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3 (전태일과 경부고속도로 | 개정증보판)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3 (전태일과 경부고속도로 | 개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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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지난 10년 한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그 모든 것은 어떻게 달려왔는가?
“한국 현대사의 기록과 평가의 문화를 정착시키다”
우리가 살아왔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현대사는 역사의 출발점이자 결승점이다. 끊임없는 선택 속에 지금 내가 살아가야 하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사는 역사학계에서 찬밥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민감한 주제들이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논란이 되는 부분은 다양한 입장을 소개하면서도 그 나름의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참여의 마당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독보적이다. 지금의 ‘나’를 이룬,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한국인의 ‘보물창고’와 같다.
1945년 8월 15일 정오부터 봉준호의 〈기생충〉까지 75년의 역사를 촘촘히 담아낸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정치·경제·사회는 물론 대중문화·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현대 한국인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삶과 역사의 무대를 고스란히 되살려냈다. 이를 위해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방대한 주석에 당시의 현장을 포착한 사진, ‘역사 산책’ 코너 등을 통해 입체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단순한 사건의 나열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恨)과 욕망의 폭발’(1940년대), ‘극단의 시대’(1950년대), ‘기회주의 공화국의 탄생’(1960년대), ‘수출의 국가 종교화’(1970년대),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1980년대), ‘분열은 우리의 운명, 연대는 나의 운명’(1990년대), ‘노무현 시대의 명암’(2000년대), ‘증오와 혐오의 시대’(2010년대) 등 각 시대를 지배했던 정서와 구조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속에서 수많은 사건과 주제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가 ‘진보’의 이름으로 새로운 가치를 선점할 수 있듯이 극단과 궁핍의 시대를 살아남아야 했던 과거 세대의 ‘아픔’도 함께 껴안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준만은 한국 현대사가 ‘인간’을 배제했던 역사라고 간파하며 ‘인간’의 복원,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이념과 세대의 새로운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한국 현대사의 기록과 평가의 문화를 정착시킨 한국 최초의 단행본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저자

강준만

전북대학교신문방송학과명예교수로재직하고있는강준만은탁월한인물비평과정교한한국학연구로우리사회에의미있는반향을일으켜온대한민국대표지식인이다.전공인커뮤니케이션학을토대로정치,사회,언론,역사,문화등분야와경계를뛰어넘는전방위적인저술활동을해왔으며,사회를꿰뚫어보는안목과통찰을바탕으로숱한의제를공론화해왔다.
2005년에제4회송건호언론상을수상하고,2011년에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한국의저자300인’,2014년에『경향신문』‘올해의저자’에선정되었다.저널룩『인물과사상』(전33권)이2007년『한국일보』‘우리시대의명저50권’에선정되었고,『미국사산책』(전17권)이2012년한국출판인회의‘백책백강(百冊百講)’도서에선정되었다.
그동안쓴책으로는『법조공화국』,『MBC의흑역사』,『공감의비극』,『정치무당김어준』,『퇴마정치』,『정치적올바름』,『좀비정치』,『발칙한이준석』,『단독자김종인의명암』,『부족국가대한민국』,『싸가지없는정치』,『권력은사람의뇌를바꾼다』,『부동산약탈국가』,『쇼핑은투표보다중요하다』,『강남좌파2』,『바벨탑공화국』,『오빠가허락한페미니즘』,『손석희현상』,『박근혜의권력중독』,『전쟁이만든나라,미국』,『정치를종교로만든사람들』,『지방식민지독립선언』,『개천에서용나면안된다』,『싸가지없는진보』,『감정독재』,『미국은세계를어떻게훔쳤는가』,『갑과을의나라』,『증오상업주의』,『강남좌파』,『한국현대사산책』(전28권),『한국근대사산책』(전10권),『미국사산책』(전17권)등300권이넘는다.

