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한때는 작은 바람에도 한들거리는 갈대가 유약하게 보여 가련하다고 생각했다. 조그만 바람에도 부대끼고 날리다가 쓰러져 다 휩쓸려가고 휑하니 비워진 어지러운 터를 보면서 결국 또 당하고 말았구나. 개탄하며 눈물을 삼켰었다. 허탈한 심정 속에서 이 무리는 혹시! 하는 미심쩍은 바람을 안아 보았지만 바람을 막고 거름을 더해 잘 살게 하겠노라고 목청을 높이던 그들은 어김없이 역시나 제 논물 대기에 바쁠 뿐 보(堡)조차 둘러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듬해, 생명이라고는 없을 것 같던 그 황무지에 다시 듬성듬성 돋아나는 풀싹들을 보게 된다.
이게 민중의 힘이려나, 믿다가 아니 왜 이리도 우둔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속고 배반당하고 내쳐지면서 무어 그리 좋다고 매달리고 안기지 못해 안달을 내는가? 밉다면서 싫다면서 어찌 그 자리에 끼이지 못해 법석을 떠나?
대치라는 말에 웃음이 난다. 민중과 탱크로 죽을 판 살판 영원히 끝나지 않을 싸움을 계속하며 맞서고 있다는 생각이다. 헛웃음과 안타까움이 드는 것은 그들 누구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을 한다. 무리라고 다 힘이 있는 것인가?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이고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가? 갈대 숲속에 갈대만 사는 게 아니었다. 너무 많은 생명체가 도사리거나 자리를 틀고 있다. 그게 힘이라고 민중은 외친다.
그러다 또 떠올린다. 갈대 숲속에는 독이 없을까? 재잘재잘 참 많은 새떼가 살고 있어 조류 독감도 걱정이고 들쥐 날쥐들이 전염병을 옮기기도 할 것이다.
나약하다고 압제 받고 있다고 다 불쌍한 게 아니고 보호를 해야 하는 게 아니다. 그들 속에도 눈에 띄지 않지만 그들을 등쳐먹거나 이간질하는 독버섯이 살 것이다.
살아야 하는 가치에 대해 쓰고 싶은데 그것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싸한 빌미를 찾아야 했다. 찾다 보니 뭔가 다른 것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초적이고 자극적, 반항적이며 잔인한, 비판적으로 도발하거나 고발하는 글들이 판을 치는 것에 오히려 세상이 더 각박해지고 어둡고 침울해지는 것이라 여겨지고 조금 덜 자극적이고 시대에 편승하지 않더라도 낫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필을 잡았다.
곪은 종기는 도려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왜 생겼는지 아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고 싶다. 그것이 악성일 수 있겠지만 양성일 수도 있을 수 있어 하는 말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한다. 그 썩은 물이 주변을 해롭게 하기 전에 퍼내어 버려라 한다지만 그 물이 썩은 이유를 또는 썩게 한 원인 파악에는 밝히려거나 부지런을 떨지 않는 것 같다.
장르를 불문하고 시류에 편승하지 못해 안달을 하는 것 같다면 필자의 어리석음인가?! 이슈화된 일을 파헤치고 갑질을 나무라지만 피해자라고 울부짖는 을의 뒤는 들춰보려고도 않는다. 현실적 분위기에 눌리거나 휩쓸리고 눈치에 둘려 입을 다문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써진다고 하지만 어떤 일이든 원인이 있어야 발생이 된다고 보아야 하는 것도 명심해야 할 일이다.
이념이나 정치를 두고 누가 옳고 어느 쪽이 승자라는 말은 삼가더라도 절대 진리가 없듯이 절대 악이라 치부해 버리는 것도 고려해야 할 일이다.
고발하자거나 틀렸으니 바루자는 게 아니라 을이라고 무조건 편들고 감싸려 들지만 말고 그 무리 속에 혹 균이나 독소는 없었는지 짚어보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절대 선이나 헌신적 사랑이라지만 그 속에 인지하든 모르든 감춰진 욕이나 이기적 바람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고 싶었다.
난리가 나고 밀물이 몰려와 난장을 쳐서 퇴로를 막아 차단하였다. 진로는 막더라도 퇴로는 열어두어 도망치게 했더라면… 가두면 고인 물이 된다. 함께 가두어졌을 균은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정착하여 귀화할까? 아니 모습은 비슷해진다 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독성을 지닌 채 그 물을 썩히려 드는 것은 아닐까? 100% 신뢰와 배려를 천명하지만 어떤 이유나 사연에 의해 언제든 배신이나 속임이 있을 수 있는 그들은 그것이 절대 바른 것이어서 제가 할 일이라 조금도 의심치 않을 수 있는 것을 말하려 했다.
눈에 띄는 것에만 방점을 둔다고, 중립적이지 못하고 제 주장만을 편다고 고개를 젓겠다는 게 아니라 그리 될 수밖에 없던 까닭이나 저변도 함께 보아달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갑이라고 지칭되지만 무리를 이끄는 것은 극소수인 것처럼 양민 무리도 소수 정예에 의해 나아가고 멈추는 게 자명할 일이다. 그 소수가 자양분의 그것이라면 무어 걱정거리가 될까마는 도화선을 당겨 민중을 들쑤시고는 숨어버렸는데 민중이 한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을 게라 싶다. 배신이나 복수가 피 끓는 사랑에만 있는 게 아니니 눈 부릅뜨고 잘 지켜보자고 들려주고 싶었다. 시류에 따라 어느 방향에서 귀인이 올까 모양새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변화겠지만 선을 넘지는 말자는 얘기다. 밟혀서 꿈틀대며 비명을 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뒤에 숨어 술책이나 선동질로 몸부림치고 외치게 하는 독소를 먼저 찾아야 할 일이다.
