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3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 개정증보판)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3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 개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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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외교’와 한미행정협정, 박정희는 지역 분열주의의 원흉인가?,
경제개발의 영향을 받은 영화와 가요, 박정희의 금권 정치
저자

강준만

저자:강준만
전북대학교신문방송학과명예교수로재직하고있는강준만은탁월한인물비평과정교한한국학연구로우리사회에의미있는반향을일으켜온대한민국대표지식인이다.전공인커뮤니케이션학을토대로정치,사회,언론,역사,문화등분야와경계를뛰어넘는전방위적인저술활동을해왔으며,사회를꿰뚫어보는안목과통찰을바탕으로숱한의제를공론화해왔다.

2005년에제4회송건호언론상을수상하고,2011년에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한국의저자300인’,2014년에『경향신문』‘올해의저자’에선정되었다.저널룩『인물과사상』(전33권)이2007년『한국일보』‘우리시대의명저50권’에선정되었고,『미국사산책』(전17권)이2012년한국출판인회의‘백책백강(百冊百講)’도서에선정되었다.

그동안쓴책으로는『MBC의흑역사』,『공감의비극』,『정치무당김어준』,『퇴마정치』,『정치적올바름』,『좀비정치』,『발칙한이준석』,『단독자김종인의명암』,『부족국가대한민국』,『싸가지없는정치』,『권력은사람의뇌를바꾼다』,『부동산약탈국가』,『쇼핑은투표보다중요하다』,『강남좌파2』,『바벨탑공화국』,『오빠가허락한페미니즘』,『손석희현상』,『박근혜의권력중독』,『전쟁이만든나라,미국』,『정치를종교로만든사람들』,『지방식민지독립선언』,『개천에서용나면안된다』,『싸가지없는진보』,『감정독재』,『미국은세계를어떻게훔쳤는가』,『갑과을의나라』,『증오상업주의』,『강남좌파』,『한국현대사산책』(전28권),『한국근대사산책』(전10권),『미국사산책』(전17권)등300권이넘는다.

목차

제1부1965년:‘한일협정’과‘월남파병’

제1장증산·수출·건설:‘수출아니면죽음’
‘강력하고유능한수출총사령관’·19재벌들의좌우명,“차관을잡으라!”·21공사비의10%는무조건정치자금·23로스토의경제성장5단계설·25“한국경제는이미도약단계”·27‘개발독재최고의이론가’·28

역사산책1‘머리카락도둑’과‘머리기르기운동’·31

제2장한일국교정상화:‘졸속·굴욕’이었는가?
2·19한일협정기본조약가조인·34“분쇄하자매춘외교,타도하자매판자본”·361965년6·22한일협정조인·388·14한일협정비준동의안통과·401965년8~9월의반대투쟁·43야당은무엇을하고있었던가?·45‘3억달러+α’는너무했다·47“백이숙제류의민족주의”·49

제3장누가‘기회주의지식인’인가?
또5·16미화에동원된4·19·51‘힘의논리’에따른변신·52박정희의‘기회주의지식인’비판·54학생운동을외면한향토개척단·55

역사산책2이승만의사망·58

제4장월남파병:‘맹호는간다’
비둘기부대의파병·61미국의열렬한박정희환대·63강재구산화,맹호·청룡부대파병환송·65한국민족주의운동의자기모순·68

제5장『중앙일보』창간,라디오의‘코미디경쟁’
이병철이『중앙일보』를창간한이유·71이병철의‘중앙매스컴센터’·735개라디오방송사의코미디경쟁·75「7인의여포로」·「군번없는병사」·「춘몽」·77「저하늘에도슬픔이」·79장영철의폭로,“프로레슬링은쇼다”·80

제2부1966년:‘정경유착’과‘한미유착’

제1장‘주체외교’와한미행정협정
‘주체외교’와‘기회주의외교’·85한미행정협정또는소파체결·88미국의한국지식계장악·89서민호구속과국시논란·91

제2장한국비료사건:박정희와이병철의합작음모
『중앙일보』에대한견제심리?·94‘중앙매스컴’의삼성지원사격·97김두한의인분세례사건·99실패로돌아간이병철의‘오리발작전’·101삼성의2,000억원대밀수·103이병철을배신한박정희·104“박정희야말로밀수왕초”·107

역사산책3김두한의배후엔김종필이있었는가?·108

제3장존슨의방한:광적인환영
미국부통령험프리의방한·110‘용병시비’만낳은‘브라운각서’·112박정희와존슨의‘사랑나누기’·114“정부도350만서울시민도미쳤다”·116박정희정권의‘기생파티중독증’·118

