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1 (전태일과 경부고속도로 | 개정증보판)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1 (전태일과 경부고속도로 | 개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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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리가 살아왔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현대사는 역사의 출발점이자 결승점이다. 끊임없는 선택 속에 지금 내가 살아가야 하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사는 역사학계에서 찬밥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민감한 주제들이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논란이 되는 부분은 다양한 입장을 소개하면서도 그 나름의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참여의 마당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독보적이다. 지금의 ‘나’를 이룬,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한국인의 ‘보물창고’와 같다.
1945년 8월 15일 정오부터 봉준호의 〈기생충〉까지 75년의 역사를 촘촘히 담아낸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정치·경제·사회는 물론 대중문화·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현대 한국인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삶과 역사의 무대를 고스란히 되살려냈다. 이를 위해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방대한 주석에 당시의 현장을 포착한 사진, ‘역사 산책’ 코너 등을 통해 입체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단순한 사건의 나열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恨)과 욕망의 폭발’(1940년대), ‘극단의 시대’(1950년대), ‘기회주의 공화국의 탄생’(1960년대), ‘수출의 국가 종교화’(1970년대),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1980년대), ‘분열은 우리의 운명, 연대는 나의 운명’(1990년대), ‘노무현 시대의 명암’(2000년대), ‘증오와 혐오의 시대’(2010년대) 등 각 시대를 지배했던 정서와 구조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속에서 수많은 사건과 주제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가 ‘진보’의 이름으로 새로운 가치를 선점할 수 있듯이 극단과 궁핍의 시대를 살아남아야 했던 과거 세대의 ‘아픔’도 함께 껴안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준만은 한국 현대사가 ‘인간’을 배제했던 역사라고 간파하며 ‘인간’의 복원,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이념과 세대의 새로운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한국 현대사의 기록과 평가의 문화를 정착시킨 한국 최초의 단행본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저자

강준만

전북대학교신문방송학과명예교수로재직하고있는강준만은탁월한인물비평과정교한한국학연구로우리사회에의미있는반향을일으켜온대한민국대표지식인이다.전공인커뮤니케이션학을토대로정치,사회,언론,역사,문화등분야와경계를뛰어넘는전방위적인저술활동을해왔으며,사회를꿰뚫어보는안목과통찰을바탕으로숱한의제를공론화해왔다.
2005년에제4회송건호언론상을수상하고,2011년에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한국의저자300인’,2014년에『경향신문』‘올해의저자’에선정되었다.저널룩『인물과사상』(전33권)이2007년『한국일보』‘우리시대의명저50권’에선정되었고,『미국사산책』(전17권)이2012년한국출판인회의‘백책백강(百冊百講)’도서에선정되었다.
그동안쓴책으로는『법조공화국』,『MBC의흑역사』,『공감의비극』,『정치무당김어준』,『퇴마정치』,『정치적올바름』,『좀비정치』,『발칙한이준석』,『단독자김종인의명암』,『부족국가대한민국』,『싸가지없는정치』,『권력은사람의뇌를바꾼다』,『부동산약탈국가』,『쇼핑은투표보다중요하다』,『강남좌파2』,『바벨탑공화국』,『오빠가허락한페미니즘』,『손석희현상』,『박근혜의권력중독』,『전쟁이만든나라,미국』,『정치를종교로만든사람들』,『지방식민지독립선언』,『개천에서용나면안된다』,『싸가지없는진보』,『감정독재』,『미국은세계를어떻게훔쳤는가』,『갑과을의나라』,『증오상업주의』,『강남좌파』,『한국현대사산책』(전28권),『한국근대사산책』(전10권),『미국사산책』(전17권)등300권이넘는다.

