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궤의 잃어버린 비밀

성궤의 잃어버린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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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영화사에 길이 남아 있는 명작 중에 1956년도 ‘십계’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모세와 파라오 그리고 십계에 관한 내용으로 당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1981년 ‘인디아나 존스 - 성궤의 추적자’가 개봉되어 이 역시 영화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 대 영화들에서 우리가 마주친 것이 바로 성궤 이야기이다. 영화 ‘십계’가 성궤를 제작할 당시의 주변 정세를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는 반면 ‘인디아나 존스’는 성궤 자체의 경이로운 힘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렇듯 성궤라는 것이 매우 범상치 않은 물건이긴 하나 실제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 궁금증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또한 교회를 나가거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이 단어 자체에는 특별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역자는 서점에서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커다란 호기심이 일었다. 책의 저자는 신성한 물건이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성궤의 정체를 파헤치고 있었다.

성궤는 대체 무엇인가? 본서를 다 읽고 나면 공상과학 소설을 읽은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그 광범위한 배경 설명은 고대 역사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사건들을 자세히 아우른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주제인 성궤에 관한 모든 것을 매우 흥미롭게 다룬 책이 분명하다. 성궤는 십계명을 넣은 단순한 상자로, 주인공의 자리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러한 단순한 고정관념으로 성궤 자체를 지금까지 깊게 고려하지 않아 왔다.

십계명의 중요성으로 성궤가 ‘언약의 서판’을 보관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사실 성궤 안에는 정확하게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 십계명의 두 돌판,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 세 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 물건들만 넣기에는 성궤가 너무 과분한 장식의 신성한 상자처럼 보인다. 특별한 의상을 입지 않고 그것을 만지는 자는 죽기까지 하고 또한 그 안을 들여다본 자들은 쳐 죽임을 당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이 책은 성궤가 단지 서판을 넣은 상자가 아니며 그 자체가 어떤 기능을 하는 장치라는 가설을 이어나간다. 여리고성의 공격 때처럼 엄청난 파괴력이 있는 그것의 가공할 위력은 놀라운 무기를 짐작하게도 한다. 더 나아가 성궤는 하나의 기계장치이며 그 장치는 양자역학, 우주의 초끈 이론을 배경으로 설명될 수 있는 미래 첨단과학의 결과물이라는 결론을 이끈다.

유명한 이집트학 고고학자 플린더스 페트리의 발견이 이 책의 시작이다. 시나이반도에 있는 고대 신전 유적지에서 수수께끼의 하얀 가루 50톤이 발견된다. 그리고 이 책의 중심어인 이집트의 mfkzt(상형문자에서는 모음이 생략되어 있다.)를 드러내며 하얀 가루와 이를 생산하는 작업장으로서의 신전을 언급한다. 나중에 설명되지만 이것은 왕들이 섭취하는 것으로 후에 성찬식의 원형이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주는 장면도 이와 연관된다.

또한 ‘언약의 서판’은 사실 돌을 정교하게 자르는 사피르임을 자세히 설명하며, 역사를 통하여 그려진 십계명을 들고 있는 모세의 그림이 근거가 없는 상상화임을 밝힌다. 서판은 지성소에서 성궤를 받치고 있는 공중부양 된 석판이다. 그리고 이 돌들의 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레이저의 발견 같은 물리학의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예부터 의학에 관한 표상은 막대를 휘감아 오르는 뱀의 모습인데 이는 첨단 레이저의 개념도와 똑같다는 발견을 하며 신화적으로 무엇을 상징하는지 몰랐던 표장에 대한 신선한 해결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후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시나이반도의 주인공 모세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성궤는 모세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것으로 서로 불가분의 관계이다. 일단 십계명이 이집트의 ‘사자의 서’에서 나온 것임을 언급한다. 하지만 오늘날 학계에서는 모세가 실존 인물인지도 규명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시나이 광야를 40년간 방랑한 것에 대해서도 고고학적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다.

모세는 누구인가? 본서에는 모세가 유대인이 아니라 이집트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모세가 당대의 파라오 아케나텐이라고 결정하는데 그는 당시 다신교 국가였던 이집트에 아톤 신을 숭배하는 일신교를 창시한 파라오다. 이에 대해 논거는 본문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프로이트의 ‘종교의 기원’이 참고할 만하다.

