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2 (전태일과 경부고속도로 | 개정증보판)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2 (전태일과 경부고속도로 | 개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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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지난 10년 한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그 모든 것은 어떻게 달려왔는가?
“한국 현대사의 기록과 평가의 문화를 정착시키다”
우리가 살아왔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현대사는 역사의 출발점이자 결승점이다. 끊임없는 선택 속에 지금 내가 살아가야 하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사는 역사학계에서 찬밥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민감한 주제들이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논란이 되는 부분은 다양한 입장을 소개하면서도 그 나름의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참여의 마당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독보적이다. 지금의 ‘나’를 이룬,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한국인의 ‘보물창고’와 같다.
1945년 8월 15일 정오부터 봉준호의 〈기생충〉까지 75년의 역사를 촘촘히 담아낸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정치·경제·사회는 물론 대중문화·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현대 한국인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삶과 역사의 무대를 고스란히 되살려냈다. 이를 위해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방대한 주석에 당시의 현장을 포착한 사진, ‘역사 산책’ 코너 등을 통해 입체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단순한 사건의 나열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恨)과 욕망의 폭발’(1940년대), ‘극단의 시대’(1950년대), ‘기회주의 공화국의 탄생’(1960년대), ‘수출의 국가 종교화’(1970년대),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1980년대), ‘분열은 우리의 운명, 연대는 나의 운명’(1990년대), ‘노무현 시대의 명암’(2000년대), ‘증오와 혐오의 시대’(2010년대) 등 각 시대를 지배했던 정서와 구조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속에서 수많은 사건과 주제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가 ‘진보’의 이름으로 새로운 가치를 선점할 수 있듯이 극단과 궁핍의 시대를 살아남아야 했던 과거 세대의 ‘아픔’도 함께 껴안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준만은 한국 현대사가 ‘인간’을 배제했던 역사라고 간파하며 ‘인간’의 복원,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이념과 세대의 새로운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한국 현대사의 기록과 평가의 문화를 정착시킨 한국 최초의 단행본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저자

강준만

전북대학교신문방송학과명예교수로재직하고있는강준만은탁월한인물비평과정교한한국학연구로우리사회에의미있는반향을일으켜온대한민국대표지식인이다.전공인커뮤니케이션학을토대로정치,사회,언론,역사,문화등분야와경계를뛰어넘는전방위적인저술활동을해왔으며,사회를꿰뚫어보는안목과통찰을바탕으로숱한의제를공론화해왔다.
2005년에제4회송건호언론상을수상하고,2011년에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한국의저자300인’,2014년에『경향신문』‘올해의저자’에선정되었다.저널룩『인물과사상』(전33권)이2007년『한국일보』‘우리시대의명저50권’에선정되었고,『미국사산책』(전17권)이2012년한국출판인회의‘백책백강(百冊百講)’도서에선정되었다.
그동안쓴책으로는『법조공화국』,『MBC의흑역사』,『공감의비극』,『정치무당김어준』,『퇴마정치』,『정치적올바름』,『좀비정치』,『발칙한이준석』,『단독자김종인의명암』,『부족국가대한민국』,『싸가지없는정치』,『권력은사람의뇌를바꾼다』,『부동산약탈국가』,『쇼핑은투표보다중요하다』,『강남좌파2』,『바벨탑공화국』,『오빠가허락한페미니즘』,『손석희현상』,『박근혜의권력중독』,『전쟁이만든나라,미국』,『정치를종교로만든사람들』,『지방식민지독립선언』,『개천에서용나면안된다』,『싸가지없는진보』,『감정독재』,『미국은세계를어떻게훔쳤는가』,『갑과을의나라』,『증오상업주의』,『강남좌파』,『한국현대사산책』(전28권),『한국근대사산책』(전10권),『미국사산책』(전17권)등300권이넘는다.

