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은깊은윤리적욕구,복합적인정치적감수성,
엄격한철학적사고의산물이자,
비범한용기와개인적인절박함의소산이다.”
_아킬빌그라미(컬럼비아대학교철학교수)
지상에서함께살아갈사람을고를권리는누구에게도없다
《젠더트러블》의저자,오늘날가장영향력있는정치이론가이자철학자로평가되는주디스버틀러가철학적사유를통해오늘날의국제적민족분쟁에정면으로도전한책을냈다.유대계미국인인버틀러는이책에서반유대주의에빠지지않으면서시온주의를비판하고현대이스라엘의국가폭력에저항할길이있음을입증한다.그녀는유대인지식인인에마뉘엘레비나스·발터벤야민·한나아렌트·프리모레비의글을,팔레스타인지식인인에드워드사이드·마흐무드다르위시의사유로걸러내어변증법적대안을제시한다.버틀러가한나아렌트에게서끌어온동거(cohabitation:함께거주함)개념,곧지상에서함께살아간다는것은필연적으로적대와갈등을동반한다.그렇게서로부딪히면서,슬퍼하면서,함께살아가기란불가능한일일지모른다.그러나그불가능한목표를아무도사유하지않는세계는끔찍하기에,곧우리가추구해야할임무라고그녀는호소한다.
유대인으로서이스라엘을비판한다는것
이책은2004년부터2012년까지이집트와이스라엘을포함해버틀러가세계곳곳에서강연하거나발표한글들을발전시켜한권으로묶은것이다.곧이책은시간을거치고세계를횡단하며거듭재구축된사유의묶음이다.
미국에서“당신은시온주의자인가요?”라는질문은대체로“이스라엘이존재할권리를믿나요?”란뜻이라고한다.그리고이스라엘이존재할권리를믿는다는말은현대이스라엘국가의정초이념(‘이스라엘은유대인주권국가다’)과정책(자기방어라는명목으로팔레스타인인을추방·분리·봉쇄·폭격하는)을지지하는것으로받아들여진다.유대교회당에다니는사람은다시온주의자라고믿는사람이많은가하면,이스라엘의국가정책을지지할수없으므로자신의유대성을부인하는유대인들도있다.
《서문―자기탈피,추방,그리고시온주의비판》에서버틀러는유대성을부정하지않고시온주의를비판할수있고,유대전통안에서현대이스라엘국가를비판할근거를찾을수있다고말한다.그런데그근거를찾는데서그친다면유대의전통안에모든해답이있다는배타적윤리프레임에빠져버릴위험이있음을지적한다.그리고‘번역’에서출구를찾는다.이책의2~7장은레비나스,벤야민,아렌트,레비에게서찾아낸,현대이스라엘국가를비판할유대적출처를버틀러가그유대성의울타리너머로‘번역’해낸것이라할수있다.
유대적출처에서‘파생된’개념이라해도더널리소통가능해지고공동체주의communitarian프레임(종교적이거나민족적인)바깥에서도타당성을갖추려면그개념은번역되어야한다.……이는전통이스스로에게서거듭반복해서벗어남을통해스스로를확립하며,출처는우선번역과전이가능성의장으로들어가야만윤리적목적에‘쓸모있게된다’는것을의미하기도한다.……어떤출처가현재안에서벼려지거나빛을발하려면어떤시간적궤도를거쳐야한다.(…중략…)과거의윤리적출처는오직‘토대를양도할’때에만,사회적유대나지리적공간자체를재배치하는것이기도한문화적번역과정의일부로서,윤리적요청들을수렴하고겨루는가운데다른어딘가에서새롭게번성할수있다는의미다.(25~26쪽)
함께거주하는민족들,이二민족주의혹은이異민족주의동맹을위하여
《1장불가능한,필요한과제―사이드와레비나스,그리고윤리적요구》에서버틀러는“에드워드사이드의말기저작중하나인《프로이트와비유럽인》을읽은것은내게놀라운경험이자선물이었다”(61쪽)고고백한다.야훼하느님이택한민족이라는선민의식의시초에는모세가있다.그런데사이드는유대성의시초가되는모세가실은이집트인이었다는사실을짚는다.그리고집에서쫓겨나사막에서방랑하는삶,곧디아스포라가유대인삶의특성임을환기한다.이에버틀러는유대인이란비유대인과상관없이정의할수없는범주라고주장한다.유대인에게는유대인이아닌사람들사이에서살아가는법에대한물음이따라다닌다.그러므로팔레스타인인과유대인은‘추방’이라는실존적특성을공유한다.버틀러는권리와땅을박탈당했던유대민족의경험을기억하고,이스라엘에의해추방당한이들과연합할것을역설한다.
