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1 (6·25 전쟁에서 4·19 혁명 전야까지 | 개정증보판)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1 (6·25 전쟁에서 4·19 혁명 전야까지 | 개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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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승만의 참패로 끝난 총선거, 서울에서 벌어진 ‘서바이벌 게임’,
이승만의 자유당 창당, 두 개의 지옥도, 경계가 없는 전쟁과 정치
지난 10년 한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그 모든 것은 어떻게 달려왔는가?
“한국 현대사의 기록과 평가의 문화를 정착시키다”

우리가 살아왔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현대사는 역사의 출발점이자 결승점이다. 끊임없는 선택 속에 지금 내가 살아가야 하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사는 역사학계에서 찬밥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민감한 주제들이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논란이 되는 부분은 다양한 입장을 소개하면서도 그 나름의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참여의 마당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독보적이다. 지금의 ‘나’를 이룬,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한국인의 ‘보물창고’와 같다.
1945년 8월 15일 정오부터 봉준호의 〈기생충〉까지 75년의 역사를 촘촘히 담아낸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정치·경제·사회는 물론 대중문화·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현대 한국인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삶과 역사의 무대를 고스란히 되살려냈다. 이를 위해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방대한 주석에 당시의 현장을 포착한 사진, ‘역사 산책’ 코너 등을 통해 입체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단순한 사건의 나열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恨)과 욕망의 폭발’(1940년대), ‘극단의 시대’(1950년대), ‘기회주의 공화국의 탄생’(1960년대), ‘수출의 국가종교화’(1970년대),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1980년대), ‘분열은 우리의 운명, 연대는 나의 운명’(1990년대), ‘노무현 시대의 명암’(2000년대), ‘증오와 혐오의 시대’(2010년대) 등 각 시대를 지배했던 정서와 구조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속에서 수많은 사건과 주제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가 ‘진보’의 이름으로 새로운 가치를 선점할 수 있듯이 극단과 궁핍의 시대를 살아남아야 했던 과거 세대의 ‘아픔’도 함께 껴안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준만은 한국 현대사가 ‘인간’을 배제했던 역사라고 간파하며 ‘인간’의 복원,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이념과 세대의 새로운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한국 현대사의 기록과 평가의 문화를 정착시킨 한국 최초의 단행본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저자

강준만

저자:강준만
전북대학교신문방송학과명예교수로재직하고있는강준만은탁월한인물비평과정교한한국학연구로우리사회에의미있는반향을일으켜온대한민국대표지식인이다.전공인커뮤니케이션학을토대로정치,사회,언론,역사,문화등분야와경계를뛰어넘는전방위적인저술활동을해왔으며,사회를꿰뚫어보는안목과통찰을바탕으로숱한의제를공론화해왔다.

2005년에제4회송건호언론상을수상하고,2011년에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한국의저자300인’,2014년에『경향신문』‘올해의저자’에선정되었다.저널룩『인물과사상』(전33권)이2007년『한국일보』‘우리시대의명저50권’에선정되었고,『미국사산책』(전17권)이2012년한국출판인회의‘백책백강(百冊百講)’도서에선정되었다.

그동안쓴책으로는『MBC의흑역사』,『공감의비극』,『정치무당김어준』,『퇴마정치』,『정치적올바름』,『좀비정치』,『발칙한이준석』,『단독자김종인의명암』,『부족국가대한민국』,『싸가지없는정치』,『권력은사람의뇌를바꾼다』,『부동산약탈국가』,『쇼핑은투표보다중요하다』,『강남좌파2』,『바벨탑공화국』,『오빠가허락한페미니즘』,『손석희현상』,『박근혜의권력중독』,『전쟁이만든나라,미국』,『정치를종교로만든사람들』,『지방식민지독립선언』,『개천에서용나면안된다』,『싸가지없는진보』,『감정독재』,『미국은세계를어떻게훔쳤는가』,『갑과을의나라』,『증오상업주의』,『강남좌파』,『한국현대사산책』(전28권),『한국근대사산책』(전10권),『미국사산책』(전17권)등300권이넘는다.