제4장“서울은만원이다”
서울시민의3분의1이무허가주택거주·120윤치영이일을하지않은이유·122김현옥,불도저중의불도저·124

제5장『경향신문』경매,기자테러
박정희가시킨중앙정보부의음모극·125‘부정부패의국유화’·127박정희정권의아픈곳건드리면테러·129‘세계속의한국’에굶주린한국인·130「하숙생」과「동백아가씨」·132

제3부1967년:‘정치공작’과‘국가테러’

제1장귀순자이수근은이중간첩이었는가?
중앙통신사부사장의북한탈출·137이수근은대선을앞둔박정희에겐호재·139이수근이‘위장간첩’이었다는충격·141이수근은소설『광장』의이명준인가?·143‘2년징역’을예상했다사형을당한이수근·14521년간억울한옥살이를한배경옥·147‘위장귀순한간첩으로조작된사건’·149이수근·방준모의성격충돌이빚은비극인가?·151

제2장제6대대선:다시붙은박정희와윤보선
‘사쿠라집단’과‘선동집단’의결탁·153“박정해서못살겠다윤택하게살아보자”·155박정희51.5%,윤보선40.9%·157박정희의‘호박쌈과보리밥’이미지·159

제3장박정희,지역분열주의의원흉인가?
박정희의지역주의와영남패권주의·162“호남푸대접의진상은어떤가?”·16336년걸린호남선복선화·165

제4장제7대총선:3선개헌을위하여
자유당식‘선거부정’과‘야당토벌작전’·168박정희의‘김대중죽이기·’169민주공화당130석,신민당44석·171뒷감당을못하는야당의상습적인극한투쟁·174

제5장“반미는곧용공이다”
엉터리반공법의위력·176「분지」의작가남정현구속·178홍만수는비치를겁탈했는가?·180

제6장동백림사건:‘국가테러리즘’
동백림의‘북괴대남적화공작단’?·183‘리버럴한분위기’가죄였는가?·185중앙정보부가조작한‘그로테스크한코미디’·187코미디치고는엄청나게슬픈코미디·188윤이상의비극,“내고향은독일”?190

제7장북한:자주노선과김일성숭배구조의완성
“이팝에고깃국”의꿈·193북한과소련의갈등·194북한과중국의갈등·196김일성사상으로규정된주체사상의강조·199김일성유일체제로전환하다·200북한의전쟁불사론·202

제8장“건설은나의종교”:한강개발과여의도건설
서울도심부재개발사업·205한강연안도로와여의도윤중제·2063·1고가도로와워커힐기생파티·209제6회아시아경기대회서울유치반납·211

제9장언론산업의성장,언론자유의쇠퇴
박정희정권의언론포섭공작·213신문들의‘영혼이없는성장’·215‘신민당소명서’사건·217내리막길에선『사상계』·219김창선매몰사건보도·220

제10장경제개발의영향을받은영화와가요
‘만주물’과「팔도강산」의인기·222총천연색장편만화영화「홍길동」·225윤복희와앙드레김의도시패션·227「가슴아프게」와「섬마을선생님」·228배호의「안개낀장충단공원」·230

제4부1968년:남북한의적대적공존

제1장1·21사태와푸에블로호사건
‘적대적공존관계’와‘거울영상효과’·235청와대앞500미터까지접근한무장공비·236박정희,“북을공격해야겠소”·239미국첩보함푸에블로호납치사건·241박정희의분노와배신감·243밴스,“박정희는위험한인물”·244푸에블로호음모론·246향토예비군과주민등록증·247

제2장국민복지회사건:박정희와김종필의애증관계
박정희의이간질용인술·250김종필의정계은퇴선언·252김종필,박정희에대한울분폭발·255김종필,“나자신에게도염증이났다”?256

제3장통일혁명당사건,울진·삼척무장공비사건
50명이구속된‘통일혁명당사건’·25920년감옥살이를하게된신영복·262이승복,“나는공산당이싫어요!”·263“우리가커서너의원수를갚아주마”·265EC-121기격추사건·268

제4장국민교육헌장:‘유신쿠데타의정신적전주곡’
박정희의멸사봉공주의·270모든학생이외워야했던국민교육헌장·271박종홍작곡,윤치영연주·273

제5장“신문은편집인손에서떠났다”
연이은‘『신동아』필화사건’·276“신문은중앙정보부의손으로넘어갔다”·278주간지,특히『선데이서울』의활약·279『한국일보』장기영의활약·281『조선일보』의코리아나호텔특혜·283

