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산유고

요산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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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요산 할아버지의 유고(遺稿)를 모아 발간하신 『요산유고(樂山遺稿)』 문집이다. 한양길에 조령을 넘어 한강과 남산을 보신 감회를 읊거나 인근의 유학산, 금오산, 팔공산에 올라 지으신 시(詩) 78편, 가까운 사람들에게 쓰신 서한(書翰) 7편, 인간의 도리와 행실에 관한 논설(論說) 5편 등 총 90편의 글이 실려 있었다. 그 외에도 서문 3편과 부록 11편(가문의 내력, 요산 할아버지의 묘지명, 유고 수집과 발간 경위에 관한 글 등)이 수록돼 있었다.
저자

배진하

요산(樂山)배진하(裵鎭夏)

요산할아버지는용모가수려하고
살결이희고미목(眉目)이뚜렷하였으며
도량이크고깊었다고한다.
시를짓거나사(詞)를논할때는
유자(儒子)의기상을지녔다고하며
고금의일을말할때는호탕하고
의협심이있는사람이라고했다.

목차

발간사 4

배(裵)씨관련자료사진[득성조,중시조,수관조受貫祖,요산공] 14
요산문중약사(樂山門中略史) 17

요산배공유고의서문[樂山裵公遺稿序]
①김홍락(金鴻洛) (영인본1쪽)21
②최병원(崔炳元) (영인본4쪽)23
③조윤묵(曺允黙) (영인본7쪽)26

요산유고권1

시[詩]
한양에서노닐다[遊漢陽] (영인본23쪽)30
한강에서불어난물을보다[漢江觀漲]2수 31
종남산에오르다[登終南山] (영인본24쪽)32
돌아오는길에조령에오르다[歸路登鳥嶺] 33
둥근부채를읊다[詠團扇] 34
저산에은거하다[楮山幽居]서문을병기함 (영인본25쪽)35
진성로와함께보현산을유람하다[與陳星老遊普賢山] (영인본27쪽)37
아사雅士김귀락과동래를유람하며부산바다를바라보다[與金雅龜洛遊東萊望釜山海] 38
돌아가는길에영남루에올라가다[歸路登嶺南樓]2수(영인본28쪽)39
무신년(1908)사월어느날달성에올라가조망하다[戊申四月日登達城眺望] 40
장교준낙안과함께금곡사에피서하다[與張樂安敎駿避暑于金谷寺] (영인본29쪽)41
고을수령황연수가새책력을준것에하례하다[奉賀黃侯演秀惠贈新蓂]2수 42
영산(창녕)의청암리로가서선조의묘소를배소하고척헌재에서묵다[往靈山靑巖里拜先墓宿陟巘齋]서문을병기함 (영인본30쪽)43
더운여름장낙안과다시금곡사에가다[暑月與張樂安再到金谷寺]서문을병기함 (영인본31쪽)45
종형진붕을애도하는만시[從兄鎭鵬挽]2수 (영인본32쪽)47
늦가을에국화를감상하다[晩秋賞菊] (영인본33쪽)48
정진태공을애도하는만시[挽鄭公鎭泰] 49
고을원황연수를송별하다[奉別黃侯演秀]2수 50
봄날한적하여서울을추억하다[春日閑寂憶京華] (영인본34쪽)51
시어권중락을애도하는만시[挽權侍御仲洛] 52
최경식대경을애도하는만시[挽崔大經坰植] (영인본35)53
상사권경택에게시를부치다[寄贈權上舍絅澤] 54
가뭄끝에내리는비[喜雨] (영인본36)55
병을앓은후에[病後] 56
가을밤에진성로를추억하다[秋夜憶陳星老] 57
병포암에서유거하다[屛鋪巖幽居]서문을병기함 (영인본37쪽)58
환갑날감회를서술하다[甲日述懷]3수,서문을병기함(영인본39쪽)60
비를걱정하다[悶雨] (영인본42쪽)63
홍병식치강과함께팔공산에오르다[同洪致岡秉湜登八公山](영인본43쪽)64