목차

머리말:6·25는아직끝나지않았다
공포감과순응주의의내면화·5‘6·25심성’의지배를받는사회·71950년대를어떻게볼것인가?·81950년대의두얼굴·10진정한화해를위하여·12‘증오·혐오의대량생산체제’를넘어서·14

제1부1950년:골육상쟁의근본주의

제1장‘공갈때리기’의비극
이승만정권의미신이된북진통일론·31북한의음흉하고도실질적인남침준비·336·25이전의학살극·34브레이크가없는이승만의허풍·36농민에게농지를돌려준농지개혁·38‘공갈정책’의비극적말로·40반공의‘정치상품화’,매카시즘·42

역사산책1“음력설을쇠는악덕배들의광태”·45

제2장이승만의참패로끝난총선거
미국의‘선거연기’반대·47중간파의승리로끝난총선·49중간파에가해진탄압·51‘내가승리한것이요’·53민중은민국당도거부했다·54이승만과김일성의‘책임윤리’의부재·56

제3장1950년6월25일새벽4시40분
‘남침유도설’을낳을정도의무방비·58오판과오보의연속·59“미국인2,500명을우리가다죽이겠소”·62이승만의거짓녹음방송·64

제4장이승만과정부의갈팡질팡
서두른한강다리폭파·67인민군의서울점령후3일간의수수께끼·70그들이대한민국을망치고있었다·72도망다니기에바빴던이승만·74스미스부대의참패·76한국군의작전지휘권이양·78낙동강방어선구축,다부동전투의승리·80

역사산책2채병덕과신성모·83

제5장서울에서벌어진‘서바이벌게임’
처단인가,포섭인가?·86선전전에동원된남한정치인들·87이병철과박헌영과시보레자동차·89인민재판과기회주의·91서울시민들의일상적삶·93아귀다툼을낳은굶주림·96

제6장학살:뿌리뽑고씨말리기
골육상쟁의근본주의·9820만명을죽인국민보도연맹학살·100‘혈서충성맹세’로살아남기·102‘나주부대’의‘함정학살’·104임철우의‘곡두운동회’·105

제7장노근리:“모든피난민을향해사격하라”
미군의3박4일인간사냥·107피난민은작전에귀찮은존재·109미군의인종차별주의·11144년간‘존재하지않았던사건’·114

제8장두얼굴:학도병과상류층
‘돼지몰이’로불린상류층의일본밀항·117쌍권총으로무장한김두한의활약·118학도의용군의참전·120남한소년병들끼리의전투·123

제9장적반하장:도강파와잔류파
인천상륙작전과서울수복·125“내가국민앞에왜사과를해”·128엉망진창부역자재판·130서울에잔류했던사학자김성칠의증언·132‘빨갱이년’으로몰린박완서의증언·134

역사산책3얼굴없는‘켈로부대’·136
역사산책4제주4·3사건과‘귀신잡는해병’·139
역사산책5“화랑담배연기속에사라진전우야”·142
역사산책6‘시민증이없으면죽은목숨’·145

제10장악순환:피를보면피에굶주린다
‘한많은미아리고개’·147고양금정굴민간인학살사건·149오두리마을의비극·151병균의논리로정당화한학살·152

제11장“평양점령은수치였다”
국군과유엔군의38선돌파·154트루먼과맥아더의회담·157이승만과미군의갈등·158‘반성의시기에날뛰는한국인들’·160약탈에서부터무너진전선·162‘살아도같이살고죽어도같이죽자’?·164

제12장신천학살,중국참전,미국원자탄
남북합작의‘인간지옥’·167기독교와마르크스주의라는‘손님들’·169‘‘전한반도는끔찍한잿더미’·171미국의도취,중국의참전·172중국군의‘인해전술’또는‘유격전술’·175트루먼의‘원자탄사용검토’·177

역사산책7소련과일본의비밀참전·178

제13장함평과흥남:두개의다른지옥도
함평주민524명학살·181견벽청야는제11사단작전명령·184흥남철수작전·185배를타지못한사람들의저주·187

제14장“전쟁의최초희생자는진실이다”
신문들의활동과‘PRESS완장특권’·190종군기자들의어려움·192TV없는라디오방송기자의활동·194만화·문학·영화의참전·195

제2부1951년:‘톱질전쟁’의와중에서

제1장1·4후퇴:서울에서부산까지
‘무인지경’으로변한서울·201유엔군의견벽청야·203피난민으로뒤덮인부산·204강원용의지옥체험과증언·206리영희의지옥체험과증언·208

제2장맥아더와리지웨이:원자폭탄과몰살작전
미8군사령관리지웨이의부임·210맥아더가계산해놓은원자탄26개·212리지웨이의‘몰살작전’·213공산군의‘도덕적승리’?·215추위와굶주림으로무너진중국군·216