이미 많이 알려진 이론이지만 프로이트의 주장 - ‘모세 일신교 이집트 기원설’과 ‘모세 이집트인 설’ - 은 저자의 가설을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집트 파라오의 혈통은 사실 메소포타미아와 연결되어 있다. 이후 투탕카멘의 누이는 이스라엘가와 결혼한다. 모계사회인 이집트의 역사 전개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상상할 수 있다. 이에 계속해서 모세의 누이 미리암을 자세히 논하는데 매우 흥미로운 논의가 이어지며 모세가 이스라엘의 다윗왕가와도 빗겨 서 있음을 다룬다.

- 본문 〈역자후기〉 중에서 발췌
저자

로렌스가드너

LaurenceGardner
(1943.5.17.~2010.8.12.)영국런던에서출생했으며작가,강연자,화가이다.캐나다미술가피터롭슨과함께작업하였다.예수혈통,반중력,아담과이브의복제와같은주제의책을썼다.

1996년첫번째책,『성배의혈통(BloodlineoftheHolyGrail)』을저술하였으며데일리메일에연재되었고베스트셀러가되었다.
그는예수와막달라마리아가결혼하고아이가있었다-그의후손들은아더왕과스튜어트가문을포함하고있다-는믿음을포함하여여러목적으로그의책을사용했다.또한그의책은프리메이슨,성전기사단,성배그리고아테니즘과유대이즘사이의연관을제기하는이론들을포함한다.

목차

감사의글/21
서론/22

1부
1 황금가家/27
신성한산/27
축복받은자의땅/32
위대한자/35
최종목표/38

2 낙원의돌/42
생명을주는자/42
매일의양식/46
신성한만나/49

3 빛과완벽/54
보석의신비/54
기이한나선/57
놀라운루비/60
증언의반지/62
새로운왕조/67

4 출애굽/69
이스라엘의자손들/69
불타는떨기나무/71
승계권/80
키바의연인/83

5 성궤/89
신명기의충돌/89
성경의기원/93
거처/95
전차와게루빔/96
신의본질/104

6 금의힘/107
풍요/107
간략한금의역사/110
성궤의날/112
황금양털/115
에메랄드서판/117

2부
7 일렉트리쿠스/127
아콘의심판/127
성엘모의불/131
고대의배터리/133
신들의금/135
성궤-빛의불꽃/139

8 빛의궤도/143
불-돌의마스터들/143
샤르-온Shar-On의면/148
지니의영역/152
0(Zero)의저편/158

9 솔로몬왕의비밀/161
왕족의세대/161
성궤의정복/164
데보라의노래/169
다윗왕의도시/172
불-돌프로젝트/175

10 어둠속으로/180
케브라나가스트/180
시바의여왕/184
운명의수호자들/186
포로이후/194

3부
11 평행차원/201
허드슨파일/201
중력에저항하다/205
초전도체/208
스텔스원자와시공(時空)/211
심판의날/215

12 양자프로토콜/218
전이원소들/218
공중부양과순간이동/220
신성한과학/223
덴데라로돌아가다/226
통과의례/229

13 사막의불/231
성배의수수께끼/231
하스몬가/234
성약의수호자들/238

14 데포시니/243
예수탄생의역설/243
하나님의아들-사람의아들/249
처녀와목수/252
증거를불태우다/253
막달라의항해/256
고귀한숙련공/259

4부
15 연금술의르네상스/265
성전의기사들/265
성궤공의회/269
노트르담/271
종교재판/276

16 숨겨진두루마리/280
성전기사단의응징/280
제3등급/286
결백의불꽃/288

17 불사조의상승/292
성전산아래/292
로열아치/295
새로운철학/298
부인된비밀들/302
헤르메스의예술/304
빛의하나님/306

18 휴식처/310
현자들의묵주/310
성궤를양보하다/313
최종실행/316
입구/323

각주및참고/327
계보도차례/363

부록
1 무덤의수수께끼/415
2 출애굽/418
3 판매용금/420
4 아메네모페와잠언/424
5 사라지는포인트를향해/425
6 테세우스와미
노타우로스/431

역자후기/436
참고문헌/447
찾아보기/458

출판사 서평

황금가(家)

신성한산

우리의이야기는1904년3월에드워드7세가영국을통치하고시어도어루스벨트가미합중국의대통령으로취임하는지난세기초에시작된다.1차세계대전(1914~1918)은알려지지않은미래에대한전망이었고모험과탐험의열정적인시기였다.로버트스콧선장과디스커버리호선원들은남극에서영국으로돌아오는중이었고,동시에영국의고고학자플린더스페트리경SirW.M.FlindersPetrie(1853~1942)과그의팀은시나이사막의바람에파괴된바위고원위에서있었다.

