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달이 시를 쓴다

그 달이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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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중도 시인의 시집 『그 달이 시를 쓴다』가 시작시인선 0549번으로 출간되었다. 1993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통영』, 『새벽 시장』, 『당신을 통째로 삼킬 것입니다』, 『섬사람』, 『사라졌던 길들이 붕장어 떼 되어 몰려온다』, 『고래 서방』이 있다.
이중도 시인의 시집 『그 달이 시를 쓴다』는 통영의 바다와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유년의 기억을 단순한 회고를 넘어선 신화적 공간으로 변주해 낸다. 시인의 심장부에 영원한 고향으로 각인된 ‘통영’은 시인의 온몸에 박동搏動하듯 시詩 속에 부려지며, 여러 인물 군상과 동식물, 심지어 귀신까지 출몰하는 생생하고 찬란한 세계로 재구성된다. 이는 오래전에 사라진 사물들이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신화 속 이야기로 재생되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독특한 시적 장소를 구축한다.
이중도 시인은 고향을 그려내는 방식에서 타 시인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백석의 토속적 사실성과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절묘하게 융합한 그의 시는, 유년의 ‘통영’을 지역적 구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설과 신화의 공간으로 확장시킨다. 『사슴』의 토속적 마을과 『백년의 고독』의 환상적인 마콘도Macondo가 중첩되는 그의 고향은, 전통적인 한국적 정서와 이국적인 환상이 결합된 독특한 세계를 지향한다. 시인의 손끝에서 재창출된 ‘통영’은 ‘전적으로 통영이면서도 지극히 통영이 아닌’ 역설적인 이국성을 획득하며, 현대 문명 속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대 신화 속 불꽃과 같은 위상을 갖게 된다.
궁극적으로 이중도 시인은 돌아갈 수 없는 고향 마을을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원초적 세계로 그려냄으로써, 한국인의 정서에 깊이 새겨진 ‘고향’의 원형을 독특하고 생생하게 일깨운다. 시인 개인의 기억을 넘어 한국인 전체의 집단 무의식 속에 잠자던 고향을 소환하는 그의 시는 사라져가는 것들을 붙드는 간절한 마음으로 쓰였으며, 독자로 하여금 마음속 깊이 숨겨놓았던 ‘잃어버린 고향’을 다시 꿈꾸게 하는 회복과 치유의 경험을 선사한다.
저자

이중도

저자:이중도
1970년경남통영출생.
서울대학교에서법학전공.
1993년『시와시학』신인상으로등단.
시집으로『통영』『새벽시장』『당신을통째로삼킬것입니다』『섬사람』『사라졌던길들이붕장어떼되어몰려온다』『고래서방』이있음.

목차

시인의말

제1부

술심부름11
그날,너는16
복숭아나무18
밤에목욕하는처녀들21
도토마리25
그달이시를쓴다28
그리고우리는돌아올수없었다31
부표34
갈대밭36
물개바위38
구중물들다41
원문이용원43
원문상회46
롯데삼강사와48
야반도주만이유일한답이었다52
무학소주열두병에잔은한개54

제2부

숲이있었다59
그집62
동네65
소년68
밤이었다70
멱을딴다72
공부방75
바다어는날76
기러기가먹고싶다78
아우먼저!80
늙은암소를타고간다81
소한마리있어야겠다84
오래잊어버렸던이름한마리86
달이훤했지!88
똥개90
다죽었다92
그해의죽음들93
J에게94
무논95
걸음마배우는봄바람이97
초록물감방울같은100
여름이었다103
이른아침하얀고무신이104
눈오시는날106

제3부

새봄111
고봉의쌀밥같은신랑이112
아재다리가113
아비세명이낫을들고114
매일밤불침번을115
젖을먹이고있다116
닭을잡고있다117
불알두쪽이다깨져버린아재가118
돼지꼬리만한지네가119
목구멍을넘어간다120
바다로던져버린다121
중송아지만한노루가122
황새가123
해바라기124
할머니의유언125
아랫방창문126