문방사우의시[文房四友吟]서문을병기함 65
여행하는도중에아이들이마음에걸리다[旅中懷兒孫]2수,서문을병기함(영인본46쪽)68
단오[端午] (영인본47쪽)69
박선일·김노언과화산에오르다[與朴善日金魯彦登華山](영인본48쪽)70
인각사[麟角寺] 71
학소대[鶴巢臺] 72
단계하위지선생의묘소를지나며감회가있어[過丹溪河先生墓有感]2수,서문을병기함(영인본49쪽)73
좌랑소산권용을애도하는만시[挽權佐郞巢山鎔] 74
중양일에동지와함께아미산에오르다[重陽日伴同志登峨嵋山](영인본50쪽)75
제석[除夕] 76
매화[梅花] (영인본51쪽)77
정월대보름에압곡사를유람하다[燈夕遊鴨谷寺] 78
「이소경」을읽고감회가있어[讀離騷經有感]2수 79
도정절의「귀거래사」를읽고느낌이있어[讀陶靖節歸去來辭有感]2수 (영인본52쪽)80
경주에서옛자취를생각하다[東都懷古] 81
당나라때의팔사마[唐之八司馬]서문을병기함 (영인본53쪽)82
류종원의글을읽다[讀柳大家] (영인본54쪽)84
병암이란신령한곳[屛巖靈境] (영인본55쪽)85
칠석[七夕] 86
거울을보다[覽鏡] (영인본56쪽)87
옛일을생각하다[懷古] 88
김경용성도를방문하다[訪金聖度炅容] 89
김성문치백을애도하는만시[挽金致伯成文] (영인본57쪽)90
눈을읊다[詠雪] 91
모기[蚊虻] 92
팔월초하루선대의묘에성묘하다[八月初吉省先墓](영인본58쪽)93
돌아오는길에당시를차용하여넓고넓은들판의풀이라는시를짓다[歸路用唐詩漠漠野田草韻] 94
장형의환갑축하시에차운하다[次張兄晬宴韻] 95
추석[秋夕] (영인본59쪽)96
추석다음날[仲秋旣望] 97
양산[洋傘] 98
매화대나무병풍[梅竹屛] (영인본60쪽)99
등백도[鄧伯道]2수,서문을병기함 100
「시경」의「주남」과「소남」을읽고[讀詩周召南](영인본62쪽)102
「정풍」과「위풍」을읽고[讀鄭衛風] 103
변아(「시경」「대아」「소아」의일부)를읽고[讀變雅] 104
초승달을노래하다[詠初月] (영인본63쪽)105
동락을유람하다[遊東洛] 106
추망[秋忙] 107
유학산[遊鶴山] (영인본64쪽)108
조양각에올라삼가포은정선생의시에차운하다[登朝陽閣謹次圃隱鄭先生韻] 109
금오산에오르다[登金烏山] 110
농가의소키우기[田家牧牛] (영인본65쪽)111
가을날그윽한회포[秋日幽懷] 112
박선일이방문하다[朴善日見訪] 113
산골짜기에서곧장읊다[峽中卽事] (영인본66쪽)114
거위를키우며시를남기다[畜鵝遺贈吟]서문을병기함 115
다른이의‘손자를얻고서’시에차운하다[次人抱孫韻]2수(영인본68쪽)117
보릿고개를한하며[歉春麥嶺]서문을병기함,무자년(1888)(영인본69쪽)118

편지[書]
수령황연수에게답하다[答黃候演秀] (영인본70쪽)120
장교준낙안에게주다[與張樂安敎駿] (영인본71쪽)121
진사권경택에게보내다[與權進士絅澤] (영인본72쪽)122
족보사무소의여러종친에게답하다[答譜所僉宗] (영인본73쪽)123
통정대부장두각에게주다[與張通政斗珏] (영인본74쪽)125
종제진헌에게주다[與從弟鎭憲] (영인본75쪽)126
조카재연에게주는편지[與姪兒在淵] (영인본76쪽)127

서[序]
요산서[樂山序] (영인본77쪽)128

기[記]
저전기[楮田記] (영인본79쪽)131

논[論]
천인론[天人論] (영인본82쪽)133
유후론[留侯論] (영인본84쪽)136
찬문종후론[酇文終侯論] (영인본87쪽)139
무후론[武侯論] (영인본90쪽)142
삼강론[三綱論] (영인본93쪽)145