목차

머리말:1970년대의두얼굴
‘한강의기적’의이면에숨은인권유린·5박정희정권의산업화가“민주화에기여했다”?·7양자택일의문제일까?·9

제1부1970년:도시에빨려들어가는농촌

제1장수출의국가종교화
‘조국근대화’를종교로삼은박정희·27‘군사적성장주의’와‘수출의전쟁화’·29수출은전쟁이되성전이었다·31수출‘10억달러’고지점령·32수출군사작전의양면성·35

제2장닉슨독트린과대미외교
리처드닉슨과샤를드골·37박정희의리처드닉슨푸대접·38박정희가닉슨에게당한굴욕·391970년대의한국을지배한주한미군문제·42

제3장경부고속도로개통
‘민족사적금자탑’을세운박정희의‘원맨쇼’·44가장싸고빠른군사작전식건설·4677명의생명이바쳐진경부고속도로·48‘자동차시대’와‘고속도로의문학’·50고속도로가농촌에미친영향·52

역사산책1고층빌딩은‘조국근대화’의상징·56

제4장경부고속도로와지역갈등
지역균형발전을외면한경부고속도로·59투표성향으로나타난소외감·61공약이된호남선복선화·63호남인의호남탈출·65‘시장논리’로정착된호남차별·66

제5장북한에‘경제경쟁’을제안한8·15선언
‘함정피랍사건’과‘현충문폭발사건’·69‘자력방위’를위한방위산업육성·70북한존재를인정한8·15선언·71

제6장신민당대통령후보지명대회
김영삼·김대중·이철승‘40대기수들’의도전·74김영삼의자만,김대중의승리·76박정희를섬기는‘박정희교신도’의등장·78

제7장평가교수단과대통령특별보좌관제도
지식인을경멸한박정희의지식인관·80박정희의지식인이용·82평가교수단이누린특혜·83대통령특별보좌관제도의발족·84박종홍의박정희체제옹호·86함병춘의군사정권옹호·88학계에서존경을누린박종홍의영향력·90

제8장정인숙살해사건과‘요정정치’의천태만상
정인숙의수첩에서나온33장의명함·92박정희인가,정일권인가?·94국회대정부질문·95아직도진실을밝힐때가아니다?·97‘정성일의아버지’미스터리·98박정희의놀라운엽색행각·100부정부패를심화시킨‘요정공화국’·102밤낮구분이없는박정희정권실세들의엽색행각·103

제9장33명이죽은와우아파트붕괴사고
불도저처럼밀어붙인아파트건설·10633명의생명을앗아간아파트붕괴사고·108부실,싸구려,날림공사·110선거때만멈춘판자촌철거·111

제10장시인김지하의‘오적’
다섯도둑의부패상을풍자한담시·113부정부패고발도반공법위반·114『사상계』폐간,『씨ᄋᆞᆯ의소리』창간·116정부고관들이사는‘도둑마을’·118무엇을위한5·16이었는가?·119독재와부정부패는동전의양면·121

역사산책2일일연속극〈아씨〉의인기·124

제11장청년노동자전태일의분신자살
“우리는기계가아니다!”·127왜전태일이만든모임은‘바보회’였을까?·128평화시장노동자들의참상·130언론은무엇을하고있었던가?·132양심을강타당한대학생과지식인·134학생시위와기독교인들의참회·135‘경부고속도로’와‘닭장집’·136

역사산책3‘우리들의어머니’가된이소선·139

제2부1971년:박정희1인체제의완성

제1장‘언론화형식’과‘언론자유수호선언’
이희호와팻닉슨의사진촬영논란·143월간지『다리』탄압사건·144편집국장옆에앉은중앙정보부원·146“정상배로전락한신문경영자”·148기자들의‘언론자유수호선언’·149교련철폐와공명선거운동·151

제2장서승·서준식형제‘간첩’조작사건
보안사가연출한반공드라마·153서승이당한잔인한고문·154선거를엎기위한음모극·157

제3장제7대대통령선거
‘김대중바람’대색깔론·159박정희의대선자금은국가예산의10%·162중앙정보부의투표결과조작·164“이번이마지막출마”라는거짓말·165

제4장4·27대선과지역갈등
“신라임금을뽑자”는선동·167‘피의보복이있을것’이라는선동·169“럭키치약을사지말자”는공작선동·170박정희의호남차별인사정책·172

제5장제8대국회의원선거와‘진산파동’
신민당당원들의습격을받은유진산·174신민당의‘실질적인대승’·175언론의김대중보도통제·177

제6장사법부파동과사법부탄압공작
판사들의자체정화운동·179박정희정권의사법부탄압공작·180박정희정권의재판권침해사례·182박정희정권의하부기관으로종속된사법부·183