《2장죽일수없는―레비나스대레비나스》에서는리투아니아에서유대인으로태어나,독일철학을공부하고,프랑스에서활동한철학자에마뉘엘레비나스(1905~1995)가말한타자의윤리,책임윤리를주로다룬다.레비나스에따르면타자는내게무슨일을했건여전히내게윤리적요구를하는사람이고,내가반응해야할‘얼굴’을갖고있다.말하자면나는내가결코선택하지않은사람에게반응해야하고,나를죽일지모를사람앞에서도계명은‘살인하지말라’는무조건적인명령을내린다.내가타자에대해짊어지는무제한적인책임은,계명에따른두려움과나의실존을위해타자를죽이고싶은마음사이에벌어지는지속적인투쟁의결과다.그런데레비나스는팔레스타인사람들에게는얼굴이없다고주장했다.버틀러는레비나스가윤리적반응의진원이라할수있는‘얼굴’을특정한민족에게만배제한것을비판하며,우리에게인종주의자레비나스를책임지면서윤리학자레비나스에게반응할것을설득한다.
《3장발터벤야민과폭력비판》과《4장섬광―벤야민의메시아정치》에서는20세기전반독일의가장중요한문학비평가이자사상가로꼽히는발터벤야민(1892~1940)의전기前期논고《폭력비판》(1921)과그의생애마지막논고인《역사의개념에대하여》(1940)를중점적으로다룬다.벤야민은국가란법적폭력으로서출현하고유지되며,승자들이목적론적으로구성한역사(승자의진보로구성된역사)는피억압자들의역사를삭제해왔기에,법적폭력을통해진보하는역사와단절할것,지금여기에서피억압자들(단수가아니라복수다)의역사를구성할것,곧진정한비상사태의도래를,따라서파시즘에대항한투쟁을요청한다.이에버틀러는구원이란“귀환이없는추방,목적론적인역사의파열,수렴하면서방해하는일군의시간성들로의개방으로재고되어야한다”(233쪽)고우리를설득한다.말하자면구원은특정한정체성에따라국가를세우고이질적인것을몰아내단수의시간을만들어내는게아니라,유랑하면서복수의시간을살아내는것이다.
《5장유대주의는시온주의인가?-아렌트와민족국가비판》은한나아렌트(1906~1975)가《전체주의의기원》을비롯한저작에서천착한무국적자문제에초점을맞춘다.아렌트는민족국가의성립결과,민족으로인정되지못한이들의강제추방과무국적자의대량양산이필연적으로생겨난다고비판한다.아렌트는1930년대에시온주의를지지했지만,1940년대에이르러서는유대주권성에정초한이스라엘건국보다유대-아랍연방국가방안을더선호하게된다.아렌트는국가를이룰각민족에주권을분배하는것이아닌,공통의정책과법을만들복수성複數性의연방을구상하면서주권의복수성을주창했다.아렌트에게복수성이란이질적인인간들이함께모여살아가는사회에서어느누구도선택하거나거부할수없는‘무선택적’특성이다.우리는우리가결코선택한적이없는사람들과함께살아가게되어있다.저들도결코우리를선택하지않았지만,우리와함께살아갈수밖에없다.
《6장복수複數의곤궁-아렌트의동거同居와주권성》에서는수많은오해를낳았던한나아렌트의저작《예루살렘의아이히만》을분석한다.1963년《예루살렘의아이히만》이발표된뒤시온주의자게르숌숄렘은‘유대민족에대한사랑……의흔적을찾아볼수가없다’며한나아렌트를비난했다.이에대해독일유대인으로미국시민권을획득할때까지무국적자이자난민으로살았던아렌트는자신은어떤‘민족’도사랑한적이없으며오직‘사람들’만을사랑한다고고백했다.하지만아렌트가나치의유대인말살정책(이른바‘최종해결책’)에가담한아돌프아이히만에대해‘악의평범성’을이야기했다고해서,그에게죄가없다고생각한것은아니다.
