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전문가 이대형 박사의 시대별 역사와 문화를 망라한 우리 술에 대한 고찰
알수록 궁금해지고 볼수록 만들어보고 싶은 《술자리보다 재미있는 우리 술 이야기》에 흠뻑 빠져보자.
이대형
전통주행사#프로참석러,음식에도관심이많아#푸드궁금러라는해시태그를사용하는전통주연구자다.대학교다닐때막걸리가항아리속에서발효되는소리를좋아해술연구원을꿈꾸었다.취업문이너무좁은탓에기능성식품업체에서잠시일했지만,고양이가생선가게를포기할수는없는법.결국대학원에서술을연구했고,학교에서는물론지역의여러양조장과협업도하고컨설팅도하다가양조회사에들어갔다.회사에서술익는소리에취하던2008년,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전통주연구원을뽑는다는소식을듣고는지원해서,그곳에서지금까지전통주를연구하고있다.
농산물소비촉진을위해쌀과지역특산농산물을이용한전통주를연구해20여업체에기술을이전했다.특히산양삼막걸리는2017년우리술품평회에서대통령상을수상했다.또벌꿀을이용한허니와인은우리술품평회에서대상과최우수상을여러차례받아,대통령취임식건배주로도사용됐다.농림축산식품부와농수산물유통공사의전통주분야,식품의약품안전처주류안전정책자문협의회자문위원으로활동했고,대한민국주류대상전통주부문심사총괄,우리술품질인증관능품질평가위원,우리술품평회심사위원,전통주소믈리에경기대회심사위원등으로활동중이다.
전통주에대한바른정보와다양한이야기를알리고싶어‘조선닷컴(푸드)’에「술연구자이박사의술이야기」,‘한겨레신문’에「이대형의우리술톡톡」을연재했고,‘삶과술’에「이대형연구원의우리술바로보기」를12년째쓰고있다.최근에는‘오마이뉴스’에「전통주주(酒)저리주(酒)저리」를연재하면서다양한매체를통해전통주를알리기위해노력하고있다.
지은책으로는『우리술보물창고』(공동저작)가있으며,『향기로운한식,우리술산책』을감수했다.「밑술담금방법을달리한탁주의품질특성」등17편의전통주논문을발표했고,전통주와관련한특허를다수보유하고있다.2015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진흥유공대통령표창을받았고,2016년행정자치부지방행정의달인(전통주)으로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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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서문
술자리에서넓고얕은지식자랑하기
일러두기
미리보는컬러사진
1장우리조상도외국술을마셔보았을까?
우리나라에서최초로와인을마신사람은누구일까?
조상들의외국술관능평가
쇄국정책의벽을뚫은외국술
[참고1]와인만들기
한국와인의시초는프랑스포도나무
최초의한국와인,쌀포도주
조선와인피노그리,피노누아,보르도누아
식량부족이만들어낸국산포도주
국산식용포도로만든달달이와인
힘내라,한국와인!
위스키는유사길샴페인은상백윤브랜디는?
위스키의품격
관세를적용한수입술
유사위스키가판치는세상
위스키의두얼굴
[참고2]위스키만들기
사케와고량주를수출한나라,조선
주세령에따른조선의술분류
원조나라에수출한청주(사케)와고량주
처음으로맥주를마신하급관리의슬픈역사
국산맥주보다저렴한편의점‘만원네캔’수입맥주
조선시대의맥주
수입맥주와신문광고
[참고3]맥주만들기
1900년프랑스사진엽서속우리술
세계최초의엽서와우리나라의엽서
잘못알려진엽서속주막사진
2장한양에도서울만큼술집이많았을까?
왕실의술을따로만들었던관청
궁궐의술을만드는곳
물대신술로먹는약
조선식전통주코스요리‘진연’
음식과술의조화
한식코스요리
한양에서가장핫한술집을찾아라
주막에대한오해
다양한술집
한양에서가장핫한술집
술의도시한양
조선에탁주빚는사람만삼십만명이라니
‘국민술’타이틀을빼앗긴막걸리
한국인에게막걸리란
[참고4]막걸리만들기
외국인의눈에비친개화기조선인의술문화
폭음이허용되는나라
외국인이바라본조선의술
조선사람들은왜술을좋아할까?