제3장국민방위군:9만명을죽인‘해골의행렬’
“동사·아사·병사를방치한천인공노할사건”·218육군통역장교리영희의증언·220김윤근·신성모·이승만의적반하장·222국민방위군고위층의거대한예산착복·223규명되지않은정치자금조성의혹·225“국군병사는죽을때‘빽’하고죽는다”·228

제4장거창:무엇을지키기위한전쟁인가?
‘거창양민학살:그잊혀진피울음’·231신성모의사건은폐지시·233조병옥과이시영의고언·236이승만의특정인총애·238

역사산책8이승만의김종원·김창룡총애·241
역사산책9거창,그이후·243

제5장해리트루먼의더글러스맥아더해임
‘공동묘지’로변한서울·246트루먼에게도전한맥아더·249원자탄사용을원했던이승만·251지리멸렬상태에빠진한국군집중훈련·252더글러스맥아더는‘영웅’인가?·254한국에선영웅이었던맥아더·256

역사산책106·25로인한전국토의묘지화·259

제6장휴전회담:개성에서판문점까지
소련의휴전제의·2617월10일에시작된정전협상·263‘기싸움’과‘눈싸움’·265한국을배제한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267정전회담장의‘슬픈에피소드’·270

제7장지리산에서‘쥐잡기작전’
‘낮에는대한민국,밤에는인민공화국’·273빨치산투쟁의행태·276고은의빨치산시·278남부군총사령관이현상의최후·279

제8장이승만의자유당창당
이승만,“이젠정당이필요하다”·282이범석은누구인가?·283‘원내자유당’과‘원외자유당’·284“이승만이국민의지지는받았다”?·287

제9장전쟁중의뜨거운교육열
‘애국복권’열풍과도박성행·289‘삼팔따라지’의교육열·2906·25전쟁중의교육·291대학은징집회피의수단·293이승만왕조시대의관존민비·295

제3부1952년:‘군사전쟁’과‘정치전쟁’

제1장미국은세균폭탄을투하했는가?
북한과중국의세균전항의·299스스로의혹을키운미국·301이승만,“휴전은소련의흉계”·303

제2장부산:경계가없는전쟁과정치
‘쓰레기통’과‘장미꽃’·306자유당의승리로끝난지방선거·308조작된‘무장공비사건’과계엄령선포·310부통령김성수의‘사임이유서’·312미국의이승만제거계획·314미국이개입한발췌개헌안타협·315

역사산책11이승만의이종찬에대한분노·319
역사산책12이승만암살미수사건의진상·321

제3장거제도:6·25전쟁의축소판
17만6,000여명의포로·324포로수용소는제3전선·326‘자동송환’대‘자유송환’공방전·327수용소사령관납치사건·329미군의수풍댐폭격·332평양폭격과백마고지전투·333

제4장대통령선거:이승만과아이젠하워
중석불사건·33577세대통령,81세부통령후보·337이승만74.6%,조봉암11.4%·338미국의대통령선거·340아이젠하워의한국방문·342“백만학도에게북진명령을!”·345

역사산책13‘청계천화장실’과‘아이젠하워양변기’·347

제5장조선방직·삼성물산·기아산업
부산조선방직노동쟁의사건·350자유당의하부단체로편입된대한노총·3521년만에17배로커진삼성물산·354‘삼천리호’자전거의탄생·356

제6장전쟁속의언론과대중문화
피난지부산에서신문의활동·358‘나는너를싫어한다’사건·360라디오방송과전쟁공보영화·362「아내의노래」와「전선야곡」·364국군장병위문·366상이군인의분노와비극·368전쟁중에도크리스마스는찾아온다·370

주·373

출판사 서평

지난10년한국의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그모든것은어떻게달려왔는가?
“한국현대사의기록과평가의문화를정착시키다”

우리가살아왔고지금우리가살고있는한국현대사는역사의출발점이자결승점이다.끊임없는선택속에지금내가살아가야하는마당이기때문이다.그러나현대사는역사학계에서찬밥취급을당하기일쑤였다.민감한주제들이기때문이다.강준만은논란이되는부분은다양한입장을소개하면서도그나름의시각을제공함으로써독자들에게정확한정보를제공하는것은물론다양한참여의마당을제공하고있다.그런점에서‘한국현대사산책’시리즈는독보적이다.지금의‘나’를이룬,대한민국의모든것을담고있는한국인의‘보물창고’와같다.

