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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채시인은친식물성시인이다.식물을형상하는감각이아름답다.흰꽃이무더기로피는이팝나무를순간의구름에서끊어왔다는상상,또풍만하고눈부신새틴소재로비유하여웨딩드레스를만들었다는상상이아름답고풍요롭다.화사한얼레지꽃이바람둥이어린년으로비유되고,길거리한복판에있는꽃의이파리가얼룩덜룩멍자국같이보이는것을집단구타당한것으로의외적상상을한다.묘사와진술,열거와인유가빛난다.시집에는풀과꽃과나무등식물뿐만아니라동물들도상당수언급된다.
표제시「흑두루미날다」는묘사와진술이절정을이루는역작이다.서쪽하늘로기우는해가마침표를붉게찍는다는시각적심상이인상적이다.갈대밭에서수천마리의흑두루미떼가“오후다섯시를끌고하늘로날아오른다”는표현이장엄하다.“발목이간지러운갈대들이잎을뾰족이세우고휘청거린다”는진술이섬세하다.오래다물었던입이한꺼번에터지듯울음소리가공중에서울려퍼지는합창은웅장하다.새울음소리를묘사한의성어가청각적울림을준다.흑두루미떼들의군무는하늘을덮고,노을을배경으로점묘화를그린다.갈대들이방죽에서서오도가도못한다는묘사와진술도일품이다.하늘끝까지날아갈듯한새떼를따라가고싶어서인지화자의겨드랑이가간지럽다는상상력도기발하다.
문인에게고향은마르지않는샘물과같다.최근류시인은성장기에경험한농경사회와도시생활,그리고다시시골에내려가부딪히게된격세지감의낯선제재를통해새로운시세계를구축하는중이다.많은독자가류인채시인의시를만나삶이풍성해지기를바란다.
―공광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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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말
안개낀산책길을걷는다
발밑에눌린풀잎
손사래치는나뭇잎이보인다
뒷전의내가보이고
우짖는새들
고향의목소리가들린다
누가가마솥에시래기를삶는지
구수한내물씬코끝을간질인다
어릴적내머리를쓰다듬던적송이
뒷산에서연신손짓한다
머위감국까치수염
여우팥꼬투리속에
詩가살아있다
2023년12월
느락골문정헌에서류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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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속의시한편
흑두루미날다
순천만은철새도래지인데새들이보이지않는다
갈대들만가볍게몸비비며서있다
고요한둘레길을걷다가흥얼흥얼노래를부르는데
서쪽하늘로기우는해가마침표를붉게찍는다
순간,푸르륵푸르륵
여기저기서새들한꺼번에깃치는소리들린다
누가무슨신호를보냈는지
갈대밭에서숨고르던수천마리의흑두루미떼가
오후다섯시를끌고하늘로날아오른다
발목이간지러운갈대들이잎을뾰족이세우고휘청거린다
저새들,어느행성에서날아온누구일까
오래봉했던입이한꺼번에열린듯
뚜루루루뚜루루루뚜루루루뚜루루루……
공중의합창이웅장하다
새까맣게하늘을덮은군무가시작된다
제색에취한노을이서천에점묘화를그린다
새들은해지는쪽으로날다가돌아서길게원형을만들다가화르르
건너편논바닥에앉았다가다시날아오른다
머리위에서회오리가인다
이곳의저녁은새떼에포위되었다
갈대들은방죽에서서오도가도못하고있다
새들은제가걸어온길을지우고서서히하루를지운다
길이없어진길위에서나는넋놓고그들을바라본다
저새들지금저붉은눈동자로무얼주시하고있는지
긴다리를뻗어이저녁을떠메고어디론가날아갈태세다
뚜루루루뚜루루루뚜루루루뚜루루루……
높이더멀리날아가까마득한점이되는새들
목을길게빼고커다란날개를휘저어
저무는하늘끝까지날아갈듯하다
문득,겨드랑이가간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