[참고5]소주만들기
3장시대에따라우리술은어떻게변화했을까?
조선금주령,전통주의변화그리고술의다양화
외국의금주법
우리나라의시대별금주법
조선의과하주,유럽의포트와인보다먼저라고?
증류주의탄생과이동
새로운술의등장
다르지만비슷한술
[참고6]과하주만들기
조선최초의주류품평회실시간업데이트
제1회주류품평회
공장형술의부흥,가양주의쇠퇴
구한말양조용쌀품종은‘곡량도’
무늬만전통주,수입쌀막걸리를마시는농민들
양조용쌀의중요성
우리술에사용한쌀품종
호평받던우리쌀지금은어디로
그많던조선의누룩은어디로갔을까?
발효의기다림과설렘
누룩의역사
일제강점기세금목적개량누룩제조
지속적감소로설자리를잃은누룩
[참고7]누룩만들기
혼돈주와폭탄주는같을까다를까?
현대의폭탄주
조상들의혼합주
4장알수록빠져드는우리술이야기
약주와청주,같은술다른느낌
청주는사라지고약주만남아
조선의약주와청주
주세법시행령에따른누룩과입국사용의변화
일본의쌀수탈은지역청주(사케)산업을발달시키고
청주(사케)로유명한군산
꽃의도시술의도시
쌀수탈의전초기지
[참고8]청주(사케)만들기
입국막걸리는언제부터만들어마셨을까?
입국막걸리는전통주일까?
백국균과흑국균
자유로운입국사용
[참고9]입국만들기
술알못최남선,조선의유명한술을말하다
조선의유명한술
최남선이언급한지명의의문점
최남선은정말로술을잘알았을까?
막걸리의누명(feat.카바이드)
숙취의원인
소문만무성한유령막걸리
안녕하십니까,1970년대의막걸리!
네차례에걸친막걸리소비의감소원인
흔들리는막걸리의정체성
5장술자리보다재미있는우리술이야기
전통주한잔부탁해요따뜻한걸로
따뜻한우리술
전통주에도역사는흐른다
전통주의정의
전통주단어의사용
명절때‘정종’을마신다고?
명절에마시는술
정종의등장
재미있는근현대의술광고
조선의술집홍보
근대의술광고
현대의술광고
전통주에도좋은잔을허하라
술잔마다모양이다른이유
와인잔과맥주잔
전통주전용잔
하이볼보다맛있는전통주칵테일
외국의칵테일
한국식칵테일과대유행
[10참고]전통주칵테일
전통주메모
용어해설
참고문헌
찾아보기
조선의한양,일제강점기의마산과군산
술의도시한양,조선에탁주빚는사람만삼십만명
조선의한양은술의도시였다.한양의술집을묘사하는특징은주등이다.영조때는상소문에‘술집마다술빚는양이거의백석에이르고,주막앞에걸린주등이대궐지척까지퍼져있을뿐아니라,돈벌이가좋아많은사람이술집에매달린다’는양조의병폐를보고할정도였다.이익은《성호사설》에서한양큰거리의상점가운데절반이술집임을지적하며술집은한양어디를가든마주치는하나의풍경이라고했다.술의과잉소비로양조용쌀이너무많이소진되어쌀값이뛰고덩달아물가도오를정도였다.
지금처럼맥주나다른술들이쉽게유통되거나알려져소비되는시대는아니었지만1915년의《매일신보》기사에는‘조선서빚는술이얼마,탁주빚는자가삼십만’이라는내용이있다.당시많은사람이막걸리를마셨다는것이고또한막걸리를제조하는사람만31만명이라니엄청난수인것이다.당시인구를1699만명으로추정하면인구의1.8퍼센트가술을만들었다는계산이나오는데이것도성인을기준으로하면술만드는데관여한사람은훨씬많다고할수있다.