1945년8월15일정오부터봉준호의「기생충」까지75년의역사를촘촘히담아낸‘한국현대사산책’시리즈는정치·경제·사회는물론대중문화·스포츠에이르기까지방대한분야를아우르고있다.그리고현대한국인들이맞닥뜨려야했던삶과역사의무대를고스란히되살려냈다.이를위해‘한국현대사산책’시리즈는방대한주석에당시의현장을포착한사진,‘역사산책’코너등을통해입체적인접근을시도했다.

‘한국현대사산책’시리즈는단순한사건의나열에만그치지않는다.‘한(恨)과욕망의폭발’(1940년대),‘극단의시대’(1950년대),‘기회주의공화국의탄생’(1960년대),‘수출의국가종교화’(1970년대),‘광주학살과서울올림픽’(1980년대),‘분열은우리의운명,연대는나의운명’(1990년대),‘노무현시대의명암’(2000년대),‘증오와혐오의시대’(2010년대)등각시대를지배했던정서와구조에대한치열한문제의식속에서수많은사건과주제를집요하게파헤치고있다.그리고새로운세대가‘진보’의이름으로새로운가치를선점할수있듯이극단과궁핍의시대를살아남아야했던과거세대의‘아픔’도함께껴안아야한다고강조한다.강준만은한국현대사가‘인간’을배제했던역사라고간파하며‘인간’의복원,그리고그바탕위에서이념과세대의새로운화해를시도하고있다.‘한국현대사산책’시리즈는한국현대사의기록과평가의문화를정착시킨한국최초의단행본으로평가받기에충분하다.

끝나지않은전쟁,민간인학살

6·25전쟁은‘이원(二元)전쟁’이었다.군인들끼리싸운전쟁이그하나라면또하나의전쟁은민간인들을대상으로한것이었다.민간인학살은군과경찰에의해저질러졌을뿐만아니라민간인들사이에서도저질러졌기때문에더욱비극적이었다.민간인학살은한국의일그러지고뒤틀린근·현대사의역사적모순과질곡의표현이자결과이기도했다.램지클라크는“미국에서한국전쟁은‘잃어버린전쟁’으로불린다”며“당시3천만인구가운데10%가넘는민간인이몰살당한전쟁을국제사회가잊어버리고있다는사실자체가비극”이라고말했다.그런의미에서6·25전쟁은‘잊혀진전쟁’일뿐만아니라‘끝나지않은전쟁’이기도하다.1999년9월AP통신이미군에의한노근리학살사건을대대적으로보도한이후전쟁중민간인학살에대한진상규명을요구하는목소리가높아졌다.

있었던사실을있었던그대로밝히는것도목숨을내걸어야하는또하나의전쟁이었다.그전쟁은6·25전쟁이후온갖우여곡절을겪으면서수행되어왔다.북진통일궐기대회가판치는이승만정권하에서는오직빨갱이에의해죽었을때에만그진상규명이허용되고장려되었다.그렇지않은경우의진상규명은반역이었다.역사학자서중석은“신문사를습격하건,법원에난입하건,공공집회를무법천지로만들건,정치인을백주에테러하건,‘반공용사’들이했다고하면붙잡지않았”고,“어떤사람이건,어떤행위건‘나는반공을하는사람이다’라는말만하면그것에저항하기가어려웠”다고말했다.4·19직후,6·25전쟁을전후로발생한민간인학살사건진상규명에나선‘전국피학살자유족회’는유족들의신고를바탕으로114만명이국군의손에의해학살당했다는보고서를냈는데,이들은빨갱이로몰려야했다.이후이들은입을닫아야했고,40년을더기다려야했다.

기독교의반공,친미,기복

기독교지도자들은기독교신앙이라는‘반공의보증수표’가부도날염려가없을정도로반공의전선에앞장섰다.예컨대,전쟁이발발한다음날인6월26일서울에서는교파를초월한개신교단체인‘대한기독교구제회’가조직되었고7월3일대전에서목사한경직이앞장서서‘대한기독교구국회’를만들었다.이들은남한지역30개도시에지부를설치하고국방부·사회부와협력해선무와구호,방송,의용대모집등반공과관련된다양한활동을펼쳤다.이들은‘선무공작대’를조직해남한전역에서활동했으며‘기독교의용대’라는단기군사훈련을거쳐전선에배치되기도했다.기독교지도자와신자들은단순한참전만으로는만족하지않았다.그들은전쟁을합리화하며정당성을부여했다.물론그논리는종교적인것이었다.특히한경직은인천상륙작전당시에대한기독교구국회회장으로서군복을입고참여하는등맹활약을했다.

