기보따리를따라가다보면마치전래동화를듣는것같은재미는물론이고무예에대한동아시아삼국의생각과함께신체와정신을바라보는당대사람들과오늘날의무예인들의사유를총체적으로살펴볼수있다.

위태로운세상에서몸과마음의근력을키우는방법
지금도유효한무예의존재가치

‘무예’라고하면으레무림의고수들이대나무숲을배경으로칼을겨누는장면들을떠올릴것이다.하지만무예는천하를차지하기위한단순한칼싸움이아니다.무예는인류의역사와함께시작된문화이자생활의일부분이다.초기의무예는야생에서살아남으려는인류의단순한몸짓에불과했지만인류가공동체를이루며나자신뿐아니라가족,마을,나라를지키기위한수단으로인식하기시작하면서점차체계화되었다.그과정에서고구려의수박과신라화랑들의본국검이탄생했다.그리고조선시대에들어서면서무과시험을시행해무예가뛰어난사람들을선발하고관리하며전통무예를계승해나갔다.

그러나과학기술의발달로전쟁의양상이달라지면서무예의중요성과필요성이줄어들었다.또한육체활동을정신활동보다천시하는사회분위기가조성되면서무예에대한관심또한감소했다.그런데도저자가무예에천착하는이유는무엇일까?저자는이책에서『무예도보통지』와정조시대를다시금우리곁에불러낸데서그치지않고,무예가현대인들에게유효한까닭을설명한다.그는온갖자극에쉽게흔들리지않으려면몸과마음을수련해야하는데,이를위한가장좋은방법이무예라고말한다.저자에따르면,옛사람들도온갖상념을떨쳐내고자기수양을위해서무예에힘썼다고한다.활쏘기를할때도정념에사로잡힌채로는궁시에집중할수도,과녁을맞힐수도없었기때문에몸과마음을갈고닦았다.백발백중할만큼신궁의실력을가진정조역시활쏘기를잘하기위해서는눈에보이는것에현혹되어서는안되고심안을기르는것이무엇보다중요하다고강조한바있다.

‘건강한신체에건강한정신이깃든다’는옛말이있다.‘건강한신체’는이말이성립되기위한전제조건이다.그렇다고해서다짜고짜몸에좋은음식과영양제를챙겨먹고운동을하라는것이아니다.가장먼저내몸에대한이해가선행되어야한다.의사가환자들의증상에따라적절한약처방과진료를하는것처럼,내몸상태를제대로알고있어야그에맞게신체를단련할수있기때문이다.저자는내몸을이해하는가장좋은방법이무예라고이야기한다.그래서저자는지금도무예의정신을실천하고극기克己하며항심恒心을잃지않기위해노력한다.그러한저자의마음가짐이책곳곳에녹아들어있어서인지책을덮더라도그가말하는무예정신은금세휘발되어버리지않고흐트러지기쉬운우리의마음을올곧게붙잡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