목차

제1부1973년:수출전쟁과안보전쟁

제1장박정희의중화학공업화선언
‘유신옹호’,‘중화학공업화’,‘수출지향산업화’·21자동차산업과조선산업의발전·24중화학공업화정책에대한비판·27국제분업구조와공해산업유치·28재벌의거대화·독점화촉진·29

제2장제9대국회의원선거와유정회
하나마나한나눠먹기선거·33‘유신의친위대’또는‘청와대특공대’·35국회를압도한‘행정우위의시대’·37

제3장윤필용사건과전두환의하나회
군부를두려워한박정희·39청와대밖에있는대통령’?·40박정희의윤필용제거·42‘하나회의진짜대부’는박정희·44육사를장악한하나회·46‘마피아조직’과흡사한하나회·48박정희의군부관리술·49

제4장‘조국근대화’의상징,포항종합제철완공
일본의지원자금으로건설한포항제철·51정치자금을뜯기지않은포항제철·53박정희의포항제철과시욕·54한국의대일의존도심화·56

제5장김대중납치사건
김대중의반유신투쟁·59중앙정보부가벌인5일간의납치극·60일본에사과하고4억엔이나바친박정희·63주범은이후락인가,박정희인가?·64

제6장남북대화중단
6·23선언의‘1민족1국가2정부’론·66“남조선깡패들과는대화할수없다”·67북한의‘현실에대한판단착오’·68

제7장10·2시위와언론자유수호선언
남산부활절기도회사건·71‘함성’,‘고발’,‘민우’,‘기자협회보’사건·72서울대문리대10·2시위사건·73제2,제3언론자유수호선언·75고등학생들의시위참여·76

제8장서울대법대교수최종길의문사
중앙정보부의엉터리조작발표·78지하유인물과미국의반발·79동생최종선의‘양심선언’수기작성·81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추모미사·83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밝힌진상·83

제9장가로등마저끄게만든‘오일쇼크’
갑자기어두워진밤거리·87“쓰레기통에휴지가없다”·88신문과방송에미친영향·90

제10장일본인기생관광붐
부산-시모노세키의페리호취항·91문교부장관의매매춘장려발언·92‘수출정책’의일환으로서의매매춘·94화대착취구조를묵인한정부·97한국인의경제동물화·98과시적인기생관광행태·99‘4·19의4월’에서‘관광의4월’로·100여성계의적극적인반대투쟁·101‘현지처’가되는건기생관광종사자의꿈·104

제11장기지촌정화운동과가족법개정운동
‘국방정책’으로서의매매춘·106“우리는신발이아니라인간이다”·108‘외교정책’으로서의매매춘·110가족법개정운동과유림의반발·111유림을비롯한보수세력의두얼굴·113“인권을수단화하는문화”·114

제12장언론인의정관계진출
정부부처대변인으로변신한언론인·116정관계와언론사이의회전문·118정치부기자의추락,군출입기자의득세·119

제13장‘유신방송법’과‘유신영화법’
‘유신방송법’의탄생·121한국방송공사와새마을운동·122김일성을닮아간박정희·124TV드라마의특정지역차별·126‘유신기자’와‘오촌오빠’의등장·127‘유신영화법’의탄생·128

제14장TV일일연속극붐
수신기대중화,내용의통속화·131TBC〈아씨〉의인기·132KBS〈여로〉의인기·134일일극홍수사태·136

제15장장발과미니스커트단속
장발은‘외래·퇴폐풍조’의상징·138박정희의장발에대한혐오감·140그룹사운드의비애·141미니스커트단속풍경·142초등학생들까지단속대상·144장발단속의정치적의미·145미니스커트,핫팬츠,판탈롱·146

제2부1974년:긴급조치와민주화투쟁

제1장헌법개정백만인청원운동
개헌청원운동본부의발족·151긴급조치1,2호발동·152긴급조치이미지조작을위한긴급조치3호·154‘정찰제’판결과‘문인간첩단’사건·156김동리의희한한여론조사·158

제2장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
비밀이새나간‘4·3총궐기’계획·1594·3시위와긴급조치4호·160박정희정권의인간성파괴공작·162고문으로조작한인혁당재건위사건·164민청학련사건의3대세계기록·165민청학련사건의의미와효과·168구속자가족협의회탄생·169“김택수,민청학련자금줄이었다”·169