제7장그린벨트와산림녹화
수도권인구억제를위한그린벨트·186한국은20세기의대표적녹화사업성공국가·187아무런대책없이철거당한판자촌·189

제8장광주대단지폭동사건
쓰레기처럼내버려진사람들·191주민희망을유린한서울시의배신과오만·194굶어죽을정도로굶주린사람들·196끝나지않은판자촌빈민문제·198

제9장실미도사건의비극
서울시내한복판에출현한무장공비?·200김일성암살을위해만든특수부대·202인간이하의취급을받은특수부대원들·204단지‘후진적인력관리’의문제였는가?·205동료들에게맞아죽은탈영자·206실미도부대는‘홧김에만든부대’·207

제10장공화당‘4인체제’의몰락
박정희의‘소름끼칠듯한무서운눈매’·210김성곤은박정희의정치자금창구·211내무부장관오치성해임건의안가결·212공화당의원들에게가해진가혹한고문·215공화당과의회정치의사망·216박정희의냉혹한인간관·217

제11장‘10·15위수령’과‘12·6국가비상사태’
수경사병력고려대난입사건·221서울8개대학에무기휴업령을내린10·15위수령·222전서울대생4명의‘내란예비음모’사건·224헌법적근거가없는12·6국가비상사태·224

제12장프레스카드제와MBC〈뉴스데스크〉
민심에편승한언론통제·226박정희정권의프레스카드제악용·229신문산업의경영합리화·230앵커가진행하는MBC〈뉴스데스크〉탄생·231재벌과박정희측근에게넘어간MBC·234MBC분양비리와부작용·236MBC분양이보여준박정희정권의부정부패·237범여권계매체계열화·238

제13장포크음악,라디오DJ,미팅
김민기와양희은의〈아침이슬〉·241라디오DJ프로그램과음악다방·242교회갱신운동에이용된포크음악·245대학생들의미팅문화·247

역사산책4인스턴트커피가변화시킨다방문화·249

제3부1972년:박정희영구집권체제의완성

제1장리처드닉슨의중공방문과남북대화
중공에초청된미국대통령리처드닉슨·255브레턴우즈체제의폐기·258김일성의남북대화제의·260닉슨의중공·소련방문·261닉슨의중공방문이한반도에미친영향·263역사적인울산현대조선소기공식·264기상천외한‘정주영공법’·266

제2장통일열기를만들어낸‘7·4남북공동성명’
중앙정보부장이김일성을만나다니!·269박정희의정치적필요·270남한도북한에배울게있다·273서두른30여명사상범사형집행·273남북적십자회담은열렸지만·274

제3장사채를동결한8·3긴급경제조치
기업을위한사채동결·2788·3긴급경제조치로억울하게당한사람들·280정경유착과재벌중심경제·282

제4장박정희의‘10월유신’선포
대통령종신제를위하여·285북한도두려워한국제정세변화·287사쿠라만활짝핀신민당·289‘악질’의원들에게가해진고문·290“내가인간의세상에살고있는가”·291

제5장‘10월유신’국민투표와‘체육관선거’
91.5%찬성,강요된부정선거·293입법부와사법부의무력화·29499.99%지지가나온‘체육관선거’·295‘박정희는유신,김일성은유일’·297김일성의1인지배체제와세습강화·299남북한의‘내통가능성’을부정한김종필·301

제6장‘10월유신’,언론과지식인은무엇을했는가?
언론의대대적인유신홍보·303이어령의프랑스파리피난·304취재기능을거세당한언론·306박정희와『조선일보』의유착·307『조선일보』의‘10월유신’지지·310‘항가리헌법’으로불린유신헌법·312박일경의‘한국적민주주의’론·313갈봉근의‘권력의인격화’이론·315강만길이느낀배신감·316

제7장통일벼와절미운동
박정희의‘희’를딴‘희농1호’의실패·318‘진짜기적의볍씨’통일벼·320절미운동위반은범죄·321학교에서과잉단속·323‘쌀밥=미개’,‘밀가루=문명’·325