술의도시마산과군산
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마산과군산은청주(사케)의도시였다.마산은쌀수탈의거점도시로일본인의자료에따르면꽃의도시,술의도시였다.일본인이쓴책이나관광안내팸플릿에도무학산과합포만,벚꽃과술이환상적으로그려졌다.마산최초의청주양조장은1904년에일본거류민에의해설립된아즈마주조장이다.이외에도많은주조장이설립되었고,일제강점기하에내수용에서시작하여만주와중국대륙에수출용까지생산하게되었다.
군산역시쌀수탈의전초기지였다.일제가도로를포장하고철도를개설하며군산을호남최대의상업도시로성장시킨이유는호남평야와논산평야의쌀을수탈하기위함이었고1909년조선전체쌀의32.4퍼센트가군산항을통해일본으로빠져나갔다.전북지역에는가장많은일본인농장이만들어졌고주조장까지운영하며자연스럽게양조산업으로이어졌다.조선주조군산분공장을비롯하여6개의청주(사케)공장은광복이후에도적산으로분류되어한국인의손에넘어갔으나여전히정종이라는이름으로인기리에판매되었다.한양이나마산,군산을보면시대별로술의도시는존재했으나그역사와문화적배경은사뭇달랐음을비교할수있다.
나라잃은설움도모자라설자리마저잃은누룩
누룩,개량누룩
누룩의역사는매우오래되었다.우리나라의경우술에대한기록으로볼때삼국시대이전부터있었을것으로미루어짐작한다.누룩빚는법은《산가요록》을비롯해40여권의책에소개되어있다.탁주,약주,소주의체계가완성된조선시대에는누룩을파는상점이매우많았다.술을만드는데얼마나많은누룩이사용되었는지도기록을통해알수있다.조선말기에도각지역마다특색있는소규모누룩제조장이있었는데이는다양한술이생산된다는것을의미한다.
일제강점기에들어서면서세금을걷기위해조선의자가제조및판매용누룩의품질이고르지못하다는이유를들며품질향상을위해누룩제조장을통합함과동시에각지방별로누룩제조시설을집약시켜개량누룩의제조를권장했다.이로인해전국적으로누룩생산공장이감소하고누룩의다양성도서서히사라졌다.이책에서는전통주의중요한원료인그많던누룩은다어디로갔는지에대한아쉬움과한탄이나오는내용을살펴볼수있다.
힘내라,한국술!
주세법상전통주는가.〈문화재보호법〉에의해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주류(무형문화재술),나.〈식품산업진흥법〉에따라주류부문의식품명인이제조하는주류(식품명인술),다.〈농업·농촌및식품산업기본법〉에따라농업인또는농업경영체에서지역의농산물을이용해서제조한주류(지역특산주)로정의한다.
시련과역경을겪으며인고의세월을이겨낸우리술,전통주.
이제전통주에도변화의바람이불고있다.생산자들의꾸준한노력과연구를통한제조방법은견해와이미지마저바꾸고있다.시대의변화에따라술도지속적으로변화해왔다.드라마를시작으로한‘한류’는전세계로뻗어젊은층을중심으로확대되고있다.이에발맞춰단절된우리술의역사를연구하고조사해서사라진역사와문화를이어가고새롭게조명하도록더욱노력해야할것이다.
『술자리보다재미있는우리술이야기』구성
조상부터MZ까지한국인에게술이란?
술자리는늘즐겁다.친구,지인과술을마시면서내가알고있는술상식을뽐내는것도술자리의묘미다.본격적으로책을읽기전술자리에서넓고얕은지식을자랑할수있도록간단한용어해설로페이지를열었다.
1장에서는우리나라에서최초로와인을마신우리조상들의관능평가와쇄국정책의벽을뚫고들어온외국술에대한관세와우리식으로지은술이름으로흥미를제공한다.한국와인의시초가프랑스의포도나무였고식량부족으로만들어낸최초의한국와인이쌀포도주라는것,국산식용포도로만든달달이와인에소비자가등을돌리자노력을거듭하여현재의한국와인이되기까지의내용을담았다.