제3장리영희의『전환시대의논리』
『전환시대의논리』가준충격·171리영희의대안언론행위·173베트남,중공,북한에대하여·174

제4장박정희암살미수사건
경찰을허수아비로만든경호실의위세·177‘도쿄폭격론’에서‘국민총화’로·17876회나방영된육영수피격장면·180전국을휩쓴육영수추모의물결·183반공정신무장의기회·185김대중납치사건이원인이었다·187

역사산책1서울지하철1호선개통·189

제5장경호실장차지철의‘보위경호’
왜경호실장이차지철로바뀌었는가?·192박정희를교주로모신차지철·193차지철의‘보위경호’·194경호실작전차장보의역할·196박정희유일체제의비극·197

역사산책2박정희의엄격한친인척관리·199

제6장김영삼의신민당총재당선
최연소야당총재의탄생·202차지철의야당공작실패·204개헌투쟁선언과박정희의위협·204

제7장김수환,지학순,정의구현사제단
김수환의1971년성탄절미사강론·206김수환의1972년8·15시국선언·207지학순의양심선언과석방기도회·208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김수환·210

제8장자유언론실천선언과『동아일보』광고탄압
박정희정권의언론통제·213부정부패도‘국가안보’로은폐한박정희정권·21431개언론사로파급된‘자유언론실천선언’·217박정희가직접지시한광고탄압·219언론기능을대신한광고·220

제9장포드의방한,민주회복국민회의발족
100만달러를주고산포드의방한?·223미국친한파의원에대한환대·225민주회복국민회의의발족·227박정희정권의공격적인보복·229탄압으로강요된영남지역의보수성·230

제10장도시산업선교회와한국노총의충돌
‘어용노조’와‘민주노조’의싸움·232영등포산업선교회와인천산업선교회·233도시산업선교회에대한탄압·235산업선교와한국노총의성명전·236박정희정권과보수기독교세력의‘지원사격’·238조지오글과제임스시노트추방·239

제11장여의도엑스플로74
세계를깜짝놀라게한한국교회의양적성장·242김준곤과박정희의관계·243빌리그레이엄전도대회·244친독재적전도대회·245독재정권을비호하는제사장종교·247

제12장고등학교평준화조치
경기출신장관이었기에가능했던고교평준화?·248고교평준화의연차별확대와축소·249학교교육외면과과외열기심화·251

역사산책3‘KS마크병’·253

제13장‘별들의고향’과‘청년문화’논쟁
최인호와‘대중문학논쟁’·256왜우경아는사랑을받았는가?·258“난대중작가다!넌소중평론가냐?”·260정치학·사회학대인문학·문학의갈등?·264‘바보들의행진’과청년문화·265

역사산책4고고와미팅·267
역사산책5스트리킹·270

제3부1975년:병영국가체제의완성

제1장한국기업들의중동진출붐
‘공기단축’신화를선보인삼환·275한국의세가지장점또는비교우위·2761970년대후반연평균76%의성장률·278‘국가적인경사’를만든현대의활약·279

제2장수출전쟁의첨병,종합무역상사
종합무역상사란무엇인가?·282‘낙수효과’또는‘선성장후분배론’·284대기업을키우기위한정책·286재벌의‘문어발’,중소기업의위축·287

제3장유신헌법찬반국민투표
대통령직을건국민투표·289박정희정권의투표찬성선동과‘행정투표’·291“신은나에게또다시중책을맡기시다”·293고문과은폐로유지된정권·294박정희의적반하장·296최형우의고문폭로·298김지하의고문폭로·299‘어떤조사’사건·300

제4장『동아일보』·『조선일보』기자들의자유언론실천투쟁
『조선일보』내부의노사갈등·30332명의기자를해고한『조선일보』·304자유언론실천에대한노사의동상이몽·307『동아일보』의기자축출작전·309113명의기자를해고한『동아일보』·311출판을통한대안언론활동·312해직기자들의새로운생활투쟁·314송건호와조민기의투쟁·315강화된언론사폐쇄성·317

제5장인혁당사건8명사형집행
“사법사상가장수치스러운재판”·319박정희정권의야수적행위·321사형수들의가족이당한고통·323“살인마박정희천벌을받아라”·325법정스님의민주화투쟁·327‘소유’에저항한‘무소유’의사상·329