제8장새마을운동과민족성개조론
‘시멘트생산과잉’에서비롯된운동·327‘초가집’에서‘기와집’으로변화·329박정희의민족성개조론·330새마을운동의사회개혁운동화·332“유신이념과연결된정치적국민운동”·334

역사산책5‘화투화형식’과‘주부도박단’·336
역사산책6“아들딸구별말고둘만낳아잘기르자”·339
역사산책7미신·무속타파운동·342

제9장이순신숭배와국민의식개조사업
국사교육강화가만든‘국사붐’·345박정희의이순신성웅화작업·346이순신영화때문에망한김진규·349‘성웅=멸사봉공정신’·350효도도‘국민총화’를위하여·351

제10장어용단체로전락한한국노동조합총연맹
노동착취가최대경쟁력·352정권에포섭된한국노총·354노조간부들의귀족화·356한국노동운동의이중구조·357

제11장남진·나훈아와김추자·신중현의활약
남진과나훈아의경쟁·358경쟁과상부상조·360〈고향역〉·〈님과함께〉의사회학적의미·362“담배는청자,노래는추자”·364신중현의예술가적근성·36651명이사망한서울시민회관화재·368

제12장정부주도축구의인기
‘실세’장덕진의축구협회장취임·371메르데카컵·킹스컵우승이불러온‘축구열풍’·3731970년멕시코월드컵열풍·375‘박대통령배아시아축구대회’출범·377이회택의눈물과삭발·380축구황제펠레의방한경기·381북한의올림픽금메달이준자극·384

제13장왜공중전화통화시간을3분으로제한했는가?
전화기50만대로34번째중진국·386‘청색전화’와‘백색전화’의차이·3881971년서울-부산간장거리자동전화개통·3901972년공중전화3분제한제·391

주·393

출판사 서평

‘한국현대사산책’시리즈,1970년대편개정증보판출간!

한국현대사에서가장중요한10년간을꼽으라면1970년대라고할것이다.1970년대를보는시각은크게두가지로나눌수있는데,‘전태일과경부고속도로’가될것이다.1970년7월7일에개통된경부고속도로는전쟁의잿더미속에서들고일어난‘한강의기적’을상징하며,1970년11월13일에일어난전태일의분신자살은‘한강의기적’의이면에숨은잔인한인권유린을상징한다.그두얼굴가운데‘전태일’에주목한다면1970년대를부정적으로볼것이고,‘경부고속도로’에주목한다면1970년대를긍정적으로볼것이다.전태일이분신자살로항거한참혹한노동실태의현장이었던서울평화시장은“공간적으로당시민중들의삶의중심지였을뿐만아니라한국자본주의화과정에서노동자에대한가혹한희생속에서자본가계급의형성을뒷받침한요람”이었다.경부고속도로는그러한‘요람’에서짜낸피와땀을근거로이루어진것이었지만,경부고속도로가낳고촉진시킨발전과번영의수혜는다른사람들의몫이되었다.
전태일은독재권력의주구로전락한언론,경제발전지상주의라고하는거센물결속에서‘경제동물화’되어갔던중산층과중산층에편입되기를열망했던사람들의싸늘한시선까지보여주었다.경부고속도로의중단없이쭉뻗은길은발전과번영의표상이었다.그러나동시에경부고속도로가하나였던것을가로지르면서만들어낸경계는새로운갈등과차별을잉태시켰다.농촌과지방인구는그길에흡수되어서울과도시에내던져졌고,권력과부(富)의집중과전횡을낳는시스템이고속도로처럼빠른속도로구축되기시작했다.전태일의분신자살이그것을웅변해주었고이후동일방직여성노동자들이1970년대내내계속된그런‘억압과착취’의시스템을상징적으로폭로했다.박정희의독재정권이한국사회에미친가장큰악영향은사회와개인의관계를단절시킨것이다.나와내가족을사회에서단절시키지않으면안전하게살아갈수가없었기때문에그것은불가피한생존술이었을것이다.어느덧그생존술은자연스러운문화로까지정착되었다.
『한국현대사산책1970년대편:전태일과경부고속도로』개정증보판은모두3권으로구성되었다.제1권은1970~1972년,제2권은1973~1975년,제3권은1976~1979년의역사를담아냈다.강준만은한국처럼현대사가끊임없이다시쓰거나수정하거나보완해야할필요성이큰나라는없을것이며,한국의운명에큰영향을미친나라들의비밀문서가해제되고,비극적인과거에대한진상이뒤늦게밝혀지면서배상과보상이논의되는상황에서24년전에출간된『한국현대사산책1970년대편』의개정증보판을펴낸다고말한다.