목차

제1부1976년:히스테리와광기속에서

제1장경제개발과가족계획
피임을위한눈물겨운노력·191인당GNP를높이기위해·20군사작전식가족계획운동·21결혼연령의변화와공업화의영향·23

제2장포항석유발견사건
온국민을강타한행복한충격·25『경향신문』과『동아일보』·『조선일보』의차이·26한국을휩쓴회오리바람과광풍·29‘포항석유쇼’의진상·30

제3장3·1민주구국선언사건
언론이죽어있는상황에서의저항·33이게‘정부전복선동사건’이라고?·35인권운동활성화의계기·38반상회와상호감시체제·39

역사산책1‘만인에의한만인의감시체제’·41

제4장폭력이난무한신민당내분
‘한국야당사에서가장추악한작품’·44이철승의대표최고위원당선·45이철승의중도통합론·47

제5장판문점도끼만행사건
미루나무가지치기가부른북한의살인극·49북침가능성에대한북한의신경질적반응·50‘음흉한의도’또는‘건수올리기’?·53“미친개에게는몽둥이가약이다”?·54

제6장박동선의‘코리아게이트’
‘한국정부,미국정치인들에게뇌물제공’·562개월늦은한국언론의보도·58농촌을희생으로한대미로비·59

제7장세종대왕숭배와외래어추방캠페인
세종대왕을통한이미지메이킹·62프로그램과연예인이름의국산화·63스포츠용어의국산화·65『뿌리깊은나무』의창간·66지하철독서문화의탄생·68

제8장신문과TV의갈등,‘하이틴영화’의성행
‘저속하고비윤리적인일일연속극’·69‘무하마드알리’사건·71신문과TV의광고전쟁·72왜박정희정권은대마초사건을뻥튀기했는가?·731년에25편이나제작된‘하이틴영화’·76‘하이틴영화’의사회학·78

역사산책2‘호스티스영화’와‘총화유신이념의구현’·79

제2부1977년:‘100억달러’의빛과그림자

제1장프레이저청문회와싱글러브항명사건
박정희와지미카터사이의갈등·83프레이저청문회와‘어글리코리안’·85코리아게이트가민족주의문제였는가?·87김한조를어떻게볼것인가?·89김한조의박정희에대한원망·90김한조의한맺힌삶·91주한미군참모장존싱글러브의항명·93

제2장충효교육과문교부·문공부의경쟁
‘정신무장’을의미한‘정신문화’·96“충효교육을중심으로한도의교육의강화”·98문교부와의경쟁에나선문공부·99박근혜가후원한새마음운동·100‘박정희민족주의의반민족성’·101

제3장리영희필화사건
『8억인과의대화』와『우상과이성』·103“검사가‘반공법위반이다’하면위반”·104‘진실을안다는것은괴로운일’·106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활동·107

제4장병영체제하의민주화투쟁
‘이심전심유언비어유포죄’·109“야이놈아,네가판사냐”·110학생들의‘가미가제’식투쟁·112성직자,해직교수,해직기자들의투쟁·113

제5장100억달러수출달성
1977년의료보험실시·115박정희의‘군사작전식밀어붙이기’의성공·117세계17위의수출국이되다·118국제기능올림픽대회최초종합우승·121분양만받으면1년내두배장사·123정부의‘강남키우기’와중동특수·124

역사산책3현대의사우디아라비아주바일항만공사·127
역사산책4지방민들을압도한대우빌딩의위용·130

제6장MBC대학가요제와그룹사운드붐
예상을뒤엎은뜨거운열기·133대학가요제의사회사적의미·135대학가의그룹사운드붐·137

제7장컬러TV방송논란과농촌
삼성전자·금성사가참여한1972년논쟁·138박정희의컬러TV방송반대이유·140박정희의농촌에대한이중성·1411977년최고의TV스포츠이벤트·143

제3부1978년:동일방직과현대아파트

제1장도시산업선교회와민주노조운동
부의소수집중과상대적박탈감·149인간적모독에저항한인권운동·150도시산업선교회에대한공격·151한국노총의조직행동대결성·153“나는왜산업선교회원이되었나?”·154산업선교를방해하기위한‘교양강좌’·156

제2장‘공순이’에대한사회적폭력
서울의‘촌놈차별’또는‘촌년차별’·158‘공돌이’보다훨씬더당한‘공순이’·159공장에서눈물을흘리면안되는이유·161학력이데올로기의폭력·163‘상징적억압에대한분노’·165

제3장똥물을뒤집어쓴동일방직여성노동자들
여성노동자들의알몸저항·167성폭력형태의잔인한보복·169입에까지똥을집어넣은만행·170“우리는똥먹고살수없다!”·173중앙정보부가조종한공작·174