일본의토리스위스키를베낀도리스위스키는유사위스키의오명을안고이후도라지위스키로재탄생하는데그보다놀라운이야기가더많이펼쳐진다.사케와고량주를원조나라인일본과중국에수출한조선의술이1909년일제에의해주세법이도입되면서주세령시행후어떤식으로분류되었는지짚어보았다.10여개의맥주병을들고흐뭇한표정으로찍은어느하급관리의사진과이틀후일어난조선과미국간의전투,구한말수입맥주와삽화를넣은신문광고에대해서도심도있게다루었다.종량세와종가세의차이를알려주고편의점‘만원네캔’수입맥주가들어오기까지의주세,1900년대프랑스사진엽서속우리술과잘못알려진주막사진에대한내용도흥미롭다.
2장은한양에도서울만큼술집이많았을까?라는질문으로시작한다.고려부터조선에이르기까지왕실의술을따로만들었던관청이있었다는것과물대신술로약을먹은이유나조선시대에도코스요리가있었다는것은읽을수록신기하다.조선시대의한양에술집이얼마나많았는지그술집중최고로핫한집은어디인지찾아보았다.병술집,내외주가,목로주점,색주가등다양한술집을소개하고주막에대한오해도풀어준다.
조선에탁주빚는사람의수가어느정도인지한양이왜술의도시였는지는실록의기록을통해서도알수있다.더나아가한국인에게막걸리란어떤의미인지,막걸리가국민술의타이틀을빼앗긴내용과외국인의눈에비친개화기조선인의술문화를다루며조선사람들이어찌나술을좋아하는지왕이나영의정도술에취하면바닥에뒹굴거나잠을잔다며폭음이허용된나라로비치기까지했다.외국인이본단편과달리조선은술마시는것을조심하기위해‘향음주례’를통해예를갖춰술을마신나라이기도하다.
3장의내용은다소암울하기까지하다.시대에따른우리술의변화에대한내용으로먼저외국의금주법을설명하고우리나라의시대별금주령을기술했다.금주령으로인해전통주는변화하고술은다양화했다.그로인해증류주가새롭게탄생하고심지어조선에서는유럽의포트와인보다앞선과하주가탄생한다.일제강점기로넘어가면서주류품평회가열리고신문은실시간으로품평회소식을업데이트한다.그럼에도이때는우리술의암흑기이기도했다.주세령에의해생산량최저한도를정함으로써소규모양조장을정리하고공장형으로변모하면서우리술의억압이시작되었기때문이다.잘나가던우리술이시대의아픔을겪으며변화에발맞춰야했던슬픈이야기가전개된다.그많던누룩은세금을목적으로개량누룩으로탈바꿈한다.이러한시대적과정을통해지속적인감소로결국우리의누룩은설자리를잃고만다.
4장은알면알수록빠져들게하는우리술이야기로가득하다.맑은술청주가사케로바뀌고우리의맑은술은약주로남게된다.주세법상약주와청주는같은듯다르다.식민의아픔을겪은만큼술도핍박과억압을받게되고‘군산’과‘마산’은쌀수탈의전초기지로청주(사케)산업을발달시킨도시가된다.입국막걸리가제조되고현재에이르러서는입국막걸리가전통주인지에대한문제점이제기되기도한다.술에대해관심이있다면한번쯤들어봤음직한최남선의조선의유명한술에대한내용을짚고넘어간다.최남선은술에대해잘알고있었을까?숙취의대명사막걸리에대해서도자세히파헤쳤다.본적도없고만든적도없는카바이드막걸리와막걸리숙취의원인은무엇인지,1970년대의막걸리소비의감소원인과흔들리는막걸리의정체성에대해깊이연구하여기술했다.