페트리탐험대는후에설립된이집트탐험기금(현재이집트탐험협회)의후원을받았다.이것의목적은이집트동쪽의홍해위에있는수에즈만과아카바사이에있는시나이반도의오래된구리와터키석광산지역을조사하는것이었다.이곳은구약성경의출애굽기(킹제임스판본)에서호렙Horeb산으로언급되는모세의땅이었다.BC3세기경고대70인역성경에서이장소는초렙Choreb산으로정확하게표현된다.단순한명목상의적용과는거리가먼초렙choreb과호렙horeb두단어는우리가발견하게될모세시대에매우중요한의미를지녔다.

페트리가호렙산의정확한위치를결정하는데어려움이따른것은시나이반도의산맥이넓고(그들이고대역사에주의깊음에도불구하고)지역주민들이고도가높은지역을잘알지못했기때문이다.4세기에기독교수도사들이시나이반도남쪽산위에성카타리나수도원을세웠고그곳을게벨무사GebelMusa(모세의산)라고불렀다.

그러나이는성경의지리적언급과맞지않기때문에부정확한결론임이분명했다.출애굽기는BC1330년경모세와이스라엘백성이이집트델타지역인고센에서출발하여홍해를넘어미디안땅(오늘날요르단북쪽)으로갈때행한길을설명한다.슈르Shur와파란Paran의황량한지역을가로지르는방향을따라파란평원위높은사암고원에793m솟은모세의신성한산이보인다.오늘날이것은세라비트엘카딤SerabitelKhadim(카딤의돌출부)으로알려져있고,페트리탐험대가등반한울퉁불퉁한노출부였다.그들은그장소에특별한기대를하지않았지만조사의일부였기때문에놀랍게도기념비적인발견을한정상까지갔다.

그들은거대한인공동굴로부터약70m의넓은장소위에지어진오래된신전의폐허를발견했는데,BC2600년경통치한4왕조스네푸르파라오시대까지거슬러올라가는비문이있었다.그후,페트리는“그곳전체는묻혔고우리가그곳을깨끗이정리할때까지아무도그것에대해몰랐다”라고썼다.아마도그들은셈족형태의제단석이나다른의례적인랜드마크를발견해도놀라지않았을것이지만이것은거대한이집트신전이었고분명히어떤중요성이있었다.

수년전이탐험에대해처음으로논의했을때나는그것이새로운모험가들에게관심을불러일으킬지전혀몰랐다.그이후많은독자들이지긋지긋한등산을한후,그들의방문에대해회고하고자신들의위업을담은훌륭한사진들을보내왔다.이점에서,비록아무도서신에서그사실을언급하지않았지만,아마도나는사원이특이한위치때문에여전히접근가능하고인상적이긴하지만,페트리의사진과글에서묘사된것과같은많은특정한유물들이더이상그곳에없다는것을분명히했어야했다.

고고학자들이다른사람들의땅에있는고대유적지를약탈하고,그들의전리품을서양의박물관에가져가는것은불행하지만일반적인관행이었다.이것들은단지휴대할수있는물품들뿐만아니라거대한석상,오벨리스크그리고이집트,아시리아,바빌로니아같은곳에서온벽부분까지포함한다.영국,유럽그리고미국의박물관과금고에는그러한물품들이가득하다.세라비트Serabit산에서발견된페트리의가장중요한몇몇발견을설명함에있어서,내가오늘날그것들을어디에서발견할수있는지에대한세부사항을설명했어야하는것이논리적으로보일지도모른다.

그러나사실몇몇품목들은공공미술관에들어갔지만많은물품들을개방하여조사하지않고전략적으로숨겼기때문에세라비트저장물의위치를찾기가쉽지않았다.그럼에도불구하고현재나는어느정도성공을거뒀으며,세라비트품목이보관된몇몇박물관의목록이‘각주및참고’에제시되어있다.1904년탐험이후페트리가기록한많은부서진유물들이박물관관계자에의해옮겨지지않았지만유적지의세부사항이알려지자다른사람들에의해도둑맞았다.그결과,1935년하버드대학교탐사때그것들은그곳에있지않았다.