제4장언론의침묵과부활절예배중단
동일방직똥물사건에대한언론의침묵·177여성노동자들이중단시킨기독교방송·178‘언론의시선을잡아보려는필사적인시도’·179‘인권을강도당한노동자들의호소’·182‘공장의불빛’으로승화된투쟁·183

역사산책5교회는여공들의진정한친구였는가?·186

제5장난장이가쏘아올린작은공
‘악이선을가장했던세상’·189“우리의생활은전쟁과같았다”·191“반드시독자에게전달되어야한다”·191“너무아파나는피를토한다”·192

제6장서울대6·12시위와‘교육지표’사건
대학생들의유인물배포투쟁·1956·12시위의새로운면모·196‘국민교육헌장’부터잘못되었다·197학생을포섭해야하는교수의비애·199

제7장제9대대통령선거
한밤중의청와대인근전차시위·201파국을향해치달은박정희정권·202공산주의를빼닮은박정희의선거·203언론은선전·선동기관지인가?·205박정희의제9대대통령취임과김대중가석방·206

제8장현대아파트특혜분양사건
새롭게창조된‘탐욕의문화’·209교훈을남기지못한현대아파트사건·211경기과열에따른욕망과열·213부정부패비판도긴급조치9호위반·215‘복부인’과‘제비족’의활약·217‘한강의기적’과강남개발의가속화·219

역사산책6말죽거리잔혹사·223

제9장국산미사일개발과미국의견제
착수6년만에쏘아올린미사일·225미국의견제속에이루어진핵개발시도·226신군부는‘핵개발포기각서’를써주었는가?·228

제10장‘함평고구마’와‘영양감자’사건
함평고구마피해보상투쟁·230시국사건으로비화된감자피해보상투쟁·232기이한‘오원춘사건’·233농업정책과새마을운동의허구성·236

제11장새마을운동과대중동원정치
국민1인당평균2회받은새마을훈련·239새마을운동의외화내빈·241‘돈에화신들린농촌’·242‘농민을사람으로대접한최초의지배자’·243‘농촌민주주의’의명암·244새마을부녀회의명암·247방림방적의새마을운동·249

제12장민권일지사건과신문판매전쟁
‘언론은관민합작에의한악덕상품’·251은폐·왜곡된250여건기사화시도·253‘앵무새보도원으로전락한언론’·254‘방황하는농촌’기사에대한탄압·255『중앙일보』와『조선일보』100만부돌파·257용인자연농원돼지분뇨방류사건·259삼성조선의시추선설계도면절취사건·260정주영의‘신문없는서러움’·262

제4부1979년:박정희시대의종말

제1장크리스천아카데미사건
‘중간집단운동’에대한탄압·267고문의상습화·생활화·269박정희정권은‘야수의정권’·271

제2장김영삼의신민당총재복귀
1978년12·12총선과여야역전·274백두진파동과이철승의‘사쿠라’정치·275김대중과김재규의지원·276

제3장지미카터의한국방문
카터의방한반대운동·280양심범가족협의회와동아투위의성명·282‘김일성면담용의’발언파동·282박정희와카터의갈등·283주한미군철수시한부중지발표·286‘어깨에힘이들어간박정희의착각’·288

역사산책7문인들의시위투쟁과옥중권리투쟁·290

제4장YH노동자폭력진압사건
“근대화의역군을윤락가로내몰지말라”·292“동생들의학비와부모님들약값은어떻게하나?”·293‘미필적고의살인’과무차별폭행·295언론의‘마녀사냥’·297강제귀향여성노동자들의운명·298‘정신질환적인편집광증세의극치’·300

제5장김영삼의원직제명
‘박정희정권타도를위한범국민적항쟁’선언·30231년만에처음으로발동된국회경호권·303신민당의원전원의원직사퇴·305

제6장전중앙정보부장김형욱실종사건
‘용도폐기’된김형욱의운명·307박정희의“나는모른다”는주장·308누가김형욱을죽였는가?·309‘만인에대한만인의투쟁’·312

제7장‘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사건
아직도평가가어려운남민전사건·314꼭‘남조선’이라는말을써야했는가?·317이게인간이사는세상인가?·317김남주와홍세화의활동·319남민전사건의영향과의의·321대구는왜보수적인도시가되었는가?·322