5장에서는겨울에도찬술을마시는우리민족이따뜻하게데워마시던전통주에대해소개한다.우리술이어떤계기로전통주라는이름을갖게되었는지와구정에마신도소주와추석에마신신도주에대해언급했다.또정종의등장을살펴보고시대별로술집의홍보와술의매체광고를살펴보았다.술마다왜전용잔이필요한지,현대에이르러MZ세대를중심으로전통주가유행하고있음을알리고하이볼보다맛있는전통주칵테일에대해서도다루었다.
책중간중간내용에맞게와인,위스키,맥주,막걸리,소주,과하주,누룩,청주(사케),입국,전통주칵테일의제조과정을참고를통해알려준다.또화질이좋지않은오래된신문기사는사진대신QR코드를제공했다.우리민족의변화만큼우리술도변화와억압과발전을거듭하였다.MZ세대인젊은층을중심으로우리술의양조와문화도달라지고있다.양조장들의새로운변화와노력은전통주인우리술이이제더이상고리타분하거나예스러운술이아님을알수있다.
추천사
우리술을제조하는관점에서보면,우리술에는기술적인부분과더불어인문학적부분이모두중요하다.예로부터우리나라는내외부요인들탓에우리술과문화가단절되어현재에이르렀다.이책을통해우리가잊은우리술문화의인문학적성취를우리술과함께즐기면좋겠다.
-고성용(한강주조대표)
많은시간을공들여이대형박사의마음이글에고스란히담겨있어,읽는내내감사했습니다.술을문화라고하는커다란그림속에넣어폭넓게바라볼수있는시각을선사해준고마운책입니다.
-남선희(전통주갤러리관장)
술박사가써내려간술이야기,제가아는한이대형박사는우리술최고의전문가입니다.그는술을사랑하는것에끝나지않고술과결혼한사람입니다.술이있는곳에는항상그가있으니까요.오랜시간동안우리술과함께하며쓴글은마치잘숙성된용기에마지막으로남은단한잔의소중한술같습니다.오늘은애주가분들과안주대신맛있는이책을함께나누고싶습니다.?
-류인수(한국가양주연구소소장)
술을통해대한민국역사를읽어내려갈수있는책이며,저자가가진술역사에대한진심이그대로녹여진작품이다.술자리에서우리술역사에대한이야기를할수있는정보가가득한책이다.
-명욱(세종사이버대학교교수)
전통주관련컬럼등의글은둘로딱나뉜다.이대형박사가쓴글인지아닌지.전혀과장이아니다.정말그만큼다양한매체에다양한주제로글을써온분이다.그글들을모으고모아가다듬고가다듬어책이나오게되었다니정말기대가된다.
-이승훈(백곰막걸리대표)
객관적인정보와탄탄한자료,저자의전문지식까지깊이있게담겨있는책이다.전통주초보자부터업계종사자까지!모두를위한최고의전통주안내서다.
-이지민(대동여주도대표)
책속에서
1901년6월19일자《황성신문》에는재미난광고가등장한다.서울종로구광화문남쪽에있던가게‘구옥상전’에서띄운광고로포도,전복,가배당(각설탕에든커피),우유,밀감주,목과(모과),맥주가나온다.이광고는《황성신문》에몇번더등장했고…
---p.33
1977년에는동양맥주에서지금도생산하고있는‘마주앙’(이후롯데주류가인수)이출시되었고1981년에는진로에서‘샤토몽블르’를생산했다.뒤이어파라다이스에서‘올림피아’(이후수석농산이인수하여1986년‘위하여’로변경)를대선주조에서는‘그랑주아’와‘앙코르’를금복주에서는‘두리랑’과‘엘레지앙’을선보였다.이처럼국내에서와인이본격적으로생산된지는채50년이안되었다고봐도무방하다.
---p.41
주로쌀의생산이많은남쪽지역에서청주(사케)를수출했다면북쪽에서는수수를이용한고량주의수출이활발했다.고량주의경우중국과의연결및간도와의왕래가어렵지않아일부는중국에수출되었다.중국과맞닿은서조선지역에서는고량주의생산이지역경제에큰영향을미쳤다.