수많은주요유물들이비밀스레보관되어있는이유는당시페트리의발견이매우불쾌하게여겨졌기때문이며신성한산에서의사건들이출애굽기묘사와모순되는것으로간주되었기때문이다.그곳에서모세는불타는덤불을보고여호와와이야기를했고금송아지를불태우고증언표를받았다고한다.실제로페트리보고서는어떤식으로든성경의설명을뒤집지않았는데그것이도전했던것은기독교적해석과그것을가르치는방식이었다.본질적으로그의발견은이집트탐험기금규정을위반했다.1891년기금설립‘각서및정관’에따르면그목적은“구약성경의서사를설명하거나설명하기위한조사와발굴촉진”을포함한다고명시되어있다.물론이것은구약성경이쓰인대로가아니라전통적으로해석된대로라는것을의미했다.

1901년빅토리아여왕의죽음이후그리고영국제국주의가영광의절정에있던가운데,페트리가1904년발견했을때빅토리아시대의가치는여전히가장중요했다.사회에강요된가치관은오늘날가치있는개념이라기보다는기득권위협으로여겨질수있으며,제1차세계대전(10년후)의잔인한가혹함이어느정도태도의평준화를도입하는데필요했다.그러나페트리는그시대의가장유명한고고학자가되었음에도불구하고권위주의적비난의무게를느꼈다.그가돌아오면그의발견에대해출판하기로결정했기때문에지금까지이집트탐험기금에의한재단의무조건적인지원은종료되었다.그는보고서에“그러므로이집트연구계정과이집트의영국고고학학교에서미래를신뢰하는것이필요하다…”라고썼다.

자신이직접추린페트리의일지는『시나이에서의연구ResearchesinSinai』라는매우훌륭한책으로나왔다.이것은1906년런던의존머레이JohnMurray에의해출판되었지만오래가지못했고복사본은현재찾기가매우어렵다.훨씬후인1955년새롭게변모하고더영감을얻은이집트탐험협회(옥스퍼드대학출판사와협조한)는시나이반도의부조와비문에관한자체판본을출간했다.이두권의연구는첫번째사례에서페트리의발견을다루었지만,두번째부분은저명한이집트학학자앨런H.가디너AlanGardiner와T.에릭피트EricPeet의관련원고에초점을맞추었다.그들은상형문자와새김들을베끼고이야기하고논쟁하며페트리의학회를위한작업을진행시켰다.하지만세라비트엘카딤의원본유물들은어디에있었을까?페트리와다른사람들이묘사한그유물들은모두어디에있었을까?

1906년이래로많은수의물품들이비밀리에안전하게보관되어왔고극히몇몇유물은일반에공개되었음이밝혀진다.현재확인가능한것중커다란오벨리스크와비석에서부터작은지팡이와그릇에이르기까지463개의유물들이공식적으로산위의신전으로부터옮겨졌다.운좋게도모든새로운세대의개개인들은현재그유물들에대한책임이있고그것들의존재(빅토리안양식의제약이더이상적용되지않음)를기억하며관리자들은실제로이점에대해열정을보이고있다.

현재나는세라비트산에서114개의지정된유물들의박물관자료목록을열람할수있다.비록개별적으로기록되고번호가매겨지고설명되어있지만그유물들은수십년동안저장소에보관되어왔다.“발견장소:이집트,시나이,세라비트엘카딤”이라고분류된것들은제의용테이블,조각상,비석그리고유리병,부적,장식판,지팡이,연장들과함께있는제단을포함한다.파라오의다양한카르투슈(받침대에올린기다란타원형네모안에파라오이름을기록한상형문자)와비문들은4왕조부터중왕조(특히12왕조를중시하여),신왕국(특히모세의18왕조시기)을지나12왕조와함께절정에이른람세스시대까지의확장된기간을나타낸다.이것은약1,500년간신전이운영되었다는것을의미한다.

하토르여신에게봉헌된세라비트신전은이집트가재정적으로쇠퇴하고외부의영향력에빠졌던BC11세기동안모든기능을멈춘것으로보이며,결국프톨레마이오스왕조의그리스통치를이끌었다.그러나그것은기자Giza(카이로교외에있는도시)피라미드가세워지기전에작동했고,투탕카멘과람세스대왕시대이후에도로터스이터LotusEater와신들의위대한시대내내계속사용되었다.그러나그렇게중요한이집트신전이왜파라오의중심지에서수백킬로미터떨어진홍해만을건너황량한산정상에있었을까?
〈이하생략〉
-〈본문〉중에서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