한강의 기적처럼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환호하여 반길 기쁜 일이지만 문학이 반골, 저항, 고발, 자기주장만의 길로 빠지지 않기를 바라본다.
- 〈책머리에〉 중에서 발췌
이게 민중의 힘이려나, 믿다가 아니 왜 이리도 우둔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속고 배반당하고 내쳐지면서 무어 그리 좋다고 매달리고 안기지 못해 안달을 내는가? 밉다면서 싫다면서 어찌 그 자리에 끼이지 못해 법석을 떠나?
대치라는 말에 웃음이 난다. 민중과 탱크로 죽을 판 살판 영원히 끝나지 않을 싸움을 계속하며 맞서고 있다는 생각이다. 헛웃음과 안타까움이 드는 것은 그들 누구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을 한다. 무리라고 다 힘이 있는 것인가?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이고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가? 갈대 숲속에 갈대만 사는 게 아니었다. 너무 많은 생명체가 도사리거나 자리를 틀고 있다. 그게 힘이라고 민중은 외친다.
그러다 또 떠올린다. 갈대 숲속에는 독이 없을까? 재잘재잘 참 많은 새떼가 살고 있어 조류 독감도 걱정이고 들쥐 날쥐들이 전염병을 옮기기도 할 것이다.
나약하다고 압제 받고 있다고 다 불쌍한 게 아니고 보호를 해야 하는 게 아니다. 그들 속에도 눈에 띄지 않지만 그들을 등쳐먹거나 이간질하는 독버섯이 살 것이다.
살아야 하는 가치에 대해 쓰고 싶은데 그것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싸한 빌미를 찾아야 했다. 찾다 보니 뭔가 다른 것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초적이고 자극적, 반항적이며 잔인한, 비판적으로 도발하거나 고발하는 글들이 판을 치는 것에 오히려 세상이 더 각박해지고 어둡고 침울해지는 것이라 여겨지고 조금 덜 자극적이고 시대에 편승하지 않더라도 낫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필을 잡았다.
곪은 종기는 도려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왜 생겼는지 아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고 싶다. 그것이 악성일 수 있겠지만 양성일 수도 있을 수 있어 하는 말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한다. 그 썩은 물이 주변을 해롭게 하기 전에 퍼내어 버려라 한다지만 그 물이 썩은 이유를 또는 썩게 한 원인 파악에는 밝히려거나 부지런을 떨지 않는 것 같다.
장르를 불문하고 시류에 편승하지 못해 안달을 하는 것 같다면 필자의 어리석음인가?! 이슈화된 일을 파헤치고 갑질을 나무라지만 피해자라고 울부짖는 을의 뒤는 들춰보려고도 않는다. 현실적 분위기에 눌리거나 휩쓸리고 눈치에 둘려 입을 다문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써진다고 하지만 어떤 일이든 원인이 있어야 발생이 된다고 보아야 하는 것도 명심해야 할 일이다.
이념이나 정치를 두고 누가 옳고 어느 쪽이 승자라는 말은 삼가더라도 절대 진리가 없듯이 절대 악이라 치부해 버리는 것도 고려해야 할 일이다.
고발하자거나 틀렸으니 바루자는 게 아니라 을이라고 무조건 편들고 감싸려 들지만 말고 그 무리 속에 혹 균이나 독소는 없었는지 짚어보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절대 선이나 헌신적 사랑이라지만 그 속에 인지하든 모르든 감춰진 욕이나 이기적 바람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고 싶었다.
난리가 나고 밀물이 몰려와 난장을 쳐서 퇴로를 막아 차단하였다. 진로는 막더라도 퇴로는 열어두어 도망치게 했더라면… 가두면 고인 물이 된다. 함께 가두어졌을 균은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정착하여 귀화할까? 아니 모습은 비슷해진다 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독성을 지닌 채 그 물을 썩히려 드는 것은 아닐까? 100% 신뢰와 배려를 천명하지만 어떤 이유나 사연에 의해 언제든 배신이나 속임이 있을 수 있는 그들은 그것이 절대 바른 것이어서 제가 할 일이라 조금도 의심치 않을 수 있는 것을 말하려 했다.
눈에 띄는 것에만 방점을 둔다고, 중립적이지 못하고 제 주장만을 편다고 고개를 젓겠다는 게 아니라 그리 될 수밖에 없던 까닭이나 저변도 함께 보아달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갑이라고 지칭되지만 무리를 이끄는 것은 극소수인 것처럼 양민 무리도 소수 정예에 의해 나아가고 멈추는 게 자명할 일이다. 그 소수가 자양분의 그것이라면 무어 걱정거리가 될까마는 도화선을 당겨 민중을 들쑤시고는 숨어버렸는데 민중이 한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을 게라 싶다. 배신이나 복수가 피 끓는 사랑에만 있는 게 아니니 눈 부릅뜨고 잘 지켜보자고 들려주고 싶었다. 시류에 따라 어느 방향에서 귀인이 올까 모양새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변화겠지만 선을 넘지는 말자는 얘기다. 밟혀서 꿈틀대며 비명을 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뒤에 숨어 술책이나 선동질로 몸부림치고 외치게 하는 독소를 먼저 찾아야 할 일이다.
한강의 기적처럼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환호하여 반길 기쁜 일이지만 문학이 반골, 저항, 고발, 자기주장만의 길로 빠지지 않기를 바라본다.
- 〈책머리에〉 중에서 발췌

격랑의 역도들 (황현욱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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