제6장강남개발과아파트홍보
압구정·서초·개포는전화없는‘벙어리동’·286제3한강교가만든‘말죽거리신화’·288왜‘복부인’을탓했는가?·290‘아파트예찬론’홍보·291철거민을위한시민아파트의등장·292서울종로3가의‘나비작전’·294

제5부1969년:독선·독단·독주의정치

제1장박정희,“단군이래의위인”인가?
1969년은‘싸우면서건설하는해’·299박정희는‘뒤집기전문가’·300박정희의부결지시를어긴4·8항명사건·303김영삼테러미수사건·304윤치영의아첨에대한비판·305박정희의‘벼랑끝전술’·307박정희의“눈물로시작해눈물로완성한역사”·309박정희의‘제주도핵기지화’카드·312지식인의아첨,신민당의변절자응징·313

제2장“언론의타락,민주주의의죽음”
『사상계』의몰락,여성지의번영·315원초적본능엔무제한자유·317이윤을추구하는기업으로변신·319기자의춥고배고픈빈곤·320촌지또는전직·321미원·미풍조미료광고방송사건·323

제3장박정희의금권정치
부패를단속하면행정이마비되는나라·326도로공사비의30~40%는뇌물·327개발독재체제는‘동물의왕국’·328정치자금징수경쟁·330돈으로사람들을구워삶는‘능력’·3327년간땅값14배폭등·334박정희에게보낸전태일의탄원서·326

제4장3선개헌:“그는‘샤먼’이되어있었다”
주전자뚜껑으로날치기통과·338‘밀가루헌법’과‘논공행상잔치판’·340‘남산멧돼지’김형욱의용도폐기·341박정희의권력중독·343비극의씨앗:“나아니면안된다”·346

제5장‘베트남특수’와‘월남에서돌아온김상사’
경제개발에투입된‘파월외환수입’·348전사5,000명,부상1만6,000명·350“돈있고백있는놈들”·352

제6장‘뺑뺑이세대’:중학교추첨배정제
‘무즙파동’과‘창칼파동’·355한국부인회의‘치맛바람자숙운동’·357열등감을양산한‘KS병’·358‘우골탑’을위해서울로몰려드는줄·361

제7장‘서울의찬가’:서울은초만원이다
서울특별시의시가가된「서울의찬가」·363세계최고의‘압축적도시화’?364동부이촌동한강맨션아파트·366박정희정권의군사작전식남산개발·368고층건물은‘조국근대화’의상징·371자동차도‘조국근대화’의상징·373맨땅에내던져진14만5,000여명의빈민들·375

역사산책4“3명의아이를3살터울로35세이전에낳자”·376

제8장영화의쇠락,TV의성장
1969년,한국영화의최전성기·378전자산업육성,MBC-TV개국·380‘인간의달착륙’이벤트와만화방의인기·381광고계에혁신을일으킨코카콜라광고·384클리프리처드와스타킹광고·385

맺는말:‘기회주의공화국’의명암
거시적·미시적분석의조화·389장면에대한극단적부정과긍정을넘어서·391‘구조’와‘개인’둘다중요하다·3935·16군사쿠데타,기회주의의완성·395새로운도덕교과서가된쿠데타의성공·397다시‘인물’과‘구조’사이의균형으로·399사회과학적일반론의한계·401극단주의,박정희체제의유산·403‘창조적기회주의’와‘헤게모니투쟁’·404한국적삶의문법이된기회주의·407

주·410

출판사 서평

‘한국현대사산책’시리즈,1960년대편개정증보판출간!

기회주의는조선말기부터오늘에이르기까지한반도에서삶을지배해온가장강력한행태적이데올로기였다.기회주의는단물을찾아화려한날개를퍼덕이는나비의이데올로기다.사람들은화려한날개에주목하지만날개를움직이게하는힘은단물이다.다른건제쳐놓더라도,‘부정부패척결’을외치면서거사했던5·16주체세력이얼마후부패세력으로변질된것은바로기회주의의극치를보여준다.박정희와그일행의그런기회주의는그들이조선의왕권보다훨씬더강한권력을행사하게되면서한국사회전반에큰영향을미치게되었다.‘부패의국유화’라는표현이적합할지도모르겠다.박정희의제3공화국은‘기회주의공화국’이라고해도좋을성격의것이었다.