제6장서울대생김상진의할복자살
갑작스러운긴급조치7호발동·332“민주주의란나무는피를먹고살아간다”·334언론보도와추도식을막은박정희정권·335월남패망이살려준박정희정권·337

제7장월남패망과긴급조치9호
북한의땅굴과신뢰받지못한박정희정권·3384·17캄보디아적화,4·30월남패망·339베트남파병의결산·340“민주정치를박살내는핵폭탄”·343학도호국단결성과5·22시위·345서울대앞‘동양최대의파출소’·346‘하’사건까지낳은5분시위·347

역사산책6대학문화패들의활약·349

제8장박정희와김영삼의회담
비밀에붙인회담내용·351김영삼의변절인가?·352‘신민당의패배’로여겨진‘김옥선파동’·353박정희의눈물에속은김영삼·356

제9장강력한언론통제와‘4대전시입법’
‘언론부조리숙정에관한결의문’·357프레스카드제통제와보도지침강화·359‘4대전시입법’국회통과·3606·23선언과전향공작테러·361서준식의치열한투쟁과증언·363신원조사제도와낙인효과·365

제10장장준하의문사사건
의문의추락사와장준하암살설·367장준하사망의의문점·368친미반공주의에서민족주의로·369가족까지희생시킨투철한언행일치·370

제11장박정희와김일성의국제적이미지경쟁
1975년은남북간경제력차이의분기점·372남북간치열한외교전쟁·373김일성의제3세계외교·374박정희의대미언론플레이·376

제12장학도호국단부활과대학의병영화
학생회를없애고만든학도호국단·379병영으로변한대학과지식계·381사격술훈련시간이된체육시간·382교사가전권을행사하는교사독재체제·383

역사산책7여의도국회의사당의준공·385

제13장반공드라마와정책홍보드라마
일일연속극에대한비판·387‘반공드라마’로유도·389정책홍보성드라마〈꽃피는팔도강산〉의성공·390홍보효과를위한실화이용·393

제14장가요금지곡양산과대마초파동
네차례나시달된방송정화실천요강·395포크음악계의파국을초래한대마초파동·396신중현노래의방송금지사유·398김민기·양희은의〈아침이슬〉도금지곡·399대마초파동덕분에향

출판사 서평

‘한국현대사산책’시리즈,1960년대편개정증보판출간!

한국현대사에서가장중요한10년간을꼽으라면1970년대라고할것이다.1970년대를보는시각은크게두가지로나눌수있는데,‘전태일과경부고속도로’가될것이다.1970년7월7일에개통된경부고속도로는전쟁의잿더미속에서들고일어난‘한강의기적’을상징하며,1970년11월13일에일어난전태일의분신자살은‘한강의기적’의이면에숨은잔인한인권유린을상징한다.그두얼굴가운데‘전태일’에주목한다면1970년대를부정적으로볼것이고,‘경부고속도로’에주목한다면1970년대를긍정적으로볼것이다.전태일이분신자살로항거한참혹한노동실태의현장이었던서울평화시장은“공간적으로당시민중들의삶의중심지였을뿐만아니라한국자본주의화과정에서노동자에대한가혹한희생속에서자본가계급의형성을뒷받침한요람”이었다.경부고속도로는그러한‘요람’에서짜낸피와땀을근거로이루어진것이었지만,경부고속도로가낳고촉진시킨발전과번영의수혜는다른사람들의몫이되었다.
전태일은독재권력의주구로전락한언론,경제발전지상주의라고하는거센물결속에서‘경제동물화’되어갔던중산층과중산층에편입되기를열망했던사람들의싸늘한시선까지보여주었다.경부고속도로의중단없이쭉뻗은길은발전과번영의표상이었다.그러나동시에경부고속도로가하나였던것을가로지르면서만들어낸경계는새로운갈등과차별을잉태시켰다.농촌과지방인구는그길에흡수되어서울과도시에내던져졌고,권력과부(富)의집중과전횡을낳는시스템이고속도로처럼빠른속도로구축되기시작했다.전태일의분신자살이그것을웅변해주었고이후동일방직여성노동자들이1970년대내내계속된그런‘억압과착취’의시스템을상징적으로폭로했다.박정희의독재정권이한국사회에미친가장큰악영향은사회와개인의관계를단절시킨것이다.나와내가족을사회에서단절시키지않으면안전하게살아갈수가없었기때문에그것은불가피한생존술이었을것이다.어느덧그생존술은자연스러운문화로까지정착되었다.
『한국현대사산책1970년대편:전태일과경부고속도로』개정증보판은모두3권으로구성되었다.제1권은1970~1972년,제2권은1973~1975년,제3권은1976~1979년의역사를담아냈다.강준만은한국처럼현대사가끊임없이다시쓰거나수정하거나보완해야할필요성이큰나라는없을것이며,한국의운명에큰영향을미친나라들의비밀문서가해제되고,비극적인과거에대한진상이뒤늦게밝혀지면서배상과보상이논의되는상황에서24년전에출간된『한국현대사산책1970년대편』의개정증보판을펴낸다고말한다.