요산유고권2(부록)

가장[家狀] (영인본95쪽)148
행장[行狀] (영인본105쪽,국역문없음)
묘지명[墓誌銘] (영인본114쪽,국역문없음)
묘갈명[墓碣銘] (영인본117쪽,국역문없음)
만사[挽詞] (영인본121쪽,국역문없음)
제문[祭文] (영인본124쪽,국역문없음)
요산기[樂山記] (영인본131쪽,국역문없음)
병포암유거기[屛鋪巖幽居記] (영인본133쪽,국역문없음)
유고고성문[遺稿告成文] (영인본135쪽,국역문없음)
발[跋] (영인본136쪽,국역문없음)
발문[跋文] (영인본141쪽)157

편집후기 159

출판사 서평

발간사

분성군(盆城君)21세손(世孫)이신고조할아버지(樂山裵鎭夏또는瑀榮,1838~1912)산소에묘사지내러다닌지어언60년이넘었다.당시는하판동(현재송학리)에서산동까지버스를타고가서다시3km정도넓은들판을가로질러걸은후산에올라갔다.우리아버지,할아버지는그보다훨씬오래전부터다니셨고,지난100여년간수많은후손이다닌길이다.

예전엔추수를다끝낸후농가가한가해진음력시월둘째일요일이묘사날이었는데,때로는눈보라가휘날리기도하는추운날씨였다.산에서내려다보면추수를끝낸넓은들판너머정겨운초가들이옹기종기모여있었다.묘사를다지낸후에는줄을서서기다리던근처동네아이들20여명에게묘사떡을나누어주었다.

집안어른한분이낭랑한음성으로읽으시던축문(祝文)은참듣기좋았지만무슨뜻인지는잘알수없었다.모두둘러앉아음식을나누며이야기꽃을피울때면,어른들이축문의뜻도설명해주시고,요산할아버지가어떤분이신지도이야기해주셨다.무과(武科)에급제한장수이셨지만학문도아주뛰어나서그야말로문무(文武)를겸비한훌륭한분이셨다고들었다.묘비에쓰인글이바로그러한내용을담고있다고했다.

어린시절말로만듣던내용을몇년전우연히확인하게됐다.장조카가“집에이런고서(古書)가있다.”며보여주었는데,바로가친(家親)께서21세때인1935년에요산할아버지의유고(遺稿)를모아발간하신『요산유고(樂山遺稿)』문집이었다.모두한문이라다이해할수는없었지만,생전의고조할아버지모습을보는것같았다.

한양길에조령을넘어한강과남산을보신감회를읊거나인근의유학산,금오산,팔공산에올라지으신시(詩)78편,가까운사람들에게쓰신서한(書翰)7편,인간의도리와행실에관한논설(論說)5편등총90편의글이실려있었다.그외에도서문3편과부록11편(가문의내력,요산할아버지의묘지명,유고수집과발간경위에관한글등)이수록돼있었다.

지난해11월요산할아버지묘사때종친들에게이책에관한이야기를하니,좌중이한목소리로이책을국역해후손들이모두읽을수있도록하자고했다.국역자를찾는중에진수(振秀;盆城君26世孫)가지인의추천으로한국국학진흥원고전국역팀국역위원이신이기훈철학박사를만나바로결실을볼수있게되었다.

요산할아버지는용모가수려하고,살결이희고미목(眉目)이뚜렷하였으며,도량이크고깊었다고한다.또한시를짓거나사(詞)를논할때는유자儒子의기상을지녔다고하며,칼을들어지휘할때면변화에대응할수있는재목이라고하였다.고금의일을말할때는호탕하고의협심이있는사람이라고했다.

이책을읽다보면,실제로요산할아버지의풍모와운치,시국걱정과나라에대한충성,가족에대한따뜻한사랑등을절절히느끼게된다.또한요산할아버지의모습을직접뵙는듯한벅찬감동을금할수없으며,요산할아버지의후손임이너무나자랑스러워진다.

〈이하생략〉
본문중에서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