제8장부마민주항쟁
경제에손을든박정희·325박정희의해결능력을넘어선위기·326박정희의통제를벗어난대자본·327‘10·16항쟁’또는‘부마민주항쟁’·329항쟁의뇌관을건드린경제·331‘새로운힘의센터’의등장·333

제9장10·26사태
“야수의심정으로유신의심장을쏘았다”·334차지철과김재규의엽기적경쟁관계·336계획적인가,우발적인가?·338보안사에넘어간정국주도권·339김재규평가를둘러싼뜨거운논쟁·3411970년대한국인의삶의일부였던박정희·343

역사산책8혈서는살아있다·345

제10장박정희의엽색행각
손찌검까지동원된육박전·348압구정동H아파트사건·350사흘에한번씩연예인100명섭렵·351박정희의가학적섹스관·353사무라이를꿈꾼‘대일본제국최후의군인’·355

제11장박정희의용인술과부정부패
박정희의이간책수법·357박정희의독심술과두얼굴·359용인술과부정부패는동전의양면·361‘한강의기적’의비용인가?·364“인간이란어차피다이중인격자야”·366박정희의촌지봉투대량살포·367

제12장명동YWCA위장결혼식사건
‘거국중립내각구성’과‘조기총선’주장·369‘해빙무드’와사태의급반전·371신군부의악랄한고문·372민주화의제변화와윤보선의변절·373신군부의‘김대중죽이기’음모·375

제13장12·12군사반란
제10대대통령최규하의변심·377신군부가저지른12·12군사반란·379장태완과정승화의비극·381하나회가주도한12·14군숙청·384영관급육사출신들의인사정체에대한불만·385전두환의‘뜸들이기’작전·387새로운파시즘의재기예고·388

제14장축구의남북대결과한일전
TV중계방송을하지않은남북대결·392방콕아시안게임남북공동우승·394남북선수들간의뜨거운신경전·395다시불붙은한일전·397

역사산책9‘축구영웅’차범근의활약·399

맺는말:두얼굴을가진사람들
경부고속도로가낳은‘번영과소

출판사 서평

‘한국현대사산책’시리즈,1960년대편개정증보판출간!

한국현대사에서가장중요한10년간을꼽으라면1970년대라고할것이다.1970년대를보는시각은크게두가지로나눌수있는데,‘전태일과경부고속도로’가될것이다.1970년7월7일에개통된경부고속도로는전쟁의잿더미속에서들고일어난‘한강의기적’을상징하며,1970년11월13일에일어난전태일의분신자살은‘한강의기적’의이면에숨은잔인한인권유린을상징한다.그두얼굴가운데‘전태일’에주목한다면1970년대를부정적으로볼것이고,‘경부고속도로’에주목한다면1970년대를긍정적으로볼것이다.전태일이분신자살로항거한참혹한노동실태의현장이었던서울평화시장은“공간적으로당시민중들의삶의중심지였을뿐만아니라한국자본주의화과정에서노동자에대한가혹한희생속에서자본가계급의형성을뒷받침한요람”이었다.경부고속도로는그러한‘요람’에서짜낸피와땀을근거로이루어진것이었지만,경부고속도로가낳고촉진시킨발전과번영의수혜는다른사람들의몫이되었다.
전태일은독재권력의주구로전락한언론,경제발전지상주의라고하는거센물결속에서‘경제동물화’되어갔던중산층과중산층에편입되기를열망했던사람들의싸늘한시선까지보여주었다.경부고속도로의중단없이쭉뻗은길은발전과번영의표상이었다.그러나동시에경부고속도로가하나였던것을가로지르면서만들어낸경계는새로운갈등과차별을잉태시켰다.농촌과지방인구는그길에흡수되어서울과도시에내던져졌고,권력과부(富)의집중과전횡을낳는시스템이고속도로처럼빠른속도로구축되기시작했다.전태일의분신자살이그것을웅변해주었고이후동일방직여성노동자들이1970년대내내계속된그런‘억압과착취’의시스템을상징적으로폭로했다.박정희의독재정권이한국사회에미친가장큰악영향은사회와개인의관계를단절시킨것이다.나와내가족을사회에서단절시키지않으면안전하게살아갈수가없었기때문에그것은불가피한생존술이었을것이다.어느덧그생존술은자연스러운문화로까지정착되었다.
『한국현대사산책1970년대편:전태일과경부고속도로』개정증보판은모두3권으로구성되었다.제1권은1970~1972년,제2권은1973~1975년,제3권은1976~1979년의역사를담아냈다.강준만은한국처럼현대사가끊임없이다시쓰거나수정하거나보완해야할필요성이큰나라는없을것이며,한국의운명에큰영향을미친나라들의비밀문서가해제되고,비극적인과거에대한진상이뒤늦게밝혀지면서배상과보상이논의되는상황에서24년전에출간된『한국현대사산책1970년대편』의개정증보판을펴낸다고말한다.