‘조국근대화’의상징,포항종합제철준공

1969년12월3일포항종합제철공장건설자금조달을위한한일간기본협약이체결되었다.일본의지원자금은총1억2,370만달러로이가운데청구권자금이7,370만달러,일본수출입은행의연불(年拂)융자가5,000만달러였다.박정희정권은포항종합제철건설을위해1970년1월1일철강공업육성법을제정했다.이는포항종합제철을육성하기위한법이었다.포항종합제철의기공식은1970년4월1일에거행되었고,1973년6월8일첫화입식(火入式)을가졌으며,7월3일에준공식을거행했다.연인원81만명의건설인력과경부고속도로건설비의3배에이르는공사비를투입해여의도3배에이르는넓은부지에연간103만톤규모의생산능력을갖춘데다준공하자마자생산규모확장에들어간포항종합제철은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와함께박정희의개발독재가이룬놀라운업적으로평가되었다.
박태준은직원들에게“포철은식민지배에대한보상금으로받은‘조상의혈세’로짓는것이니만일실패하면영일만바다에빠져죽어야한다는각오로일해야한다”고말했다.박정희가포항제철준공식연설에서박태준이란이름을3번이나언급한것도그의공로를인정했기때문이다.박정희가포항제철완공을위해기울인관심과지원은박정희의개발독재의일면을잘보여준다.더욱이박정희는모든주요건설공사에서예외없이공사비의10%씩거둬들였던정치자금을포항제철만큼은면제시켜주었다.그는죽기전까지포항제철을13차례나방문했고,죽기직전까지도포항제철을자랑하고싶어했다.그러나1973년을기점으로일본은한국경제에미국보다더중요한나라로부상했다.일본은미국을앞질러수출입이모두한국제1위상대국이되었다.다시말해한국은미국대신일본에의존해야할상황에직면하게되었다.

헌법개정백만인청원운동

1973년12월24일각계민주인사30명이발기인이된개헌청원100만인서명운동선언이터져나왔다.그날민주인사들은서울YMCA회관에서모임을갖고‘개헌청원운동본부’를발족하고100만인서명운동을시작한다는것을선포했다.김종필은개헌운동의즉각중지를요구했고,박정희도직접나서서특별담화를발표했다.“이제라도늦지않으니소위헌법개정백만인청원운동을즉각중지할것을엄중히경고해두는바이다.”그러나박정희의살벌한경고도서명운동의열기를잠재울수는없었다.서명운동일주일후인1974년1월1일에5만명을넘어섰고1월8일엔10만명에육박했다.그날기독교청년협의회회원3,000여명은통일을기원하는예배후에가두시위를벌였고,5일엔민주통일당이개헌청원운동의적극적참여를지지했다.7일엔문학인61명의이름으로개헌지지성명이나왔고,8일엔제1야당인신민당이개헌을위한전력경주를다짐했다.
박정희정권은1월8일긴급조치1호와2호를발동했다.유신헌법제53조에따라대통령에게는긴급조치권이부여되었는데,박정희는이긴급조치라는전가의보도를빼든것이다.그러나박정희가휘두른긴급조치라는칼은법대로따지자면박정희자신이선포한유신헌법에저촉되는것이었다.긴급조치1호는유신헌법을비방또는반대하거나개정을주장만해도군사재판에넘겨15년간징역형에처한다고규정했다.또긴급조치를비방하는것도긴급조치위반이라고못박아“유신헌법은개정논의의대상이될수없는신성불가침의규정으로우상화”하겠다는것이었다.다시말해무조건입닫으라는것이었다.1월15일박정희정권은장준하와백기완을긴급조치1호위반으로구속했고,1월21일도시산업선교회의김경락·김진홍·박윤수·이규상·이해학·인명진등교회목사와전도사11명을구속했다.1월26일개헌지지성명을낸이호철,임헌영,김우종,정을병,장병희등5명의문인을구속했다.