---pp.61~62
사진속배경은당시의주막이라고설명한다.일부에서는남성에게술을주고있는여성이기생이나남성에게성을파는여성이라고부정적인해석을하기도한다.하지만사진속모습을찬찬히들여다보면다른해석도가능할것으로보인다.
---p.81
물로약을먹는경우도있지만술과같이먹는약도있다.술로약을먹으면약효가빨리확산되기때문이다.술의역할은약의흡수를촉진할뿐아니라물에는침출되지않는한약재의유용성분을추출하도록도와준다.이런이유로한약재를술에담가볶거나술에씻어사용하기도하고술과함께찌기도한다.
---p.94
역사를보면술을마실수있는대표적인장소로주막이있다.주막이언제부터시작되었는지정확한기록은없으나사극에서묘사되는형태의주막은조선중기이후의것이다.주막은원래술만판매하는곳은아니었다.요기를할수있도록식사를제공하고나그네를위한잠자리도제공했다.대도시의주막에서는술과음식을파는집이대부분이었지만시골에서는식당과숙박업을겸하고있었다.
---p.106
서양인의눈에비친조선인은모두폭음가였던모양이다.미국의장로교선교사인언더우드(한국어이름원두우(元杜尤))의《상투의나라》에서는“그들은일반적으로술에만의존하며,어떤사람은지나치게술을마셔서술에빠져버린다”고했다.오페르트(독일출신의상인)가1886년에저술한《금단의나라조선》에서는“그들은독주를즐기며식사때에도폭음을한다.내가관찰한바에의하면조선사람들은틈만나면술자리를만들며매우무절제하다”고했다.
---p.127
조선의술은쌀이나잡곡으로빚는데알코올도수가낮은막걸리에서부터알코올이높은증류주까지매우다양하였음을알수있다.하지만전반적으로소주는탄냄새가나며맛이없다고평하는것을보면조선술이서양인들의입맛에는맞지않았기에별다른매력이없었던듯하다.
---p.130
18세기말엽에는양조규모가크게확대되어푸줏간의고기와시장의생선태반이술안주로쓰이고,이로인해시장의반찬값이날마다뛰어문제가되었다.이렇듯술이사회경제적으로미치는영향은결코미미한것이아니었기에강력한통제로이어질수밖에없었다.
---p.144
이당시대회들의특징을보면몇몇대회만조선총독부에서주관하고대부분의품평회는각지역이나전국단위주조협회가주관했다.품평회의취지를이해하고신뢰하게된이후에는지역을순회하면서진행할정도로품평회행사는흥행에성공했다.하지만이때는우리술의암흑기이기도했다.‘주세령’(1916년7월)에의해생산량최저한도를정함으로써소규모양조장을정리하고공장형으로변모하는계기가되면서우리술의억압이시작된것이다.다양한주류품평회를통해공장형술들의부흥이시작된기초가되었지만애석하게도집에서만들어마시던가양주는쇠퇴하기시작한시점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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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도폭탄주를만들어마셨다고한다.방송이나자료등문헌에나와있는조선의‘혼돈주’(混沌酒,막걸리에증류식소주를섞은것)가폭탄주의시초라면서막걸리와소주를섞어서마셨던방법이라고한다.하지만이것은잘못된내용이다.조선의혼돈주는막걸리와소주를섞어마시는방식이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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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사람이중국에서시작된주류제조법이우리를거쳐일본으로갔다고한다.하지만당시중국은하나의나라가아니고지역이많아술제조법이다양했고어느지역의술제조법이넘어왔는지도정확하지않다.일본도교역이활발했기때문에우리나라에서만술제조법을배웠는지도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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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를좋아하는사람이라면조선의3대명주에대해한번쯤들어보았을것이다.육당최남선이《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1946)에서언급한내용으로조선의3대명주를감홍로,이강고,죽력고라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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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따뜻하게마시는것은기존에알고있던술마시는방법과는완전히다른형태다.한국인은거의모든술을시원하게마시거나아주차갑게마시는것을좋아한다.심지어추운겨울에도국물이나음식등따뜻한술안주를찾으면서술은찬소주나맥주를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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