박정희의‘원맨쇼’와경부고속도로개통

1970년7월7일,429킬로미터길이의경부고속도로가개통되었다.그날박정희는부산공설운동장에서열린준공식에서“이공사는민족의피와땀과의지의결정이며민족적인대예술작품”이라고말했다.추풍령에세워진준공기념탑전면에는“서울-부산간고속도로는조국근대화의길이며국토통일의길이다.1970년7월7일대통령박정희”라는글이새겨져있다.1964년서독을방문한박정희는본에서쾰른까지20킬로미터구간의아우토반(고속도로)을왕복으로달려본후에경부고속도로건설을결심했다.그는두차례나도로중간에서차를멈추게하며지대한관심을표명했고,서독의경제번영에아우토반이큰기여를했다는것에큰감명을받았다.경부고속도로는박정희가직접지휘했던‘원맨쇼’였다.박정희도자신의‘원맨쇼’를즐겼다.그는늘고속도로만달리고오면기분이좋았다.
경부고속도로건설에는429억원이투입되었고,연동원인원은900만명에이르렀다.경부고속도로는세계에서가장싼건설비로가장빠르게공사가진행되었고,건설동기ㆍ추진방법ㆍ공사방식이모두군대식이었다.건설공사라기보다는군사작전이었다.경부고속도로는초기설계도채끝나기전에시작되었는데,즉설계와공사가병행되고있었다.경부고속도로는원래1971년6월30일개통예정이었는데,박정희는1년앞당겨1970년6월30일까지준공할것을지시했다.그것은1971년에대선이있었기때문이다.그렇게서둘러건설했으니부작용이없을리없었다.고속도로건설중사망자가77명이나나왔고,부실공사도피하기어려웠다.또한고속도로건설은땅값에영향을미쳐영농의영세화를초래하고농민들의주거지상실로인한이촌현상을유발시켰다.

“우리는기계가아니다!일요일은쉬게하라!”

서울평화시장에는2만7,000여명의노동자가일하고있었는데,이들은대부분가난한농촌가정출신이고14세에서24세사이의젊은여성들이었다.그들의노동조건은상상을초월할정도로열악했지만,업주와정부는노동자들의탄원서를10여차례나묵살했다.1970년11월13일근로조건개선을요구하며전태일이온몸에석유를뿌리고불을질러자살했다.전태일은불길에휩싸인채“근로기준법을준수하라!우리는기계가아니다!일요일은쉬게하라!노동자들을혹사하지마라!”고부르짖었다.전태일은1964년당시16세의나이에서울평화시장내에있는삼일사에견습공으로취직했다.그는인간이하의열악한노동조건을몸소겪으면서노동과인권문제에대해관심을갖게되었다.전태일은우연한기회에‘근로기준법’에대한이야기를듣고몇몇동료와모여1969년6월‘바보회’를결성했다.
전태일은노동청장앞으로‘평화시장피복제품상종업원근로개선진정서’를제출했는데,노동청출입기자가이것을『경향신문』에보도했다.전태일일행을감격했고,『경향신문』300부를사서평화시장에돌렸고,그날저녁평화시장일대는축제분위기였다.그러나노동청과기업주는외면했고,경찰이가세해노동자들을더욱통제하려들었다.대대적인데모를계획했으나경찰의방해로실패로돌아갔다.이런좌절로전태일은분신을결심하게된다.그후서울대법대생100여명은전태일의시체를인수해학생장으로거행하겠다고했고,서울대상대생400여명은무기한단식농성에들어갔다.또새문안교회대학생부학생40여명은금식기도회를열었고,기독교인들은신구교합동으로전태일추모예배를드렸다.전태일의죽음은한국의지식인과대학생,기독교인들에게큰충격을주었다.전태일의분신자살사건은다른노동자들에게도큰영향을미쳤으며이후본격적인노동운동이벌어지게만든중요한계기가되었다.