그런데경제발전에대한박정희와그일행의공로를인정해야한다면,기회주의에친화적인‘경제동물’의탄생도같이지적되어야공정할것이다.그어떤강력한구심점을따라온사회가요동치는소용돌이현상도오랜세월을두고학습해온나머지이제는한국인의유전자에까지각인된특성이되었기때문에누가누구에게손가락질을하기도어렵게되고말았다.1960년대를기회주의라고하는관점에서보는건한국현대사에대한새로운안목을제공해줄것이다.여기서기회주의는꼭부정적인의미로만쓰는개념은아니다.한국의지정학적조건이국가적차원의기회주의적처신을요구해왔듯이,국내적으로도그런역사가존재했으며그것이오늘의삶을규정하기도한다는것을있는그대로담담하게살펴보자는것일뿐이다.

『한국현대사산책1960년대편:4?19혁명에서3선개헌까지』개정증보판은모두3권으로구성되었다.제1권은1960~1961년,제2권은1961~1964년,제3권은1965~1969년의역사를담아냈다.강준만은한국처럼현대사가끊임없이다시쓰거나수정하거나보완해야할필요성이큰나라는없을것이며,한국의운명에큰영향을미친나라들의비밀문서가해제되고,비극적인과거에대한진상이뒤늦게밝혀지면서배상과보상이논의되는상황에서21년전에출간된『한국현대사산책1960년대편』의개정증보판을펴낸다고말한다.

한일국교정상화는‘졸속?굴욕’이었는가?

1965년1월9일박정희는내외신기자회견에서한일회담을올해안으로매듭짓겠다고선언했다.2월19일한일협정기본조약이가조인되는날대규모시위가발생해경찰4명과시민12명이부상을당했고,75명이연행되었다.대학개학이후시위는본격화되어,3~4월내내시위와단식농성이전개되었다.4월13일시위도중부상당한동국대생김중배가이틀후사망했다.4월17일‘대일굴욕외교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는서울효창공원에서대규모시민집회를열었으며,집회후인근파출소를점거하는사태로까지발전했다.이날서울시내3개고교생3,000여명도시위를벌였다.정부는4·17시위를‘폭동’으로규정했으며,시위학생에대해현역징집영장을발부했다.5월2일박정희는진해비료공장기공식에서학생데모의비애국성,언론의무책임,지식인의옹졸을격렬하게비난했다.그러나한일협정은굴욕외교라는비판에도1965년6월22일일본도쿄의수상관저에서이동원과시나에쓰사부로가서명함으로써정식으로조인되었다.

7월14일밤,민주공화당은정부가제출한‘한일협정비준동의안’을전격발의했다.각사회단체는비준반대성명을발표했다.8월14일오전한일협정비준동의안은여야간심한몸싸움끝에야당의원들이불참한가운데국회본회의를통과했다.윤보선은한일협정국회비준전에국회의원총사퇴를주장했지만,박순천은반대했다.결국국회비준후윤보선파에서7명,박순천파에서1명이국회를떠났다.한일협정에의해평화선이철폐되었으며,한국측의40해리전관수역주장이철회되고일본의주장대로12해리전관수역이설정되었다.재일교포의법적지위와영주권문제등도일본정부의임의적처분에맡겨지게되었다.문화재와문화협력에관한협정은일제가35년간불법으로강탈해간모든한국문화재를일본의소유물로인정해버렸다.정신대·사할린교포·원폭피해등의문제는아예거론조차하지못했다.독도문제도논란의소지를남겼다.

이수근은이중간첩이었는가?

이수근은1967년3월22일남한으로귀순했지만,1969년2월13일다시북한으로탈출하려다가붙잡혀충격을안겨주었다.그는김일성수행기자를거치며중앙통신사부사장자리에오를정도로잘나가는엘리트였지만,자유분방하다고해도좋을정도로‘자유로운영혼’의소유자였다.박정희정권은세계적인관심을북한과의체제경쟁에서우위를점했다는상징적인사건으로포장하면서1967년5월3일에치러질제6대대통령선거에서치적을과시할수있는호재로삼았다.이수근은1967년4월1일내외신기자회견에서“북한에는사색의자유마저없고,탈출이스스로택한자유의길이었다”고밝혔다.중앙정보부도1년동안이수근을관찰하고내부논의끝에위장귀순이아니라는판단을내렸으며,이에따라그를중앙정보부7국1급판단관으로대우했다.이수근은첫기자회견에선“북한에두고온세자녀와처가한국에와서살수있도록해달라”고호소했다.

