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의 수단: 민족어와 국어

계몽의 수단: 민족어와 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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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총서는 2014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지원하는 한국학 총서 개발 사업 ‘근현대 학문 형성과 계몽운동의 가치’의 결과물이다.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 연구진은 근현대 학문사를 포괄할 수 있는 지식 기반 데이터 구축과 근현대 분과 학문의 발전 과정을 기술하고자 하는 거시적인 목표를 세우고 출발하였다. 그 과정에서 근현대 한국 학문사의 주요 정신적 기반이 ‘계몽’에 있었음을 주목하였다.

지난 3년간의 연구 과정에서 연구진은 수많은 자료와 씨름하였다. 출발 당시 1880년대의 자료를 기점으로 1945년까지 각종 신문과 잡지, 교과서류의 단행본 등을 수집하고, 이를 주제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 가운데 근대 계몽기 잡지의 경우 ‘학문 분야별 자료’를 분류하여 9종의 자료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자료집은 학회보(잡지)에 수록된 논설?논문 등을 학문 분야별로 나누어 8종으로 출판하고, 권9는 분류 기준과 결과를 별도로 편집하였다. 연구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월례발표회를 가졌으며, 연구진 각자 개별 논문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근현대 학문 형성과 발전, 계몽운동의 전개 과정 등과 관련된 자료가 수없이 많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총서는 제1권 ‘한국 근현대 지식 유통 과정과 학문 형성 발전’, 제2권 ‘한국 근대 계몽운동의 사상적 기반’, 제3권 ‘계몽의 주체로서 근대 지식인과 유학생’, 제4권 ‘학문 사상과 근현대 계몽운동의 지향점’, 제5권 ‘계몽의 이데올로기와 대상’, 제6권 ‘일제 강점기 계몽운동의 실제’, 제7권 ‘계몽의 수단: 민족어와 국어’로 구성되었으며, 집필 과정에서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집필 원고에 대하여 각 연구원의 동의를 얻어 연구 책임자가 일부 가감하기도 하였다.
저자

허재영

단국대학교교육대학원교육학과부교수.일본연구소장.HK+사업책임자.≪일제강점기교과서정책과조선어과교과서≫,≪우리말연구와문법교육의역사≫외다수의논저가있음

목차

제1장언어와근대
1.언어와근대의식
2.계몽시대의언어ㆍ문자
3.근대의식과어문정리
4.국문보급과외국어학습

제2장계몽운동과언어
1.지식계몽과언어문제
2.근대지식의형성과국어국문
3.지식계몽과역술문헌
4.결론

제3장국가어와민족어:국어와조선어
1.국가와민족
2.국어와민족어
3.어문민족주의와조선어
4.결론

제4장언문일치와문체의진화
1.문체와언문일치
2.언문일치와문체의진화
3.계몽의언어와개성적문체
4.문체진화의의미

제5장민족어문교육의발전과한계
1.민족주의와민족어문교육
2.민족어문교육의내재적발전
3.민족담론과민족어문교육의한계
4.민족어와국어,그리고한국어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국문의필요성과가치인식

근대의식의성장과정에서출현한‘국문사상’은국문의필요성과가치를인식하고국문을바르게사용해야한다는논리를주축으로하고있다.
근대계몽기의국문론은현실언어와일치하는국문통일,누구나쉽게익힐수있는국문자사용,지식보급과문명발전을위한국문사용의필요성등을주제로삼고있다.

근대정신으로서언문일치운동

근대정신으로서언문일치운동은근대지식형성과보급의필요에따른것이다.근대지식의형성과정과보급과정에서가장먼저등장한문제는역술(譯述),곧번역과편술이었다.역술은외국어로된서적을직수입하고,그언어로그문헌을읽지않는이상,반드시거쳐야할작업가운데하나였다.이러한역술서적의출현은시대상의차이또는번역경로등의차이는있을지라도서세동점기중국과일본,한국이모두경험한것이었다.

국문론에반영된문명진화론

한국어문운동사에서국문자의범위에대한논란은근대계몽기이후현재까지지속되어왔다.이러한논란은‘한글’과‘한자’의대립,또는‘한글전용’과‘국한혼용’의대립등과같이문자사용의본질적인문제보다민족주의내지국가주의라는이데올로기적성격을띤경우가많았던것으로보인다.그러나엄밀히말하면근대계몽기의문자론,특히국문론은‘국어’라는의식형성과정만을반영한것이아니라19세기이후세계지성사의기반이되었던진화론적문명론과밀접한관련을맺고있다.국문론에반영된문명진화론은국문보급이인민을계몽하여‘개화의상태’,곧‘문명진보’를이끈다는범박한사상이다.

국문정리운동과문전연구

훈민정음이창제된이래1895년에이르기까지국어의말소리변화에적합하게표기법을통일하고자하는운동은없었다.비록조선시대일부학자들이시대변화나지역에따라음변화가존재한다는사실을언급한적은있지만,현실음을반영하여표기법을체계화해야한다는데까지생각이미치지는못했다.이러한점에서1895년이후에등장하는‘국문정리운동’과‘문전연구’는국어학사의의미뿐만아니라계몽운동사의차원에서중요한의미를갖는다.

1933년한글맞춤법통일안제정

근대계몽기국문의가치인식이나구어의발견,표기법의정리등이본격적인문제로대두된것은1890년대후반의일이다.≪독립신문≫창간호논설이나윤치호의‘조선국문’에대한제안등은이를뒷받침하며,≪협셩회회보≫1898년3월12일자내보에서도≪만국공보≫의중국문자개혁기사를보도할정도로,문자문제가본격적으로제기되기시작하였다.
국문정리와관련한다수의논의를통해1907년에는학부내에‘국문연구소’가설립되었다.국문연구소는‘신정국문’이반포된지2년후인1907년(광무11년)7월8일당시학부대신이었던이재곤의주청으로이루어졌다.이시기학무국장은윤치호로어윤적,이능화,권보상,이억,윤돈구,주시경,현은,송기용,장헌식,이종일,유필근,이민응,지석영,우에무라(上村正己)등이위원으로활동하면서정서법확립을주목적으로삼았다.국문연구소는1909년(융희3년)12월27일까지존속되었는데,그과정에서‘국문연구의정안’이라는통일된보고서를마련하였으며,이안은조선어학회에서1933년‘한글맞춤법통일안’을제정할때까지반영되었다.

외국어학습의필요성대두

근대계몽기국문보급은기독교계종교단체의활동으로부터본격화되기시작한다.1880년대서양여러국가와통교한뒤부터각국선교사가들어오기시작했고,이들은선교목적으로다양한서적을출판하기시작하였다.선교사들의국문서적출판은성경번역과밀접한관련을맺고있었는데,그가운데대표적인단체가‘미이미교회성교서회사’,‘대한성교서회사’등이었다.
근대계몽기지식수용과정에서서양과의접촉은외국어학습의필요성을인식하게하였으며,국문보급과정에서서양선교사들의역할이적지않았음도서양각국의언어를배워야할필요성을느끼게하였다.

근대계몽기국어와외국어의길항관계

근대계몽기국어와외국어의길항관계는계몽의언어로서국어와국문의가치를변화시키는데중요한요소로작용한다.근대의식과언어,국가어와민족어(언어권력),계몽의수단으로서언어(국어)의통일,국어정책등의과제는한국근대계몽기‘언어’의역할이무엇인지를규명하는주요주제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