“우리나라사법사상가장수치스러운재판”

1975년4월8일,민청학련과인혁당관련피고인38명에대한상고심판결공판이열린지채하루도지나지않은4월9일,사형판결을받았던8명에대한사형이집행되었다.김용원,도예종,서도원,송상진,여정남,우홍선,이수병,하재완등이바로그들이었다.사형수들은사형을당한후에도모독을당해야만했다.박정희정권이사형수들이자신들의죄를순순히인정하고반성한것처럼유언까지조작했기때문이다.박정희에게도일말의양심은있었던걸까?그는후일“크나큰실책이라면인혁당8명을처형한것이역사의오점을남겼다”고고백했다.1995년4월25일MBC가사법제도100주년을기념하는다큐멘터리를만들기위해판사315명에게보낸설문조사에서도인혁당사건재판이“우리나라사법사상가장수치스러운재판”이었다는답이나왔다.이‘사법살인’에대해국제법학자협회는그날을‘사법사상암흑의날’로선포했다.
사형수들의가족이당한고통은말로다표현할수없을정도였다.중앙정보부는사형수들이사형당하기전그들의아내들을연행해잠을못자게하는등온갖정신적·육체적고통을가하면서“남편이간첩과같은행동을했다.앞으로는구명운동을안하겠다”는각서를쓰도록강요했다.사형수가족들은평균3개월에한번꼴로이사를해야만했고,변호사조차제대로만날수없었으며,재판은물론사후재판기록조차볼수없었다.1998년10월부터천주교인권위원회는‘인혁당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을위한대책위원회’를구성해활동을시작했고,그해11월9일‘인혁당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을위한대책위원회’가발족되었지만,성과는지지부진했다.결국2015년5월인혁당사건연루자들에대한재심에서무죄가선고되었다.

가요금지곡양산과대마초파동

1975년5월13일헌법에대한논의자체를금지하는긴급조치9호가선포되었다.그뿐만아니라헌법비방행위금지,학생집회와시위금지등도포함되었다.긴급조치9호는방송계에도찬바람을몰고왔는데,5개항의실천사항과6개항의방송금지사항이있었다.특히긴급조치9호의살벌한분위기는가요계에가장큰타격을입혔다.1975년한해에만225곡이금지곡으로묶였다.포크음악계는‘대마초파동’까지가세해파국상황에내몰리게되었다.박정희정권의대마초단속은1975년12월1일부터시작되어12월3일에는이장희·이종용·윤형주등27명이구속되었고,12월6일에는신중현·김추자·권용남·손학래등신중현사단의핵심인물들이구속되었다.
1974년그룹사운드‘신중현과엽전들’을결성해‘한국적록’의새로운경지를보여주었다는평가를받은신중현은대마초파동으로음악활동을중단하게된다.〈미인〉은1974년당시로선놀랍게도레코드가100만장이나팔리는대기록을세웠다.신중현이만든수십개의곡은‘가요계정화조치’라는미명하에금지곡으로묶이게되었는데,박정희정권은이렇다할이유도제시하지않았다.〈미인〉에서〈봄비〉에이르기까지당시히트했던신중현의노래들은모두사랑을표현했던것들이다.신중현이작사·작곡한노래들가운데금지된곡은1969년에서1974년까지4곡,1975년한해에만17곡이나되었다.우회적은유와풍자도금지이유가되었으니모든게‘엿장수마음대로’식이었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애국심을담은〈뭉치자〉의금지이유는‘방송부적’이었다.나라위해,평화위해뭉치자는내용의곡인데‘방송부적’이라니말도안되는이유였다.그러나이곡을금지시킨이유는데모가로쓰일우려가있기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