해설
차성환영원한고향의꿈

출판사 서평

추천사

이중도는행복한시인이다.그야말로완전한귀향을실현하였다.대다수시인들이고향을상실하고노스탤지어를앓거나방황하며소외와분열을말하는시대에그는고향을노래하는우리시의희귀한개성이되었다.불혹의나이에통영으로회귀한그는어린시절을추억하며변화하는고장의구체적삶을시로표현하였다.때론사라지고잊힌일들에서슬픔을느끼기도하였지만풍경과합치하고동일성을얻는깊은기쁨을누렸다.이제지천명이라는오십을훌쩍넘기고서유소년의기억을다시불러내어벽화를그리고이야기하며노래로읊는장대한작업을개진하였다.때론시원의신화에이르기도하고,비의를품은전설을끄집어내는한편,소소한삶의즐거운일화들을생동하는리듬에실어이어간다.풍경이며사물이그저대상으로나뉘지않고죄다긍정과가능성의힘으로존재를이어주고이끄는사건으로비약한다.누구도이중도의시편이환기하는신비의매혹에이끌리지않기힘들듯하다.그울림과반향의여운이길게마음속에서요동한다.그가형성한행복의시학이빛나는모습이다.
―구모룡(문학평론가)

시인의말

그시절,고향은
코끼리귀만한이파리들무성한
두아름무화과나무였다.

나는한마리
유별난장수하늘소였고

흙과시詩는
일찍이정해진운명이었다…….

고향이썼다.

책속에서

<그달이시를쓴다>

그날그달의살냄새에,흙집에고둥처럼깃들여사는사람들이모두바닷가로나왔다이미단풍이든늙은살구나무가꽃을활짝피웠다벌레울음소리가소낙비처럼번졌다우리를부수고나온돼지들이떼를지어몰려다녔고시집도안간처녀들이임신을했다

장대로높이뛰기를하면손에닿을거리까지내려온달이거대한술잔속바다에달빛을흩뿌리자해저에서검은준마들이천천히움직였고연안구석구석에서발기된배들이밧줄을풀고슬슬나왔다

오직팔의힘으로움직이는순박한목선들,물고기와조개를싣고다니는중세농노같은목선들이머시마들을가시내들을태우고달이만들어놓은마당에모여들었다

모인배들은얼마동안배다른수캉아지들을한곳에몰아넣어둔것처럼서먹서먹한표정으로코를킁킁거리며냄새를맡다가가시내들의노랫소리에,가시내들입을통해부르는달의노랫소리에서열가리지않은수컷들로돌변했다시키지도않은힘자랑이시작되었다멀리시커멓게웅크리고있는섬을향해경주가시작되었다

달리는배하나하나가튼실한양물陽物들!
높아져가는노랫소리에점점더싱싱해지는양물들!

시거리두른양물들이씩씩거리며거친숨을뿜을때마다,대가리로파도를부술때마다갯벌에다리박고머리만내놓은하마들이입을크게벌렸다수면에붙어잠자던고래들이꼬리지느러미를들어올렸다

잘피숲에둥지튼붙박이들의꿈을박살내며먼저닿은배는모닥불을피워승리를자축했고나머지배들은풀이죽어달아래로돌아왔다하마들은다시피가굳어졌고고래들은잠속으로끌려들어갔다

그러나달빛!
넓게쳐놓은그물에걸린억만전어들이물위에떠올라파닥거리는것처럼
물결에부서지는달빛에저절로점화되는노래들
상수리나무빽빽한숲기슭에박혀있는하얀이끼두른바위들을
허공에밀어올려춤추게하는우리의노래들

다시죽순처럼부풀어오른배들은몸속의노래를한방울도남김없이내보낼때까지달빛마당을돌고또돌았고속을깨끗이비운배들은하나둘씩둥둥떠올라달속으로사라졌다

배들이다사라진후에야달은마당을걷어가며만삭의몸을이끌고서서히서쪽하늘로떠났다……

떠나간그달이,돌아올수없는그달이시를쓴다
텅빈달아래앉아텅빈마을바라보며
여자들의꼿꼿한뼈대들이불알까버린토끼들을몰고다니는자전거도로를걸어다니며
그날그달이!