반공은곧친미를의미하고친미는곧친기독교를의미하는것이지만,미국이주도하는6·25전쟁에서는더욱그랬다.그렇다면기복은이에어떻게연결되는것인가?전쟁중목숨을부지할수있었던것도복이었겠지만,죽을염려는피한전후의잿더미에서는좀더현실적인,즉물질적인복을구하게되는건당연한일이었다.그러나그수단은여의치않았다.기복신앙은전후의잿더미와비교되어엄청난풍요를상징하는것으로보이는미국을닮고자본주의정신에투철해지려는노력이기도했다.미국에대한동경과숭배,물질에대한한의종교적표현이바로기복신앙이었다는뜻이다.그런점에서기복신앙은자본주의이데올로기로서의성격마저갖게되었다.세계에서그유례를찾기어려울정도로특별한한국의기복신앙은마찬가지로세계에서그유례를찾기어려울정도로특별했던한국의역사적상황이낳은산물이었다.

『한국일보』창간과기독교방송개국

1954년6월9일공식적으로상업주의를표방한『한국일보』가창간되었다.이신문은창간호사설에서”‘리얼리즘’에입각한상업신문의길을개척하여나가지않으면안될것”이라고말했다.『한국일보』의사주는은행가출신으로서2년동안『조선일보』사장을지냈던장기영이었다.그는탁월한경영능력을발휘해그가『조선일보』를맡은후1년동안발행부수는350%가늘어났고,지대수입은640%,광고수입은518%가늘어났지만,그의개성이강한운영방식과독자적인영향력구축이방씨일가와갈등을빚어임기의반도지나지않고중도퇴임했다.장기영은『조선일보』를그만둔지2개월도안된시점에서경영난을겪고있던『태양일보』를인수해『한국일보』를창간했다.장기영은국내최초로1954년8월1일기자제1기6명을공채한이후정기적으로기자를공개채용해다른신문사에이러한관행을퍼뜨렸다.

1954년12월15일에첫전파를발사한기독교방송은한국최초의민영방송이되었다.원래기독교방송은1949년에정식으로방송국설립승인을받았으나전쟁으로설립이중단되었다가1954년에다시설립허가를받아개국하게된것이다.기독교방송의국장은미국인선교사감의도였다.기독교방송의탄생은감의도가미국선교본부에서5킬로와트송신기와부속일체를발주받고방송국의운영에소요되었던모든자금은미국뉴욕에있는기독교단체‘라디오,시각교육및대중커뮤니케이션위원회’의원조를받아이루어진것이었다.정순일은“기독교방송이청취자의환영을받은것은우선그깨끗한음질이었다.국영KBS가쥐꼬리만한예산으로는구할수없던LP판을미국에서기증받아와서틀어제끼니당할수가없었다”고말했다.

전쟁미망인의타락을막아라

1957년10월말현재55만5,000여명으로추산되는‘전쟁미망인’에대한세간의시선은곱지않았다.그들은전쟁의피해자였지만,‘미망인’이라는단어의부정적인의미가시사하듯이그들의타락가능성만을염려하는사회적담론이무성하게일었다.‘과부의재가허용’은1894년갑오개혁에의해제도적으로보장되었지만1950년대까지도이른바‘미풍양속’에어긋나는것으로간주되었다.정충량은월간『여성계』1955년9월호에쓴글에서“동족사이의난륜은더큰사회범죄의온상”이며“정욕을참지못하려면차라리개가하는편이훨씬떳떳하고명랑할수있다”고말하면서전쟁미망인의위험한성을재혼을통해안정시키자고주장했다.정충량은성공사례를거론하면서자녀가있더라도전쟁미망인의재혼이가능함을역설했다.

1955년12월10일서울중앙극장에서한국최초의여자감독박남옥의「미망인」이개봉되었다.이영화는미망인이거센세파를헤치고살아간다는내용이지만,역설적으로미망인이수절하며거센세파를헤쳐나가는게매우어렵다는것을보여주었다.소설가장덕조는월간『여원』1956년3월호에쓴글에서‘자녀를가지지않은미망인’은연애를하거나재혼을할것을인정하거나권장하자고주장하면서도‘자녀가있는미망인’은연애나재혼을하지않는것이옳다고주장했다.그이유는모성의보호와모권확립의문제,즉자녀가받게될심리적충격과가정교육등을위해서라는것이었다.그런데전후사회가‘전쟁미망인의타락을막아라’고외쳐대는선전·선동으로얻고자했던것은결국‘강한어머니’의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