그런데언제부턴가이수근에대해이상한소문이돌기시작했다.“이수근이화장실에서이빨을딱딱거리면전파가나간다”,“이수근의눈속에는카메라가장치되어서눈을깜박거리는순간마다사진이찍힌다”,“이수근은이중간첩이다”는소문이었다.이수근이결혼해서행복하게잘살고있겠거니하고생각하고있던국민들에게황당한충격이전해진것은불과5개월후였다.1969년2월13일중앙정보부는“이수근이위장귀순을하였다가난관에부딪히자입북할목적으로탈출하다붙잡혔다”고발표를했다.그러나이수근이위장간첩이아니라는것은김형욱을비롯해중앙정보부수뇌부도잘알고있었지만,이들은책임문제를두려워했다.박정희정권에중요한것은오직‘정권안보’였다.이수근에대한재심무죄선고는2018년10월11일에이루어졌다.재판부는이사건을‘위장귀순한간첩으로조작된사건’으로규정했다.

강남개발과아파트홍보

1968년8월서울시내465개동(洞)중공중전화나전신전화취급소가없는동이48개동이나되며주로압구정,반포,서초,잠원,신사,논현,역삼,개포,삼성등강남변두리에몰려있었다.강남개발의신호탄은1967년4월29일에터졌다.바로그날경부고속도로건설이박정희의대선공약으로공표되었던것이다.경부고속도로건설사업이착수되면서서울시는토지보상없이도로용지를확보하기위해강남개발을추진하게되었다.인구문제와더불어남북긴장고조로서울인구의강북집중에대한우려도작용했다.1966년1월19일에착공한제3한강교(한남대교)가1969년12월26일에완공되면서강남은서울생활권으로들어오게되었다.제3한강교기공식이후‘말죽거리신화’로불리는거대한부동산투기붐이일었다.그런데서울시가정치자금을마련하기위해사들인대규모땅이강남일대에있었기때문에강남을개발했다는설도있으나,박정희정권이정치자금을부동산투기를통해조달한것은분명한사실이었다.

1960년대말까지아파트는‘마당이없는집’이라는인식과더불어위층과아래층소음등공동생활의불편함때문에빈민들의주거공간이라는시각이지배적이었다.당시시민아파트건립은큰사건이었지만언론의관심을받지못했다.시민아파트건립기공식은1968년6월18일에열렸다.훗날금화아파트로불리는시민아파트제1호의기공식에참석한사람은김현옥을비롯해극소수의시관계자들뿐이었다.1968년과는달리,1969년도의시민아파트건설사업기공식은당시언론에떠들썩하게보도되었다.군사작전식건설사업인지라5월15일하루에만열린기공식이모두16군데였다.시장과부시장등이지구별로차례대로나누어참석한기공삽질은깜깜한밤이되어서야모두끝났으며,시민아파트기공첫해동안건립된아파트는406동,1만5,840가구였다.

‘베트남특수’와‘월남에서돌아온김상사’

베트남파병에따른‘파월외환수입’은1966~1970년5년간총6억2,502만달러에달했으며,한국은베트남전쟁으로총액약10억달러이상의외화를획득해제2차경제개발5개년계획에필요한재원을충당했다.한국의대(對)베트남수출은물품군납의증가에힘입어1965년1,770만달러에서1970년7,000만달러로증가했다.베트남은미국·일본다음가는한국의수출시장이되었으며,한국수출총액에서베트남이차지하는비중은1970년8.4%에이르렀다.베트남특수가GNP에서차지하는비중은1965년0.6%에서1969년3.0%로올랐다.월남파병은많은신화를만들어냈다.그신화의주인공가운데하나는한진그룹일것이다.한진그룹은월남특수5년동안1억3,000만달러를벌어전형적‘월남재벌’이되었다.한진그룹은이공로를인정받아박정희의배려로1969년3월국영기업이던대한항공을인수해재벌로도약하기시작했다.월남파병은한일협정과더불어1960년대후반기고도성장을이끈쌍두마차였다.

박정희정권은베트남파병으로‘베트남특수’를누렸지만,5,000명의전사자와1만6,000여명의부상자라는피의대가를치러야했다.1964년9월이동외과병원과태권도교관단파견에서부터1973년3월주월한국군사령부철수에이르기까지10년간,연인원32만명을파병하고평균5만여명을상시주둔시킨가운데한국군전사자는5,000여명,부상자는1만6,000여명에이르렀다.당시에이런규모의전사자와부상자가사실그대로언론에보도되었더라면,한국인들은과연배좀부르자는이유만으로그런현실에눈을감았을지는의문이다.1965년만해도한국군전사자수가정기적으로신문에보도되었지만,그수가300명을넘어서면서부터이런기사는신문에서사라졌다.이른바‘월남특수’라고하는피의대가는골고루돌아가지않았던것이다.피를흘린사람만억울하게당하는체제,그게바로‘월남에서돌아온김상사’가흥겹게울려퍼지던1960년대말의한국사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