포항석유발견사건

1976년1월15일박정희는기자회견에서“작년(1975년)12월에영일만부근에서우리나라처음으로석유가발견되었다”고말했다.그러면서“드럼통한개분량의소량이었으나우리나라에서처음으로석유가나왔다는것자체가중요하다고생각한다”고말했다.1975년12월5일중앙정보부가포항영일만에서나온기름이라고박정희에게갖다바친것이다.청와대기자단은포항에서석유가나왔다는이야기나박정희가재떨이에불까지붙여보며기뻐했다는이야기를이미전해듣고질문을던졌다.분명한것은포항영일만에서석유가발견되었고정부는매장량을탐사중이라는사실이었다.국민들은엄청나게행복한충격을받게된다.『경향신문』은「우리고향에경사부둥켜안고춤도」라는기사에서“모든국민은희망과감격과용기속에번영된조국의미래를눈앞에그려보고있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고말했다.
그런데문제는원유가발견된게아니라는사실이었다.시추공을따라흘러들어간기름을원유로착각한것이었다.그래도미련을버리지못한중앙정보부는계속시추를해댔고,시추는결국2년만인1977년4월에완전히끝났다.한건크게올리고자했던중앙정보부의큰망신이었다.이사건은박정희정권시절의‘정보정치만능주의’가부른해프닝으로볼수도있겠지만,박정희정권이온국민으로하여금그난리를치게만들어놓고슬쩍넘어가려고들었던건‘쇼’라는의심을받기에충분했다.게다가박정희는비서실장김정렴과경제제2수석비서관오원철등이탐사가끝날때까지발표하지않는게좋겠다고건의했지만,그것을묵살하고발표해버렸다.박정희는신문사사장들을불러모아놓은자리에서도비슷한이벤트를벌였는데,병에든석유의뚜껑을열고냄새를맡고난후사장들에게돌렸다고한다.

똥물을뒤집어쓴동일방직여성노동자들

동일방직여성노동자들은1972년한국최초로여자지부장을선출해모범적인민주노조의모습을보여주었지만,회사는1975년말부터이노조를와해시킬목적으로남자대의원들을동원해어용노조화를시도했다.1977년7월25일‘세계노동운동역사상유례가없는놀랍고도극적인저항방식’이벌어졌다.경찰은72명의여성노동자들을체포해연행하려고했고,200명의여성노동자가벗은몸으로경찰차를가로막았지만,경찰의무자비한폭력을감당해낼수없었다.1978년2월21일노조대의원선거가열리던날새벽에출근한여성노동자들이투표장에들어서는순간이었다.남성노동자4명이분뇨가가득담긴양동이3개를들고여성노동자들에게달려들어분뇨를뿌렸다.여성들의입을억지로벌리고분뇨를집어넣기도했고,가슴속에분뇨를처넣기도했으며,머리위로분뇨가든양동이를뒤집어씌우기도했다.중앙정보부요원과경찰관들은진행상황을상부에보고하고있었다.
여성노동자76명은‘근로자의날’(3월10일)을기념하기위해국무총리와각료를포함한고위공직자들과전국노조지도자들이모여있는장충체육관으로잠입했다.이들은“동일방직문제를해결하라,우리는똥먹고살수없다,김영태는물러가라”고적힌플래카드를펼치고청중들에게전단을뿌렸다.경찰과경비원들은이들을구타하고,발길로차고,경찰서로끌고갔다.이사건으로4명이투옥되었지만,동일방직여성노동자들은포기하지않았다.며칠후50여명의여성노동자는명동성당에서무기한단식투쟁을벌였다.3월20일명동성당에서이들을위한기도회가열리고각교회에서기도회가활발히개최되었다.결국100여명의사회저명인사들이‘동일방직사건긴급대책위원회’를구성해모든게노동자들의뜻대로해결되었다.이들은12일만에단식을끝내고환호했지만,회사는타협하는척속임수를썼다.4월1일자로124명이무더기해고를당한것이다.