“당신이‘최종해결책’에서맡은역할은우연이었고,거의모든사람이당신의역할을맡을수있었기에잠재적으로거의모든독일사람이당신과똑같이유죄라고……말했다.당신이말하려고한것은모든,거의모든사람이유죄이고죄없는자는없다는것이다”(EJ,278).그뒤에아렌트는이의를제기하기위해복수형‘우리’를끌어들인다.“이것은평범한결론일테지만우리가당신에게기꺼이수여할만한결론은아니다.”그뒤에아렌트는이렇게덧붙인다.“설사독일인8000만명이당신처럼했다고해도,그것이당신을위한변명이되지는못할것이다”(EJ,278).(299쪽)
아렌트가보기에근본적으로학살을용인할수없는한가지이유는,사실우리는지구상에서누구와함께살아갈지선택할수없다는점이다.다양한인구가항상우리보다먼저존재한다.그들은항상복수이고여러언어를사용하고공간적으로광범위하게분포한다.어떤특정한인구도지구를자기것이라고주장할수없다.지구를자기것이라고주장하는것은학살정책으로들어가는일이다.이는무의지적근접성과무선택적동거가우리정치적실존의전제조건임을의미하며-이사실은아렌트가민족국가(그리고그것이가정하는동질적인국가)를비판하는데토대가된다-,또이질적일수밖에없는인구를위해평등의양태를확립한정치체속에서지구상에살아갈의무를함의한다.(52쪽)
사회적복수성과동거는우리모두의선택과의지에앞서존재한다.그런데나치와아이히만은자신들이동거할사람과동거하지않을사람을선택할수있다고여겼다.그렇기에아렌트는누군가와지구를공유하지않으려한아이히만이교수형에처해져야한다고주장했다.
《7장프리모레비와현재》는아우슈비츠수용소의생존자로서증언문학(평론가헤이든화이트의표현에따르면‘목격자문학’)활동을해온이탈리아작가프리모레비(1919~1987)의싸움을다룬다.레비는유대인말살을꾀한수용소가실제로존재했다는사실을부인하려는수정주의자들에맞서강제수용소의실재를설명하는한편,홀로코스트(히브리어로는‘쇼아’)라는정신적외상을정치적으로착취,악용하는시온주의자들과도싸웠다.1982년이스라엘군이팔레스타인무장단체를진압한다는명목으로레바논을침공해베이루트를포위하자,이스라엘총리메나헴베긴은“나는마치벙커의히틀러를쓸어내기위해베를린에군대를보낸것같은기분이다”라고말했다.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나치에비유한것이다.이에레비는이렇게행동한다.
1982년아우슈비츠를다시방문하기위해출발하기전날밤,그는레바논에서이스라엘군대가철수할것을호소한《라레푸블리카》의공개서한에서명했다.그는이스라엘군대가박해받는소수를대표한다고이해하지않으려했다.박해의담론은그런목적으로이용되어서는안된다.수용소의이미지를되살려서이스라엘의공격을정당화하려한사람들에게반대하면서레비는《일마니페스토》에다음과같은도발적인문장을썼다.“모든사람은누군가의유대인이다.그리고오늘날팔레스타인사람들은이스라엘인들의유대인이다.”(375쪽)
《8장“추방이없다면우리는무엇을할까?”-사이드와다르위시,미래에말을걸다》는이책의결론이라할수있다.‘정체성이요새나참호가아니라복수성으로열리는곳’이란다르위시의시구로시작하는이장은현재두민족(실상두민족다결코단일하지않다)이비참하게공존하는역사적상황(‘이민족주의의비참한양태’)을규명한뒤,두민족이비참하지않게동거하는이민족주의체제의길을열어보이고자팔레스타인시인마흐무드다르위시(1941~2008)의시《에드워드사이드:대위법적독서》를분석한다.이시는다르위시가에드워드사이드(1935~2003)의죽음에대비해쓴것이다.
정체성은어떻고요?내가물었다.
그가대답했다:그것은자기방어입니다……
정체성은출생의아이지요,그러나
결국에그것은자기발명이지요,
과거의유산이아니라.나는여럿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