광주대단지폭동사건

박정희정권은도시빈민문제를해결하기위해서울의청계천일대를비롯한판자촌을대거철거하면서주민들을1969년5월부터경기도광주로강제이주시켰다.그런데이곳은도로도없고배수시설도없는문자그대로황무지였다.이들은14만5,000여명에이르렀는데,쓰레기내버리듯광주에내팽개쳤을뿐아무런대책도세워주지않았다.“인구10만명만모아놓으면어떻게해서든뜯어먹고산다”는기막힌발상이대책이라면대책이었을뿐이다.그들은천막을치고살았는데,더욱큰문제는그들에게일감이없다는것이었다.더욱이상당수주민들은아침에는죽을,점심에는굶고,저녁에는국수한봉지로연명하는형편이었다.그어떤주민편의시설도전혀없었고,교통도기본적인인프라가없었으니다른지역으로취업이나물건을구하러나갈수도없었다.
서울시가토지유상불하와가옥취득세부과를발표하자,주민들은1971년7월대책위원회를구성해토지불하가격과가옥취득세인하를요구했다.7월7일‘광주단지토지불하가격시정대책위원회’를조직하고,7월14일서울시가애초의약속을어기고유상불하통지서를발부하자주민들은이위원회를중심으로여러차례산발적인시위도벌였다.결국주민들은대책위원회를‘투쟁위원회’로바꾼다음8월10일대규모시위를벌였다.서울시는시장양택식과직접면담을오전11시에주선해주겠다고제의했다.오전10시경5만여명의주민은성남출장소뒷산에모여양택식을기다렸다.그러나11시40분이되어도양택식은나타나지않았고,주민들은결국폭발하고말았다.주민들은파출소와경찰차에방화하고관공서건물과차량을파괴·탈취했다.서울시장이주민요구를무조건들어주겠다고발표한것은오후5시경이었다.이로써6시간의비극적인드라마가끝나게되었다.이사건으로주민과경찰100여명이부상했고주민23명이구속되었다.

‘10월유신’국민투표와‘체육관선거’

박정희정권은1972년10월27일대통령종신제를기조로하는헌법개정안을발표했는데,투표를앞두고대대적인홍보공작이전개되었다.이헌법개정안은11월21일공포분위기속에서실시된국민투표에서91.9%의투표율과91.5%의찬성률로통과되었다.박정희는‘통일을향한국민의지의발현’이라고주장했지만,그것은국민들에게무력감과공포감을조장한폭력정치의승리였다.유신헌법에따라대통령은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간접선거로선출하게되었다.국회의원의선출은임기6년에전국73개지역구에서1구2인의국회의원을뽑는중선거구제로바뀌었다.대통령이추천한국회의원정족수의3분의1에해당되는73명을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들이선출하는제도가도입되어대통령이마음대로임명하는새로운전국구제도였다.대통령이추천한전국구의원집단을‘유신정우회’라고불렀는데,이국회의원들은임기를6년으로하되3년마다대통령의추천에따라교체할수있게했다.
박정희는“1981년에1인당국민소득1,000달러,수출100억달러를달성하겠다”고약속해‘10월유신,100억달러수출,1,000달러소득’이라는유신구호가생겨났다.12월15일통일주체국민회의의대의원선거가실시되었다.이선거에서당선된2,359명의대의원들로구성된선거인단이서울장충체육관에모여서대통령을뽑도록되어있었기때문에‘체육관선거’라고불렸다.12월23일통일주체국민회의는장충체육관에서박정희를제8대대통령으로뽑았다.전체대의원2,359명가운데2,357명이지지한99.99%의지지율이었다.박정희는12월27일제8대대통령에취임함으로써김대중과의경쟁끝에당선된제7대대통령임기는1년5개월만에끝나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