현대아파트특혜분양사건

현대는1975년3월부터서울강남의압구정동에대단위아파트타운건설에착수한다.그런데1977년9월에착공한5차분분양에시비가일었다.총728가구의절반은사원용,절반은일반분양용으로승인을받았는데,평당분양가30만원이던것이준공도되기전에3배이상뛰어오른것이다.사원용으로승인받은아파트를특수층에만특혜분양한다는소문이돌았고이는곧사실로밝혀졌다.1978년6월30일에터진이사건은여름한철내내아파트투기열기와함께세상을더욱뜨겁게달구었다.현대아파트특혜분양을받은‘사회지도층’인사600여명중에는고급공무원,장성,언론인등259명의특혜분양자명단이공개되었다.이중에는공직자190명,국회의원6명,언론인37명,법조인7명,예비역장성6명등이포함되었다.또현대그룹관계자들이각계요인들에게입주를권유한경우도있었다.
현대아파트특혜분양사건은당시한국경제가어떤상황에처해있었던지를상징적으로보여준사건이었다.한국경제는1976년초부터수출증대와중동특수로상승무드를탔고,이는1978년까지지속되었다.당연히경기과열이발생했고,이는대대적인부동산투기로이어졌다.당시는모든게하늘높은줄모르고뛰어오르던세상이었다.임금도오르고물가도오르고소비욕구도올랐다.국세청은부동산투기를막기위해1978년2월부터7월사이363개동의아파트단지를특정지역으로고시했고,8월에는비교적강도높은투기억제책인8·8조치를발표했다.12월에는국토이용관리법을고쳐토지거래신고제와허가제도를만들었다.그러나박정희의유신체제자체가거대한부정부패의반석위에구축된것이라는점이문제의근본이었다.

“야수의심정으로유신의심장을쏘았다”

1979년10월26일서울종로구궁정동중앙정보부안가에선박정희,김계원(비서실장),김재규(중앙정보부장),차지철(경호실장)등4명과여자2명이참여한만찬이열렸다.차지철은‘신민당놈들’이나오면‘전차로싹깔아뭉개겠’다고큰소리쳤다.이에김재규는“각하!이따위버러지같은놈을데리고정치를하니올바로되겠습니까?”라고말하면서권총을꺼내그의왼쪽에앉아있던차지철에게쏜후그의맞은편에앉은박정희를쏘았다.김재규는“개인의정분을끊고야수의심정으로유신의심장을쏘았다”고말했다.또자신이거사를하지않으면부마항쟁이5대도시로확대되어4·19보다더큰사태가일어날것이라고판단했다고한다.많은이유가있었겠지만,차지철과김재규의엽기적인경쟁관계에주목할필요가있다.차지철과김재규는중요사안이있으면박정희에게먼저보고하려고신경전을벌이기도했다.차지철과김재규의파워게임에대해전두환은“우군(友軍)싸움이김일성이와의싸움보다더심하다”고평가했다.
10월27일김재규는체포되어보안사분실이있는서빙고로끌려가수사관에게서주먹으로얼굴을맞는등가혹행위를당했다.김재규에게어떤‘계획’이있었는지그걸알기위해서였다.물론김재규에겐살해계획만있었을뿐,이후어떻게하겠다는계획이없었다.10월28일전두환은국방부에서기자회견을열어김재규의단독범행이라는중간수사결과를발표했다.결국김재규는1980년5월24일에처형당하고말았다.김재규의범행이내란목적살인이아니라단순살인이라는소수의견을낸대법원판사6명은신군부의보복으로모두법복을벗어야했다.김재규일가의시련은김재규의사형만으로끝난게아니었다.김재규의동생김항규와부인김영희는엄청난고문을당했고재산까지빼앗겼다.김재규에대한평가는지금도뜨거운논쟁거리로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